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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백두대간

2007.07.21. [백두대간記 3] 성삼재→여원재

by 사천거사 2007. 7. 21.

백두대간 제3구간 종주기

◈ 일시: 2007년 7월 21일 토요일 

◈ 구간: 성삼재 → 만복대 → 정령치 → 수정봉 → 여원재 

◈ 거리: 18.0km 

◈ 시간: 9시간



04:30  기상. 성삼재로 가는 6시 버스를 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눈을 뜨자 잠이 오지 않는다. 너무 피곤해서인지 아니면 지난 밤에 잠을 푹 잔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즉석짜장덮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짐을 꾸려 모텔을 나선 시간은 5시 30분. 주차장 쪽을 향해 걸으며 하늘을 보니 잔뜩 흐려 있기는 한데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오늘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하루만 더 참아주기를... 구례공영주차장에 도착해서 오늘 간식용으로 양갱 4개를 이천원에 구입. 6시가 가까워지자 성삼재행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온다. 타고보니 어제 성삼재에서 내려올 때 탄 그 버스에 그 기사분이다.

 

06:00  구례공영주차장 출발. 손님은 나 혼자다. 기사분이 날씨 때문에 손님이 없다고 투덜댄다. 내가 아는 체를 하니 왜 또 성삼재로 가느냐고 묻는다. 성삼재에서 여원재까지 백두대간 종주를 하러 간다고 했더니, 정령치에 가면 물을 보충할 수 있으니 무겁게 물을 많이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친절히 일러준다. 화엄사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4명의 산행객이 버스에 탔다.

 

성삼재로 오르는 길. 운무 속의 지그재그식 경사길을 기사분은 노련한 솜씨로 스피드를 내며 올라간다. 설마 사고는 없겠지 하면서도 가슴이 움찔움찔해진다. 6시 30분에 성삼재 도착. 어제 오후처럼 오늘 아침에도 성삼재는 운무 속에 들어있다. 주차장 한쪽에 버스에서 내린 단체 산행객이 몸을 풀고 있다.

 

06:35  성삼재 출발. 구례에서 성삼재를 넘어 대정으로 가는 861번 지방도 왼쪽으로 백두대간으로 진입하는 철문이 열려 있고 만복대까지 5.3km라고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작은고리봉으로 가는 가는 길은 걷기에 너무 좋았다. 이틀 동안 돌길만 오르락내리락 했는데 이 길은 평탄하면서도 부드럽다. 같은 지리산 자락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작은고리봉이 있다고 하는데 우회를 했는지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 성삼재에 있는 백두대간 출발점

 

▲ 백두대간 출발점에 있는 이정표


07:50  심원계곡 쪽으로 운무가 짙어지더니 드디어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지리산 주능선을 종주하는 동안에는 잘 참아주었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빗줄기가 점차 강해지기 시작한다. 준비해 간 비옷을 꺼내 입었다. 성삼재에서 만복대를 거쳐 정령치로 가는 길은, 처음 얼마의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람 키만큼 자란 관목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두 사람이 교행을 하려면 가슴과 가슴을 부벼야 가능할 것 같다.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 산행로는 수년 내로 없어질 것 같았다. 지도에 있는 묘봉치를 언제 지났는지 모르겠다. 눈 앞에 평원이 펼쳐지며 비가 조금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헬리콥터 착륙장을 두 개 지났다.


▲ 운무에 싸인 심원계곡

 

▲ 운무와 산림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08:51  만복대 300m 전. 아름다운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어있는, 마치 거대한 저택의 정원인 것처럼 착각이 드는, 평원에 이르렀다. 길 양쪽에 출입금지 시설을 해놓아 자연훼손을 막고 있다.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잘 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산행로를 개방하면서 동시에 자연훼손 방지와 자연 복원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조건 산행로를 막아놓고 출입을 금지시키는 안일한 정책을 펴는 설악산이나 오대산, 월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 만복대 300m 전 이정표

 

▲ 만복대로 오르는 도중에

 

▲ 만복대로 오르는 길

 

▲ 만복대로 오르는 길


08:58  만복대에 올랐다. 꽤 넓은 공터에 화강암으로 만든 표지석이 있고 규모가 꽤 큰 케언도 하나 있다. 그 한쪽으로 이정표도 서 있고. 주변에 잡목이 없어 전망이 좋을 것 같은데 오늘은 시계가 제로다.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의 비만 내려주는 것도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이정표를 보니 만복대에서 정령치까지는 2.0km, 약 한 시간 거리다.

