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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백두대간

2007.07.20. [백두대간記 2] 벽소령→성삼재

by 사천거사 2007. 7. 20.

백두대간 제2구간 종주기 

 일시: 2007년 7월 20일 금요일 

 구간: 벽소령 → 노고단 → 성삼재 

 거리: 18.0km 

 시간: 8시간 30분


 


05:25   눈을 떴다. 대피소 밖에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밖을 내다보니 비는 오지 않고 하늘만 잔뜩 흐려 있다. 짐을 꾸린 다음 담요를 반납하고 대피소를 나섰다.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노고단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산행로에 통행금지표지판에 설치되어 있고 '집중호우로 인해 19일 17시부터 지리산국립공원 전지역에 통행이 금지되었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나? 그냥 무시하고 통과하면 된다.

 

05:40   벽소령대피소 출발. 노고단까지 14.1km의 거리다. 형제봉으로 오르는 길은 아기자기하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지만 비옷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6시 32분, 비가 그치고 운무가 벗어지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디지털 카메라를 자동으로 놓고 몇 장 찍어보지만 그림이 신통치가 않다. 계속되는 돌길을 오르내렸다. 새벽에 이 큰 산 속을 혼자 걷는 기분은 걸어본 사람 만이 안다.


▲ 벽소령대피소 출발 후 바로 찍은 사진

 

▲ 운무 때문에 아래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 날이 점차 밝아 오고 있다


06:34   잠깐 해가 비치면서 계곡에서 운무가 피어오른다. 멋있다. 그러나 곧 해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계곡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뒤를 돌아보니 방금 지난 온 형제봉이 유령처럼 서 있다.


▲ 운무가 피어오르는 지리산

 

▲ 운무가 피어오르는 지리산

 

▲ 운무 속 유령처럼 서 있는 형제봉


07:00   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기 시작했다. 햇살이 뻗자 산 아래의 운무가 계곡을 따라 피어오른다. 장관이다. 이런 멋진 모습을 보기 위해서 큰 산에 오르는 지도 모른다. 날씨가 흐려 보지 못했던 지리산의 풍광을 지금 한꺼번에 만끽하고 있다. 좋은 사진기였다면 좀더 멋있는 그림을 담아왔을 텐데...


▲ 해가 잠깐 비치면서 운해가 깔리기 시작한다

 

▲ 지리산의 운해

 

▲ 운무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 지리산의 운해


07:11   지리산은 다시 운무에 싸였다. 산행로 한쪽에서 즉석황태국밥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맛은?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7시 46분에 출발. 연하천 주목 보호 철책이 오른쪽으로 설치되어 있고 그 철책이 끝나면서 연하천대피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 다시 운무가 덮힌 지리산


08:22   연하천대피소에 도착. 막 아침 식사를 끝낸 산행객들이 설거지를 하고 있고 몇몇은 산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통을 물을 채운 다음 대피소 출발. 잠시 날이 개는 듯 싶더니 다시 흐려진다. 명선봉을 지나 크고 작은 봉우리를 1시간 정도에 걸쳐 오르내리니 제법 경사가 가파른 토끼봉이 보인다. 9시 48분에 도착한 토끼봉에는 헬리콥터착륙장이 아담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토끼봉을 넘어 25분 정도 가파른 길을 내려오면 화개재에 이르게 된다.


▲ 연하천대피소 전경

 

▲ 토끼봉 헬리콥터착륙장


10:16   화개재에 도착. 넓은 평원으로 오른쪽으로 뱀사골로 가는 길이 나 있다. 그 아래에 뱀사골대피소가 있지만 뱀사골의 수질보호를 위해 곧 철거할 예정이란다. 화개재는 지금 한창 복원사업중이었다. 기념사진을 한 장 찍은 후 삼도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화개재에서 삼도봉까지는 토양유실을 막기 위해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수가 무려 600여개에 이르렀다. 말이 600개지 대단한 거리였다.


▲ 운무 속의 화개재, 한창 복원 중이다

 

▲ 화개재에서 기념 사진 한 장

 

▲ 화개재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600여개의 나무 계단


11:00   삼도봉에 도착. 화살촉 모양의 이정표에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경남과 전남, 전북의 경계가 만나는 봉우리로 암봉이었다. 삼도봉을 조금 내려가니 오른쪽에 반야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성삼재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가는 산행객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만날 때마다 반가운 인사. 산행객의 기본적인 예의다.


▲ 삼도봉 상징물과 함께


11:08   반야봉 삼거리에 도착. 반야봉은 오른쪽 길로 오르게 되어 있었다. 백두대간은 왼쪽 길로 우회.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11시 24분에 노루목을 통과. 여기서도 오른쪽 길을 이용해서 반야봉에 올라갈 수 있다. 반야봉은 지리산에서 꽤 유명한 봉우리이지만 백두대간에서는 벗어나 있다.


