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일시: 2025년 1월 5일 일요일
◈ 장소: 서운동성당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서운동 90-1
◈ 회원: 아내와 함께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날이다.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며 사랑의 실천으로 주님께 맞갖은 예물을 드리자.
다음은 오늘의 복음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마태오 2,1-12-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공현(公顯)은 ‘공적으로 드러남’을 뜻한다. 그렇다면 주님이 이 세상에 공적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내신 때가 언제인가? 바로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자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날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12월 25일을 성탄절로, 1월 2일과 8일 사이의 주일을 주님 공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님의 탄생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기념하는 제2의 성탄절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 공현의 결정적인 증인은 바로 동방 박사들이다.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 중에서 유일하게 마태오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는 동방 박사들의 경배 이야기는, “너의 빛을 보고…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그들은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라는 이사야의 예언이 아기 예수님의 강생으로 실현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이 공현 사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다.
첫째, 동방 박사들은 이민족을 대표한다. '임금들이 떠오로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라는 이사야의 예언에 따른다면,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이민족들의 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민족들이 왕이 유다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으로 왔다는 것은, 유다인을 포함한 모든 백성의 왕이 되실 분을 찾아 이스라엘로 왔다는 것을 나타낸다.
둘째,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께 왔다. 이 별은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별, 곧 다윗의 별이다. 동방 박사들이 다윗의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했다는 것은, 구약에 담겨 있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일 때만 예수님을 찾을 수 있고, 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자 온 세상의 구원자로 경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바친 황금과 유향, 몰약은 ‘왕권’과 ‘그리스도의 신성’, ‘인류를 위해 죽으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각각 상징하는 예물이다. 현대 신학의 거장인 칼 라너 신부는 이것을 재해석하여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 드리는 합당한 우리의 희생, 인간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황금은 ‘우리의 사랑’을, 유향은 ‘우리의 그리움’을, 몰약은 ‘우리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원래 1월 6일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사목 편의에 따라 1월 2일에서 8일 사이의 주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낸다. 그리고, 주님 공현 대축일이 1월 7일이거나 8일인 경우에는 대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을 주님 세례 축일로 기념한다. 올해는 주님 공현 대축일이 1월 5일이기 때문에 주님 세례 축일은 그다음 주일인 12일이 된다. 성탄 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로 끝나며, 주님 세례 축일 다음 날부터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오늘 복음 내용의 주인공은 물론 아기 예수님이지만, 주요 인물로 동방 박사와 헤로데가 함께 등장하고 있다. 동방 박사와 헤로데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방 박사
멜키오르(Melchior): 왕권을 상징하는 노인 모습, 황금을 바침
발타사르(Balthasar): 예수가 겪을 미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상징하는 중년 모습, 몰약을 바침
카스파르(Caspar): 신성, 사제를 상징하는 청년 모습, 유향을 바침
동방 박사는 각각 아라비아, 페르시아, 인도의 왕으로 알려졌으며, 시편의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와 같이 모든 왕이 메시아에게 복종하였다는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나타낸다.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의 별을 보고 메시아의 탄생을 알았으며, 그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곳의 왕 헤로데는 이를 자신을 몰아낼 새로운 왕이 난 것으로 받아들여 매우 당황했다. 왕은 신하들에게 물어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기로 예언된 것을 알았고, 이에 자신도 경배하러 찾아가겠다는 명목으로 동방박사들에게 태어난 아기를 찾게 했다.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다시 떠오른 별을 보고 아기 예수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찾아내었다.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고 자신들의 보물인 황금, 유향, 몰약을 바친 뒤, 그들은 꿈의 지시를 받아 헤로데를 만나지 않고 바로 고국으로 돌아갔다. 동방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안 헤로데가 그 시기에 태어난 베들레헴 안의 사내아이를 다 죽이지만,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 나자렛의 성 요셉은 미리 알고 이미 이집트로 피신해 있었다.
