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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백두대간

2007.09.09. [백두대간記 8] 동엽령→빼재

by 사천거사 2007. 9. 9.

백두대간 제8구간 종주기

◈ 일시: 2007년 9월 9일 일요일

◈ 구간: 동엽령-빼재 

◈ 거리: 13.2km+5km(접근 거리) 

◈ 시간: 5시간 39분+2시간 2분(접근 시간)



03:30  청주 아파트 출발. 오랜만에 날이 개어 백두대간 산행길에 나섰다. 오늘은 덕유산 구간의 나머지로 동엽령에서 빼재까지이다. 대간 구간은 13.2km이지만 덕유산국립공원 안성탐방센터에서 동엽령까지의 접근 거리가 5km 정도 된다. 서청주IC로 중부고속도로에 진입,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에 들어갔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차량이 많지는 않다. 무주에 가까워지자 안개 낀 지역이 가끔 나타났다. 운전 조심!

 

04:48  덕유산IC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곧바로 좌회전하면 이정표에 칠연계곡 10km라고 적혀 있다. 무주 방면으로 달려 안성에서 칠연계곡으로 직행. 세상이 고요하고 가로등 불빛만 빛나고 있다. 가끔 날벌레들이 불빛을 보고 달려들어 자동차 앞 유리에 부딪친다.

 

05:01  덕유산국립공원 안성탐방센터 앞 주차장에 도착. 어둠 속의 센터 앞에는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을 뿐 썰렁하다. 차를 세우고 나서 하늘을 보니 눈썹같은 초승달과 샛별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날이 맑으려나.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주변이 깜깜하다. 차 안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헤드랜턴은 준비해왔지만 주변 사물도 분간할 수 없는 길을 걸어서 무엇하랴.

 

05:47  감각적으로 눈을 떴는데 날이 꽤 밝았다. 이제 걸어도 될 것 같다. 산행 출발. 그런데 춥다. 자켓을 꺼내 입었다. 잔뜩 흐린 날씨. 도로 왼쪽의 칠연계곡 물소리가 새벽을 뒤흔들고 있다. 구름낀 하늘이 붉게 물든다. 동이 트나?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타났는데 오른쪽은 칠연폭포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동엽령으로 가는 길이다.

 

지난 번 동엽령에서 내려올 때 칠연폭포를 구경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한 번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거리는 0.3km. 가파른 계단을 올라 계곡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갔다. 풍부한 수량 때문에 왼쪽 계곡 곳곳이 폭포다. 일곱 개의 폭포와 연못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칠연폭포인데 기대했던 만큼의 아름다운 모습은 없었다.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 않아서 그런가? 계속 올라가니 통행금지 구역이다. 다시 원위치.


▲ 동엽령으로 올라가는 길 안성탐방센터 출입구

 

▲ 동쪽 하늘이 불게 물들고 있다


06:30  동엽령 가는 삼거리로 내려왔다. 왼쪽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지난 번에 동엽령에서 내려올 때는 힘이 많이 빠진 상태라서 힘이 들었는데 오늘은 기운이 넘쳐나고 새벽 공기도 상쾌하다. 돌길과 계단길로 이어진 산길은 꽤 멀다. 칠연계곡에도 온통 폭포 천지다. 물론 크기는 작지만.


▲ 동엽령과 칠연폭포 갈림길 삼거리

 

▲ 칠연계곡의 수 많은 작은 폭포 중 하나

 

▲ 동엽령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07:49  동엽령에 도착. 백두대간의 원줄기에 올랐다. 접근하는 데에만 2시간이 넘게 걸렸네. 구름 속으로 해가 들락거린다. 바람이 세게 불고 춥다. 손이 시려 장갑을 꺼내 착용했다. 멀리 향적봉에 세워진 안테나가 가물가물하다. 백암봉까지는 완경사 오르막이다. 해가 완전히 나지 않아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백암봉 밑 바위벽에 아직 고개가 꺾이지 않은 오이풀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동엽령을 떠난지 얼마 안 되어서 산행객을 한 명 만났다. 여자 혼자였는데, 이 시간에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잠시 후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는 한 팀을 만났다. 복장으로 보아서는 전문적인 산꾼들 같고. 또 한 팀은 아이들을 데리고 몇 가족이 온 것 같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이 이른 시간에 이 큰 산에 올 정도면 산을 꽤 좋아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아이들의 밝은 행동도 보기에 좋다. 컴퓨터에 찌든 아이들보다 훨씬 낫다. 아이들을 산에 데리고 온 부모들도 훌륭하다.


