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3일차
◈ 일시: 2007년 1월 16일 화요일
◈ 출발: 카트만두 로얄 신기(Royal Singi) 호텔
◈ 경유: 카트만두 국내선공항-보드나트(Bodhnath) 사원
◈ 도착: 카트만두 안나푸르나 호텔
◈ 회원: 아내와 함께(네팔 오지학교 탐사대)
04:35 모닝콜에 기상. 네팔에서의 첫밤을 보내고 첫아침을 맞았다. 밤새 서너 번 잠을 깼으나 잠은 잘 잔 편이다. 오늘 일찍 기상을 한 것은, 루크라로 갈 첫 비행기와 두 번째 비행기를 예약해 놓았고 따라서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아침은 호텔 뷔페식으로 먹었다. 아침 식사 전에 짐을 방 밖에 내놓아야 하는데 카고백을 다시 꾸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05:40 카트만두 국내선 공항으로 출발. 안개가 잔뜩 끼어 있어 걱정이다. 루크라의 날씨가 좋지 않아 벌써 이틀째 루크라행 비행기는 결항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네팔 지역이 건기이고 따라서 날씨가 맑아야 하는데, 기상이변 때문인지 날씨가 포근해서 안개가 끼는 날이 많고 또 비도 자주 내린다고 한다. 박연수 부대장이 날씨가 아무리 나빠도 삼일 째 되는 날에는 날씨가 좋아져서 비행기가 떴다고 하면서, 오늘이 삼일 째이니 비행기가 뜰 거라고 희망을 불어넣어준다. 그 말대로 잘 되야 할 텐데...
06:00 공항에 도착. 네팔 국내선 공항은 트리뷰반 국제공항과 인접해 있었다. 아침 날씨가 꽤 쌀쌀하다. 국내선인데도 탑승 수속이 꽤 엄격했다. 우리 탐사대가 이용할 루크라행 비행기는 16인승이기 때문에 2대로 먼저 가고 나중에 한 대가 더 가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비행기표를 보니 'Yeti Airlines OY-111'이라고 적혀 있다. 공항의 안개 때문에 6시 45분발 비행기가 일단 8시 30분으로 출발이 연기되었다.
▲ 카트만두 국내선 공항 대합실에서 루크라행 비행기가 뜨기를 기다리며
▲ 카트만두 국내선 대합실에서, 별의 별 짓을 다해 봐도 기다리는 것은 지루하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우리 탐사대원들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게임을 했는데 공항 공안요원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구경을 하며 즐거워한다. 공항 대합실에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우리처럼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는 한국인 팀도 한쪽에 하릴없이 비행기 출발만을 기다리고 있다. 공항의 안개가 좀처럼 걷히지 않아 비행기 출발이 계속 연기되고 있다. 지루하다. 공항 기념품상점에서 냉장고용 magnetic 카드를 4개에 1,000루피에 구입했다. 조금 비싼 기분도 들었지만 딸 아이가 선물로 사오라는 부탁이 있었기에 기분좋게 돈을 치루었다.
▲ 카트만두 국내선 대합실에서 탐사대원들이 게임을 하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10:00 안개가 걷히고 해가 났다. 비행기가 뜰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기다리는데 김영식 대장이 루크라에는 비가 오고 남체바자르에는 눈이 온다며 11시로 비행기 이륙이 연기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때에도 비행기가 뜰지는 미지수라고 부언을 한다. 옷을 조금 가볍게 입어서 그런지 추위가 느껴진다. 활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더 추운 것 같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막연히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실감하고 있다.
배가 고파 비스켓을 450루피에 구입해서 몇 개를 먹었다. 공항 안이라 그런지 물가가 꽤 비싼 편이다. 비행기는 다시 12시 30분으로 이륙이 연기되었다. 카트만두 공항에는 안개가 완전히 걷혀서 포카라행 비행기를 비롯해서 다른 방향의 비행기는 속속 이륙을 하고 있다. 부럽다.
