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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백두대간

2007.07.30. [백두대간記 5] 복성이재→무령고개

by 사천거사 2007. 7. 30.

백두대간 제5구간 종주기

◈ 일시: 2007년 7월 30일 월요일 

◈ 구간: 복성이재 → 봉화산 → 중치 → 백운산 → 선바위고개 → 무령고개 

◈ 거리: 17.6km 

◈ 시간: 12시간 18분


 


04:20  기상. 펜션 주방에 들러 라면 한 개와 건빵 두 봉지, 냄비를 챙긴 다음 내 방으로 와서 라면을 끓였다. 이런 산 속에서 아침에 라면을 먹게될 줄이야. 건빵 두 봉지는 비상식으로 배낭에 넣었다. 배낭을 꾸리고 방을 대충 치운 다음 문을 열고 나오니 벌써 날이 훤하게 밝았다. 하룻밤을 잘 지내게 해준 원장님께 마음 속으로 감사를 드리며 오늘 하루 산행도 안전하게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함께 빌었다.

 

05:30  민박집 출발. 마을은 조금씩 밝아오는 아침을 조용히 맞고 있었다. 복성이재까지의 시멘트 포장도로는 의외로 경사가 심했다. 여기서 힘을 다 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앞산에서 뻐꾸기 소리와 새소리가 들려오고 새벽을 알리는 닭 우는 소리도 우렁차게 들린다. 평화롭다. 자연은 언제나 평화롭다.

 

05:55  복성이재에 올랐다. 남원시 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왼쪽으로 백두대간 이정표가 서 있다. 그런데 그 아래로 '철쭉 민박 10분 거리'라는 표지판이 있는게 아닌가. 아, 이쪽으로 민박집이 있구나. 어쨌든 지난 밤을 의미있게 보냈으니 미련은 없다. 산행 시작. 밤새 내린 이슬에 옷이 젖기 시작했다. 일단은 시원하다. 왼쪽으로 목장 철책이 쳐져 있다.


▲ 복성이재에 있는 이정표


06:19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봉우리에 올랐다. 능선분기점인 710봉이다. 키만한 철쭉 능선를 따라 걷다가 밧줄 아래 급경사로 20분 정도 내려가면 철쭉 식당 안내판이 있고 곧 해발 655m의 치재에 내려선다.


▲ 온통 철쭉나무로 덮힌 백두대간 길


06:28  치재에 도착. 여기서 우측 길을 따라 성리로 내려갈 수 있다. 6시 34분, 다시 철쭉 능선길에 올랐다. 키보다 더 자란 철쭉 나무 가지들이 얼굴부터 온 몸을 감싸면서 쉴새 없이 이슬을 쏟아붓는다. 운행도 늦을 뿐 아니라 옷이 다 젖었으며 차츰차츰 신발 안이 젖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에 비도 아니고 이슬이 신발 속이 젖다니. 철쭉 능선이 끌나면 억새 능선이 또 이슬 세례를 퍼붓는다. 아침에 세수 안 한 것을 아나.


▲ 풀이 가득 자란 치재


06:48  710봉에 오르니 봉화산이 멀리 보인다. 이제는 봉화산을 마주 보며 걷는다. 우측으로 잠시 내려가 꼬부랑재를 지난 다음 다시 봉우리를 하나 넘어 본격적으로 봉화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잡풀 사이로 돌계단이 나타나고 계단을 올라가면 '복성이재'와 '봉화산'을 알리는 이정표가 하나 서 있는데 여기가 바로 해발 850m의 다리재이다. 다시 나타나는 돌계단길을 계속 오르니 봉화산 정상이다.


▲ 다리재로 올라가는 돌계단길

 

▲ 다리재에 있는 이정표


07:48  봉화산 정상에 도착. 정상에 있는 커다란 표지석에는 '봉화산 해발 919.8m'라고 적혀 있다. 표지석 옆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산불감시 무인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꽤 거리가 먼 곳에 산불감시초소 건물이 하나 서 있다. 해는 구름 사이를 들락날락거린다. 봉화산을 조금 지나 넓은 평원의 능선길이 시작되었다. 집에 안부 전화를 했다. 아내는 늘 걱정이다. 고마운 사람.

