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회 모임
◈ 일시: 2025년 1월 15일 수요일
◈ 장소: 용용생고기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14-9
◈ 회원: 유석회원 3명
미국 제39대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가 미국 현지시각 12월 29일 15시 40분, 호스피스 간호를 받던 고향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자택에서 사망하며 향년 100세 89일로 생을 마감했다. 카터는 재임 기간 내내 경제 지표가 안 좋았고,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에서의 미흡한 대응으로 지지율이 하락해 로널드 레이건에게 4년 만에 정권을 넘겨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초로 재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남겼다.
카터에게는 여러 모로 1970년대 후반의 혼란스러운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처리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에는 폴 볼커 연준의장의 정책이나 친환경 에너지 지원 정책, 여성인권 신장, 평등권(ERA) 입법 등에서 제한적으로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평가가 올라가는 추세이기는 하다. 퇴임 이후에는 사랑의 집짓기 등 여러 자선활동에 참여하고 비공식적인 외교 활동으로 세계 평화를 도모하는 행보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에 대한 공로로 2002년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를 두고 지미 카터를 최고의 전직 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모두 13명의 대통령이 배출되었다. 그러면, 과연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의 끝은 어떠했으며 퇴임 후에는 어떤 생활을 했거나 하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
이승만 제1~3대 (1948.07.04.~1960.04.27.) 강제 사퇴 / 사망
이승만은 정권을 연장하려고 몸부림치다 강제 사퇴 당했다. 독립투사이자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워싱턴처럼 두 번만 재위했더라면 지대한 추앙을 받는 영원한 국민적 영웅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보장되는 명예가 현재의 권력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과는 이국땅 하와이에서의 외로운 죽음이었다.
윤보선 제4대 (1960.08.12.~1962.03.24.) 강제 사퇴 / 사망
윤보선은 내각책임제 하에서 국가원수로서 실질적 권력이 적었다. 4.19 혁명 직후의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군부 쿠데타를 야기한 무능한 정부를 이끌었으며, 보수적인 성향에다 신군부에 호의적이었던 태도 등 복합적인 이유로 민주당계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았다. 어정쩡하게 대통령 역할을 하다 박정희에게 힘도 못써보고 강제로 대통령직을 빼앗겼다.
박정희 제5~9대 (1963.12.17.~1979.10.26.) 저격 / 사망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별 짓을 다하며 정권을 연장시켜 가다 결국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1974년 8월 15일에 육영수 여사가 총 맞아 죽고 5년 후에 자신도 총 맞아 죽었다. 만약 박정희가 3선 개헌, 유신헌법 선포 등의 정권연장 방법을 쓰지 않고 두 번만 재위했다면, 비록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경제발전에 힘쓴 공적 덕분에 꽤 괜찮은 대통령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물론 육영수 여사나 본인이 총에 맞아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과유불급이요 자업자득이었다.
최규하 제10대 (1979.12.06.~1980.08.16.) 강제 사퇴 / 사망
최규하는 총리로 있다가 예상치 못한 박정희의 죽음으로 10대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권력의 핵심은 전두환에게 있었고 최규하는 거의 바지 사장, 아니 바지 대통령이었다. 교수 출신인 최규하가 육사 출신인 전두환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대통령에 올인하는 전두환이 시나리오를 완성해 가는 동안 최규하는 명목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을 뿐이다. 결국 8개월 10일 만에 대통령직을 전두환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전두환 제11~12대 (1980.08.27.~1988.02.24.) 사형선고 / 임기종료 / 사망
전두환은 박정희에게 충성을 다 바쳤으며 박정희는 그러한 전두환을 총애하며 키워주었다. 박정희가 전두환에게 베풀어준 가장 큰 보답은 자신이 총에 맞아 죽으면서 대통령이 될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전두환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세로 자리 잡아 12.12 사태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간접선거로 두 번이나 대통령을 해 먹었다. 하지만 12.12와 5.18이란 엄청난 사건의 장본인으로 밝혀져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비록 사면은 되었지만, 죽은 후에 자신의 시신을 묻을 곳이 없어 화장한 유골을 집에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태우 제13대 (1988.02.25.~1993.02.24.) 징역형 선고 / 임기종료 / 사망
노태우는 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였다. 6월 항쟁 직후 6.29 선언을 발표하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고, 제13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노태우도 전두환처럼 김재규 덕을 보았지만, 대통령이 된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도 전두환이라는 친구를 둔 덕분이었다. 대통령 퇴임 후 12.12와 5.18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되었다. 그래도 노태우는, 전두환과는 달리, 죽은 후에 제대로 된 무덤에 묻힐 수 있었다.
