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가출 사건 기록
◈ 일시: 2024년 10월 18일 금요일 / 비
◈ 장소: 서울연합항외과의원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서운동
◈ 회원: 아내와 함께
09:00 며칠 전 상당보건소에서 독감과 코로나 예방접종을 하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그래? 그럼 주사 맞아야지. 연령별로 접종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65세부터 69세까지는 오늘부터란다. 접종이 가능한 동네의원을 확인해 보니, 가장 가까운 곳이 큰 도로변에 있는 서울연합항외과의원이다. 아내와 함께 출발. 의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앞서 도착한 방문객 몇 명이 줄을 서 있다. 접수를 하고 잠시 기다리자 진료실에서 부른다. 감기에 걸리지 않았느냐? 열은 없느냐? 접종하고 나서 15분 정도 대기했다가 가라. 오늘은 술 마시지 마라. 샤워하지 마라. 의사의 통상적인 주의 사항을 듣고 주사실에 들어가 왼쪽에 독감, 오른쪽에 코로나 백신을 한 방씩 맞았다. 따끔따끔하네.
접종 후 이상 현상을 체크하기 위해 15분 동안 대기 하는 동안 심심해서 스마트폰이나 보려고 하는데 어? 스마트폰이 없다. 어디 갔지? 집에 두고 안 가지고 왔나? 가져온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네. 이런 경우에는 나이와 기억력의 상관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내 전화로 내 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내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해두었으니 소리가 날 리가 있나. 접수실, 대기실 등 여기저기를 대충 훑어보았으나 없다. 잠시 생각. 집에서 곧바로 이곳으로 왔으니, 상식적으로 볼 때, 여기 없으면 집에 있어야 하잖아. 지금 여기 없다면 집에서 안 가지고 나온 거야. 집에 있을 거야. 그리하여 아내는 차를 몰고 딸네 집으로 가고, 나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다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깎고 슈퍼에 들러 우유와 면봉, 건전지를 구입했다.
아파트 도착, 기대감 반 불안감 반에 싸여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스마트폰 찾기에 나섰다. 먼저 평소에 스마트폰을 잘 두던 침대, 책상을 시작으로 해서 화장실, 욕실, 부엌 등을 둘러보았는데 없다. 이어서 옷에 달린 주머니를 모두 뒤져 보았다. 없다. 어라, 이게 아닌데? 아침에도 사용한 스마트폰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재활용품 버리러 가서 두고 왔나? 냉장고 안에 잘못 넣었나? 신발장 안에 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리하여 어제오늘 전혀 발걸음도 하지 않은 곳까지 샅샅이 뒤지는 일이 벌어졌다. 멘탈붕괴. 이게, 사람이 이렇게 되는구나. 정신병자 되기 쉽네.
스마트폰이 있다가 없으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다는 것. 집전화를 없애버린 탓에, 그동안 스마트폰으로만 전화, 문자메시지, 카톡 등의 방법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그 연락방법들이 깡그리 사라진 것이다. 내가 연락을 할 수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누군가에게서 연락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그것 못지않게 큰 문제다. 뿐만 아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여러 가지 자료와 정보들, 다양한 인간관계의 매개체인 SNS 등이 사라짐으로써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 속에 너무나 깊숙이 박혀 있어서 스마트폰 없이 지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냉수 한 잔 마시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시 한번 스마트폰이 없어진 상황을 따져보았다. 아침에 스마트폰을 사용한 것은 확실하다. 집을 떠나 첫 번째로 들른 곳이 예방접종을 했던 의원이고 그 의원에서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스마트폰이 있을 곳은 우리 집 아니면 의원 둘 중 하나다. 우리 집은 지금 이 잡 듯이 뒤져봤는 데도 없으니 있을 곳은 의원밖에 없다. 그리하여, 혹시 다른 사람이 내 스마트폰을 주워서 맡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예방 접종을 한 의원을 찾아가서 확인해 보았다. 없단다. 아니, 스마트폰이 있어야 할 곳이 고작 집과 의원뿐인데 두 곳 다 없다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이때 번개 같이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 가만, 아까 집에서 의원으로 올 때 내가 아내 차를 몰고 왔었지. 그렇다면 그때 차 안에 두고 내렸을 수도 있잖아?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다. 하지만 예방 접종을 마치고 아내와 헤어질 때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아내 차 안을 대충 살펴보았는데 분명히 없었다. 자,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스마트폰이 있어야 할 곳은 집, 아내 차, 의원 세 곳 중 하나인데, 집과 의원에는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아내의 차뿐이다. 그래서 딸네 집에 가 있는 아내에게 운전석 위주로 차 안을 한 번 샅샅이 찾아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은데, 문제는 나에게 스마트폰이 없어 그 말을 전할 방법이 없다는 것. 또 설혹 그 말을 전했다 한들, 스마트폰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결과를 내가 어떻게 연락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때 또 불현듯, 내가 아내 차 운전을 하기 위해 운전석에 앉은 후 문을 닫을 때 무언가 약간 둔탁한 소리가 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안전벨트가 문 틈에 낀 줄 알고 다시 문을 열었다 닫았었다. 아하, 그게 바로 스마트폰이 내 점퍼 주머니에서 차 안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구나. 차 바닥에 떨어졌으니 아까 차 안을 대충 확인할 때 못 볼 수도 있었겠지. 그렇다면 아내에게 차 바닥을 확인해 보라고 해야겠다. 놀고 있네. 어떻게 연락을 할 거야? 스마트폰도 없으면서. 아참, 그렇지. 젠장, 직접 가봐야겠네.