 

평원 능선길의 억새도 역시 이슬의 보고다. 능선을 따라 왼쪽에 임도가 평행선을 이루며 따라오고 있다. 잠시 후 8시 24분에 능선에서 꽤 넓은 공터에 내려섰는데 왼쪽에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가 서 있다. 공터에서 완만한 숲길을 오르면 945봉에 오르게 되는데, 이제부터는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를 따라 백두대간 길이 이어진다. 잠시 후 봉화산부터 계속된 억새길이 끝나고 싸리나무길이 시작되었다. 역시 키만큼 자라 운행을 방해한다.


▲ 봉화산 정상 표지석과 함께

 

▲ 봉화산 정상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산불감시초소

 

▲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백두대간 능선, 평원길이다

 

▲ 임도 끝 공터에 서 있는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


08:58  전망이 좋은 바위에 도착.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물이 찬 신발 속에서 발이 퉁퉁 불고 있다. 해가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었다. 잠시 후 짧은 암릉길을 통과했고, 9시 11분에 '봉화산 2.5km, 백운산 10km'라고 적혀 있는 이정표를 만났다. 아직도 백운산까지 10km나 남았나. 높이가 1278.6m라는데. 종주 마지막 부분에 그렇게 큰 산을 올라야 하니 오늘은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이 구간 등산로는 한 번 정비사업을 했는데, 훼손된 가파른 등산로는 복원 사업중으로 통행금지가 되어 있고 대신 우회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백두대간 길을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가파른 곳은 길이 유실된 곳이 적지 않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부터 가능한 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9시 47분에 '봉화산 3.8km, 광대치 0.9km'라고 적혀 있는 이정표를 만났다. 이제 광대치가 멀지 않다.


▲ 전망이 좋은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며

 

▲ 봉화산과 백운산 알림 이정표

 

▲ 봉화산 3.8km, 광대치 0.9km를 알려주는 이정표


10:13  광대치에 도착. '봉화산 4.7km, 중치 3.2km'라고 이정표에 적혀 있다. 해발 820m. 다시 고도를 높여 올라가니 약초 재배단지의 철책이 오른쪽으로 설치되어 있고, 철책 앞에는 '백운산 7.2km, 봉화산 5.3km'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었다. 철책을 따라 철조망에 주렁주렁 매달린 표지기가 이채롭다. 차츰 힘이 들기 시작한다. 힘이 안 들면 이상한 거지. 휴식을 취하며 소시지와 치즈를 간식으로 먹었다.


▲ 광대치 이정표

 

▲ 산행 중 만난 도라지꽃, 자태가 고고하다

 

▲ 약초 재배단지 철조망 옆 이정표

 

▲ 약초 재배단지 철망에 줄 지어 걸린 표지기들


10:56  월경산 분기점에 도착. 땅에 떨어진 이정표가 '중치 1.9km, 광대치 1.3km'라고 알려주고 있다. 월경산은 백두대간 길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생략했다. 이곳에서 중치로 내려가는 길은 마치 하산길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림을 한 소나무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오른쪽으로 긴 밧줄이 매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걸었던 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백두대간 종주의 큰 소득이라고 볼 수 있다.


▲ 월경산 분기점에 있는 이정표

 

▲ 중치로 내려가는 길


11:35  중치에 도착. 해발 650m다. 백두대간 구간을 나눌 때 이곳 중치에서 끊는 경우도 많다. 이 중치에서 육십령까지 한 구간으로 하면 무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차량 대기'라는 문구가 적힌 민박집 안내판이 두 개나 세워져 있었다. 중치 바로 위에 벤취가 2개 설치되어 있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중치 위 봉우리에 오르니 역시 벤치가 2개 설치되어 있고, 20여분 걸으니 또 벤취가 있다. 누가 설치한 건가?


▲ 중치 이정표

 

▲ 중치 바로 위에 있는 벤취에서 휴식


12:27  다시 벤취가 있기에 이슬에 젖은 양말을 갈아 신었다. 등산화가 젖었기 때문에 오래는 못가겠지만 그래도 얼마 동안은 마른 상태를 유지해주겠지. 받침이 깨진 삼각점이 박혀 있는 755.3봉을 올랐으나 숲으로 막혀 있어 전망은 별로 였다. 여기서 잠시 내려서니 이정표가 있는 중고개재에 닿았다.