헤로데
기원전 43년 아버지인 안티파테르가 독살당하자 아들 헤로데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차지했다. 아버지의 복수를 명분으로 권력을 차지한 그는 아리스토불로스 2세의 손녀인 마리암네와 약혼해 하스모네아 왕가와 인척이 되었다. 안토니우스는 헤로데의 형 파사엘과 헤로데에게 유다와 갈릴래아 영주로, 히르카노스 2세를 예루살렘의 대사제로 임명했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 원로원을 설득해 기원전 40년 헤로데를 '유다와 사마리아의 임금'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로마가 벌이는 파르티아인들과의 전쟁에 유다 왕국이 참전하라고 헤로데에게 명했다. 기원전 39년 팔레스티나로 돌아온 헤로데는 로마군과 연합해 반로마 독립주의자들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37년 헤로데는 로마 제11군단과 6000명의 기병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석 달간 포위 공격해 항복을 받아내고 대살육을 벌였다. 이 일로 유다 왕국은 로마의 보호령이 됐고, 유다인들은 헤로데를 '로마인의 노예 이두매아인'이라고 비난했다.
헤로데는 유다 왕국을 정략적으로 통치했다. 로마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과도한 세금 징수도 마다치 않았다. 또 사마리아를 '세바스테'로 재건하고 지중해변에 '카이사리아' 항구를 건설했다. 그리고 예루살렘 안에 안토니오 요새를 지어 로마군을 주둔시켰다. 유다인에겐 당근과 채찍을 주는 정책을 펼쳤다. 그는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크게 개축한다. 또 해마다 유다교의 축제를 성대하게 열었다.
헤로데는 무자비한 통치자였다. 늘 아내의 가문인 하스모네아 집안을 경계하고 미워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마리암네와 그녀가 낳은 자기 자식들, 장모 그리고 처남인 아리스토불로스 3세를 살해했다. 수백 명의 바리사이를 교수형에 처했고, 300여 명의 사관을 사마리아에서 반역을 꾸몄다는 이유로 처형했다. 헤로데는 언제 어디서 암살자들이 나타나 자신을 죽이려 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 11개 전략 요충지에 요새를 지어 도피처로 사용했다. 잔혹한 헤로데의 이런 모습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헤로데의 아들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그의 돼지가 되는 것이 낫겠다"라고 할 정도였다.
헤로데는 기원전 37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 33년간 유다인의 왕으로 팔레스티나를 다스렸으나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 고름과 구더기가 몸 안에서 흘러나오는 병에 걸려 고생하다 기원전 4년에 죽었다.
▲ 예수님을 경배하는 동방박사
▲ 헤로데 왕
아기 예수님에 대한 동방 박사와 헤로데의 행동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동방 박사들은 하늘의 별의 안내를 받아 먼 길을 걸어 메시아의 강생을 확인하고 경배를 한 후 예물을 바친다. 그들의 마음은 평화로웠으며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만왕의 왕인 예수님의 탄생을 지켜보고 행복에 가득 차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다.
이에 반해서 헤로데는, 아기 예수가 자신을 몰아낼 새로운 왕이라고 생각하고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출생 신분이 100% 유다인이 아니라는 핸디캡으로 인해 늘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차에 유다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폭정과 가족 살해를 벌였던 그의 말로는? 약도 없는 몹쓸 병에 걸려 죽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동방 박사들처럼 경배를 하고 예물을 바쳐야 할까, 아니면 헤로데처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죽이려고 해야 할까? 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사실, 2,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그 당시의 동방 박사들처럼 할 수 있다. 어떻게? 미사 참례.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 경배를 하는 것이고, 봉헌을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여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자. 그 옛날의 동방 박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 청주 서운동성당 [10:05]
▲ 서운동성당 성모동굴 앞에서 [10:05]
▲ 서운동성당 실내 [10:18]
▲ 미사를 마치고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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