내 차를 몰고 딸네 집이 있는 남광 하우스토리 아파트로 달려가서 지하 1층 주차장에 세워둔 아내 차 옆에 내 차를 세웠다. 부푼 마음을 안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운전석 주변 바닥을 살펴보려고 차 안을 들여다보는데, 유리창에 선팅이 되어 있어 창문 유리에 비벼대는 내 얼굴만 찌그러질 뿐 차 안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놈의 스마트폰이 끝까지 애를 먹이는구나.
하는 수 없이 15층 꼭대기에 살고 있는 딸네 집을 찾아가, 깜짝 방문에 놀라는 아내에게서 차 키를 건네받은 후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자, 이제 아내의 운전석 차 문을 열어 확인할 일만 남았다. 차 키의 도어 오픈 버튼을 눌렀다. 철컥! 문을 앞으로 당기니 의자와 문 사이 틈새에 그렇게 애타게 찾던 스마트폰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런데... 스마트폰을 보는 순간 기쁨도 기쁨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허망한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아니, 이게 뭐야! 이렇게 얌전히 잘 있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고 그렇게 마음 끓이며 애타게 찾아다녔던 거야? 그것 참. 겨우 손바닥 만한 스마트폰 하나 때문에 벌였던 지금까지의 소동을 생각하니 괜한 헛웃음만 자꾸 나왔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들은 진정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현실을 직시해 보면 거의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스마트폰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라" 하면, 우리는 그 말에 따라 약속 장소에 나간다. 스마트폰이 "이런저런 물건을 사라" 하면, 우리는 그 물건을 구입한다. 심지어 스마트폰이 거짓 정보를 흘려도 믿고, 진실을 왜곡해도 사실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조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내뱉는 수많은 메시지를 감히 거부하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만나라면 만나고 사라면 사야 한다. 사람이 스마트폰을 부리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이 주인 행세를 하며 사람들의 생활을 좌지우지하는 게 현실이다.
링컨은 미국의 노예제도를 없애고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러면 과연 우리들을 스마트폰이라는 노예제도에서 해방시켜 줄 인물은 누구일까? 없을 것 같다. 아니, 사람들은 스마트폰에서 해방되기보다는 더 철저하게 지배당하려고 애쓸 것 같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두세 살 때부터 관계를 맺기 시작해서 죽을 때에도 옆에서 임종까지 지켜 주는 게 요즘 스마트폰이다. 그런 스마트폰과 관계를 끊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스마트폰에서 벗어나려고 할 게 아니라, 스마트폰을 지혜롭게 지배하고 부리는 방법을 터득하려고 노력하는 게 더 현명한 처사다.
다시 찾은 스마트폰을 켜 보니 여러 곳에서 새로 보내온 문자에, 카톡에, SNS 메시지가 넘쳐 난다.
00회 11월 모임은 00일(토)입니다. 일정에 참고하세요.
우체국 소포(택배) 현관 앞 배달
000 회원님 따님 결혼식 알려 드립니다.
......
이제 스마트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런데, 코로나 예방 접종 주사를 맞은 오른쪽 어깨 부위는 또 왜 이렇게 아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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