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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백두대간

2007.07.29. [백두대간記 4] 여원재 →복성이재

by 사천거사 2007. 7. 29.

백두대간 제4구간 종주기

◈ 일시: 2007년 7월 29일 일요일 

◈ 구간: 여원재 → 고남산 → 매요마을 → 사치재 → 새맥이재 → 복성이재 

◈ 거리: 17.5km 

◈ 시간: 8시간 44분



7월 28일 토요일

 

21:30  청주 아파트 출발. 집 앞에서 조치원 가는 시내버스가 있기는 한데 시간을 확실하게 몰라 시내까지 택시를 이용했다. 홈에버 맞은 편 정류장에서 조금 기다리니 조치원행 시내버스가 왔다. 귀가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꽤 많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앞으로 3일 동안의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원했다.

 

22:40  조치원역에 도착. 필기구를 챙기지 못해서 역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볼펜을 하나 구입했다. 인터넷으로 예매한 기차표를 티켓팅했다. 신분증만 보여주니 바로 표를 건네준다. 29일 0시 17분 출발 기차니까 아직도 한 시간 이상이 남았다. 2층 대합실 한쪽에 마련된 TV 룸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대한민국과 일본의 아시안컵 축구 3~4위전을 관람하고 있었다. 연장전을 보고 있는데 직장 동료인 김영주 선생이 들어온다. 이 시간에 왜 여길 왔나. 알고 보니, 처형이 벌교에 사는데 역시 0시 17분 차로 내려가게 되어 배웅을 나온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참 좁은 나라다.

 

7월 29일 일요일

 

00.17  정시에 조치원 출발. 여수행 무궁화열차다. 예상과는 달리 기차는 만원이었다. 통로에 앉은 사람들도 꽤 많다. 아니 이 밤중에 모두 어디를 가는 거야. 휴가철이라 그런가. 나처럼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들도 많다. 추측컨대, 대부분은 구례까지 가서 지리산을 종주할 사람들일 것이다. 좌석에 앉아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잘 다녀오라고 하면서 덧붙여 대한민국이 승부차기에서 일본을 6:5으로 이겼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혼자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 눈을 좀 붙여보려 했으나 잠이 깊이 들면 남원을 지나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그냥 버티기로 했다.

 

02:54  남원역에 도착. 역사를 빠져 나오니 무인도에 던져진 느낌이다. 깜깜한 밤에 왼쪽 택시 승강장에 줄지어 어 있는 택시들의 전조등 불빛만 밝다. 남원에서 내린 사람들은 거의 모두 택시를 타고 어딘론가 떠나는데... 일단 택시에 올라탔다. 기사분에게 오늘 아침 첫 버스로 여원재로 갈 예정이라고 하니, 터미널 부근은 방값도 비싸다면서 차라리 찜질방에서 쉬고 택시를 이용하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기사분이 안내해준 찜질방에서 두 어시간 눈을 붙였다. 찜질방 입구에 등산 배낭이 여러 개 있는 것을 보니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또 있는 모양이다.

 

4시 44분에 기상. 찜질방 주인에게 아침 먹을 수 있는 곳을 물어보니 조금 걸어가면 해장국집이 있다고 일러준다. 해장국집에는 이른 새벽인데도 손님이 꽤 많았다. 뼈다귀해장국을 시켜 먹고, 맞은 편에 있는 할인마트에서 양갱과 자유시간을 간식으로 구입했다. 아까 이용했던 택시 기사분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찜질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위치를 알려주니 금방 도착했다.

 

여원재로 출발. 요금은 미터제다. 여원재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택시는 여명을 뚫고 여원재를 넘었는데 하차 지점을 찾지 못해 운봉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말았다. 기사분은 자신이 지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 미안하다며 16,000원의 미터 요금 중 12,000원만 달라고 한다. 사람의 정이 느껴진다. 차에서 내린 나에게 다시 안전한 산행을 하시라고 덧붙인다. 고마운 분이다. 

 

05:46  여원재에서 산행 시작.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나타났다. 첫 인상이 좋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원재에서 매요마을까지의 백두대간 길은 송림 속의 길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많았다. 소나무 숲을 지나니 동네 뒷산 같은 느낌이 든다. 벌써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부지런하시기도 하지. 오른쪽으로 도로를 건너면 무덤 좌측으로 표지기가 붙어 있다. 새벽잠을 자고 있던 새들이 발걸음 소리에 놀라서 날아오른다.


