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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백두대간

2007.07.19. [백두대간記 1] 천왕봉→벽소령

by 사천거사 2007. 7. 19.

백두대간 제1구간 종주기

◈ 일시: 2007년 7월 19일 목요일 

◈ 구간: 중산리 → 지리산 천왕봉 → 벽소령 

◈ 거리: 18.0km 

◈ 시간: 9시간 36분



2007.07.18. 수요일

 

15:53  경남 진주에 도착. 35번 시내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진주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내일부터 시작할 백두대간의 시발점인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자면 중산리에서 숙박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금년 2월에 촉석루에 들르느라고 진주에 온 적이 있는데 시내를 통과해보기는 처음이다. 아직 방학을 하지 않았는지 하교하는 학생들이 많고, 네거리 교통체계가 로터리 형태로 된 곳이 여럿 있었다.

 

16:15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5시에 중산리행 버스가 있었다. 요금은 4,700원이었으며 중산리까지 약 1시간 10분내지 15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아침 6시 20분에 첫 차가 출발하며 1시간 간격으로 떠나고 막차는 21시에 있었는데, 마을마다 들리는 마을버스 성격의 버스였다. 버스 출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터미널 근처에 있는 할인마트에 들러 백두대간 종주 3일 동안 간식으로 먹을 초콜릿, 양갱, 캬라멜, 찰떡파이, 자유시간 등을 구입했다. 대금은 7,400원.

 

정확히 5시에 버스 출발. 3번 국도를 따라 산청 쪽으로 가다 '지리산' 이정표를 보고 계속 달리면 중산리가 나온다. 중산리로 가는 도로에 있는 큰 마을에는 '중산리에서 천왕봉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케이블카를 설치했을 때의 장단점은? 버스 손님 중 등산 복장을 한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오늘이 평일이라서 그런가?

 

18:14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 얼마만에 와보는 중산리인가. 적어도 30년은 넘은 것 같다. 그 때와는 많이 변했다. 넓은 주차장과 자주 눈에 띄는 민박집과 펜션 등. 민박집을 겸한 '옥산정식당'에 들러 방을 구했다. 지금은 식당은 하지 않고 민박만 받는다고 한다. 1박 비용은 20,000원. 민박집 수준은 네팔의 롯지보다 조금 나은 편이었다. 짐을 풀고 주차장옆 기사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저녁으로 먹었다. 가격은 5,000원. 아침 식사가 된다고 적혀 있기에 문을 여는 시각을 물었더니 6시 30분이란다. 너무 늦다. 민박집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한 다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산행의 설레임 때문일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결혼한 딸 선영이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다. 언제 잠이 들었나?

 

2007.07.19. 목요일

 

06:00  5시에 기상. 준비해간 즉석 짜장덮밥으로 아침을 떼우고 산행준비를 마친 다음 민박집을 나섰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새벽 공기를 마시며 터벅터벅 올라간다. 내려가는 사람도 올라가는 사람도 나 밖에 없다. 거대한 '지리산국립공원' 표지석 두 개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계곡을 가로지른 법계교가 나타나고(06:25) 그 다리를 건너니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은 천왕봉, 오른쪽은 순두류로 가는 길이다.


순두류(順頭流)

 

두류산(지리산)이 순하게 흘러 평지를 이룬 곳이다. 천왕봉을 중심으로 해서 한결같이 급경사를 이루는 지리능선이 어느 한 지점에 와서 광대한 평원을 이루며 빼어난 경관을 빚어낸 곳이 바로 순두류이다. 지리산을 두류산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해 줄 수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해발 700~900m의 지대에 9~10도의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평원지역으로, 천왕봉에서 중봉, 써리봉으로 이어져 국사봉까지 연결되는 태산준령을 병풍처럼 감싸 안은 지형을 하고 있다. 그 탓에 순두류 일원에는 연중 어느 철에도 맑은 물이 흐르는 수려한 계곡이 있다.


▲ 하루를 묵은 민박집

 

▲ 지리산국립공원을 알리는 대형 표지석

 

▲ 이 법계교를 건너면 바로 삼거리다

 

▲ 법계교에서 본 지리산 중산리계곡

 

▲ 천왕봉과 순두류 갈림길


천왕봉으로 가는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본격적인 돌길 산행이 시작되었다. 돌길 산행은 천왕봉까지, 아니 그 뿐이 아니라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도 계속되었다.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의 지리산 종주 산행은, 약간의 지역만 제외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돌길 산행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산행로 왼쪽의 중산리계곡 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리고 가끔 새소리도 들려온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곧 비라도 쏟아질 것 같다. 비가 오면 안 되는데...

