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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한남금북정맥

2008.02.27. [한남금북정맥記 5] 현암삼거리→이티재

by 사천거사 2008. 2. 27.

한남금북정맥 제5구간 종주기

◈ 산행일시: 2008년 2월 27일 수요일 맑음

◈ 산행구간: 현암삼거리 → 것대산 → 산성고개 → 동암문 → 인경산 갈림길 → 99임도 →

                  이티봉(486.8봉) → 이티재

◈ 도상거리: 13.2km

◈ 산행시간: 7시간 11분


  


08:33 아파트 출발. 오늘은 한남금북정맥 5구간 현암삼거리에서 이티재까지 산행을 하기로 했다. 그저께 밤에 눈이 많이 내려 2월말에 모처럼 눈을 실컷 밟아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현암삼거리를 향해 출발. 무심천 하상도로를 지나 목련공원묘지 앞 도로를 넘어가니 512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현암삼거리다. 이 주변은 도토리 묵밥집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타고온 차는 아내가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09:04  현암삼거리.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도로에만 눈이 없을 뿐 주변은 온통 눈 천지다. 우선 송전탑으로 올라가는 도로 오른쪽 입구를 찾아야 하는데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우선 청주 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고갯마루에 닿기 전에 오른쪽에 넓은 도로가 있고 차량이 못 다니게 쇠사슬을 걸어 놓았다. 일단 진입해서 한참을 걸어가니 왼쪽으로 임도 같은 넓은 길이 있다. 송전탑 방향이라 올라붙었다.

 

이윽고 표지가가 보이는 길이 나타났다. 오늘은 길을 여러 번 잘못 들었는데 첫 번째가 바로 여기다. 양쪽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야하는데 그만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말았다. 왼쪽 길을 따라 내려오니 송전탑에 닿기는 커녕 512번 지방도로 도로 내려서고 말았다. 아까 진입한 도로 바로 위 고갯마루였다. 다시 말해서, 방금 내려선 이곳이 바로 송전탑으로 올라가는 입구였다.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 송전탑에 닿았다.


▲ 512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현암삼거리  


09:31  송전탑에 도착. 154,000볼트의 고압선이 지나간다고 적혀 있다. 송전탑 바로 아래서 위로 쳐다 보니 기묘한 기학학적 모습을 보여 준다. 512번 지방도를 향해 출발. 산행로에 눈이 덮여 있어 순전히 표지기에 의지하고 길을 찾아야 한다. 얼마를 내려오다 오른쪽으로 길이 좋기에 내려섰더니 512번 지방도에 닿기는 했지만 잘못든 길이었다. 


▲ 송전탑 아래에서 위를 보고 찍은 사진 

 

▲ 산행로에 그저께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09:33]  


09:40  도로에 내려서서 현암삼거리 쪽으로 올라갔더니 오른쪽으로 표지기가 많이 달린 있다. 도로를 건너 진입,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섰다. 길을 잘못 들어 20분 이상을 허비했다. 리키다소나무 숲 사이로 산행로가 나 있다. 이번 코스에는 유난히 리키다소나무가 많았다. 9시 46분, 무덤 위를 통과. 해가 구름 사이로 잠깐씩 비치고 아직까지는 바람이 없다. 9시 56분, 목련공원묘지가 보이는 능선에 올라섰다. 내 앞에 펼쳐진 하얀 눈길.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길은 속세에 찌든 내가 밟아 무너뜨리기에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雪上初步라는 말이 생각났다.


▲ 512번 지방도를 건너서 

 

▲ 이 코스에는 유난히 리키다소나무가 많았다 [09:43] 

 

▲ 산행로에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쌓여 있다 [09:59] 


10:04  목련공원묘지가 내려다 보인다. 열병을 하는 군인들처럼 줄을 잘 맞춘 묘들은 모두 눈을 하얗게 이고 있고, 묘 앞에 놓인 조화들만 겨울이란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울긋불긋 피어있었다. 저기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갔을까? 이승을 떠나고 난 뒤 기억을 해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부귀영화, 권세, 명예 다 부질 없는 것들이다. 해가 떠오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아침 안개와 같은 것.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이다. Now here!