 

비에 젖은 바위가 미끄러워 운행에 지장을 주기는 하지만 꽤 평탄한 길이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등산화 안으로 들어온 물이 질퍽거린다. 비가 와도 새는 운다. 737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정령치가 가까워지자 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맞은편에서 오는 백두대간 팀을 만났다. 시간적으로 보아 정령치에서 올라오는 모양이다. 오늘 어디까지 갈 예정인가.


▲ 만복대 정상의 모습

 

▲ 만복대 표지석과 함께


10:05  정령치에 도착. 예전에 승용차로 두 번인가 온 적은 있지만 걸어서는 처음이다. 넓은 주차장에는 달랑 관광버스 한 대만 서 있을 뿐 적막강산이다. 휴게소로 들어가니 아주머니 두 분만 있을 뿐 손님은 아무도 없다. 우선 따끈한 커피를 한 잔 시켰다. 코를 간지럽히는 커피향이 좋다. 메뉴에 국수가 있기에 종류를 물었더니 잔치국수라고 한다. 한 그릇 말아달라고 했다. 장기산행에서는 수시로 배를 채워주는 것이 좋다. 국수를 먹은 다음 고리봉 올라가는 길을 물으니 왼쪽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일러주신다. 산행에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 정령치 이정표

 

▲ 운무 속의 정령치휴게소


10:33  정령치 출발. 휴게소 왼쪽으로 난 돌계단을 오르니 정령치에서 바래봉으로 가는 능선을 알려주는 지리산국립공원안내도가 서 있다. 여기서 고리봉까지는 0.8km, 30분 정도의 거리다. 빗줄기가 많이 약해져서 안개비로 변했다. 그래도 비옷을 입고 걷는 것이 좋다. 비옷은 비를 막아주기도 하지만 보온력이 좋아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막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여름철이라 하더라도 급격한 체온강하로 하이포서미아 현상이 생기면 위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 정령치휴게소 위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안내도


11:15  고리봉에 도착. 백두대간인 고기삼거리로 가는 길은 왼쪽으로 나 있다. 그냥 직진하면 세걸산을 거쳐 바래봉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고기삼거리까지는 3km, 내려가는 길이니 약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거리다. 고도가 급격하게 낮아지면서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내려가기도 힘든 길을 올라오는 백두대간 팀을 두 팀 만났다. 비오는 날 이 힘든 고생을 왜 사서하는 걸까? 고기리 쪽이 가까워지면서 하늘 높이 뻗은 낙엽송과 적송들이 운무 속에서 열병을 취하고 있다. 환상적이다.


▲ 고리봉 이정표

 

▲ 고리봉과 고기삼거리 중간지점 이정표

 

▲ 아름다운 소나무 숲


12:25  고기삼거리에 도착. 장안과 운봉을 연결하는 60번 지방도와 정령치에서 내려간 737번 지방도가 만나는 곳이다. 길 우측에 있는 집에서 고추를 다듬는 할머니에게 수정봉가는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주신다. 60번 지방도를 따라 운봉 쪽으로 걸었다. 길 옆 화단에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60번 도로는 오른쪽으로 휘어진다.

 

수정봉으로 가는 가재마을은 왼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도로로 진입해야 한다. 교회 건물과 덕치보건지소를 지나 계속 가다보면 나무에 표지기가 붙어 있다. 이제부터는 표지기를 따라가면 된다. 운무에 싸인 가재마을이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배추밭에서 나오는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었더니 역시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면서 어째 혼자 산을 다니느냐고 하신다.