13:20 마침내 루크라행 비행기 운행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김영식 대장이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트레킹 장소를 에베레스트에서 좀솜 지역으로 변경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날씨 때문에 오늘로 삼일 째 루크라행 비행기가 결항인데 요즘 날씨로 보아 내일도 비행기가 뜨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4:20 일단 공항에서 철수를 했다. 카고백을 다시 버스로 옮겨 싣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직 포터를 쓰지 않기 때문에 현지 스텝들과 탐사대 남자들이 주로 작업을 했다.
▲ 공항광장에서 숙소로 갈 버스를 기다리는 대원들, 비행기도 못 탔는데 왜 웃지?
▲ 공항 건물을 배경으로, 루크라는 못가는 건가? 그러면 에베레스트도 못 가는데...
▲ 공항에서 숙소로 갈 버스를 타러 가는 탐사대원들, 배낭에 맨 태극기가 이채롭다
14:40 안나푸르나 호텔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닭고기와 채소, 국수, 볶음밥 등으로 이루어진 음식이었는데 맛이 있었다. 하긴 새벽 5시에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나왔으니 배가 고플만도 하다. 얼마 만에 먹는 음식인가. 안나푸르나 호텔이 있는 도로 이름은 'King's Way'라고 하는데 곧장 가면 네팔 왕이 살고 있는 왕궁이 나온다. 네팔의 중심가라고 볼 수 있다. 왕궁의 둘레는 약 4km이며 왕궁 안에는 네팔 왕의 친위대가 상주하고 있다.
카트만두는 분지로 물사정이 좋지 않아 집을 사는 경우 수도는 따로 매입을 해야한다고 한다. 요즘은 건기라서 날씨가 쾌청해야 하는데 안개가 자주 끼는 것은 기상 이변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기상 이변이 네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영향이 다시 우리에게까지 파급되고 있다.
▲ 점심을 먹을 식당, 빈 접시에 음식이 채워질 때만 기다리고 있다
▲ 점심을 기다리며, 배가 고파도 폼은 멋지게 잡아야지, 재현이 뭘 봐!
점심을 먹은 후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협의가 있었다. 오늘의 날씨로 보아 내일도 루크라행 비행기가 뜰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무작정 비행기 뜨기만을 기다리다가는 전체 일정이 틀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만다. 따라서 처음에 계획했던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하지 못해 아쉽지만 트레킹 지역을 좀솜으로 바꾸어서 토롱라를 다녀오기로 하자. 즉,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에 코스에서 시계방향으로 반 정도 하는 것이 어떠냐. 이상의 김영식 대장의 설명이었다. 네팔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과정 전체 계획을 세운 대장의 말인 만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안이 없지 않은가. 계획과 일정이 바뀐 것에 대해서 마음이 가장 아픈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도 대장일 것이다.
▲ 카트만두 거리의 개들, 아무데서나 잠을 자고 있다, 네팔에서는 보신탕을 안 먹나?
▲ 오늘 숙소인 안나푸르나 호텔 현관 앞에서, 최고급 호텔답게 시설이 좋다
15:30 오후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 안나푸르나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목적지는 보드나트(Bodhnath)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불탑이다.
