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 산행/경기山行記

2007.09.29. [경기山行記 6] 경기 이천 백족산

by 사천거사 2007. 9. 29.

백족산(百足山) 산행기

◈ 일시: 2007년 9월 29일 토요일

◈ 장소: 백족산 402m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 코스: 무량사 → 약수터 → 정상 → 오남헬기장 → 굴바위 → 정상 → 무량사

◈ 시간: 1시간 57분



백족산(百足山)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백족산(百足山)은 해발 402m로 이천의 최남단에 있으며, 산 아래에 청미천이 휘돌아가고 그 건너편은 충북 음성 감곡이다. 백족산 정상 아래에는 백개의 발을 가진 지네가 살았다고 하는 전설이 깃든 지네굴이 있는데 이 지네의 전설에서 백족이라는 산 이름이 유래되었다. 동국여지승람 음죽현 편에 백족산은 현(縣)의 남쪽 15리 지점에 있으며 산중에는 석남사(石南寺)와 백족사(百足寺)가 있다고 나와있는데, 이로 보아 예로부터 백족산(百足山)이라 불리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백족산에 불반형지(金盤形地)의 전설이 있으니 백족산 남쪽 기슭에 있는 김자점 부친의 묘로 알려지고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조선 인조때 역신인 김자점은 여기에 부친의 묘를 쓰고 묘 앞에 부족한 수세를 보충하기 위하여 청미천(옛:天民川) 상류를 막아 자점보를 만들었다고 하며, 그로 인해 득세를 하여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촌노들에 의하면, 이곳은 아무리 강풍이 휘몰아치는 날도 바람한 점 없이 평온하다고 한다. 백족산 기슭에는 무량사가 있으나 창건연대는 그리 오래지 않으며, 백족산 서쪽에 있는 어석리 부락 가운데에 지방문화재 107호인 높이 5m의 입상석불이 있다.

 

한자로 백(百)가 들어간 산은 백족산(百足山)뿐 아니라 백복령(百福嶺), 백령산(百靈山), 백덕산(百德山), 백악산(百岳山) 등이 있고, 그 이름은 숫자 백(百)과 관련되어 불려지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지명에 흰백(白)이 쓰여진 지명이 많은데 백두산(白頭山), 태백산(太白山), 소백산(小白山), 백운산(白雲山), 백월산(白月山)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 이름은 한글의 "밝다"에서 유래되어 "희다"의 뜻으로 쓰여지고 있다.

 

이천시 장호원의 백족산의 지명이 많은 대다수의 역사서에 백족산(百足山)이라고 분명하게 표기되어 전해져오고 있지만, 근래의 몇몇 사람이 막연한 추측과 착각으로 白足山으로 표기하기도 하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백족산이라 불리우는 지명은 두군데가 있는데, 그 하나는 장호원의 백족산(百足山)으로 백 개의 발이 달린 지네와 남이장군의 전설을 갖고 있는 산이고, 또 하나는 충청북도 청원군에 소재한 백족산(白足山)인데 이 산은 세조 임금께서 이 산의 계곡 물에서 발을 씻으셨는데 유난히 발이 하얗다 하여 전해오는 전설을 깃든 산이다.


▲ 장호원-금왕 국도변에서 본 백족산 전경 


12:40  감곡중학교 출발. 토요일 오후 시간을 이용, 학교에서 건너다 보이는 백족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내 마음까지 찍어누르고 있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이 가을에 어찌하여 매일 구름 낀 하늘만 보아야 하는가? 코발트 빛 하늘은 어디로 갔나? 장호원읍 진암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무량사로 가는 길을 찾아 두 번이나 뺑뺑 돌았는데 입구를 모르겠다. 원위치하여 다시 세 번째로 좌회전을 한 다음 찾았다.

 

장호원 성당 아래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가면 된다. 거대한 무량사 표지석에 있는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하면 장호원과 주덕을 연결하는 4차로 도로 아래 지하차도에 이르게 된다. 지하차도 앞에 교통표지판이 있는데 무량사를 한자로 '舞量寺'라고 써놓았다. 절 이름에 '춤출 舞'자를 쓰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것은 잘표 표기된 것이었다. 실제로는, '춤출 舞'가 아니라 '없을 無'가 올바른 표기였다.


