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4일차
◈ 일시: 2007년 1월 17일 수요일
◈ 출발: 카트만두 안나푸르나 호텔
◈ 경유: 포카라(Pokhara 820m)-나야풀(Nayapul 1070m)
◈ 도착: 비레탄티(Birethanti 1050m)
◈ 회원: 아내와 함께(네팔 오지학교 탐사대)
05:45 기상. 지난 밤 두어 번 잠에서 깨기는 했지만 숙면을 취했다. 밤이 되자 난방을 하지 않는 호텔 룸이 약간 쌀쌀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워서 잠을 설칠 정도는 아니었다.
06:30 아침은 호텔 뷔페식인데 고급 호텔이라 그런지 음식이 종류도 많고 맛도 좋았다. 물 한 병을 달라고 했더니 돈을 내라고 한다. 물이 귀한 곳이라 물 만큼은 공짜가 없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에베레스트에서 안나푸르나 좀솜 지역으로 변경된 트레킹 일정표를 나누어주었다.
▲ 안나푸르나 호텔 현관 앞 정원, 고급 호텔답게 깨끗하고 아름답다
07:40 버스 두 대로 안나푸르나 호텔 출발. 버스 튜어의 목적지는 나야폴(Nayapul)이다. 실제로 걷는 트레킹은 나야풀부터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카트만두 시내를 벗어나 포카라로 가는 고속도로로 올라섰다. 얼마 안 가서 제법 큰 산을 하나 넘어가는데 중앙선이 거의 없는 산길을 달리는 차들이 많다. 특히 짐을 잔뜩 실은 트럭들이 많았는데 모두 인도와 중국에서 카트만두 시민들이 사용할 물건을 들여오는 것이라고 한다.
▲ 카트만두 시민들이 사용할 물자를 실은 트럭이 중앙선이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아주 가파른 곳을 제외하고는 산 전체가 계단식 경작지로 개간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네팔은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전체의 80%이고 인도에 쌀을 약간 수출한다고 한다. 나머지는 관광 사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고속도로 오른쪽으로 트리슐리(Trishuli) 강이 흐르고 있다. 여름에 레프팅 장소로 유명한 트리슐리 강은 랑탕히말(Langtang Hymal)에서 내려와 흘러흘러 바라나시(Varanasi)의 갠지스강으로 간다. 래프팅은 하루 코스도 있지만 1박 2일, 2박 3일 등 다양한 패키지가 있다. 하루 패키지 래프팅 요금은 18불 정도인데 교통비와 점심 값이 포함된다.
▲ 로컬 버스는 버스 안이 만원인 경우에는 버스 위에도 사람들이 타고 간다
▲ 트리슐리 강 위에 놓여 있는 다리
09:30 오른쪽으로 강을 가로질러 다리가 놓여 있는데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오른쪽 기점인 베시사하르(Besi Sahar 820m)로 통하는 다리이다.
09:35 고속도로 오른쪽에 있는 휴게소에 도착. 화장실이 한쪽에 있는데 시설이 그렇다. 네팔에서는 기대수준을 많이 낮추어야 한다. 급하면 아무 데나 화장실로 쓰면 된다.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아이들이 보인다. 학교가 언덕 너머에 있는지 산을 올라가고 있다. 네팔의 교육제도는 원래 초등학교 5년, 중학교 2년, 고등학교 3년이었는데, 외국 대학에서 12년의 학력을 요구해서 지금은 12년으로 늘였다고 한다. 공립과 사립의 교육과정이 다르고 부유한 집에서는 모두 사립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고 한다. 교육열은 우리나라만큼이나 높고.
고속도로는 트리슐리 강 왼쪽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강에서 돌을 깨는 사람들이 있어 물어보았더니 카트만두의 건설 공사에 사용하기 위해서란다. 강에 있는 돌을 망치로 깨어 모래 대신 사용을 한다고 하니 쉽게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그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니...
▲ 고속도로 휴게소, 우리나라의 휴게소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 고속도로 휴게소, 건물 안에 매점이 있고 간단한 음료도 팔고 있다
10:30 '포카라 103km 전'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뒤를 따라 오는 차가 보이지 않아 차를 세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어(gear)가 고장이 나서 그랬단다. 도로가 굽은 곳이 많고 좋지가 않아서 속력을 낼 수 없어 운행 시간이 많이 걸린다.