16:00 보드나트 사원에 도착. 탑 둘레를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탑 벽에 설치되어 있는 마니차를 돌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김영식 대장이 일러준다. 탑 둘레를 따라서 기념품 상점들이 빼곡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티베트 불교 사원 주변에는 티베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보드나트(Bodhnath)
네팔에서 가장 높은 사리탑으로, 티베트와 네와르족(族) 불교신자들의 숭배지이다. 고대 카트만두와 라싸 사이의 고대 무역로로 사용되었던 차바힐(Chabahil) 동쪽 1km 지점에 있으며, 높이는 38m이고 기단의 높이만 36m에 이른다. 5세기경에 축조되었으며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티베트인(人)들은 탑이 카트만두 계곡의 모든 기운이 모이는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 부처의 사리가 묻혀 있다고 믿어 왔다. 탑은 4개의 방형(方形) 기단부 위에 세워져 있으며, 돔과 정상부 사이에는 13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첨탑이 있는데, 이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13단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탑 이름을 'Bodh(깨달음)의 Nath(사찰)', 즉 보드나트(Bodhnath)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천민인 자드지모(Jadzimo)가 부처에게 공양할 것을 찾다가 왕의 허락을 받고 짓기 시작하였는데, 지방 귀족들이 천민이 탑을 건설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탄원하였으나 왕은 "한 번 허락된 것은 철회할 수 없다(Jarung Kashor)"라고 말하며 거부하였다고 한다. 또한, 훗날 자드지모의 공덕으로 그의 아들이 8세기 티베트 불교를 확립한 왕으로 환생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네와르족의 연대기에 따르면, 15세기 후반에 마나데바(Manadeva) 왕이 아버지를 살해한 후 속죄를 위해 건립하였다고 하며, 한 여인이 왕에게 사리탑을 지을 땅을 허락받아 지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 웅장한 보드나트(Bodhnath)의 모습, 사람이 올라갈 수 있다
마니차
티베트에 가면 사람들이 원통형으로 생긴 금속 통을 열심히 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니차다. 그 크기도 다양해서 아주 작은 것부터 들고 다니기 힘들 정도의 크기가 있다. 사원 입구에는 직경 2m 이상 길이 4m 이상 되는 거대한 것도 있다. 그리고 사원 밖 벽면에 설치된 수없이 많은 원통형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가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원통은 위가 동그랗고 실린더 형태이고 그 가운데는 축이 있고 손잡이가 원통 아래에 있다. 그리고 통이 잘 돌도록 원통과 손잡이 사이에는 조개 껍질로 만든 하얗고 동그랗게 생긴 원형 디스크가 끼워져 있다. 그리고 원통에 연결된 사슬은 추와 연결되어 돌리기 쉽게 되어 있다. 재질에 따라 청동으로 만든 것도 있고 가죽 또는 양철로 된 것도 있다. 겉에는 주로 '옴마니반메훔'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연꽃 속에 핀 보석'이라는 뜻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탄트라 경전을 돌돌 말아서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어 원통 안에 넣어놓았다. 그래서 그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옴마니반메훔을 독송하며 시계 방향으로 사원을 돌거나 자기 일을 한다.
옴마니반메훔(Om mani padme hum)
이 육자진언은 '온 우주(Om)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mani)와 자비(padme)가 지상의 모든 존재(hum)에게 그대로 실현될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곧 육자진언을 염송하면 법계(宇宙)에 두루한 지혜와 자비가 수행자에게 실현된다는 것이다. 본래 옴(Om)은 태초 이전부터 울려오는 우주의 소리(에너지)를 의미하여 보통 성음(聖音)이라 한다. 그리고 마니(mani)는 여의주(如意珠)로서 깨끗한 지혜를 상징하고, 반메(padme)는 연꽃으로서 무량한 자비를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훔(Hum)은 우주의 개별적 존재 속에 담겨 있는 소리를 의미하며, 우주 소리(Om)를 통합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육자진언을 염송하면 사람의 내면적 에너지(智慧)와 자비를 활성화시켜서 우주의 에너지와 통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 시계방항으로 돌면서 마니차를 돌리는 탐사대원들
▲ 보드나트 둘레를 오체투지로 돌고 있는 순례객, 자신의 몸을 한없이 낮추고 있다
룽다(Lungda)와 타르초(Tarcho)
룽다란 '바람'이란 뜻의 '룽'과 '말'이란 뜻인 '다'가 합쳐진 티베트 말이다. 룽다는 긴 장대에 매단 한 폭의 길다란 깃발이고 타르초는 긴 줄에 정사각형의 깃 폭을 줄줄이 이어달은 것으로 만국기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룽다는 말 갈퀴가 휘날리는 모습을 뜻하는데 히말라야의 산언덕이나 산간마을의 어귀에 어김없이 바람에 나부끼는 룽다의 깃발은 정말 그렇게 보인다.
룽다에는 '옴마니반메훔' 같은 만트라, 경문이 가득 적혀 있다.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서 모든 중생들이 해탈에 이르라는 히말라야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그래서 룽다의 천으로 된 깃발은 형체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놓아둔다.
