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트레킹/네팔 안나푸르나

2007.01.28. [안나푸르나 트레킹 15] 카트만두

by 사천거사 2007. 1. 28.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15일차

 

◈ 일시: 2007년 1월 28일 일요일

 출발: 카트만두 안나푸르나 호텔

경유: Bani Bilas Secondary School - 스와얌부나트(Swayambunath: 일명 Monkey Temple)-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 - 덜발(Durbar) 광장 - 아산(Asan) 시장

◈ 도착: 카트만두 안나푸르나 호텔 

◈ 회원: 아내와 함께(네팔 오지학교 탐사대)  


06:30 기상. 어제 마신 술이 깨지 않아 정신이 몽롱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한결 낫다.

 

07:00 아침 식사, 호텔 뷔페식. 식사 중에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08:00 버스로 카트만두 외곽에 있는 바니 빌라스 중등학교를 방문했다. 오지탐사학교 행사가 시작된 후로 매년 계속 방문하는 학교이다. 간단한 기념식을 한 후 단체 줄넘기, 풍선 불기, 우리나라 노래 배우기 등의 프로그램을 탐사대원과 학생들이 함께 진행하였다. 교실에는 칠판 하나 뿐이고 책상과 의자는 모두 붙어있었다.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다. 11시에 고등학생들 시험이 있어 행사는 11시 전에 끝마쳐야 했다. 행사가 끝나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서 그 학교 선생님들이 우리들에게 고맙다고 차와 과자를 대접해주었다.


▲ 바니 빌라스 초등학교, 학생드이 교사 주변에 서서 식이 거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 바니 빌라스 초등학교, 학생드이 교사 주변에 서서 식이 거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 바니 빌라스 초등학교, 좁은 공간에 사람 많이 올라서기 게임

 

▲ 바니 빌라스 초등학교, 단체 줄넘기를 하고 있는 모습

 

▲ 바니 빌라스 초등학교, 철제로 된 의자와 책상이 모두 붙어 있다

 

▲ 바니 빌라스 초등학교, 우리나라 노래를 배우고 있다

 

▲ 바니 빌라스 초등학교, 기념품으로 가져 간 옷을 입은 학생들과 함께


12:30  카트만두 짱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메뉴는 비빔밥. 짱레스토랑은 우리나라 트레커들에게는 꽤 많이 알려져 있는 숙소이자 음식점이었다.


▲ 한국음식점 짱레스토랑(JJang Restaurant)


14:30  관광 시작. 버스로 스와얌부나트(Swayambunath)에 도착. 카트만두 시내 중심가에서 북서쪽에 있는데 걸어서 올라가려면 365계단을 올라야 한다. 올라가는 길 담에 마니차가 마련되어 있어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 5세기의 불교 순례지로 고풍스런 골목에는 불상들이 많다. 스와얌부(Swayambu)는 '스스로 창조된' 또는 '스스로 존재하는'이란 뜻으로 부처님이 카트만두 계곡에 연꽃을 심었는데 연꽃이 스스로 피어나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기적을 보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 왼쪽에 있는 하얀 탑은 티베트 불교의 상징이고 오른쪽 지붕이 달린 건물은 힌두교 사원이다.

 

이 처럼 네팔에는 불교 유적지에 티베트 불교와 힌두교의 상징물이 섞여 있으며 각기 다른 종교의 순례자들이 함께 모여든다. 카트만두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있으며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시내의 매연이 심해서 늘 뿌연 모습만 보인다. 티베트 불탑에는 인상적인 눈빛인 '지혜의 눈'이 새겨져 있다. 지혜의 눈 바로 위 '제3의 눈'은 인간의 마음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물음표 처럼 보이는 코는 1이라는 숫자를 형성화 한 것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결국 하나이고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스와얌부나트(Swayambunath), 티베트 불교 탑과 힌두교 스투파가 뒤섞여 있다

 

▲ 스와얌부나트(Swayambunath),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한 곳이다

