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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경기山行記

2022.11.10. [경기山行記 135] 서울 종로 북악산/인왕산/안산/금화산

by 사천거사 2022. 11. 23.

북악산-인왕산-안산-금화산 산행기

◈ 일시: 2022년 11월 10일 목요일 / 맑음, 미세먼지 심함

◈ 장소: 북악산 342.5m / 인왕산 338.2m / 안산 295.9m / 금화산 209m /

           서울 종로-서대문

◈ 코스: 청와대 춘추관 → 청운대 → 북악산 → 기차바위 인왕산  하늘다리 → 안산 

           금화산 서대문독립공원 주차장

◈ 거리: 12.5km

◈ 시간: 4시간 18분

◈ 회원: 청주 천봉산악회 안내 산행 


 


 


07:00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는 이전에 중구와 함께 서울의 원도심을 이루었고 현재도 정치, 경제, 교육, 문화의 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 경복궁, 창덕궁, 청계천 등을 품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종로를 도로와 건물 만이 존재하는 지역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그렇지 않다. 종로에는 서울 한양도성이 지나가는 북악산과 인왕산이 있으며 북악산에서 산줄기를 따라 북한산까지 진행할 수도 있다.

 

오늘 찾아가는 서울의 북악산은 1.21 사태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그러다가 2007년 4월 5일 북악산 정상이 개방되었고, 마침내 2022년 5월 10일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청와대에서 북악산으로 올라가는 길까지 완전히 개방되었다. 북악산 단독 산행은 거리가 너무 짧은 관계로 이번에는 인왕산, 안산, 금화산을 연계해서 걸어볼 계획이다.

 

7시 30분에 청주체육관 앞을 출발한 버스가 청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하더니 북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산행을 하러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 쪽으로 달려본 게 언제였나. 가물가물하네. 죽전휴게소에 한번 들른 버스가 서울 시내에 진입하더니 한남대교를 건너고 남산1호터널을 통과한다. 예상외로, 오늘 서울시내 도로는 교통 흐름이 괜찮은 편이었다.


▲ 청주체육관 앞에 서 있는 버스들 [07:17]

 

▲ 경부고속도로 죽전휴게소 [09:02]


10:02  청와대 춘추문 앞 도로변에 버스가 섰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평일인데도 청와대를 찾은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춘추문을 지나 청와대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청와대 출입, 이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 아닌가. 바닥에 있는 등산로 안내 표지를 따라 춘추관 옆을 지나간다. 춘추관은 청와대 부속건물로서 한국 언론사 기자들이 상주하는 청와대 내의 프레스센터였다.


북악산

 

서울은 백제시대와 조선시대의 옛 수도로 도성을 지키기 위하여 경복궁의 북쪽으로는 북악산(일명 백악산)을 후현무로 하여 좌청룡으로 동쪽의 낙산, 우백호인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전주작으로 목멱산(일명 남산)의 능선을 따라 성곽이 축조되었다. 북악산은 청와대 뒤쪽에 있으며, 1968년 1.21 사태 이후 군사보호구역과 보안상의 문제 등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어 왔다. 또한, 남대문(숭례문), 동대문(흥인지문), 서대문(돈의문)과 함께 서울의 4대 문 중 하나인 북대문 숙정문이 북악산 내에 있어 그동안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지난 2006년 4월 1일, 북악산의 일부인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의 1.1㎞ 구간이 38년 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었고 이어서 2007년 4월 5일, 와룡공원에서 숙정문을 지나 북악산 정상을 거쳐 창의문까지 4.3㎞에 이르는 북악산 서울성곽 전 구간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5월 10일 청와대 개방과 함께 청와대에서 북악산으로 올라가는 길도 완전히 개방되었다.


▲ 청와대 춘추문 앞 도로변에 버스 정차 [10:02]

 

▲ 청와대 춘추문이 보인다 [10:04]

 

▲ 춘추관 표지석 [10:05]

 

▲ 대한민국 청와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0:06]

 

▲ 바닥에 있는 등산로 표지 [10:06]

 

▲ 청와대 국민 품으로 [10:07]

 

▲ 청와대 춘추관 [10:08]

 

▲ 청와대 본관으로 가는 길 뒤로 보이는 북악산 [10:08]

 

▲ 북악산 산행 안내도 [10:08]

 

▲ 잔디밭 뒤로 보이는 청와대 여민관 [10:09]


10:09  담장 오른쪽을 따라 나 있는 널찍한 길을 12분 정도 올라가자 쉼터인 백악정이다. 백악정을 지나 잠깐 걸어가면 대동문이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은 전망대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북악산으로 가는 길이다. 전망대 코스는 일방통행이라서 전망대를 들르는 경우에는 백악정으로 내려간 후 다시 대동문 쪽으로 진행해야 한다. 전망대에서 뭐가 보이나 가보았더니 아니, 이게 뭐야? 미세먼지 때문에 조망이 엉망이다.