▲ 타르초가 바람에 휘날리는 보드나트, 운동회날 만국기를 걸어놓은 것 같다
▲ 보드나트 주변의 상가 건물들, 주로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차 있다
▲ 세계 최대의 불탑인 보드나트 전경, 세계 최대의 불탑인 만큼 웅장하다
▲ 보드나트 사원 둘레의 기념풍상 건물들, 라마(스님)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띤다
사람들을 따라서 아내와 함께 탑을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돈 다음 탑 주변에 있는 거리로 나왔다. 중앙선이 없는 도로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 릭샤, 보행자가 뒤얽혀서 이동하고 있었고, 보도에는 온갖 물건들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가이드 핀죠의 말에 의하면 대졸자 한 달의 월급이 3만 5천원 정도로 아시아에서 최빈국에 속하지만 행복지수는 세계 2위에 속한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과 행복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인 모양이다. 노점상에서 10루피를 주고 빗 한 개, 40루피를 주고 장갑을 한 켤레 구입했다.
▲ 보드나트 주변 거리 풍경, 노점상들이 보도를 차지하고 있어 복잡하다
▲ 보드나트 주변 거리 풍경, 보도에 물건을 늘어놓고 팔고 있다
17:00 보드나트 관광을 마친 후 버스로 숙소인 안나푸르나 호텔로 돌아왔다. 1055호 방을 배정 받고 들어가 보니 고급 호텔답게 시설이 좋았다. 이 호텔은 원래는 인도 사람 소유였지만 지금은 네팔 왕궁의 소유라고 한다.
19:00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호텔 로비에서 잠깐 모임이 있었다. 내일 버스로 출발하여 포카라를 경유, 나야풀에서 하차한 다음, 트레킹을 시작할 예정이고, 아침 6시에 기상, 6시 30분에 아침 식사, 7시에 출발할 예정이라고 일정에 관해서 알려주었다. 저녁 식사 장소는 타멜(Thamel) 거리를 지나서 있는 빌라 에베레스트(Villa Everest)라는 한국음식점이었다. 된장국, 김치찌개, 콩나물, 두부무침, 김치, 오이무침, 배추겉조리 등이 저녁 식사 메뉴였다. 한국 음식 흉내는 냈지만 그렇게 맛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타멜 거리는 카트만두에서 관광객들이 모이는 거리인데, 온갖 종류의 기념품상과 등산복점, 호텔, 술집 등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타멜 거리의 마사지하는 곳은 이상한 아줌마가 들어오는 곳이고 댄스바는 야리꾸리한 여자가 춤을 추는 곳이라고 가이드인 핀죠가 설명해준다. 저녁을 먹은 후 구경 삼아 타멜 거리를 지나오는데 벌써 문을 닫는 곳이 여럿 있다. 알고보니 밤 9시가 되면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타멜 거리에서 우리 대원들 몇 명을 만났는데 술집을 운영하는 핀죠네 집으로 툼바를 마시러 간다고 한다. 툼바는 대나무통에 든 발효식품에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빨대로 빨아 먹는 술인데 도수가 별로 없고 맥주맛과 비슷하다고 한다. 핀죠네 가게에 들렀더니 이층까지 만원이라서 들어갈 곳이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고 다른 대원에게 호텔로 가는 길을 물으니 택시나 릭샤를 타라고 일러준다. 릭샤는 자전거 인력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침 옆에 대기중인 릭샤가 있어 가격을 물었더니 100루피라고 한다. 릭샤를 끄는 사람은 채 스무 살이 안 되 보였는데, 휘파람으로 경적을 대신하며 골목길을 달리는 솜씨가 신기에 가깝다. 아내와 나 두 사람을 태우고 달리려니 꽤 힘이 들 것이다. 뒷좌석에 앉아 편안히 호텔까지 왔지만 마음이 그렇게 편치는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릭샤를 이용해주는 것이 조금이라도 그들을 도와주는 셈이 된다. 호텔에 도착하여 요금으로 3$를 주었다. 다음은 네팔의 교통 사정에 관해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한 것이다.