 

▲ 스와얌부나트(Swayambunath), 원숭이들이 탑 위를 뛰어 다니고 있다

 

▲ 스와얌부나트(Swayambunath)에서 내려다 본 카트만두 시내

 

▲ 스와얌부나트(Swayambunath), 연못에 있는 불상 앞에서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였다. 네팔 힌두교 최대의 성지(聖地)이며,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원래 시바신에게 헌납한 사원인데, 파슈파티나트는 시바의 여러 이름 중 하나로, 파슈(Pashu)는 '생명체', 파티는 '존엄한 존재'라는 뜻이다.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동쪽으로 5km 떨어져 있으며 바그마티(Baghmati) 강을 접하고 있다. 원래의 사원은 477년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1349년 벵골의 술탄이 침공하여 무너지자 1360년 수리를 한 이후 최근까지 많은 공사와 보강을 거쳤으며, 현재의 모습은 1697년 말라왕조의 부파틴드라(Bhupatindra) 왕 때 이루어진 것이다.


사원 지붕은 도금하여 황금색을 띠며, 4개의 문은 은으로 만들어졌고 창문은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었다. 사원에는 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곳곳에 사원과 성소 및 많은 신상들이 있다. 여러 개의 방과 정원들은 각지에서 온 수많은 순례자로 북적이는데, 2층 사원에는 힌두교도 외에는 들어갈 수 없다. 시바의 탄일축제인 시바라티(Shivarati) 같은 축제기간에는 전국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다.  독실한 힌두교도들은 바그마티강에서 몸을 씻는 것을 소원으로 여기고, 죽을 때가 되면 이곳을 찾아와 죽음을 맞이한 후 화장된다고 하는데, 바그마티 강둑에 늘어선 화장터 가트(Ghat)에서는 가족의 시신을 태우면서 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공항 근처에 있는 골프장 옆에서 버스를 내려 사원쪽으로 걸어가는데 벌써 연기와 함께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난다.


▲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 힌두교도들이 머리를 감으며 몸을 씻고 있다

 

▲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 건너편으로 보이는 것이 힌두교 사원이다 


세 번째 탐방한 곳은 덜발 광장(Durbar Squre 일명: 구왕궁 또는 Hanuman Dhoka)이었다. 덜발은 네왈어로 '왕국' 또는 '왕'을 의미하는데 오늘날에는 네팔 도시의 심장부를 의미할 때 사용한다. 16세기의 말라 왕조의 궁전과 사원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500여년전에 우물에서 우연히 발견된 파괴의 신 칼리 바이라브(Kali Bhairav)의 석상이 유명하다. 넓은 광장에는 주로 기념품으로 골동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 덜발 광장에 들어차 있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데비를 모신 쿠마리 사원도 덜발 광장에 자리잡고 있었다. 쿠마리는 대개 기초적인 분별력만이 생성되는 5세에서 8세의 나이에서 선발된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네왈리의 카스트를 지녀야만 하고 그것도 성이 샤카인 씨족에서만 선택된다고 하는데, 샤카는 '석가모니'의 샤카라고 한다. 신체적 조건도 까다롭다. 경전에 의하면 쿠마리의 몸은 보리수와 같아야 하며 허벅지는 사슴과 같고, 눈꺼풀은 소와 같아야 하며 목은 고등 같아야 한다고 한다. 일단 기본적인 조건이 만족되면 쿠마리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테스트로서 빛 한줌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에 갇혀 하루를 지내야 하는데, 그 방에는 소, 돼지, 양, 닭 등의 머리가 피 냄새를 풍기며 놓여 있게 된다.