▲ 동엽령에 있는 이정표, 오른쪽이 백암봉으로 오르는 길

 

▲ 동엽령에서 내려다 본 칠연계곡

 

▲ 동엽령에서 본 북상면 쪽 하늘

 

▲ 동엽령에서 향적봉을 배경으로

 

▲ 백암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 백암봉 오르기 전의 암벽지대

 

▲ 삿갓재에서 뻗어내린 백두대간


08:38  백암봉(송계사삼거리)에 도착. 해발 1,420m. 바람이 세다. 작은 표지석이 있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중봉과 향적봉이 바로 건너다 보인다. 향적봉 정상에는 안테나가 서 있고 그 아래 덕유평전은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백암봉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갔다. 8시 55분에 평평한 곳에서 김밥을 아침으로 먹었다. 그런데 춥다. 두 번째 봉우리인 귀봉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니 횡경재다.


▲ 백암봉에 있는 이정표

 

▲ 백암봉에서


09:48  횡경재에 도착. 해발 1,350m. 오른쪽은 송계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횡경재에서 싸리등재까지는 평탄한 길로 걷기에 좋았다. 발에서 바람소리가 난다. 벌써 가을인지 억새가 곱게 피었다. 으악샌가?


▲ 횡경재에 있는 이정표

 

▲ 싸리등재 직전에서 만난 야생화

 

▲ 싸리등재 위에 억새가 피었다


10:09  싸리등재 4거리에 도착. 왼쪽은 백련사(3km)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송계사(3.3km)로 내려가는 길이다. 백련사로 가는 길은 출입통제가 되어 있다.


▲ 싸리등재에 있는 이정표


10:28  헬리콥터 착륙장에 도착. 못봉 오르기 전에 있다.


▲ 못봉 오르기 직전에 있는 헬리콥터 착륙장

 

▲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본 향적봉

 

▲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본 백암봉


10:33  못봉에 도착. 거창군에서 만든 표지석에는 '1342.7km'라고 적혀 있다. 표지석은 이정표에 기대어 비스듬이 세워져 있다. 국립공원에 있는 봉우리인데 공단에서 변변한 표지석을 만들어 세우면 안 되나. 공단은 통제구역 단속만 할 게 아니라 시설관리나 환경보전에 힘써야 한다. 환경보전은 사람의 출입만 통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사람이 다니는 산행로는 개방하고 나머지 지역에 대한 곳은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지리산국립공원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산행로를 폐쇄하고 복구되기만 기다리는 것은 너무 안일한 방법이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못봉에서 월음령으로 내려가는 길은 비교적 완경사다. 대봉 쪽에서 오는 산행 팀을 만났다.


▲ 못봉 정상에서

 

▲ 못봉에서 바라본 백암봉

 

▲ 못봉에서 바라본 향적봉


11:08  월음령에 도착. 네거리 안부다. 왼쪽은 구천동 덕유산휴게소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송계사로 내려가는 길인데, 둘 다 사람의 왕래가 뜸해서 그런지 잡초에 묻혀 있다. 월음령에서 대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꽤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대봉 중턱에서 휴식을 취할 겸 점심을 먹었다. 11시 30분. 김밥 한 줄. 


▲ 월음령에 있는 이정표


11:53  대봉에 도착. 전망이 좋다. 북쪽으로 지봉(투구봉 1,275m), 북동쪽으로 삼봉산(1,254m)이 한 눈에 들어오고, 남동쪽 건너편으로 갈미봉이 우뚝 서 있으며 무주와 거창을 잇는 37번 국도가 내려다보인다. 대봉에서는 양쪽으로 길이 갈라지는데 왼쪽은 지봉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갈미봉으로 가는 길이다. 갈미봉에 가려면 안부를 통과해야 하는데, 대봉에서 내려가는 길이나 안부에서 갈미봉으로 오르는 길이나 모두 양호하다. 잡목들만 무성할 뿐.