▲ 받침이 깨진 삼각점


12:38  중고개재에 도착. 백운산까지 2.9km 남았다. 역시 이곳도 중치와 마찬가지로 백두대간 구간으로 끊을 수 있는 곳이다. 민박과 산장을 알리는 안내판이 여기도 역시 세워져 있다. 자, 이제부터 백운산 오르기에 도전한다. 백운산 오름길은 예상보다는 완만한 편이었다. 물론 조금 가파른 곳도 있었지만 대체로 무난했다. 13시 10분에 이정표를 만났는데 백운산이 2km 남았다고 알려준다. 길 옆에 예쁜 버섯이 있어 사진을 찍는 여유도 부려보았다. 망중한이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 마침내 이정표가 보이고 그 왼쪽으로 넓은 공터에 정상 표지석과 조망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 중고개재 이정표

 

▲ 백운산 2.0km 남았다고 알려주는 이정표

 

▲ 길 옆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름 모를 버섯

 

▲ 백운산 정상 직전에 있는 이정표


14:26  마침내 백운산 정상에 올랐다. 사방의 전망이 좋다. 이 높은 곳에서 고추 잠자리들이 원을 그리며 비행을 하고 있다. 고추잠자리는 고추밭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잠시 조망을 한 다음 영취산 쪽으로 길을 서둘렀다. 넉넉잡아 두 시간이면 산행이 끝나겠지만 그 후 숙박지를 정하는 것이 문제다. 길 옆에 산수국이 꽃망울을 하나씩 떠뜨리고 있다. 토질에 따라 꽃 색깔이 달라진다나.


▲ 백운산 정상 표지석과 함께

 

▲ 백운산 조망 안내판

 

▲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산수국


14:58  조릿대 숲길. 이번 구간에는 유난히 조릿대가 많았다. 지금까지 다녀온 산 중에서는 충남 금산의 모악산 조릿대가 가장 인상에 남았는데, 이곳 조릿대는 그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사람 키보다 더 자란 조릿대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어떤 곳은 숫제 터널이었다. 어두컴컴한 곳을 지날라치면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한다. 지겨운 조릿대 길을 지나 '선바위고개'라는 이정표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며 빠르게 걸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졌다는 기분에서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그런데...

 

시간적으로 보아 이정표가 나와야 하는데 보이지 않고 또 고도계를 보니 숫자가 자꾸 올라가서 1200m를 넘어서고 있다. 영취산은 1075.6m인데 왜 이렇게 높아지는 거지? 마음 속으로 불안감이 엄습해오며 혹시 백운산으로 다시 올라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야, 그건 말도 안 돼. 어떻게 내려온 곳을 다시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단 말인가? 아닐 거야. 그러나 말도 안되는 일이 말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다시 올라간 곳은 2시간 20분 전에 내려 온 바로 그 백운산 정상이었다. Oh, my God! 세상에 이런 일이!


▲ 사람 키를 넘는 조릿대 숲길


16:50  다시 올라온 백운산 정상. 2시간 20분 동안 죽어라고 걸었는데 원위치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어디선가 길을 잘못 들어 내려온 길을 되돌아 올라온 것인데 그 지점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문뜩 작년에 함께 영월 백운산에 갔다가 추락사한 故김영철 친구가 생각났다. 물론 여기가 그 백운산은 아니지만 산 이름은 똑 같다. 친구야, 이제 그만 나를 놔다오.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벌써 5시가 가까워졌고 다시 1시간 30분을 내려가야 하니. 다시 영취산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의 탈진 상태였는데 어디서 힘이 솟는지 발걸음이 잽싸진다. 그 지겨운 조릿대 터널을 다시 지나 1085봉을 내려서면서 길을 잘못든 이유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1085봉을 내려오면 길이 삼거리로 변한다. 백운산 쪽에서 내가 내려온 길 오른쪽으로 다시 길이 나 있고 표지기가 잔뜩 걸려 있다. 반면에 백운산 쪽에서 내려온 길과 일직선으로 나 있는 길은 표지기가 거의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곧장 갔어야 했는데, 잔머리를 굴린다고 표지기에 홀려 그만 오른쪽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그 길은 다시 산허리를 돌아 다시 백운산 가는 길과 연결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쪽에 그렇게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던 이유는? 그렇다. 그것은 백운산 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나라 영취산 쪽에서 백운산 쪽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즉, 내가 내려온 길보다 표지기가 붙어 있는 길이 백운산으로 가는데 더 좋으니 그 쪽 길을 이용하라는 뜻의 표지기였다. 백두대간을 하다가 길을 잃는 사람이 간혹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그 신세가 될 줄이야. 그것도 같은 봉우리를 두 번이나 오르는 우를 범하다니. 그래, 좋은 경험으로 삼자.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 두 번째 올아 온 백운산 정상