 

괜히 헛수고만 한 채 백악정을 거쳐 다시 대동문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대동문을 통과한 후 만세동방 쪽으로 진행한다. 왼쪽 바위에 새겨진 여덟 글자, 만세동방 성수남극. 만세는 만 년의 오랜 세월, 동방은 삼천 년을 살았다는 전설 속의 동방삭, 성수는 성스러운 임금의 수명, 남극은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남극 하늘을 의미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 담장 오른쪽으로 나 있는 널찍한 길 [10:09]

 

▲ 담장 오른쪽을 따라 올라간다 [10:12]

 

▲ 계속 이어지는 담장 오른쪽 길 [10:18]

 

▲ 쉼터 백악정 [10:21]

 

▲ 김대중 대통령 기념식수 표지석 [10:21]

 

▲ 대동문으로 가는 길 [10:22]

 

▲ 삼거리 갈림길에 있는 대동문에 도착 [10:25]

 

▲ 데크 전망대: 미세먼지 때문에 조망이 엉망 [10:28]

 

▲ 다시 대동문으로 돌아와 만세동방 쪽으로 진행 [10:34]

 

만세동방 성수남극: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내용 [10:39]


10:46  데크길과 흙길을 10분 가까이 걸어 이정표를 만났다. 여기서 한양도성의 4대문 중 하나인 숙정문(북대문)을 보려면 오른쪽으로 가야하는 데 그만 청운대 쉼터 쪽으로 올라가고 말았다. 결과는? 숙정문을 보러 한양도성 성벽 오른쪽을 따라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전망대인 해발 293m의 청운대를 거쳐 가파른 계단을 오른 후 잠깐 걸어가자 북악산 정상이다.


▲ 데크길과 흙길로 이루어진 산행로 [10:46]

 

▲ 삼거리 지점: 여기서 숙정문 쪽으로 갔어야 했다 [10:48]

 

▲ 서울 한양도성으로 올라가는 데크 계단 [10:49]


서울 한양도성

 

한양도성(사적 제 10호)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도성이다. 성은 백악산, 인왕산, 목멱(남산), 낙산을 연결하여 쌓았으며 전체 둘레는 18,127m이다. 태조는 지금의 서울인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년)에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여 한양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1396년 1월부터 시작한 축성공사에 동원된 인원 총 118,049명에 달했다.


▲ 성벽 오른쪽 길을 따라 숙정문 쪽으로 진행 [10:53]

 

▲ 서울 한양도성 4대문 중 하나인 숙정문(북대문) [11:03]

 

▲ 숙정문 안내문 [11:03]

 

▲ 아까 올라왔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11:14]

 

▲ 해발 293m 청운대 표지석 [11:17]

 

▲ 경사가 급한 오르막 계단 [11:19]

 

▲ 1.21 사태 소나무: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11:20]


11:23  해발 342.5m의 북악산 정상부에는 백악산이라고 새겨진 정상 표지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백악산은 북악산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북악산 정상에서 창의문까지는 계속 데크 계단이 이어지는데, 고도를 200m 정도 낮추어야 하기 때문에 내리막 경사가 무척 심하다. 창의문 앞에 있는 데크 쉼터에 도착해 보니 회원들 몇 명이 점심을 먹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겠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보물 제1881호인 창의문을 둘러보았다. 4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창의문은 광해군을 쫓아낸 인조반정과도 관계가 깊다. 도로를 건너 청운공원에 있는 시인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윤동주 시인이 청운동에 거주하면서 서시, 별 헤는 밤 등의 시를 썼기 때문에 이곳을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시인의 언덕에서 내려와 잠깐 도로를 걸어가자 인왕산 안내도가 나타났다.


백악산이라고 새겨진 북악산 정상 표지석 [11:23]

 

▲ 북악산 복원 안내문 [11:23]

 

▲ 성벽 왼쪽을 따라 조성된 데크 계단 [11:27]

 

▲ 계속 이어지는 데크 계단 [11:34]

 

▲ 창의문 앞 데크 쉼터에서 점심 식사 [11:40]


창의문

 

보물 제1881호. 한양도성의 4소문 가운데 하나로 속칭 자하문이라고도 한다. 1396년(태조 5)에 도성 8문의 하나로 창건되었다. 창의문이 경복궁을 내리누르는 위치에 있다는 풍수지리설적 해석 때문에, 문은 세웠으나 수백 년간 사용하지 않았고 국가적인 공역을 수행할 때처럼 긴요한 경우에 한하여 성문을 열었다.

