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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북山行記

2005.04.03. [충북山行記 2] 충북 청원 샘봉산

by 사천거사 2009. 1. 1.

샘봉산 산행기 

◈ 일시: 2005년 4월 3일 일요일

◈ 장소: 샘봉산 461m / 충북 청원군 문의면

◈ 회원: 이효정, 이규필, 지학근, 김석언, 김지홍, 신동갑, 김영철(7명) 


 


아침 8시 35분에 김영철 교감과 함께 집합장소인 용암동 성당 앞으로 가기 위에 차를 탔다. 신화아파트 앞에서 김지홍 장학사를 태운 후 동부우회도로를 지나 용암동 성당 앞에 이르니 9시가 다 되었다. 봄비가 추적거린다. 교황님이 선종하신 것을 애도하는 비는 아닐까? 용암동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오는 신자들의 표정도 조금은 침울해 보인다.      

 

모두 7명의 회원이 모였다. 총 11명의 회원 중 7명이 참가를 했으니 출석률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거기다가 발가락 부상 때문에 참가를 못한다던 신영식 선생이 몸소 차를 몰고 막걸리 1통을 가져왔다. 이런 것이 정이 아닌가. 산에 다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계획은 '것대산을 거쳐 상당산성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산행 코스가 너무 평범하고 밋밋하다는 중의하에 청원군 문의면 문덕리에 있는 월리사 뒷산을 가기로 했다. 월리사가 위치한 문산의 근방 구소리에는, 아홉용이 살고 있다는 큰 용굴과 작은 용굴이 있었는데 '아래에 물구덩이가 있어 횃불을 던지면 불꽃이 반딧불처럼 작아져야만 꺼진다.'고 전하고 있어 구룡산 월리사라고 불린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58호인 절의 입구의 사적비에 의하면 조선 효종(孝宗) 8년(1657)에 명현당 원학대사가 이웃에 있던 신흥사를 옮겨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처마는 겹처마로 네 곳의 모서리에는 활주를 세워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이 반전한 추녀 끝을 받치고 있어서 팔작지붕 건물에서 보이는 한국건축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찰이다.

 

월리사에서 둘러싸고 있는 뒷산으로 오르는 길을 스님에게 물었더니 절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가면 길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추적거리는 비를 맞으며 능선으로 향하는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숨이 차다. 늘 그렇지만 산행 처음이 제일 힘들다. 첫번째 봉우리에 올라서니 바람이 시원하다. 속설에 의하면 이 샘봉산은 북쪽의 백두산, 남쪽의 한라산 가운데에 위치하는 산으로 이 산에 오르면 천하를 경영할 수 있는 정기를 받는다고 한다. 백두산과 한라산에 분화구가 있으니 이 산에도 분화구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봉우리마다 찾아 보았는데 그냥 움푹 패인 곳이 있어 분화구로 명명하였다.

 

첫번 째 봉우리에서 신영식 선생이 가져온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 샘봉산 정상에서 포도주와 진달래주로 자축을 하였다. 김석언 장학사는 조금 취한 것 같았다. 절 왼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니 12시경, 전체 산행 시간이 2시간 정도 걸렸다.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듯 해서 소전리 마을로 드라이브를 했다. 소전리 1구 도로가 끝나는 곳에 샘이 있는데 수량도 풍부하고 물맛이 기가 막히다고 한다. 꽤 많은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인데 소득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성남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이라야 왕소금구이에 소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성남집은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주 8병을 간단해 끝내고 성남집을 나섰다. 여기서 2팀으로 갈라졌는데, 나를 포함한 김영철 교감, 김지홍 장학사, 신동갑 선생은 산성을 거쳐 청주대학교 예술대학이 있는 안덕벌로 내려가기로 했고 이규필 장학사, 지학근 선행, 김석언 장학사는 가경동 쪽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팀은 안덕벌로 내려와 맥주집에 들어갔다. 20병 해치우고, 노래방에서 10병 해치우고, 다시 양주 2병 해치우고, 다른 팀은 김석언 장학사가 사는 미호까지 가서 술 마시고. 산악회 이름을 평산회에서 酒山會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