▲ 무량사 표지석

 

▲ 교통표지판에 한자가 잘못 표기된 舞量寺


13:05  무량사에 도착. 일주문 뒤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경내에는 체험학습을 왔는지 학생들이 모여서 무슨 활동을 하고 있었다. 무량사는 종파가 조계종이 아니고 태고종인데 벌써 절이 풍기는 냄새와 분위기가 조계종과 많이 달랐다. 이상한 석물을 많이 세워놓은 것 하면서. 무량사 왼쪽으로 시멘트 포장이 된 임도가 나 있었다. 감곡 못지 않게 장호원도 복숭아로 유명한데 그래서그런지 길 옆이 모두 복숭아 과수원이다.


▲ 무량사 일주문

 

▲ 무량사 경내에 있는 석불

 

▲ 무량사 극락보전

 

▲ 무량사 다보탑


백족산 무량사(無量寺)

 

무량사(無量寺)는 백족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다. 백족산의 크기와 진산으로서의 비중을 생각하면 오래된 사찰이 더 있을 듯하나 무량사가 유일하다. 일주문은 기둥 하나에 의지하여 사찰 영역임을 당당하게 선포하며 서 있다. 일주문에 새겨진 무량사 현판이 선명한 것을 보면 역사가 길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소나무 숲에 둘러쌓인 경내의 풍경에 한 점 흠이라면 덩치가 너무 큰 요사채가 오른쪽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무량사는 1921년 창건된 것으로 나오나, 일제시대 사찰령에 의해 주지를 관에서 임명한 사실에 비추어보면 청미면(장호원읍)에는 신흥사 밖에 없었던 것으로 나와 있어 그 사실이 의심스럽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에 청미면에 신흥사 외에 장호원교당이 있었다고 전하며, 장호원교당이 현재 무량사의 전신인 보타사인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보원 스님이 1986년 부임하여 보타사라는 절 이름을 무량사로 바꾸고 절을 보수 중창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무량사의 건물은 대부분 보원 스님 이후에 새롭게 건축된 것으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목조 기와집인 범종각이 자리하고, 정면으로 석등을 양쪽에 끼고 상단에 극락보전이 자리 잡고 있다.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삼존불로 모시고 있다. 극락보전 왼쪽 뒤편으로 토착불교의 상징인 삼성각이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다. 삼성각에는 산신, 칠성, 나한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13:20  갈림길. 약수터까지 150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백족산에는 이정표가 참 많았다. 높이는 별로인데. 길 옆 과수원에 복숭아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지금은 황도철. 이곳 복숭아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백도 품종으로 미백, 황도 품종으로 엘바도가 유명하다. 미백은 6-7월, 엘바도는 9-10월이 제철이다. 장호원과 감곡 복숭아만 '햇사레'라는 상표로 출하가 되는데, 금년에는 비가 많이 와서 당도가 떨어져 예년과 같은 맛을 찾아볼 수가 없다. 기상이변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 식물이자, 그 식물을 재배하는 농부들이다.


▲ 약수터 갈림길 이정표

 

▲ 도로 양쪽의 복숭아 과수원


13:24  백족산 약수터에 도착. 시멘트 포장 임도는 오른쪽으로 휘돌아가고 왼쪽으로 약수터가 있었다. 약수터가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많이 이용을 하는 것 같다. 약수터 오른쪽 위에는 공터에 운동기구가 여러 가지 마련되어 있고. 별로 갈증을 느끼지 못해 내려올 때 약수를 한 잔 하기로 하고 출발. 약수터 왼쪽으로 정상을 향한 나무계단 오름길이 나 있었다. 꽤 가파르다. 소나무가 멋있다. 토사유출을 막기 위해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배려. 하산하는 산행객을 두 명 만났다.


▲ 백족산 약수터

 

▲ 약수터 위에 자리잡고 있는 운동 기구터

 

▲ 소나무가 아름다운 능선으로의 오름길

 

▲ 나무계단에 앉아서


13:35  능선에 올랐다. 좌우 갈림길에 이정표가 서 있다. 백족산 정상 0.58km, 약수터 0.26km, 송산헬기장 0.41km. 오늘 예정 코스는 정상에 오른 다음 송산헬기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정표 옆에 벤취가 있어 잠시 휴식. 벤취하면 아내 생각이 난다. 아내는 산행을 하다가 벤취를 만나면 무조건 앉는다. 무조건, 무조건이다. 정상은 왼쪽 길. 가파르다. 경사가 매우 심한 곳에는 가드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시설만큼은 국립공원 못지 않다. 아니, 국립공원이 와서 배워야할 정도다.