 

06:55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 작은 다리를 건너니 바로 삼거리다. 칼바위는 언제 지났나? 천왕봉 쪽으로 방향을 잡고 계속 오름길을 따라 걷는다. 왠 바위가 이렇게 많을까. 화북에서 속리산 문장대를 올라가는 길과 비슷하기도 하다. 7시 53분에 망바위를 지나 30분 정도 올라가니 로타리대피소가 눈에 들어왔다.


▲ 장터목대피소와 천왕봉 갈림길 이정표

 

▲ 해발 1068m의 망바위 이정표


08:27  로타리대피소에 도착. 예상대로 사람들이 많았다. 여름 방학을 맞아 선생님들을 따라 학생들이 수련을 온 것 같은데, 한쪽에서는 아침식사 중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하산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이런 산행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수련 산행을 계획한 선생님들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휴식 후 출발. 로타리대피소 바로 위에  법계사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산행로에서 벗어나 있기에 들르지 않고 통과했다. 다시 돌계단길이 시작되었다. 돌계단길을 오를 때마다 네팔 트레킹 생각이 난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가니 개선문이다.


법계사

 

법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의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544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1,400m에 위치하고 있다. 6·25전쟁 때 불탄 것을 최근에 중건하여 절의 면모를 갖추었다. 법당 왼쪽 바위 위에는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법계사 3층석탑이 있다.


▲ 운무에 싸인 로타리대피소 수련 학생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

 

▲ 로타리대피소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돌계단길


09:25  개선문에 도착. 거대한 바위 사이로 산행로가 나 있다. 인공적으로 만든 파리의 개선문보다 훨씬 운치가 있고 자연미도 넘쳐 보였다. 아, 천왕봉은 아직도 멀었나? 3시간 30분 동안 계속 올라왔는데. 


▲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개선문


09:45  천왕샘에 도착. 암벽 아래에 맑은 물이 고여 있고 플라스틱 바가지가 3개 놓여 있다. 이 천왕샘은 진주 남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시원하게 한 바가지 들이키고 출발. 이제 천왕봉도 멀지 않았다. 긴 밧줄이 늘어져 있는 너덜지대를 오르는데 한 청년이 슬리퍼를 신고 내려온다. 아니, 지리산을 슬리퍼를 신고 올랐단 말인가? 그 뒤로 50대 아저씨가 내려오는데 하얀 고무신을 신었다. 왜들 이러는 거야? 이거 지리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하여튼 산에 다니다 보면 별의 별 사람을 다 만난다.


▲ 남강의 발원지인 천왕샘, 물맛이 좋다


10:00  지리산 천왕봉에 도착. 중산리 민박집에서부터 이곳까지 정확하게 4시간 걸렸다. 정상은 온통 운무에 싸여있고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장터목에서 올라온 듯한 남녀 고등학생들이 비닐로 된 비옷을 입고 바람 속에서 떨고 있다. 비닐 우의가 큰 소리를 내며 바람에 펄럭인다. 정상표지석 앞쪽에는 학생들이 바람을 피하느라고 앉아 있어 뒤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백두대간의 시발점에 오른 것이다. 진부령까지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며 곧바로 오늘의 숙박지인 벽소령을 향하여 출발. 급경사 바위지대를 내려갔다. 시간이 꽤 되었는지 산행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 운무 속의 천왕봉 표지석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 백두대간의 첫 걸음을 내딛기 전에 기념 사진 한 장


10:18  통천문에 도착. 예전에는 바위틈을 통과해야 했는데 지금은 철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하긴 그 때가 언젠가. 지리산을 다시 찾은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조금 평탄한 능선을 따라 17분 정도 걸어가니 제석봉 이정표가 있다.


▲ 통천문에 도착,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10:35  제석봉에 도착. 제석봉 일원은 고사목으로 유명하다. 원래 이곳은 울창한 산림이었으나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불을 질러 고사목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복원이 많이 되었고 고사목이 명물로 자리잡고 있지만 그런 아픈 사연이 담겨 있는 곳이다. 운무 속의 고사목 자태가 고고하기까지 하다.