▲ 눈에 덮인 목련공원묘지 

 

▲ 목련공원묘지의 묘와 조화들이 줄지어 있다  


10:26   아스팔트 포장이 된 1차로 도로에 내려섰다. 오른쪽은 512번 지방도로 연결되고 왼쪽은 현양원으로 연결된다. 현양원은 충북현양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아동양육시설이다. 1차로 도로 절개지 위로 올라가는 길이 급경사다. 여기서 것대산 활공장까지는 계속 오름길이었다. 경사는 별로 심하지 않지만 눈길이라 미끄럽다. 할 수 없이 아이젠을 꺼내 착용을 했다. 미끄럼은 덜하지만 걷는데 많이 불편하다. 등산화 바닥이 편편해야 하는데 가운데가 불룩하니 균형이 잘 안 잡히고, 엉뚱한 다리 근육에 힘에 가기 때문에 금방 피로해진다.


▲ 현양원으로 이어지는 1차로 아스팔트 도로 


10:51  해발 485m의 것대산 활공장에 도착. 패러 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곳이다. 왼쪽에 6각 정자가 있는데 비닐로 포장을 쳐놓았고 안 중앙에는 교잣상도 하나 놓여 있었다. 활공장에서는 용암동, 금천동, 영운동의 아파트 촌이 내려다 보이고 송신탑이 있는 우암산도 보였다. 오른쪽에 이정표가 있는데 산성·것대마을까지 3.0km라고 적혀 있다. 활공장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화장실이 딸린 주차장이 있고 왼쪽으로 봉수대가 있다.


▲ 것대산 활공장에 있는 6각 정자 

 

▲ 것대산 활공장에서 본 우암산 

 

▲ 것대산 활공장에 있는 이정표 


10:57  해발 403m의 것대산 봉수대에 도착. 불을 피운 적이 있는 봉수대 뒤로 소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뒤로 상당산성이 보였다. 자, 이제 상당산성으로 가야하는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른쪽에 있는 차도 건너 언덕에 올라보니 길이 없다. 그렇다면 왼쪽으로 내려간다는 이야긴데... 일단 가보자. 표지기도 별로 없고 해서 자신이 없기는 하지만. 오른쪽 조림지와 차도를 보며 내리막을 내려가니 상봉재다. 제대로 온 것이다.


것대산 봉수대

 

것대산 봉수대는 청주시 산성동 것대산(거질대산)의 서쪽 산봉우리(해발 403m)에 위치한 내지봉수로 남쪽으로 문의면 소이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 진천읍 소을산 봉수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정확한 설치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이미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1895년(고종 31) 봉수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거차대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그 이후의 지리지에는 거질대산(巨叱大山) 봉수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곳에는 동서길이 26m, 남북너비 15.5m로 긴 타원형을 이루는 봉수지와 방호벽으로 쌓았던 석축 등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 이곳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인의 묘소 1기로 인해 불을 피우던 봉대(봉돈)와 연기를 올리던 수대 등의 시설은 확인할 수 없다.


▲ 것대산 봉수대에서 

 

▲ 것대산 봉수대에서 본 상당산성 


11:13  해발 386m의 상봉재에 내려섰다. 정맥 길은 오른쪽 계단으로 오르는 길이다. 계단을 올라서자 이정표가 있고 길은 다시 오른쪽으로 꺾였다. 이정표 왼쪽에 작은 추모비가 하나 있는데 25살의 나이로 요절한 한 청년의 친구들이, 그 청년이 장기 기증을 한 선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그 청년 자신은 생을 마쳤지만 신체 일부가 다른 사람의 몸 속에 살아 있으니 죽었지만 살아있는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상봉고개 전설

 

청주성이 이인좌 일당에게 유린되자 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절한 홍림은 그의 첩 해월에게 유복자를 잘 키우도록 유언하였다. 그 아이 세 살 되던 해, 시주스님으로부터 「동자가 10살을 못 넘기고 수액에 의해 요절하리라」는 뜻밖의 말을 듣고, 스님이 내린 처방책에 따라 유복자를 보국사 주지인 혜원에게 위탁하고 열흘에 한번씩 오시에 성황당 고개에서 기다렸다 만나보곤 했다.  

