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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제주 4.3길

2024.09.24. [제주 4.3길 8] 제주 한림 금악마을 4.3길

by 사천거사 2024. 9. 24.

제주 한림 금악마을 4.3길 탐방기

◈ 일시: 2024년 9월 24일 화요일 / 맑음
◈ 장소: 한림 금악마을 4.3길 /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 코스: 4.3길 센터 → 웃동네 가는 길 → 동가름 가는 길 4.3길 센터
◈ 거리: 11.32km           
◈ 시간: 2시간 36분 


 


 


제주 여행 7일 차, 오늘도 어제에 이어 4.3길 걷기에 나선다. 오늘 걸을 코스는 제주 한림 금악마을 4.3길. 문제는 걷기 출발 지점인 금악리가 표선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단번에 가는 버스는 없고 환승을 두 번이나 해야 한다. 시간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주 버스터미널보다 서귀포 버스터미널을 거치는 코스가 버스 편이 더 많으니 서귀포 쪽으로 가야겠다.

08:07  아들 집 잎에 있는 동원산업 버스정류장에서 서귀포 버스터미널로 가는 201번 버스 승차, 딱 1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9시 28분에 출발하는 282번 버스 승차, 동광육거리에서 10시 28분에 출발하는 783-1번 버스를 타고 금악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제주스카이랩패러글라이딩 착륙장에 있는 제주 한림 금악마을 4.3길 안내판을 살펴보고 앞으로 가야 할 금오름도 한번 쳐다본다.


표선리 아들 집 출발 [07:51]

 

동원산업 버스정류장 [07:54]

 

▲ 오랜만에 찾아온 서귀포버스터미널 [09:15]

 

서귀포버스터미널 버스정류장 [09:17]

 

동광육거리 한림방면 버스정류장 [10:02]

 

▲ 10시 28분에 출발하는 금악리행 783-1번 버스 [10:03]

 

금악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 [10:38]

 

제주 한림 금악마을 4.3길 안내판 [10:43]

 

▲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 한 마리 [10:43]

 

▲ 초원 뒤로 보이는 금오름 [10:43]


10:44  중가름 가는 길 이정표를 확인하고 길을 따라 가는데 난데 없이 새새미 가는 길 이정표가 있네. 여기가 아닌가벼. 유턴. 다시 도로로 돌아와 제 길을 찾아 중가름에 도착했다. 이번 코스에서는 중가름 말고 동가름새가름도 들른다. 웬 가름이 이렇게 많아? 여기서 제주어 가름이란 한 마을에서 작은 단위로 구분한 소규모 동네를 말한다. 동네와 동네를 잇는 마을 안거리가 가름길이고 또한 가름길에서 집대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바로 올레이다.

 

중가름에서 오소록이동네로 가는 길,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 있고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풍경이 참 보기에 좋다. 오소록이 동네, 할망당, 웃동네를 연속으로 거쳐 간다. 

 

오소록이는 검은매가 사는 곳이라는 뜻의 동네 이름이다. 4.3 사건이 나던 1948년 음력 5월 초하루 이곳에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만이 빈 집터를 지키고 있다.

 

할망당이 있는 이곳의 지명은 따신머들이다. 농경신인 정좌수의 작은딸님 아기씨가 한라산신과 혼인을 한 후 금오름을 거쳐 좌정하여,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 손자 일흔여덟을 이웃 마을에 보내어 당신(堂神)으로 좌정토록 하였다는, 주요 민속신화 지역이다. 할망당을 축일당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12지신 중 소의 날에 이곳에서 소원을 빈 데서 유래했다. 지금도 그 문화가 계승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할 때는 경건한 자세로 예를 갖추어야 한다.

 

잃어버린 마을 비석이 세워진 이곳 웃마을은 4백여 년 전에 설촌된 유서 깊은 마을로 강 씨, 김 씨, 박 씨, 이 씨, 송 씨, 홍 씨 등 38호에 141명의 주민들이 밭농사를 하고 우마를 키우며 정겹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1948년 11월 21일경 소개령에 의해 마을은 전소되어 폐촌이 됐고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 협재리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와중에 무고한 주민 8명이 희생되었다. 그 후 금악리 재건명령에도 웃동네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중가름 가는 길 이정표 [10:44]

 

▲ 도로 갓길을 따라 진행 [10:54]

 

중가름 안내문 [10:59]

 

▲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참 보기에 좋다 [11:01]

 

▲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풍경 [11:11]

 

오소록이 동네 안내문 [11:18]

 

▲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풍경 [11:18]

 

할망당 안내문 [11:21]

 

웃동네 안내문 [11:23]

 

▲ 목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 [11:26]


11:30  생이못을 지나 금오름으로 올라가는 길에 들어섰다. 희망의 숲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멘트 포장길이다. 금오름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해발 427.5m, 분화구 바깥둘레 1,200m로 금악리의 중심에 있으며 금물악, 거문오름, 금악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 지금은 금오름으로 불리고 있다. 암매라고 불리는 금오름 분화구의 서쪽능선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한라산은 머리, 이달이 오름은 가슴, 금오름 남북 봉우리는 무릎에 해당하는 여인의 형국이라고 한다.