김영삼 제14대 (1993.02.25.~1998.02.24.) 임기종료 / 사망
김영삼은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만 26세 5개월로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파란만장한 정치경력을 쌓은 끝에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 김대중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김영삼이 이끌었던 정부를 문민정부라고 칭하는데, 이는 지난 30여 년 동안 이어져온 군인 출신 대통령이 아닌 '민간인 출신 대통령에 의한 정부'라는 뜻이다. 퇴임 후 상도동 자택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2015년 11월 22일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사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대중 제15대 (1998.02.25.~2003.02.24.) 임기종료 / 사망
김대중은 헌정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호남 태생 대통령이자 직접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최초의 민주당계 정당 소속 대통령이다. 제7대 대선, 제13대 대선, 제14대 대선에서 낙선하고 제15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햇볕정책을 추진하여 북한의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가지기도 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대한민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 임기를 마치고 2009년 8월 18일 폐렴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과 호흡곤란증후군으로 향년 85세로 사망했다. 사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노무현 제16대 (2003.02.25.~2008.02.24.) 탄핵 / 임기종료 / 자살
노무현은 고졸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로 재직 후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제13, 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제16대 대선에서 이회창을 꺾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4년 국회로부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직 재임 중 탄핵 소추를 당했으나,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을 기각하여 노무현은 다시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였다. 퇴임 후 현재까지도 해소되지 않은 노무현 일가의 640만 달러 수수에 직접 개입한 의혹이 수면으로 부상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자, 노무현은 그 해 5월 23일 자택 뒷산인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로 서거하였다.
이명박 제17대 (2008.02.25.~2013.02.24.) 임기종료 / 징역형 선고 / 생존
이명박은 1992년 김영삼에게 발탁되어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제14대 총선에서 전국구 의원에 출마하여 정치에 입문하였다. 2002년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되었고,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퇴임 이후, 다스를 비롯한 각종 비리에 대한 논란과 비판이 잇따랐으며, 뇌물수수, 횡령 등의 혐의로 역대 대통령들 중 4번째로 구속되었고, 2020년 10월 29일 대법원이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 8천여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22년 12월 28일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면을 결정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문재인 정부 시절 각각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과 서울중앙지방검찰성 3차장을 맡아 당사자를 감옥으로 보냈던 사람들이었다.
박근혜 제18대 (2013.02.25.~2017.03.10.) 탄핵 / 파면 / 징역형 선고 / 생존
박근혜는 1979년 10.26 사건으로 아버지인 박정희가 사망하자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이후 20년 가까이 세간에서 잊혔다가 1997년 11월,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듬해 대구 달성군 지역구에서 1998년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16대 총선부터 19대 총선까지 연달아 당선되며 5선 의원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당이 어려울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하여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승리하며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국정농단으로 인해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에 따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파면되었다. 그 후 박근혜는 국정농단 관련, 국정원 뇌물 수수 관련, 20대 총선 새누리당 공천개입 등과 관련하여 징역 22년, 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아 4년 275일을 복역하고, 2021년 12월 12월 31일 오전 0시를 기해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으로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되었지만, 능력부족으로 인해 탄핵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는 첫 번째 대통령이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문재인 제19대 (2017.05.10.~2022.05.09.) 임기종료 / 생존
노무현과 함께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문재인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광역시 사상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경쟁을 했으나 3.53%의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 박근혜가 탄핵당하자 문재인이 팽목항을 방문하여 방명록에 남긴 문구가 큰 논란이 되었다.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 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1,000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2017년.4.10.
문재인
일단 방명록에 쓴 날짜부터가 틀렸다. 이날은 4월 10일이 아니라 3월 10일이었다. 사실, 세월호 사건은 불의의 대형사고였다. 중요한 것은 희생자들 대부분이 학생이었다는 것. 그런 학생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촛불광장이나 1,000만 촛불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희생당한 학생들에게 과연 고맙다는 말을 쓸 수 있는가였다. 뭐가 고맙다는 말인가.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로 들리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윤석렬 제20대 (2022.05.10.~현재) 탄핵 소추
윤석열은 문재인, 조국, 추미애, 이재명이 합심하여 밀어준 덕분에, 일개 검찰총장 자리에서 꿈에서도 생각하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정치초보인 윤석열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뻘짓만 하다 총선에서 대패하는 바람에, 국회의원 쪽수가 야당에 밀려 제대로 정책을 펼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분기탱천한 윤석열은 살신성인의 자세로 막가파식 계엄을 선포하는 최강수를 두었다. 결과는? 탄핵 소추 중인데 탄핵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
17:20 오늘은 유석회 모임일이다. 회원이 모두 5명인데 2명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빠지고 나니 모임에 참가한 회원은 3명에 불과하다. 상관없다. 둘은 조금 뭐 하지만 셋이면 음식을 나누거나 대화를 주고받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대화의 주된 내용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 소식. 어느 쪽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이 아직 밑바닥이라는 것을, 낮아도 한참 낮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린 역사적인 사건이다.
왜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부분이 존경을 받지 못하며 끝이 불행한 경우가 많을까 생각해 보았더니, 정권 연장 욕심, 정권 찬탈, 무능, 도덕적 불감증 등이 그 원인으로 머리에 떠올랐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다소 무능했다 하더라도, 퇴직 후에 전 세계를 다니면서 사랑의 집짓기 등의 봉사활동을 벌여 노벨평화상을 받고, 최고의 전직 대통령이란 칭호까지 얻은 카터 대통령과 같은 인물은 정녕 대한민국에 없단 말인가! 오호, 통제라!
▲ 용용생고기: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14-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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