 

그러나 애초 절대 성황당 고개를 넘지말라는 스님의 말을 잠시 잊고, 그가 7살 되던 해 여름 아들을 속히 보고픈 마음으로 성황당 고개를 넘어 보국사로 향하는 산모롱이까지 바라보게 되었다. 이무렵 보국사에서는 상좌승이 홍도령이 막 연못에 빠져 숨을 거두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한다. 이 소식을 들은 해월이는 남편의 유언을 끝내 지키지 못하여 홍씨 가문의 혈육을 잇게 하지 못한 죄를 안고 남편 무덤 앞에서 자결하고 만다. 그후부터 모자의 애끓는 정이 서로의 만남의 자리로 되었던 성황당 고개를 상봉고개라고 부르게 되어 지나는 사람마다 두 모자의 명복을 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상봉재에 있는 이정표 

 

▲ 상봉재 위에 있는 이정표 [11:15] 


11:26  출렁다리에 도착. 충북 청주시의 대표적 도시 근교 등산코스인 봉화산 등산로 중 상당산성과 것대산을 잇는 산성고개에 길이 45m, 폭1.5m, 지상높이 15m의 출렁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다리는 친환경적으로 목재와 밧줄을 이용해 고갯마루 양쪽을 연결하는 형태로 제작됐으며, 사람이 지나갈 때 출렁이기 때문에 스릴과 긴장감을 맛볼 수 있다. 그동안 우암산, 산성, 것대산, 낙가산을 통해 김수녕 양궁장으로 일주하는 등산코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산성에서 것대산으로 이동하기 위해 산성고개 도로를 무단횡단 해야 했다. 그러나 2007년 6월 28일에 이 출렁다리가 설치됨에 따라 산행객이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불편이 해소됐다.


▲ 산성고개 위에 놓여있는 출렁다리 

 

▲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11:44  상당산성 남암문에 도착. 암문을 통과하면 산성 길로 올라서게 된다. 산성 길에 올라서니 것대산 활공장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우암산도 보인다. 평일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산성 길에도 빈틈 없이 눈이 덮여 있다. 서문을 향해 산성 길을 걸었다. 왼쪽으로 우암산에서 이어지는 산행로에서 산성 길로 올라오는 나무 계단이 보였다. 평소에 내가 자주 이용하는 계단이다. 또 왼쪽으로는 청주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데 우리 아파트도 보인다.


상당산성

 

상당산성은 청주시내와 가까워서 청주시민들의 쉼터 구실을 하고 있다. 상당산성이란 명칭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듯하다.  둘레가 4km를 넘는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통일신라 초기에 신라의 서원소경이 청주 지역에 설치되었는데  삼국사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이것을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956)에 대대적으로 수축한 후 1716년, 숙종 42년에 석성으로 개축한 것이다. 

 

길이는 4.2km, 높이는 3~4m이며, 성벽은 크기가 일정치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벽면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를 쌓아 올린 내탁공법으로 축조하였다.  동,서,남의 3문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3문 모두 문루를 갖추고 있다.  또한 산성의 정문인 공남문은 무지개문이고  동문과 서문은 평문인 방형문이며, 장대는 동장대와 서장대 두 곳이 있다. 1970년에 사적 제 212호로 지정되었으며, 산성 내에는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 산성으로 올라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남암문 

 

▲ 산성에 올라 바라본 것대산 활공장 

 

▲ 산성에서 바라본 우암산 

 

▲ 눈이 덮인 산성길 [11:48] 

 

▲ 서문으로 돌아가는 산성길 [11:51] 

 

▲ 서문의 모습 [11:59] 


12:00  상당산성 서문에 도착. 彌虎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서문을 지나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언덕을 넘었다. 산성 길은 구불구불 계속 이어져 있다. 왼쪽으로 멀리 내수읍이 보이고 이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보인다. 내리막을 내려간 다음 다시 언덕을 올라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표지기가 많이 보였다. 동암문이다.