▲ 여원재 표지판, 남원-운봉간 24번 국도가 지나간다

 

▲ 백두대간 입구에 서 있는 이정표


06:11  마을 길이 끝나고 다시 소나무 숲길로 들어섰다. 아름다운 소나무들. 6시 25분,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고압선 철탑 사이로 고압선이 산 허리를 가르고 있다. 구름 속에서 해가 비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소나무 숲. 6시 36분, 구름 속에 숨었던 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6시 40분에  전주이공묘소를 지났다. 백두대간 길 왼쪽으로 합민성이라는 성이 있다는데 지났는지 안 지났는지 모르겠다. 아침 이슬 맞고 피어난 야생화들이 이방인을 반겨준다.


▲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 새벽에 눈을 뜬 패랭이꽃, 유난히 이 구간에 많았다


07:24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집에 전화를 했다. 무사히 남원에 도착해서 산행을 하는 중이라고. 해는 계속 구름 속을 들락거린다. 구름하고 숨바꼭질을 하나. 고만고만한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마침내 멀리 고남산 봉우리가 보였다. 높이 솟은 통신시설도 함께 보이고. 고남산이 가까워지자 경사가 제법 심해졌다. 바위벽에 밧줄이 매달려 있고 바위벽을 올라서니 다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정상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잠시 후 정상을 밟게 되었다.


▲ 운무에 싸인 고남산 정상 모습

 

▲ 경사가 조금 급한 바위벽에 밧줄이 늘어져 있다

 

▲ 고남산 정상 직전에 설치되어 있는 계단


07:55  고남산 정상에 도착. 정상에는 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정상표지석은 오른쪽으로 조금 아래 공터에 위치하고 있었다. 정상에서 표지석으로 내려가는 길 옆 돌에 '불조심'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누가 새긴 건가? 남원시에서 세운 사람 키 만한 표지석에는 '고남산 해발 846.4m'라고 적혀 있다. KT 고남산중계소 왼쪽으로 계단식 길이 나 있다. 중계소를 돌아나오면 시멘트 포장도로다.


▲ 고남산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카메라

 

▲ 고남산 정상 표지석과 함께

 

▲ KT 고남산중계소 모습


08:13  표지기를 따라 도로를 건너 숲길을 내려가면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난다. 경사가 급하다. 다시 표지기를 따라 도로를 따라 걸은 다음 숲으로 들어가면 송림 사이로 길이 나 있고 잠시 후 통안재에 닿게 된다.

 

08:15  통안재에 도착. 꽤 넓은 길이다. 그렇고 그런 길이 계속 이어져 있다. 9시 17분에 휴식. 왼쪽의 88고속국도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이에 질세라 매미와 이름 모를 새들이 함께 울어댄다. 부조화 속의 조화. 똑 같은 소리인데 인간이 만든 기계가 내는 소리는 귀에 거슬리고 자연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일까? 매요마을이 멀지 않았는지 밭이 보이더니 왼쪽으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 통안재의 모습

  

▲ 소나무 숲길, 시골집 뒤에 있는 산책로 같다


09:38  남원시 운봉읍 매요마을 도착. 유치재는 언제 지났는지 모르겠다. 표지기가 집집마다 담장을 따라 붙어 있다. 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을 했는데 갑자기 표지기가 사라졌다. 이럴 때는 바로 원위치하는 것이 좋다. 길을 잘못 든 것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길은 매요리경로당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지고 있었다. 즉, 매요교회와 폐교가 된 운성초등학교 사이로 나 있었던 것이다.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매요휴게소가 나온다. 여기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산행을 마친 한 팀이 귀가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제 산행을 시작했기에 벌써 마친거야? 잠도 안 자나? 교회와 학교 사이의 포장도로를 따라 걸으면 다시 숲길을 들어가게 되고 곧 숲길이 끝나면서 다시 도로로 내려서게 되는데 여기가 바로 제재소 건물이 있는 유치삼거리다.


▲ 매요보건진료소 안내 이정표

 

▲ 삼거리 왼쪽에 있는 매요휴게소

 

▲ 매요교회 건물 모습


10:00  유치삼거리에 도착. 사치재까지는 2.5km의 거리다. 왼쪽으로 88고속국도가 보이고 질주하는 차들도 보인다. 오늘이 일요일이니 나들이객이 많겠지. 88고속국도는 동서화합을 위해서 만든 도로지만 중앙분리대도 없다. 최근에 개통된 국도만도 못하다. 618봉을 지나 도로 쪽으로 내려가니 이정표가 서 있다. 사치재다.


▲ 유치삼거리 이정표

 

▲ 산행 중에 만난 맥문동, 꽃이 예쁘게 피었다


10:49  사치재에 도착. '복성이재 7.2km, 유치 삼거리 2.5km'라고 이정표에 적혀 있다. 예전에는 900m 정도 떨어져 있는 고가도로를 우회로로 이용하거나 무단횡단을 했지만 지금은 100m 정도 오른쪽에 나 있는 지하통로를 이용하면 된다. 안전한 지하통로를 놔두고 무단횡단을 하는 종주자들이 있다는데 매우 위험한 일이다.