 

1623년에는 인조반정의 반정군이 홍제원에 집결하였다가 세검정을 거쳐 이 창의문을 열고 도성에 들어와 광해군을 쫓아냄으로써 인조 정권이 창출되었다. 1741년(영조 17) 성문과 문루를 개수하면서 인조반정의 반정공신 1등에서 3등까지의 공신 이름을 새긴 현판을 걸었으며, 지금도 전해 오고 있다. 창의문은 서울 성곽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완형을 지니고 있으며 지금도 성곽의 일부가 연결되어 있다.


자하문으로도 불리는 한양도성 4소문 중 하나인 창의문 [11:55]

 

▲ 도로를 건넌 후 청운공원으로 올라간다  [11:57]


윤동주 시인의 언덕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 시인을 기리는 이 언덕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자락 청운공원 내에 자리해 있다. 시인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1941년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후배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었는데 그는 이때 청운동과 누상동 일대를 산책하며 시상을 가다듬으면서 서시,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 같은 대표작을 썼다고 한다. 청운동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들어선 이유이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저녁 무렵 하숙집 근처 이 언덕에서 해지는 서울 풍경을 바라보며 조국의 어두운 현실에 가슴 아파하면서 시상을 떠올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은 2012년 7월 용도 폐기된 청운 수도가압장을 리모델링해서 조성한 윤동주문학관과도 이어져 있으며, 맞은편에 창의문이 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표지석 [12:00]

 

▲ 도로에 내려서면서 만난 이정표: 인왕산 정상 쪽으로 진행 [12:01]

 

▲ 인왕산 안내도 [12:02]


12:04  북악산에서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성벽 왼쪽을 따라 인왕산 산행에 들어간다. 어? 오르막길 왼쪽에 있는 연리지에 한양도성 부부 소나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네. 그럴 듯 하다. 기차바위 갈림길 지점에 도착, 인왕산의 명물인데 들러봐야겠지. 전망이 좋은 기차바위에서는 조금 전에 올랐던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오늘 미세먼지는 왜 이렇게 심한 거야? 유턴, 삼거리로 돌아와 인왕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 한양도성 성벽 왼쪽을 따라 진행 [12:04]

 

▲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 북악산 [12:08]

 

▲ 길 왼쪽에 있는 연리지: 한양도성 부부 소나무 [12:14]

 

▲ 한양도성 부부 소나문 안내문 [12:14]

 

▲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데크 계단길 [12:16]

 

▲ 여기서 기차바위를 다녀와야 한다 [12:22]

 

▲ 기차바위에서 조망 중인 사직동강 회원 [12:27]

 

▲ 기차바위에서 바라본 북악산 [12:27]

 

▲ 인왕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12:35]

 

▲ 인왕산 정상부의 모습 [12:38]


12:39  해발 338.2m 인왕산 정상 도착. 조선 초에 도성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 남산을 안산,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았었다. 인왕산 정상에서 범바위로 가는 길은 꽤 가파른 암릉길이라 진행할 때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범바위를 넘어 돌계단길을 따라 내려가다 삼거리에 서 있는 이정표를 만났는데, 무악재 하늘다리로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해골바위를 거쳐 사면을 가로지르는 데크길에 들어서자 정면으로 안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 인왕산 정상 표지판 [12:39]

 

▲ 인왕산 정상에 서 있는 이정표: 무악재 하늘다리 쪽으로 진행 [12:41]

 

▲ 한양도성 성벽이 보인다 [12:43]

 

▲ 범바위로 올라가는 계단 [12:48]

 

▲ 성벽 왼쪽 돌계단길을 따라 진행 [12:51]

 

▲ 삼거리에 서 있는 이정표: 무악재 하늘다리 쪽으로 진행 [12:54]

 

▲ 바위 위에 올라앉아 있는 바위 [13:03]

 

▲ 해골바위 위에 올라선 껍데기 회원 [13:04]

 

▲ 정면으로 보이는 안산 [13:06]

 

▲ 무악재 하늘다리로 가는 데크길 [13:08]


13:14  도로 건설로 끊어진 인왕산과 안산을 이어주는 무악재 하늘다리를 건너 안산 쪽으로 걸어간다. 10분 가까이 걸어가다 만난 이정표에 백암약수터 가는 길이 나와 있어 일단 들러보기로 했다. 안산에는 27개의 약수터가 있다고 한다. 백암약수터에서 유턴, 30m 떨어진 곳에 있는 갈림길에서 안산 봉수대로 올라가는 암릉길에 들어섰다.