▲ 반야봉 삼거리 이정표

 

▲ 노루목 이정표, 역시 여기서도 반야봉을 오를 수 있다


11:52   임걸령에 도착. 이제 노고단까지는 3.2km가 남았다. 10분 걸으니 피아골삼거리가 나왔다. 표지기가 매달려 있는 왼쪽 길로 내려가면 피아골대피소를 거쳐 피아골을 통과한 다음 연곡사에 닿게 된다. 피아골은 가을 단풍이 아주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참, 지리산국립공원지역에서는 표지기를 거의 볼 수 없었다.

 

공단에서 제거를 하는지 아니면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달지 않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국립공원지역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지 않은 일반 산행로에서는 표지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임걸령에서 돼지령을 거쳐 노고단까지 이르는 길은 경사가 거의 없는 순탄한 길이었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꽤 장관을 이룰 것 같다.


▲ 임걸령 이정표

 

▲ 지리산 주능선 전역에 피어 있는 야생화

 

▲ 피아골삼거리 이정표

 

▲ 산행 중에 만난 기린초

▲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13:13   노고단에 도착. 7년 전인가 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왔을 때 성삼재에서 걸어 올라온 기억이 난다. 뒤로 돌아보니 반야봉 쪽은 구름 속에 들어가 있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노고단 정상으로 가는 길은 개방이 되어 있었다. 거대한 케언 앞에서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노고단에서 조금 내려가면 노고단대피소에 이르게 된다.


▲ 노고단 모습

 

▲ 노고단에서 본 반야봉

 

▲ 노고단 돌탑 앞에서


13:25   노고단대피소에 도착. 대피소 건물이 운무 속에서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백두대간 길을 찾아 조금 헤매다가 지도를 보니 성삼재 쪽으로 내려가다가 코재 부근에서 올라 종석대를 경유하게 되어 있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왼쪽으로 등산로가 나 있는데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다.

 

종석대를 경유해서 성삼재로 가는 백두대간길은 통제구역이었다. 어쩌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낮에 법을 위반할 수도 없고. 그래, 편한 길로 가자. 걸을 힘이 모자라서 편한 길로 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어느 정도 지킬 건 지켜야지. 그렇다 하더라도, 노고단에서 성삼재까지의 포장도로는 너무 지루했다.


▲ 노고단대피소


14:10   성삼재에 도착. 승용차가 몇 대 주차되어 있을 뿐 썰렁하다. 성삼재휴게소에 들러 따끈한 커피를 한 잔 시켰다. 속이 훈훈해진다. 버스시간표를 보니 14시 40분에 구례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지리산 종주를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뿌듯함이 가슴 깊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지리산 종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삼재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한다. 천왕봉에서 성삼재로 방향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유는? 천왕봉을 오르는 데에 많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 성삼재휴게소 모습

 

▲ 해발 1090m의 성삼재 이정표


14:40   성삼재 출발. 구례로 가는 버스 손님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3명이었다. 몸집이 좋은 기사분은 운무 속의 급경사 굽은 도로를 거침없이 내려간다. 하루에 일곱 번씩 이 길을 왕복한다고 한다. 얼마를 내려가니 경찰이 이동카메라를 설치하고 과속 단속을 하고 있다. 이 도로 규정속도가 20km/h인데, 그렇다면 얼마 이상이면 과속 단속에 걸리는가? 30km/h 이상이면 과속으로 단속된다. 세상에 30km가 과속이라니. 이렇게 단속하는 이유가 있었다.

 

기사분 설명에 의하면, 얼마 전 수련활동을 마친 순천의 한 중학교 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이곳에서 브레이크 과열로 추락해서 5명이 죽은 사고가 있었는데 그 이후로 엄격하게 과속 단속을 한다고 한다. 또한, 안전띠도 모든 좌석에서 착용하게 되어 있었다. 유비무환이다. 30분 정도 걸려서 버스는 구례공영주차장에 도착했다. 군청소재지였지만 구례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시내 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모텔이 몇 개 눈에 띄있다.

 

15:20   모텔에 도착. 우선 짐을 푼 다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산행을 마친 후 따끈한 물로 땀을 씻어내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산행 내용을 정리하며 휴식을 취했다. 달콤한 휴식. 6시 쯤 모텔을 나와 근처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막창구이 한 접시에 소주를 한 병 시켰다. 소주 한 병 정도로는 내일 산행에 이상이 없겠지.

 

마음씨 좋은 주인 아주머니는 그냥 드시라고 하면서 감자탕 뚝배기와 공기밥 한 그릇을 내온다. 전라도 음식 인심이 좋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고맙다. 음식값이 13,000원이었는데 15,000원을 쥐어주고 나왔다. 모텔로 돌아오니 피곤한 몸에 알콜이 들어가서 그런지 잠이 쏟아진다. 휴대전화 알람을 맞춘 다음 잠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