▲ 주능선에 있는 산행로 이정표

 

▲ 이정표 옆에 있는 벤취에 앉아서

 

▲ 정상으로의 능선 오름길, 가파르다 


13:47  백족산 정상에 도착. 먼저 넓은 헬리콥터 착륙장이 모습들 드러내고 그 위로 오른쪽에 커다란 무덤이 하나 있으며 왼쪽에 육각정자가 있었다. 정자 옆은 소나무 여러 그루가 에워싼 쉼터였는데 4개의 벤취가 2열 종대로 서 있었다. 정상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3명이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고, 직장 동료로 보이는 3명이 벤취에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는 게양봉 아래에는 애국가가 1절부터 4절까지 오석에 새겨져 있고, 청미봉이라고 적힌 정상 표지석 뒤에는 '백족산 402.2m'라고 새겨진 돌이 있고 그 옆에 삼각점이 있었다. 너무 많아 어지럽고 복잡하다. 13시 55분 정상 출발. 오남헬기장까지는 0.36km 거리이다. 능선의 소나무들이 보기에 좋다.


▲ 백족산 정상 표지석 뒷면 

 

 ▲ 백족산 정상 표지석, 청미봉이라고 적혀 있다

 

▲ 정상 표지석과 함께

 

▲ 백족산 정상은 헬리콥터 착륙장을 겸하고 있었다

 

▲ 정상에서 오남 헬리콥터 착륙장으로 가는 능선 


14:00  오남 헬리콥터 착륙장에 도착. 공터에 표지석이 있기는 한데 풀에 덮여 있다. 이곳도 억새가 한창 피고 있다. 이곳에서는 멀리 원통산이 보였다. 한쪽에 서 있는 이정표에 '자점보 1.0km, 굴바위 0.5km, 정상 0.5km'라고 적혀 있다. 예정 코스인 굴바위를 향해 출발. 굴바위로 가는 길은 그리 명확하지가 않았다. 추측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점보 쪽으로 내려가고 굴바위 쪽으로는 내려가지 않는 모양이다. 흔적을 따라 경사진 길을 내려가니 왼쪽으로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굴이 있다.


▲ 풀에 덮힌 오남 헬리콥터 착륙장

 

▲ 오남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본 원통산

 

▲ 헬리콥터 착륙장에 억새가 피었다

 

▲ 오남헬기장에 있는 이정표 


자점보의 전설

 

백족산에는 金盤形이라는 명당의 묘자리가 있었는데 김자점이 눈독을 들이다가 권세를 잡자 자기 아버지의 묘를 썼다. 한 가지 흠이 앞에 큰 물이 없는지라 청미천에 보를 막아 사시사철 푸른 물이 고여있게 하여 명실상부한 금반형의 명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김자점은 영의정까지 올랐으나 욕심이 더하여 역모를 꿰하여 왕이 되려고 했는데 발각이 되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역적은 삼족을 멸하게 되어있어 김자점 아버지의 묘를 파헤쳐 부관참시를 하게 되었는데 묘를 파내어 관을 열어보니 용으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김자점은 어렸을 때부터 청개구리처럼 아버지의 말을 한 번도 옳게 행하지 않고 반대로 하여 늘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김자점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유언을 하기를 내가 죽거든 백족산 금반형 묘자리에 묻되 물이 없으니 둑을 쌓아 물을 가두고 시신은 꼭 바로 뉘어 묻으라고 하였다.

 

김자점은 살아오면서 아버지의 말씀을 반대로만 행한 게 죄스러움을 느껴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기로 하여 시신을 바로 뉘어 묻었다. 부관참시를 하려고 관을 열어보니 용으로 환생하였으나 바로 뉘었기 때문에 뒤집으려고 바둥바둥하는 것을 칼로 쳐서 죽였다고 한다. 반대로 엎어서 묻었다면 바로 자점보의 깊은 물로 들어가 승천했을 것이고 그러면 김자점은 반역에 성공하여 왕이 되었을 것이라고 口傳되고 있다.


14:06  굴바위에 도착. 굴? 글쎄, 깊이가 10m도 안 되는데 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굴이라고 하니 굴이다. 굴 옆에는 지네굴에 관한 전설이 적힌 안내판이 서 있다. 곧바로 舊절터를 향하여 출발. 길히 점점 희미해지더니 없어졌다. 이런! 잘 나가다 왜 이런담! 지형으로 보아 오른쪽 사면을 타고 트래버스를 해야할 것 같다. 큰 덤불이나 경사진 바위벽이 없어 쉽게 트래버스를 할 수 있었다. 10분 정도 가니 오른쪽에 샘터가 있고 고사리로 뒤덮인 넓은 터가 나타났다. 