▲ 제석봉 이정표

 

▲ 제석봉 근처의 고사목 지대가 운무에 싸여 있다

 

▲ 운무 속의 고사목 지대


10:47  장터목대피소에 도착. 이곳은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묵는 곳이지만 지금은 모두 떠났는지 조용하기 그지없다. 천왕봉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데 죽기 전에 한 번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백무동에서 오르는 사람들도 이 장터목에 이르게 된다. 원래 이 장터목은 천왕봉 남쪽 기슭의 시천주민과 북쪽 기슭의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서 장(場)을 세우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데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대피소를 뒤로 하고 조금 완만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연하봉이다. 11시 15분에 연하봉 도착. 여기서 촛대봉은 한 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 장터목대피소 건물, 로타리대피소와는 달리 사람이 별로 없다

 

▲ 연하봉 이정표

 

▲ 운무 속의 연하봉 정상


12:18  촛대봉에 도착. 이름대로 바위가 많고 가파른 곳이다. 이곳에서는 세석평전(잔돌평원)과 세석대피소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인데 오늘은 시계가 제로다. 세석평전은 철쭉 군락지로 봄철에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세석자연관찰로를 만들어 세심히 관리하고 있다.


▲ 바위가 많고 가파른 촛대봉 이정표


12:32  세석대피소에 도착. 실제 대피소 건물은 산행로 왼쪽 아래에 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대피소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행로 양쪽에 야생화가 많이 보인다. 주로 숙은 노루오줌, 모시풀, 까지수영, 일월비비추, 기린초, 산수국 등이다. 야생화는 산과 들에 있어야 야생화다. 도시로 내려오면 이미 야생화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다. 풀과 나무와 어우러진 숲속에 함초로이 피어난 야생화가 제멋이지, 예쁜 화분에 심겨져 외로움에 떨고 있는 야생화는 인공과 가식의 아름다움일 뿐이다. 12시 46분에 영신봉 통과.


▲ 세석자연관찰로 안내표지판

 

▲ 영신봉 이정표

 

▲ 운무 속의 지리산


13:44  영신봉에서 한 시간 거리인 칠선봉에 도착. 벽소령 쪽에서 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다양하다. 나처럼 단독 산행을 하는 사람을 비롯하여 부부, 가족, 친구들, 단체 등등. 그 중에서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과 함께 산행을 하는 부부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날은 계속 흐려있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정말 다행이다.


▲ 칠선봉 이정표

 

▲ 산행 도중에 만난 숙은노루오줌

 

▲ 운무 속의 고사목 두 그루


14:42  덕평봉을 왼쪽으로 돌아 내려서니 파이프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선비샘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분 갈등으로 한을 품은 천민을 위로하기 위해 이름이 지어졌다는 선비샘은 항상 풍부한 수량으로 산행인들의 목을 축여주고 있다. 역시 한 바가지 들이키며 갈증과 피로를 해소. 이곳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제법 넓은 길이 나오는데 바로 구벽소령이다. 여기서 벽소령대피소까지는 1km 남짓한 거리인데 평탄하고 부드러운 길이 이어져 있다.


▲ 항상 수량이 풍부한 선비샘

 

▲ 구벽소령 이정표

 

▲ 벽소령대피소 도착 직전의 평탄한 길


15:36  벽소령대피소에 도착. 오늘밤을 묵을 곳이다. 6시에 중산리를 떠났으니 이곳까지 오는데 9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대피소에는 이미 10여명이 도착을 해서 자리 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리 배정을 시작하는 시간이 오후 6시란다. 그 때까지 뭐하나? 미리 자리를 배정해 주면 안 되나? 속으로 울화통이 치밀어올랐지만 대피소측의 사정도 있겠지 하면서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5시 쯤에 즉석황태국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버너와 코헬 없이 찬물만 있으면 98도로 물이 끓는다. 참 편한 세상이다.

 

여섯 시에 자리 배정을 받았다. 2층 구조로 된 대피소 숙소는 마치 군대의 침상과 같았다. 한 사람 당 한 평 남짓한 면적이 배당되었다. 죽으면 차지할 공간 정도라고나 할까. 그나마 나는 운이 좋게도 가장자리를 배정받아 불편함을 덜 수 있었다. 세수고 뭐고 다 생략하고 천원짜리 담요를 한 장 대여받아 깔고 덮어 잠을 청했다.

 

밖에 비가 내리는지 빗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밤새도록 내리고 내일 아침에는 그쳐다오.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수십명이 들어찬 공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 코 고는 소리, 이 가는 소리 등등이 하모니를 이루어 가관이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영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피곤해선지 비몽사몽간에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 오늘 밤을 보낼 벽소령대피소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