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고 54회
◈ 일시: 2024년 1월 6일 토요일
◈ 장소: 웅배스시 강서본점 /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 460
◈ 회원: 경북고 54회 친구와 함께
경북고등학교, 내가 다닐 때만 해도 서울대 합격자수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많은 명문고였다. 이런 고등학교에 들어간다는 게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나로서도 만만찮은 도전이었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도 입학시험이 있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경쟁이라 과외를 받는 초등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공부를 꽤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경북중학교나 계성중학교에는 원서를 못 내고 결국 경상중학교 중간부에 입학을 했다. 중간부는 뭐지? 이게 뭐냐하면, 9시에 수업을 시작하는 정규반과는 달리 10시 쯤에 수업을 시작하는 시스템이었다. 중간부 제도는 2학년 때 없어지고 모두 정규반 체제로 통합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충북 증평으로 집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나는 외가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래도 공부는 곧잘 했다.
고등학교 진학, 이것은 더 드라마틱했다. 고교평준화가 시작된 1974년 전까지는 동일 계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동계입학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동계입학생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시험 전형이 실시되었다. 경북고등학교도 동계입학 제도를 적용하고 있어 경북중학교 재학생들이 그대로 경북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경북고등학교에 입학을 할 수 있었나?
그것은 바로 1970년도 입시 때 경북고등학교에서 학급을 증설했기 때문이었다. 증설된 학급에 필요한 학생들은 입학고사를 통해 선발하게 되었고 꽤 높은 경쟁률을 뚫은 끝에 무난히 합격증을 받아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1학년 중간고사 시험을 본 결과 전교 46등을 했다. 그 당시 경북고등학교에서는 한 해 평균 150명 정도가 서울대에 진학을 하는 상황이었으니 나로서는 서울대학교 입학이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본 후 외가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6월에 하숙집을 구해 하숙 생활을 시작했다.
하숙생 구성원은 대학생 8명에 고등학생은 나 한 명, 어떻게 지냈을까? 내 몸 속에 잠재해 있던 자유본능이 서서히 발동하기 시작했고 학교 성적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서 그렇게 1, 2학년을 보내고 3학년이 되어 나와 비슷한 자유본능을 가진 동기 친구들 12명과 함께 이른바 길이라는 써클을 만들어 그렇고 그런 학교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1973년 1월 10일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그 이후로 고등학교 동기생들과는 거의 인연을 끊은 채 지금까지 51년을 살아왔다. 그동안 길 멤버 중 두어 명을 우연한 기회에 만난 적이 있지만 어떤 적극적인 교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 멤버 중 하나였던 한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오늘 서울로 가는 길에 청주에 들를 테니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는 것. 대학교수로 은퇴한 그 친구를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웅배스시 강서본점에서 51년 만에 처음 만났다.
▲ 친구와 만날 장소 웅배스시: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 460 [12:31]
▲ 웅배스시 출입구 [12:31]
▲ 웅배스시 12피스 23,000원짜리 [12:59]
51년 만에 친구를 만나 12피스 23,000원 짜리 초밥세트 두 개와 맥주 1병을 곁들여 점심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3학년 때 어울렸던 길 멤버들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 친구는 길 멤버들과 계속 교류를 이어왔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알고 있었다. 대충 요약해 보면,
12명의 멤버 중에서 2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어떤 사고 때문은 아니고 약간 불행한 상황에서의 병사였다. 또 2명은 생활의 부침을 반복하다 지금은 거의 폐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고 의사였던 한 친구는 사기를 당해 어렵게 살아가고 있단다. 한편,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한 친구는 장군으로 퇴직했고, 충남의대를 다닌 친구는 현재 요양병원 의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 친구는 사업체와 신문사를 운영하는 성공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느끼는 바가 참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성격과 성향들이 살아가면서 나타난다는 것, 세상살이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 이것저것 따져볼 때 나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무난하게 살아왔다는 것 등등. 다음 만남을 기약한 후 서울로 가기 위해 고속버스터미널로 들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는 동안 고3 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이런저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리운 시절이여!
▲ 카페에 들러 커피 마시며 대화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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