▲ 지네가 살았다는 굴바위 


지네굴과 남이장군 전설

 

백족산 남동쪽 사면에 지네굴이라고 하는 큰 바위굴이 하나 있는데 옛날에 그 근처에 승려가 많은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안개가 자욱한 밤이 되면 원인도 모르게 승려가 한 명씩 사라졌다. 이런 날이 거듭되자 남은 승려들이 전전긍긍하여 하나 둘씩 떠나버리고 마침내 승려 한 명만 남게 되었다. 그 승려가 평소 친분이 있던 장호원의 서당 선생을 찾아갔더니 승려에게 무명옷 한 벌을 내어주며 이 옷을 입고 냄새가 나더라도 절대로 벗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절로 돌아온 승려는 그 무명옷을 입고 염불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밤이 깊어지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지네 한 마리가 나타나 승려를 물고 바위굴 쪽으로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 승려의 안부가 궁금한 서당 선생이 절에 올라와보니 승려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다 바위굴 앞에 거대한 지네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준 무명옷에는 담뱃진이 발라져 있었는데 승려를 삼킨 지네가 그 독에 의해 함께 죽은 것이었다.

 

그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으니, 백족산 허리 부근에 오색영롱한 구름이 감돌더니 구름에서 나온 상스러운 기운이 개미실(현 충북 음성군 감곡면) 남씨 댁으로 꽂이는 것이었다. 그 달부터 남씨 댁에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자라면서 총명하고 영특하더니 세조 3년 17세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27세에 병조판서에 올랐다가 모함에 걸려 요절한 남이장군이다.


14:15  舊절터에 도착. 제법 넓은 공간에 고사리와 같은 양치류가 잔뜩 자라고 있다. 어떻게 구절터인지 알지? 석축을 쌓은 흔적과 흩어진 돌들로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구절터에서부터 길은 다시 행방불명이 되었다. 남은 코스가 '어석헬기장 → 어석계곡  → 송산헬기장 → 갈림길'인데 헬기장이 어디에 있다는 거야. 할 수 없이 다시 사면을 트래버스하기 시작했다. 벌목을 해서 베어 놓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산초나무 가시와 노간주나무 잎이 연약한 내 피부를 파고 든다. 따갑다. 문제는, 이런 가시보다도 벌이다. 없는 길을 만들어나가다가 혹시 벌집이라도 건드리면 거의 죽음이다. 길이 없어 달아날 때도 마땅찮으니. 하느님 아버지시여!

 

얼마를 트래버스를 하다가 그냥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지형으로 보아 헬리콥터 착륙장을 찾기란 그른 것 같다. 트래버스를 하는 것보다 위로 올라가는 것이 더 쉽다. 오르는 길에 자연산 영지를 한 송이 만났다. 야, 산에서도 로또 복권에 당첨이 되는구나. 생전 처음이다. 14시 38분 제대로 된 산길을 만났다. 보기에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같은데 맞을라나?


▲ 구절터, 고사리와 같은 양치류 식물이 가득 자라고 있다

 

▲ 산행 중에 우연히 발견한 자연산 영지


14:41  백족산 정상에 다시 올랐다. 아까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하산을 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육각정 쪽으로 가니 장호원읍과 감곡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로로 길게 청미천이 흘러가고 감곡면 뒷쪽으로 오갑산이 우뚝하다. 우리 학교는? 보인다 보여. 하산 시작. 14시 51분에 약수터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에 도착. 약수터을 향하여 출발. 약수터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셨다. 맛? 좋다. 땀 흘린 뒤의 시원한 약수맛. 죽인다. 산뜻한 기분으로 하산 계속.


▲ 백족산 정상에서 본 장호원과 감곡 시내, 멀리 오갑산이 보인다

 

▲ 정상에서 내려다본 장호원읍

 

▲ 백족산 청미봉 표지석과 함께

 

▲ 백족산 정상에 있는 쉼터 


15:02  무량사 주차장에 도착. 총 산행 시간은 두 시간. 평소 출퇴근 하면서 늘 바라보던 백족산, 높이가 402m에 불과하지만 찾는 사람들이 꽤 많은 백족산을 토요일 오후 시간을 이용해서 간단히 다녀왔다. 백족산은 가족과 함께 올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산으로 추천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