 

아이가 무서워서 견디지 못하고 울거나 소리를 지르게 되면 신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여기게 되며, 무난히 지나고 나면 비로소 신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일련의 시험을 거쳐 선택이 되면 '쿠마리'라는 이름의 여신이 되어 매년 9월에 있는 인드라자트라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데, 이 때 국왕이 제일 먼저 쿠마리에게 무릎을 꿇고 복을 빌며 여신으로 섬김을 맹세한다. 쿠마리로 지내는 동안은 그야말로 여신에 준하는 대접을 받으며, 짙은 화장에 이마에는 '티카'라 불리는 제 3의 눈이 그려진다. 

이것은 불교의 스투파 상단의 제3의 눈과 같은 것으로서,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와 법을 꿰뚫어본다는 신성한 눈이 되는 셈이다. 힌두 여신인 탈레주의 현신이 된 셈이지만 네팔에서는 모든 종교를 초월해 현신으로 숭배를 받는다고 한다. 쿠마리로 있는 동안은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피가 몸에서 나와서는 안된다고 한다. 작은 가시에 찔려 한 방울의 피를 흘린다고 해도 이미 그녀는 부정을 타는 것이 되고, 쿠마리의 자격도 바로 박탈당하게 된다. 12세 전후 첫 생리가 시작되면 쿠마리의 생활도 끝이 나게 되고, 화려한 여신 쿠마리로서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는 여신이 아닌 평범한 소녀의 자격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집에서는 반갑게 맞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쿠마리가 되었던 소녀가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들이 죽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혼도 하기 어렵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남편이 일찍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사회와 가정에서 외면을 당하는 소녀는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거나 멀리 떠나 버린다고 한다


쿠마리 사원에 가더라도 12시부터 4시까지는 쿠마리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우리 탐사대원들이 쿠마리 사원에 들어갔을 때는 오후 4시가 지났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가능했다. 3층으로 된 ㅁ자 모양의 사원 입구를 들어서서 마주 보이는 3층이 쿠마리가 거주하는 곳이었다. 사원 정원 한쪽에 헌금함이 놓여 있었는데 그 함에 돈을 넣어야 쿠마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탐사대원 몇 명이 5루피 짜리를 넣었는데 이 모습을 3층에서 쿠마리의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다가 무어라고 말을 했다.

 

가이드 핀죠가 번역한 바에 의하면, '쿠마리는 여신이지 거지가 아닙니다'라는 뜻이란다. 한 마디로 돈을 더 넣으라는 것이다. 조형진 교수님이 과감하게(?) 50루피 짜리를 넣고 기다렸더니 'OK' 사인이 났다. 역시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신도 움직이게 할 수 있으니까.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통제를 한 다음 쿠마리가 3층 창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앳된 소녀의 모습이었는데 비록 신의 신분이지만 사원 건물에 갇혀서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 덜발 광장의 자간나트(Jagannath) 사원 앞에서, 이 사원은 1563년에 지어진 것으로 처마의 에로틱한 목조가 볼만하다


아산 재래 시장은 덜발 광장에서 안나푸르나 호텔까지 오는 길목에 있었다. 이 재래 시장은 타멜 거리와도 연결이 된다. 카트만두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으로 정말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었다. 가게 뿐만 아니라 도로 위에도 작은 공간만 있으면 물건을 널어 놓고 팔고 있었다. 그 좁은 길 위를 오토바이와 릭샤가 교묘하게 빠져 다닌다.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서 통행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우리가 지나가면 상점 주인들은 일본말로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또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 만큼 일본인 관광객과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는 증거다.


▲ 아산 재래 시장의 상점에서 판매할 물건을 진열한 모습

 

▲ 아산 재래 시장의 노점상들, 없는 물건이 없다 


18:30   저녁 식사. 대화반점이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7가지 정도의 중국 음식이 나왔다. 모두 맛이 좋았고 양도 많았다. 음식점 근처에 있는 상점에서 양가죽 지갑을 240루피에 5개 구입하고 타멜 거리에서 아들 줄 티셔츠를 20$에 하나 구입했다. 아내와 내 모자에 'ANNAPURNA CIRCUIT NEPAL'이라고 글자를 수로 놓는데 200루피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