▲ 대봉에 있는 이정표

 

▲ 대봉에서

 

▲ 대봉에서 본 향적봉

 

▲ 대봉에서 본 백두대간 지나온 길

 

▲ 갈미봉 가는 능선에서 본 개명리 마을

 

▲ 백암봉 쪽 백두대간

 

▲ 나무 사이로 보이는 갈미봉 정상


12:21  갈미봉에 도착. 거창군에서 만든 표지석에 '1210.5m'라고 적혀 있다. 바위가 몇 개 뿐인 봉우리로 조망은 좋지 않다. 봉우리 바로 옆에 '신풍령 2.6km, 횡경재삼거리 5.2km, 송계사삼거리 8.4km'라고 이정표에 적혀 있다. 2.6km면 한 시간이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 12시 37분, 급경사 하산길이 나타났다. 조심 조심. 국립공원을 알리는 네모난 표지석이 자주 눈에 띤다. 12시 50분에 헬리콥터 착륙장 통과. 


▲ 갈미봉에서


13:02  신풍령 1km 전 이정표 통과. 1km면 10분 거리인데. 그러나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서너 개 넘어서야 고개가 내려다보였다. 고개를 올라오는 자동차 소리도 자주 들리고. 곧 거대한 이동통신 증계탑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하산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을 돌아가니 관광버스가 한 대 서 있는 빼재였다. 아래로 신풍령 휴게소와 주유소가 보인다.


▲ 빼재 위에 있는 이동통신 중계탑

 

▲ 중계탑 왼쪽으로 대간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 백두대간에서 빼재로 내려오는 곳


13:28  빼재에 도착. '秀嶺'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다. 국립공원 이정표에는 '신풍령'이라고 되어 있고. 도대체 어느 것이 맞는 거야? 원래 이 고개의 이름은 빼재다. 빼재는 '뼈재'에서 나온 말인데, 이곳은 삼국시대의 전략요충지로 많은 민관군이 뼈를 묻었고,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 토착민들이 산짐승을 잡아먹어 가며 싸움에 임했는데 그로 인해 산짐승의 뻐가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고 한다.

 

경상도 사투리로 뼈를 '빼'라고 하는데 그래서 뼈재가 빼재가 되었다는 설이 있고. 秀嶺은 빼재를 한자로 지도에 표기할 때 빼어날 '秀'자를 써서 秀嶺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고. 신풍령은 고갯마루 아래에 신풍령이라는 이름의 휴게소가 들어선 이후에 생겨난 이름이고. 지금은 신풍령과 빼재를 함께 쓰는데 나는 빼재가 더 마음에 든다.

 

집에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고 전화를 한 다음 지난 번 안성탐방센터에서 육십령을 갈 때 이용했던 안성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는 설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빠르지만 안성 택시 기사분이 너무나 양심적이고 운전도 찬찬히 잘 해서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 기사분은 나를 기억하며 30분 정도 기다리면 도착할 거라고 말한다. 안성 개인택시 선경기 기사(011-680-0682). 빼재는 37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이지만 무주쪽으로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육각정에 앉아 택시를 기다리는데 해가 계속 들락거리고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이윽고 택시가 도착했고 인사를 나눈 다음 출발.


▲ 빼재에 있는 '秀嶺' 표지석

 

▲ 빼재에 있는 표지석

 

▲ 빼재에 있는 신풍령휴게소

 

▲ 빼재에 있는 육각정

 

▲ 빼재에서, 왜 초점이 안 맞았지?


14:41  안성탐방센타 주차장에 도착. 아, 그런데 주차장이 만원이다. 관광버스도 여러 대가 와 있고. 산에 온 사람들인가, 계곡에 온 사람들인가. 기사분은 원래 35,000원을 받는데 불러주어서 고맙다고 30,000원만 내라고 한다. 나도 고맙다.누가 뭐래도 인정은 살아있다. 차를 돌려 덕유산IC로 진입,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벌초를 마친 사람들의 차량이 몰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별로다.

 

라디오에서는 고속도로마다 차들이 밀리고 있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전이 가까워지자 서서히 차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대전IC 근처에서는 꼼짝하지 않는다. 오늘 산행을 일찍 마친 것을 아나. 상황을 판단한 끝에 대전IC로 나왔다. 대전 시내를 통과하여 신탄진을 경유한 다음 청주로 달렸다.

 

17:10  청주 도착.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일찍 산행을 마쳤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밤 늦게 집에 도착할 뻔 했다. 오늘로 백두대간의 덕유산 구간은 마쳤고 이제부터는 추풍령을 향해 올라가야 한다.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