▲ 사치재 이정표

 

▲ 중앙분리대도 없는 88고속국도


10:56  지하통로에서 휴식. 사과와 치즈를 간식으로 먹었다. 오늘처럼 하루 종일 걷는 경우에는 점심 시간이 따로 없다. 배가 고프면 먹는다. 틈나는 대로 먹어준다. 지하통로를 흐르는 물이 깨끗해서 식수를 보충했다. 11시 10분에 출발. 통로를 벗어나면 사면 쪽으로 표지기가 잔뜩 붙어있다. 급경사길이다.


▲ 고속도로 아래 지하통로


11:20  사치재에서 625봉으로 올라가는 길 매우 가파르다. 게다가 해가 바로 머리 위에서 비추고 해를 가려주는 나무는 없다. 힘이 많이 든다. 올라가는 길 양쪽으로 산불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시커먼 고사목들 아래에서 한창 새로운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625봉은 헬리콥터 착륙장이었다. 전망이 좋은 곳인데 사방에 이내가 끼어 먼 곳은 흐릿하게 보인다. 능선 오른쪽 아래 멀리 보이는 지리산휴게소에 관광버스가 여러 대 서 있다.


▲ 사치재에서 697봉으로 오르는 길, 산불로 인한 고사목들의 모습

 

▲ 고사목들 아래에 한창 새로운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 사치재에서 가파른 사면을 올라서면 닿게 되는 헬리콥터 착륙장

 

▲ 능선에 올라 내려다 본 지리산휴게소 모습


11:54  휴식. 한여름에 해가 났을 경우, 해를 가려주는 큰 나무가 없는 능선길은 숲길과는 달리 걷기에 덥고 힘들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지난 밤에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지 몹시 힘이 든다. 그래도 가야한다. 걷는 자 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 휴식, 별로 크지 않은 배낭인데 오늘은 무척 무겁다


12:26  새맥이재에 도착. 새맥이재 쪽에서 올라오는 임도에 내려섰다가 임도를 가로질러 조금 오르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내려서면 다시 임도고, 임도따라 몇 걸음 가다 좌측 숲길로 들어가 내려서면 아곡마을에서 논곡리로 넘어가는 임도가 나오는데 바로 570m 고도의 안부 새맥이재다. 오른쪽에 물길이 보이고 샘터가 있다.


▲ 새맥이재의 모습


12:36  새맥이재에서 시리봉 쪽으로 오르는 길이 걷기에 힘들다. 눈이 자꾸 감겨 온다. 그냥 드러눕고 싶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매미와 새들은 죽어라고 울어 댄다. 13시 14분에 시리봉 왼쪽에 있는 헬리콥터 착륙장에 도착을 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풀이 무성한데 거의 이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시리봉은 776.8m이지만 대부분 생략한다. 이제 마지막 봉우리 781봉만 넘어서면 복성이재도 멀지 않다.


▲ 시리봉 옆 헬리콥터 착륙장


13:43  781봉에 도착. 멀리 아막성터의 돌무더기가 보인다. 복성이뒷재는 어딘가? 아뭏든 목적지가 눈 안에 들어왔으니 그리 멀지는 않다. 능선도 부드러워 보여 아까와는 달리 다리에 힘이 솟는다. 철쭉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복성이뒷재가 나오고 조금 올라가니 왼쪽으로 돌탑이 하나 보였다.


▲ 781봉에서 본 아막성터

 

▲ 아막성터 바로 아래에 있는 복성이뒷재


14:00  아막성터에 도착. 산행로 왼쪽으로 돌아가니 돌로 쌓은 성곽이 뚜렷하다. 조금 지나니 한 쪽에 서 있는 안내판에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아막성터 돌길을 내려가 2시 19분에 이정표가 서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임도)에 도착.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성리마을에 닿을 수 있다. 다시 산길로 올라섰다 내려서니 비포장 임도가 나왔다. 임도를 가로질러 돌계단을 오른 다음 조금 걷다가 내려가니 아스팔트 왕복 2차로가 눈 아래로 보였다.


아막성(阿幕城)

 

전라북도 기념물 제38호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성리

 

돌로 쌓은 이 산성은 아영고원 줄기에 자리한 산봉우리를 에워싼 것으로 둘레는 633m 가량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 사이에 격렬한 영토쟁탈전이 벌어진 곳으로 신라에서는 모산이라고 불렀다. 성터는 대체로 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동, 서, 북쪽 테두리에 성문터가 있다. 북쪽의 성벽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하게 쌓아 정교함을 보여준다. 북문터 부근에는 직경 1.5m의 돌로 쌓은 둥근 우물터가 있다. 성안에는 삼국시대의 기와조각, 백제시대의 토기조각 등이 쌓여 있다.