▲ 상당산성 서문 

 

▲ 동암문으로 이어지는 산성길 [12:12] 


12:23  동암문에 도착. 정맥 길은 이 문을 통과해서 산성을 벗어나야 한다. 동암문으로 나와 산행로에 들어섰는데 앞서 간 발자국이 보였다. 정맥 산행을 하는 사람의 것인가? 아차, 산성 길을 따라 걷다가 그만 상당산을 놓쳤네. 동암문 위에 있는데. 다시 가? 말어. 경사가 별로 없는 능선길이 계속 이어졌다. 바람은 부는데 그리 차갑지는 않다. 20분 정도 걸어 491m봉이라고 쓴 팻찰이 걸린 곳에 도착했다.


▲ 동암문: 한남금북정맥 코스로 가려면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 


12:44  491봉은 갈림길인데 오른쪽으로 꺾이는 넓은 길이 나 있고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다. 맞은편 나무에 매달린 등산로 이정표도 그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발자국은 직선 방향으로 나 있고 그 쪽으로도 표지기가 몇 개 붙어 있었다. 헷갈린다. 발자국을 보면 곧바로 가야 하는데 표지기를 보면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백두대간 산행을 할 때 장수 백운산에서 겪은 일이 생각났다. 일단 앞서 간 사람들을 믿고 곧바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허, 길을 잘못 들었네. 그 길은 마을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앞서 간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다시 491봉으로 원위치하여 오른쪽으로 내려가니 다시 왼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Bingo! 시계를 보니 15분 이상을 허비하고 말았다. 미리 다른 사람의 산행기를 충분히 읽고 올 걸. 왼쪽 길로 들어서니 오른쪽에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이티재에서 상당산성까지 5시간이 걸린다고 적혀 있다. 곧 남자 산행객 한 명을 만났고 얼마 안 있어 여자 산행객 두 명을 만났다. 이티재에서 오는 것이 분명한 만큼 발자국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 리키다소나무 숲 사이로 눈 덮인 산행로가 이어졌다.


▲ 491봉 안내 현수막 

 

▲ 491봉에 있는 등산로 안내판 

 

▲ 491봉 아래에 있는 삼거리 

 

▲ 491봉 아래 삼거리를 지나면 보이는 등산로 안내판 [13:02]  

 

▲ 이번 코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리기다소나무 [13:17]  


13:21  산행로 주변이 모두 눈으로 덮여 있어 점심을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았는데, 안부 위 오른쪽 양지에 눈이 녹은 곳이 있어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늘 그렇듯이 김밥 한 줄과 물이다. 점심 후 출발. 바람은 계속 불지만 그렇게 차갑지는 않다. 능선 산행로 중에서 해가 비치는 곳은 벌써 눈이 녹아가고 있었다. 10여분 후 오른쪽의 자작나무 조림지를 지나 봉우리에 올랐는데 산행로는 오른쪽으로 꺾이고 있었다. 

 

14:10  참호가 있는 4거리 안부에 도착. 아이젠을 벗었다. 산행로의 경사가 별로 심하지 않아 크게 미끄럽지 않고, 무엇보다도 딛는 발의 균형이 맞지 않아 다리가 몹시 아팠기 때문이다. 아이젠을 벗으니 살 것만 같다. 진작 벗을 걸. 10분 걸으니 숲속의 둥지 안내판이 있다. 예전에 가 본 곳인데. 이 길에서도 내려갈 수 있구나. 라이브 음식점으로 가격이 꽤 비싼 곳이라는 기억만 남아 있다.


▲ 참호가 있는 4거리 안부 

 

▲ 음식점 '숲속의 둥지'로 내려가는 길 안내판 [14:21] 

 

▲ 산행로가 모두 눈으로 덮여 있다 [14:28]  


14:39  삼각점이 있는 해발 430.7m 봉우리에 도착. 눈 위로 삼각점만 1979라는 글씨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봉우리를 지난 15분 정도 걸어가니 인경산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이 정맥 길이며 직진하면 인경산으로 올라가게 된다. 날이 풀리면서 등산화에 붙은 눈이 녹아 안으로 스며들어 양말이 젖기 시작했다. 왼쪽은 괜찮은데 오른쪽 등산화는 방수에 문제가 많다. 예비 양말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그냥 견디는 수밖에. 계속되는 내림길을 25분 정도 내려가니 임도가 나타났다.