▲ 고기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 고기삼거리

 

▲ 60번 지방도로변의 코스모스

 

▲ 운무에 싸인 가재마을


12:55  가재마을에 있는 노치샘에 도착. 이정표에 '정령치 6.0km, 여원재 6.7km'라고 적혀 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커다란 소나무 다섯 그루가 있고 나무 아래에 산신제를 올리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길을 몰라 조금 헤매다가 소나무 위쪽으로 치고 올라가니 표지기가 길을 인도해주고 있다. 이제부터 수정봉을 향해 올라가야 한다. 완만한 사면길과 조금 경사가 있는 사면길이 끝나고 바로 능선에 올라섰다. 길은 좋다. 비는 여전히 추적거린다. 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몇 개 지났는데 수정봉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혹시 모르고 지나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 가재마을에 있는 노치샘

 

▲ 가재마을 뒷산에 있는 다섯 그루의 소나무

 

▲ 수정봉으로 오르는 길


13:45  수정봉에 도착. 나무로 만든 이정표가 서 있고 표지기가 여럿 달려있는데, 오늘의 종착점인 여원재까지 4.2km로 100분 거리라고 적혀 있다. 이제 해발 804.7m의 수정봉보다 더 높은 곳은 없으니 쉬운 길만 남았다. 조금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졌다. 30분 정도 후에 입망치에 내려섰다.


▲ 수정봉 정상


14:15  입망치에 도착. 지명에서 '치'는 한자로 '峙'라고 쓰며 '언덕'을 의미한다. 오늘 지나 온 '묘봉치'나 '정령치'에서도 '치'자가 같은 맥락으로 사용되고 있다. 입망치는 양쪽으로 수렛길이 뚜렷이 나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고개임이 분명했다. 조금 가파른 오름길을 지나 작은 봉우리를 몇 개 넘었다. 경사가 완만한 능선길이 계속 이어졌다. 이윽고 여원재가 가까워졌는지 자동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비는 거의 그쳐 간다. 능선 한쪽에서 젖은 옷을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기분이 상쾌하다. 속까지 젖은 등산화 때문에 갈아 신은 양말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지만...


▲ 입망치


15:35  여원재에 도착. 남원에서 운봉으로 넘어가는 24번 국도가 통과하는 고개다. 거대한 '雲城大將軍' 석상이 서 있고 그 옆에 있는 이정표에 '수정봉 4.8km, 고남산 5.4km'라고 적혀 있다. 고남산, 내가 다음 번에 갈 코스에 있는 산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 망설이는데 남원 쪽에서 시내버스가 한 대 올라온다. 손을 들었더니 좌회전을 하면서 정차를 했다. 운봉으로 간다고 하기에 올라탔다.

 

그 버스는 여러 마을을 돌아돌아 운봉으로 가는 마을 버스였다. 버스에서 발견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좌석마다 고무줄로 부채를 매달아 놓았다는 것이다. 네팔의 관광버스에서는 좌석마다 작은 선풍기를 매달아 놓은 것을 보았는데 여기는 부채다. 특이하면서도 재미있다.


▲ 여원재에 있는 이정표

 

▲ 여원재에 있는 장승


15:55  운봉읍에 도착. 시내버스 기사가 내려준 곳은 시외버스가 정류하는 곳이었다. 다시 비가 흩날리기 시작해서 우산을 꺼내 들었다. 얼마를 기다려도 함양으로 가는 버스는 오지 않는다. 운봉이 읍인데 이렇게 버스가 드문가? 바래봉 때문에 유명하기만 한 것인가? 지나가는 차를 세워볼까? 별의 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데 마침 택시가 한 대 오기에 손을 들었다. 그 택시는 이 지역 차는 아니고 남원시 택시였는데 15,000원에 흥정을 해서 함양까지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분과 백두대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도 꽤 있었다.

 

16:32  함양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버스노정표를 보니 대전 노선은 영 보이지 않는다. 안내 아가씨에게 물어보았더니 5시에 대전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차 시간이 잘 맞아 돌아가는 것 같다. 표를 산 다음 출발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터미널 한쪽에 있는 중국집에서 짬뽕을 한 그릇 시켜 먹었다. 맛있다. 따뜻한 짬뽕 국물이 속을 달래준다.

 

17:00  함양 출발. 대전-통영간 고속국도를 따라 버스는 달린다. 3일 동안 3구간의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흐뭇하다.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셀레임과 두려움은 이제 많이 진정이 되었고 계획에 따라 한 구간씩 올라가는 일만 머리 속을 맴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으나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18시 15분에 대전 도착. 여기서는 청주로 가는 버스가 10분마다 있으니 걱정이 없다. 18시 35분 대전을 출발하여 19시 25분에 청주 가경동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시원한 맥주를 사들고 귀가한 시간은 19시 55분. 3일 동안의 백두대간 종주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