처음 네팔에 도착했을 때 경이로웠던 것은 좁은 도로에 버스, 자동차, 자전거, 오토바이, 소, 말, 사람이 뒤섞여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우선 이곳의 도로 사정을 살펴보면 첫째, 중앙선이 없다. 차와 오토바이, 릭샤, 자전거 등은 일본이나 영국처럼 왼쪽으로 통행을 하는데, 중앙선이 없어도 알아서 유연하게 운전해서 간다. 신호등이 큰 대로에 몇 군데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길은 건너는가? 그냥 차 사이로 건넌다. 그럼 차는 양보하는가? 양보라고는 없다. 그럼 어떻게 지나가는가? 여러 명이 모여서 지나가거나 요령있게 차 사이로 피해서 간다. 사람이 다니는 도로는 울퉁불퉁하고, 이곳 저곳 패어있는 곳도 많다. 또 하나 사람이 다니는 좁은 도로에 자판을 벌여놓은 상인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밤에는 불이 없다. 야맹증이 있는 사람은 돌아다니지 말아야 한다. 차들은 전조등을 끄고 다닌다. 이곳의 택시운전사들은 신의 눈을 갖고 있다. 이곳 도로 진행의 우선 순위는 소, 자동차, 오토바이, 사람 순이다. 소는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데 차가 다니는 길 한복판에서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소가 역주행을 한다. 그래도 차는 지나간다.
오토바이에 대해 언급을 안 할 수가 없다. 오토바이 진짜 많다. 그것도 배기통이 120cc 에서 200cc 되는 오토바이들이 부대를 이룬다. 애들은 앞에, 여자들은 뒤에 타고 비좁은 골목길을 잘도 달린다. 치마입은 여자들은 옆으로 탄다. 오토바이들이 달릴 때는 소음과 매연을 하나 가득 내뿜는다. 이곳은 혼수용품으로 오토바이가 잘 팔린단다. 오토바이 없으면 데이트도 못한단다. 한국의 마이카 시대가 이곳의 오토바이인듯한 인상을 준다. 한 가지 배울 점은,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헬멧을 썼다는 점이다. 물론 법으로 정해져 있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헬멧을 쓰지 않은 오토바이 운전자는 한 명도 없었다.
버스는 대형버스, 소형버스, 3발 달린 툭툭(tuktuk)이 있다. 모두 오래된 것들이라 매연과 소음은 심하다. 소형버스는 한국의 봉고와 비슷한데, 앉아 가면 운이 좋은 것이고 자리가 없으면 고개를 반쯤 숙이고 서서 가야 한다. 벌 받는것 보다 더 힘들다. 툭툭은 3발차인데 오토바이 엔진을 쓴다고 한다. 다닥다닥 붙어서 10명이 타면 만원이고 옆으로 타야 한다. 물론 이것도 서서 탈 수 있다. 소형버스보다 더 많이 고개를 숙여야 한다. 고개를 숙이기 싫으면 뒤에 매달려 가면 된다. 차에는 차장들이 있다. 대형버스에는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돈을 받고 한 명은 정류장을 알려준다. 이곳의 정류장은 따로 없다. 대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정류장인데 표시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버스에 번호는 있지만 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차장들이 가는 정류장을 외치면 듣고서 탄다. 버스비는 대략 8루피에서 9루피인데 가는 곳이 멀면 돈을 더낸다. 시외버스의 좌석은 아주 좁다. 한 번 앉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택시는 기본 8루피에다가 기하급수적으로 요금이 올라간다. 물론 바가지도 심하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양심적인 택시 기사도 많다. 대략 따져보면, 카트만두에서 아주 먼곳이 아니면 120~150루피 정도 생각하면 된다. 택시는 한국의 티코만하다. 건드리면 엎어질만한 택시들도 많다. 만일 택시 기사가 먼저 얼마를 달라고 하면 2/3 가격으로 생각하면 된다. 우선은 반값으로 협상한 다음 2/3 가격으로 흥정하면 바가지는 안 쓰는 것이다. 밤 9시가 넘으면 요금이 1.5배로 뛴다.
21:00 호텔로 돌아와 휴식. TV를 틀었으나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CNN과 스포츠 채녈을 잠깐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공항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면서 기다린 것이 조금 힘들었던 모양이다. 여행이 꼭 좋은 음식을 먹으며 편한 곳에서 잠만 자면 최고인가. 이런저런 고생을 한 것이 추억으로 더 오랫동안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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