▲ 버스에 정원이 없다, 탈 수 있는 데까지 타면 된다
11:50 고속도로 오른쪽에 있는 'Green Park Highway Restaurant'에서 점심을 먹었다. 야외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먹었는데 네팔 정식과 우리나라 음식 비슷한 것들의 두 종류였다. 식당 옆 논둑에는 허브 비슷한 보라색 꽃이 만발해 있다. 산에서 경사가 조금이라도 완만한 곳은 모두 계단식으로 된 경작지로 이용이 되고 있는데 지금은 유채, 양배추, 밀, 보리, 감자 등을 주로 심는다고 한다. 산골지방에는 지금도 우리나라의 옛날 보릿고개 같은 것이 있고.
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고속도로는 카트만두로 물자가 공급되는 유일한 도로인데 이 도로가 통제되면 카트만두 시민들의 생활이 마비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에 반군들(Maoists)이 이 도로를 통제하고 통행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로컬 버스가 한 대가 음식점으로 들어왔는데 버스의 정원은 없고 버스 안과 위에 사람과 짐승, 짐이 함께 뒤섞여 있다. 버스가 도착하자 여자들이 내려 논과 밭으로 달려간다. 네팔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다고 한다.
▲ 점심 먹은 음식점, 우리 탐사대원 외에도 많은 손님들이 있었다
▲ 오른쪽 길이 고속도로인데 우리나라의 시골 도로 만도 못하다
▲음식점에 도착한 로컬 버스, 지붕 위에도 짐을 싣고 사람이 탄다
13:00 점심 후 출발. 포카라가 가까워지면서 평지에 지은 집들이 많이 보인다. 밭에 심은 노란 유채꽃밭이 돌담으로 둘려져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제주도를 구경하는 것과 같다. 종종 룽다를 세워놓은 집이 눈에 띤다. 룽다는 장대에 다섯 가지 색의 천을 매단 것인데 위에서부터 파란색, 흰색,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순서로 되어 있다. 다섯 가지로 나눈 천은 색깔에도 의미가 있는데, 파란색은 하늘, 흰색은 구름, 빨간색은 불, 초록색은 태양, 노란색은 땅을 나타낸다. 날씨가 덥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공사 현장을 지나갔는데 공법이 너무나 원시적이다. 언제 저 다리를 완성하려나.
14:22 포카라 통과. 페와(Fewa) 호수가 있는 관광도시로 네팔 국왕의 별장도 포카라에 있다고 한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시발점으로 유명하다. 나중에 우리 탐사대원들이 하루를 묵을 장소이다.
▲ 포카라 시내 모습
15:25 포카라를 지나 산을 하나 넘은 다음 잠시 차를 세웠다. 뒷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앞에 보이는 야산의 계단식 경작지와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는 집이 눈에 띤다. 우리가 방금 버스로 넘어온 산을 짐을 지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다. 등에 진 짐은 머리에 끈으로 지지를 한다. 목이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되지만 전혀 무리가 없단다.
▲ 포카라에서 나야풀로 가는 고개를 넘은 후 잠시 휴식을 취하며
15:50 나야풀(Nayapul 1070m))에 도착. 도로 옆에 자리한 등산용품을 파는 여러 가게들이 이곳이 안나프루나 Base Camp 트레킹과 라운드 트레킹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포터들이 우리 탐사대의 짐을 챙긴 다음 잽싸게 이동을 한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우리를 내려 놓고 이곳에서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갔다.
▲ 나야풀, 버스에서 내린 탐사대원들, 이제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도로 왼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트레킹이 시작된 것인가? 초등학생 탐사대원들의 배낭에 매단 태극기가 너무나 선명하다. 마을 입구에 대나무 장대를 이용하여 높이 현수막을 하나 걸어놓았다. 현수막에 적힌 글은 다음과 같다.
Entrance to the temple of the Universal Holy Mother, Great Annapurna a holy spot that provides happiness, comfort, peace, prosperity and salvation for the pilgrims, who visited this sacred place.
이곳은 우주의 신성한 어머니이며,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행복, 평안, 평화, 부귀, 구원을 안겨주는 성스러운 장소인 안나푸르나로 가는 입구입니다.
드디어 안나푸르나로 들어가는구나. 이 성스러운 곳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안고 돌아갈 것인가. 행복? 평안? 부귀? 현수막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을 새삼 느꼈다.