 

▲ 백운산으로 되돌아가게 된 삼거리길


17:58  애타게 찾던 선바위고개에 도착했다. 서둘러서 내려왔더니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어디서 이런 초인적인 힘이 난 것일까. 죽을 힘을 낸다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가. 이정표를 보니 영취산까지 400m 거리다. 조금 올라가다가 아무래도 그냥 무령고개로 내려가는 것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일 이 선바위고개부터 시작하면 되지 뭐. 오늘 이미 고생을 많이 했고 또 내일은  산행 거리가 짧으니 여기서 무령고개로 빠지자. 무령고개까지 700m. 산허리를 감싸고 또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이어졌다. 내리막길은 경사가 급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 선바위고개 이정표, 무령고개로 가는 길과 영취산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18:13  무령고개에 내려섰다. 장수군 장계면과 남원시 번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장계면 쪽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으나 번암면 쪽은 아직 비포장이다. 도로로 내려오니 백두대간 해설판과 안내도가 서 있고 그 위로 터널 비슷한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고개마루에 무슨 터널을 만드는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영취산 쪽과 장안산 쪽 동물들의 이동경로 만들기 위해서란다. 글쎄,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대공사로 짐작이 된다. 어쨌든 금남호남정맥 종주를 하는 사람들은 무령고개 도로에 내려서지 않고 바로 장안산으로 빠질 수 있어 좋겠다.


▲ 무령고개 내려서는 곳에 있는 백두대간 안내도

 

▲ 산행을 마치고 무령고개 비포장 차도에서


터널 공사 현장을 지나 대곡리 쪽으로 내려가니 바로 오른쪽에 주차장이 있고 콘테이너 매점이 하나 있다. 막 야유회를 마친 사람들이 트럭에 짐을 싣고 있다. 매점 주인에게 물을 한 병 달라고 하니 바로 아래 샘이 있다고 가르쳐준다. 시원한 샘물을 한 바가지 받아서 단숨에 마셨다. 아, 살 것 같다. 천국이 따로 없다. 목이 바짝 말랐을 때 시원한 물을 실컷 마실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천국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늘 사람은 선택의 고민 속에서 살아간다. 우선 매점 주인에게 근처에 민박집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4km 정도 내려가야 한단다. 장계에서 택시를 부르면 20,000원은 주어야 한다고 하고.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민박집이 찜질방도 겸하고 있는데 차를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하며 잠시 연락을 취하더니 가능하다고 한다. 너무 고마운 마음에 오미자차를 한 잔 시켰다. 얼음이 든 빨간 색의 오미자차 맛은 일품이었다. 매점 주인은 팔려고 내놓은 옥수수를 한 개 건네며 농사 지은 것이라고 그냥 맛을 보라고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시골의 인심은 살아 있다.

 

잠시 후 레토나를 몰고 민박집 주인이 올라왔다. 바로 갈 줄 알았는데 차에서 내리더니 대뜸 나에게 소주를 마실 줄 아느냐고 묻고는 소주를 한 병 시킨다. 초면에 웬 소주. 재미 있는 분이다. 둘이 소주를 한 병 마시면서 그 분은 자신의 가정 얘기, 등산 얘기 등을 줄줄이 쏟아 놓는다. 아들이 부용건설 회장 비서고, 딸은 전주 SBS 아나운서고, 등등. 고향이 이곳 대곡리인데 3년 전에 폐교를 구입해서 민박집과 찜질방을 만들었다고 하며 소도 100마리 정도 키운다고 덧붙였다.

 

의기 논개 생가를 지나 조금 아래 도로 왼쪽에 '그린 산장'이라는 간판이 걸린 민박집으로 차가 들어갔다. 학교 부지라서 그런지 상당히 넓다. 방을 배정 받고 샤워를 한 후 저녁을 먹었다. 김치찌개였는데 주인장과 소주를 한 병 곁들였다. 교회에서 단체로 수련회를 왔는지 찬송가 소리가 들려온다.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오늘 참 많이 걸었다. 그 높은 백운산을 두 번이나 올라갔으니. 술기운이 온 몸을 감싸며 졸음이 밀려든다. 20시 40분에 잠이 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