▲ 아막성터에 있는 케언

 

▲ 자연석으로 쌓은 아막성터

 

▲ 성리마을 이정표

 

▲ 차도 전에 만나게 되는 또 하나의 비포장도로


14:30  복성이재에 도착. 751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고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군 아영면의 경계가 된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팀이 세워놓은 것이 분명한 차량 두 대가 표지판 밑에 얌전히 자리잡고 있고, 도로 건너에는 커다란 복성리(성암마을) 표지석이 서 있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원래 계획은 번암에서 묵을 예정인데 버스가 언제 있는지도 모르겠고 히치하이킹을 하기에는 그저 그렇고...

 

그렇게 얼마를 망설이다 표지판을 보니 '농림부지정 녹색농촌 체험마을 성암마을'이라고 적혀 있고 화살표와 함께 거리가 700m라고 알려준다. 화살표 방향을 보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었다. 그래, 체험마을이면 분명히 숙박 시설이 있을 거야. 한 번 내려가보자. 급경사의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마을이 나타났다.

 

첫 번째 집에서 민박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민박집은 저 아래로 내려가면 있고 밥도 해 먹을 수 있다고 일러준다. 살았다. 실제로 지도상으로는 이 도로가 25번 지방도였다. 조금 내려가니 마을 사람들이 쉬고 있는 정자가 있고 다시 민박집을 물었더니 조금 더 내려가라고 한다. 마침내 왼쪽 언덕 위로 기와 지붕이 보이고 '녹색농촌 체험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 복성이재, 751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 복성리 성암마을 이정표


15:05  펜션식 민박집에 도착. 넓은 마당 왼쪽에는 황토방 3개, 정면으로 4개의 방과 주방이 있는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그네가 설치되어 있고. 웬 그네? 방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주머니 한 분이 자신은 주인이 아니고 손님인데 하면서 4호실로 안내해준다. 주방시설과 욕실이 딸린 깨끗한 방이었다. 황토방에는 수녀 두 분이 휴가차 내려와 묵고 있었다. 하긴 수녀님도 쉬어야지.

 

일단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나니 원장이란 분이 왔다. 원장? 펜션에 무슨 원장? 그렇다. 그 분은 원래 조금 아래에 있는 폐교에서 '만나의 집'이라는 장애인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었고 겸사로 이 체험마을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같은 천주교 교우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저녁 식사는, 괜찮다면, 장애인 시설인 '만나의 집'에서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흔쾌히 승낙을 했다. 어떤 곳인가 가보기도 싶고.


▲ 하룻밤을 묵은 펜션식 민박집

 

▲ 같은 민박집인데 황토방이다


15:57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 소리가 잦아지며 소나기 구름이 몰려든다. 이윽고 바람과 함께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맑던 하늘에서 갑자기 이런 일기 변화가 있다니. 아, 정말 자연의 힘은 인간으로 어쩔 수 없나 보다.  만약 이 숙소를 바로 구하지 못했다면, 그 도로에서 마냥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비오는 산 중의 정취가 각별하다. 그래, 모든 슬픔과 걱정을 쓸어가다오. 집에 전화를 했더니 딸인 선영이가 받는다. 아내는 수영장에 갔고. 저녁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잠시 눈을 부쳤다.

 

18:00  원장님의 차로 '만나의 집'에 갔다. 펜션에서 조금 아래 쪽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차로 2분 거리였다. 폐교된 학교를 구입하여 14년 전부터 정신 및 신체 장애인들을 수용하여 보살피고 있는데, 현재 21명의 장애인들이 한 가족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천주교 재단의 도움 없이 개인이 이런 사업을 한다는 데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장애인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돼지고기국에 다른 반찬이 3가지. 성찬이었다. 이런 공기 좋은 산 속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생활하고 있는 만나의 집 가족들 얼굴은 한결같이 밝았다. 펜션 이용료가 3만원이라고 하기에 5만원을 건네주었다. 2만원을 더 받지 않겠다는 것을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사회복지시설 '만나의 집'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 227-6(성암마을)원장 조성의(스테파노)전화  063-352-3688   휴대전화  011-9501-6840E-mail 

stecho@hanmail.net

 

성암녹색농촌체험마을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 148(성암마을)마을지기 조성의전화  063-353-1300


▲ 장애인 시설 '만나의 집' 모습


19:00  숙소로 돌아와 아내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수녀님이 오가피차와 포도를 먹으라고 주신다. 너무 고맙다. 19시 35분,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으나 곧 그쳤다. 산 속은 일찍 어두워진다. 세상이 다 조용하다. 가끔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만 귓전을 맴돌 뿐. 피곤함에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