▲ 430.7m 봉에 있는 삼각점 

 

▲ 인경산 갈림길: 정맥 길은 왼쪽이다 [14:56] 


15:22 99 임도에 내려섰다. 임도 기념석에는 이 임도가 청원군 북이면 비상리에서 미원면 대신리까지 3640m 길이로 개설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임도를 올라서면 바로 왼쪽에 커다란 느타나무가 있는데 아랫부분은 비어 있고 불에 탄 흔적도 있었다.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안동라씨 납골당이 있다. 볕이 따뜻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과를 하나 깨물어 먹었다. 여기서부터 이티봉까지는 계속 오르막이었다. 경사가 급한 곳은 미끄러워 운행 속도를 더디게 만든다. 여러 개의 참호와 벙커를 지나자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 99 임도 안내석 

 

▲ 99 임도 바로 위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 99 임도 위에 있는 안동라씨 납골당 [15:24] 

 

▲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벙커 [15:52]  


15:55  해발 486.8m인 이티봉에 올랐다. 한쪽에 헬리콥터 착륙장이 마련되어 있고 조금 지난 곳에 삼각점이 박혀 있었다. 이곳에서 이티재까지는 계속 내리막 길이었다. 산행이 끝나간다는 기분에 발걸음이 가볍다. 리키다소나무 숲길을 지나자 적송 숲길이 나타났다. 두 나무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적송이 훨씬 더 아름답다. 차소리가 들려온다. 이티재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 486.8봉에 있는 헬리콥터 착륙장 

 

▲ 486.8봉에 있는 삼각점 

 

▲ 486.8봉에서 

 

▲ 아름다운 적송 숲 사이로 하얀 산행로가 나 있다 [16:05]


16:15  내수읍에서 미원으로 연결되는 511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이티재에 내려섰다. 이 지명만 들으면 자꾸 영화 E.T.가 생각난다. 버스 시간을 알아보러 이티봉 주유소 옆에 있는 구녀성 등산로 가든에 들어가니, 아주머니 세 분과 아저씨 한 분이 있는데 만두를 빚고 있었다. 커피를 시켰더니 캔 커피 뿐이란다. 캔 커피를 마시는데 아주머니가 찐만두를 하나 갖다 주셨다.

 

만두를 먹으며 미원이나 내수로 가는 버스 시간을 물었더니 5시 넘어서 있다고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저씨가 가덕으로 가는 길인데 자기 차를 타고 가자고 한다. 이런 횡재가 있나? 그러자 아주머니가 만두를 세 개 더 갖다 주셨다. 배가 고픈 참에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저씨와 아주머니 한 분은 부부로 나처럼 손님인데 커피를 마시러 들렀다가 역시 나처럼 만두를 얻어 먹었다고 한다. 시골 인심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다. 나중에 꼭 한 번 들러야겠다.


▲ 해발 360m의 이티재 

 

▲ 이티재에 있는 구녀성 등산로 가든  


16:25  소나타 승용차를 타고 가덕으로 출발. 수원에 산다는 그 분은 고향이 가덕이고 청주에 동생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수원에 있는 광교산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3월 2일에 그곳으로 산행을 갈 예정이라고 말씀드리니, 광교산에 대해 자세히 일러주신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4시 48분에 가덕 금거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드렸다. 5시 3분에 시내버스가 왔다. 그런데,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 버스가 청주시에 들어서자 운전기사가 손님들을 뒷차에 인계를 하고 떠나버린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웃기는 기사들 참 많다. 

 

17:50  덕성초등학교 앞에서 버스에서 내렸다.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오늘 산행에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하나는 코스를 미리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아서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비 양말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산을 많이 다녀도 늘 부족하다. 그만큼 산은 크고 인간은 작은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