▲ 나야풀 마을 입구, 안나푸르나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현수막이 높게 걸려 있다
비레탄티(Birethati)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나야풀 마을 도로 양쪽에는 상점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산에 가면 등산로 입구 양쪽에 기념품 상점과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는 것과 같다. 로지에서 사용할 슬리퍼를 구입할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이라고 해서 첫번째 상점에서 많은 탐사대원들이 구입을 했다. 나도 두 켤레를 구입했는데 아내가 갖고 싶어하는 보라색이 떨어져 검은 색을 구입했다. 두 켤레에 250루피. 그런데 슬리퍼를 파는 상점은 그곳뿐만 아니라 길을 따라 가면서 계속 나타났다. 보라색도 많았다.
트레커들이 많이 통과하는 마을이기 때문이라 그런지 주민들이나 아이들은 우리들의 출현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이미 많은 경험을 한 탓인지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준다. 트레킹 안내 팜플렛에는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서, 주민들이나 종교적 장소의 사진을 찍을 때에는 먼저 양해를 구하라고 적혀 있다.
▲ 나야풀 마을 아이들, 옷은 남루하지만 눈은 맑고 아름다우며 소박하고 꾸밈이 없다
나야풀을 지나 비레탄티로 향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부모들이 마중을 나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나라나 이곳이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다르지 않다. 아니, 어느 나라 부모도 같을 것이다.
▲ 나야풀에서 비레탄티로 가는 길
16:40 비레탄티(Birethanti 1050m)의 Sunrise Hotel 로지에 도착. 방을 배정받았는데 104호였다. 마치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방을 배정받는 기분이다. 사방이 나무로 된 방에는 트윈 베드가 놓여져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화장실과 세면실은? 밖에서 공동으로 사용해야 했다. 네팔 트레킹에서 이용하는 로지가 바로 이런 곳이구나. 나야 괜찮지만 아내는 고생 좀 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데 이 정도를 못이겨 낼까, 다른 대원들도 우리와 같은 처지가 아닌가, 침낭을 펴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 비레탄티의 Sunrise Hotel 로지, 오늘밤 묵을 곳이다
마치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이나 문경의 쌍룡계곡과 같은 거대한 계곡이 로지 옆을 흐르고 있다. 물소리도 우렁차다. 계곡 건너편의 규모가 조금 작은 로지들이 점점 짙어지는 어둠에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네팔도 우리나라처럼 산에서는 해가 일찍 떨어진다.
▲ 로지에서 본 계곡 건너 건물, 이곳에도 룽다가 세워져 있다
17:30 홍차를 한 잔 마신 다음 침낭 위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했다. 계곡의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저 물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밖은 어두워지고 하나 뿐인 희미한 백열등 불빛만 방안에 가득하다. 디지털 카메라 배터리 충전등이 한쪽에서 파란 빛을 내뿜고 있다.
로지 옆에 있는 야외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 전에 회합이 있었다. 내일 일정에 관한 것이었는데, 6시에 기상, 6시 30분에 아침 식사, 7시에 출발할 예정이고, 목적지인 고레파니(Ghorepani 2750m)까지 해발 고도 1700m를 걸어서 올라가야 하며 트레킹 시간은 대략 7~8시간이라고 알려준다. 원래의 예정대로라면 오늘 울레리(Ulleri)까지 갔어야하는데 카트만두에서 출발이 늦어져 이곳에서 묵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카고백은 아침 식사를 하러 오기 전에 꾸려서 방 밖에 내놓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야 포터들이 먼저 카고백을 지고 떠난다는 것이다.
18:30 저녁 식사. 우리 탐사대의 전용 요리사인 덴지를 비롯한 두 명의 쿡이 만든 메뉴는 밥, 닭볶음, 김치, 갓김치, 무우생채, 멸치 조림 등의 한국음식이었다. 요리를 얼마나 잘 했는지 카트만두의 한국음식점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맛이 좋았다. 덴지는 희말라야 산맥의 8000급 봉우리 14개를 모두 등정한 산악인 엄홍길에게서 한국 요리를 배웠다고 김영식 대장이 일러준다. 반주로 소주를 한 잔씩 했는데 나는 트레킹이 끝날 때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마시지 않았다.
20:30 취침시작. 침낭 속이 포근하다. 물소리, 밖에서 떠드는 소리, 나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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