 

해발 295.5m의 실제 안산 정상은 올라갈 수 없어 헬기장 오른쪽에 있는 무악동 봉수대지를 안산 정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안산 정상에는 최근에 만든 거대한 봉수대가 서 있고 데크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주변 조망이 가능한데, 지금까지 걸어온 인왕산 성벽과 하산 도착지점인 서대문 독립공원, 그리고 앞으로 곧 들러볼 예정인 금화산까지 눈에 들어온다. 안상 정상을 떠나 금화산을 찾아간다.


▲ 인왕산과 안산을 이어주는 무악재 하늘다리 [13:14]

 

▲ 무악재 하늘다리 안내문 [13:15]

 

▲ 안산 정상 쪽으로 진행 [13:20]

 

▲ 삼거리에서 백암약수터로 쪽으로 진행 [13:24]

 

▲ 백암약수 표지석 [13:29]

 

▲ 삼거리에서 봉수대 쪽으로 진행 [13:30]

 

▲ 봉수대로 올라가는 암릉길 [13:33]


안산 봉수대

 

태조 때부터 안산에는 봉수대를 설치하여 매일 저녁 봉홧불을 올리게 했다. 무사하면 봉홧불 하나를 올리고 외적이 나타나면 두 개, 국경에 가까이 오면 세 개, 국경을 침범하면 네 개, 싸움이 붙으면 다섯 개를 올리도록 했다. 따라서 평화 시에는 늘 봉홧불 하나가 정상에서 타올랐다.

 

원래 이 봉수대는 각각 동서 두 봉우리에 설치돼 있었는데 동쪽 봉우리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육지 쪽에서 전해오는 신호를 남산 제3봉수대로, 서쪽 봉우리에서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바다 쪽에서 오는 신호를 받아 남산 제4봉수대로 보내는 것이다. 즉 국경에서 전쟁이 일어난 사실을 조정에 알려주는 마지막 전령 역할을 했던 안산 봉수대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 안산 정상에 있는 봉수대 [13:41]

 

▲ 봉수대 조망: 인왕산과 한양도성 성벽 [13:42]

 

▲ 봉수대 조망: 금화산 방면 [13:43]


13:57  해발 209m의 금화산 정상 도착, 삼각점이 박혀 있고 다른 산 정상에서도 자주 보았던 표지기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자, 이제 서대문 독립공원 주차장으로 내려갈 일만 남았네. 쉼터인 능안정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능안정 왼쪽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잠깐 내려가자 데크로 이루어진 안산 자락길이 나타났다. OK!. 이제부터는 탄탄대로다.

 

곱게 물든 낙엽이 반겨주는 데크길과 도로를 걸어 서대문형무소 담장 왼쪽에 내려섰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투사들을, 해방 후에는 시국사범들을 가두었던 서대문형무소. 감옥의 역할은 1987년 10월에 끝이 났고 지금은 역사적 교육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버스가 서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산행을 마감하고 출발,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에서 간단히 뒤풀이를 한 후 청주체육관 앞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5시 14분. 이상 북악산, 인왕산, 안산, 금화산 연계 산행 끝.


▲ 해발 209m 금화산 정상에 매달려 있는 표지기 [13:57]

 

▲ 금화산 정상에 박혀 있는 삼각점 [13:57]

 

▲ 쉼터용 육각정자 능안정 [14:01]

 

▲ 안산 자락길에 진입 [14:08]

 

▲ 단풍이 곱게 물들었네 [14:11]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는 일제 통감부가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운동가들을 투옥하기 위해 1907년에 오늘날의 서대문구 지역에 건설하여 1908년 10월에 문을 연 감옥을 가리키는 말이다. 해방 후에는 주로 서울 구치소라 불리며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서울 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1987년 10월에 폐쇄되었고, 그 후로 역사성과 보존가치 등을 고려하여 일부 시설을 철거한 뒤 나머지 시설들이 1988년 2월 27일에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88년 11월 5일부터는 서울시 서대문구가 관리하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재개장하였으며, 1992년부터는 서대문구 현저동에 위치한 독립공원의 주요시설로 기능하고 있다.


▲ 서대문형무소 담장 왼쪽을 따라 진행 [14:19]

 

▲ 서대문형무소 건물 모습 [14:20]

 

▲ 버스가 서 있는 서대문 독립공원 주차장에 도착 [14:21]

 

▲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에서 뒤풀이 [16:04]

 

▲ 산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청주체육관 앞에 귀환 [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