 

금오름 굼부리 둘레길에 올라서자 전망이 좋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한라산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오고 금오름 정상도 잘 보이고 물이 조금 고여 있는 굼부리도 아주 잘 보인다. 굼부리 둘레에 나무가 없는 덕분이기도 하지만 금오름처럼 굼부리가 이렇게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이는 오름도 그리 많지는 않다.


▲ 갈림길 지점에서 생이못 쪽으로 진행 [11:30]

 

▲ 그리 크지 않은 생이못 [11:31]

 

금오름 안내판 [11:31]

 

▲ 1927년 3월에 만들었다는 홍일범 송혜석 [11:31]

 

▲ 여기도 생이못인가? [11:32]

 

희망의 숲길 안내문 [11:33]

 

민오름 정상으로 가는 길 [11:40]

 

▲ 조망처에서 바라본 한라산 [11:43]

 

▲ 조망처에서 바라본 금오름 굼부리 [11:43]

 

▲ 조망처에서 바라본 금오름 정상 [11:44]


11:45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쉼터에비양도와 한림해상풍력발전단지가 보이는 한림 앞바다를 조망한 후 굼부리 둘레길을 따라가다 금오름 동굴안내판을 만났다. 일제강점기 진지동굴이자 4.3 사건 은신처란다. 

 

제주도 서부지역 전체를 볼 수 있는 금오름은 지리적 요충지로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진지동굴이 만들어졌다. 4·3 사건 때 주민들이 이곳에서 망을 보다 경찰이 마을로 다가오면 붉은 깃발을, 떠나가면 하얀 깃발을 흔들어 마을에 알리기도 하였다. 진지동굴을 피난처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마을 재건 이후 2개를 남기고 메워버렸다. 4·3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 '지슬'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억새가 피어 있는 곳을 지나 해발 427.5m의 금오름 정상부에 올라섰다. 금오름 정상은 거대한 통신탑 세 개가 차지하고 있었다. 자, 이제 내려가자. 한라산 정상을 보며 잠깐 내려가자 오른쪽에 포제단 가는 길 이정표가 서 있는 게 보인다. 진입.


▲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쉼터 [11:45]

 

▲ 전망대 조망: 비양도한림해상풍력발전단지 방면 [11:46]

 

▲ 전망대 조망: 금오름 정상 [11:46]

 

금오름 동굴 안내판 [11:47]

 

▲ 억새 피는 철이 돌아왔다 [11:47]

 

금오름 정상으로 가는 길 [11:50]

 

금오름 정상에 서 있는 통신탑 [11:55]

 

▲ 금오름 정상부 조망: 한림해상풍력발전단지 방면 [11:55]

 

▲ 금오름 정상부 조망: 한라산 [11:56]

 

포제단 가는 길 이정표 [11:58]


12:03  야자매트가 깔려 있는 길, 삼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을 10분 남짓 걸어 삼거리로 돌아온 후 이번에는 포제단 쪽으로 걸어간다.

 

포제단은 마을제를 지내는 곳으로 매년 음력 정월초 정일(丁日)을 택하여 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생이못 주변에 집을 짓고 일주일 전부터 제관들이 기거하며, 정성을 들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행하였다. 4·3 사건으로 마을이 폐허가 되면서 중단되었으나 마을이 재건되면서 다시 지내고 있다. 당이 주로 여성들의 공간이라면 포제단은 남성들의 공간이다. 평소 포제단의 출입을 통제하지는 않지만 음력정월에는 마을제를 지내야 하므로 평소처럼의 출입은 하지 않아야 한다.

 

포제단에서 잠깐 걸어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1코스가 끝나는 지점으로, 여기서 벵듸못은 출발지점으로 가는 길이고 2코스는 새새미 가는 길로 진행해야 한다. 가자, 2코스로.


제주 한림 금악마을 4.3길 표지기 [12:03]

 

▲ 삼나무 사이로 나 있는 야자매트 길 [12:07]

 

▲ 삼거리 지점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포제단 쪽으로 진행 [12:09]

 

포제단 안내문 [12:13]

 

포제단 표지석 [12:14]

 

포제단 제단 [12:14]

 

금악마을 4.3길 코스 안내판 [12:21]

 

▲ 갈림길에서 새새미 쪽으로 진행 [12:22]

 

▲ 메밀꽃이 피었네 [12:27]

 

새새미 가는 길 이정표 [12:31]


12:32  새새미 앞에 서 있는 안내문을 읽어 보았다. 

 

새새미는 새로 만든 샘이라는 뜻이다. 금악리에서는 이 물을 맑은 물, 깨끗한 물로 인식하여 집안의 제례뿐 아니라 마을제인 포제를 지낼 때에도 이 물을 떠다가 제를 올릴 정도로 항상 맑고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고 한다.

 

맑은 물 깨끗한 물로 포제를 지낼 때 이 물을 떠다 사용했다고 하는데 아니, 이게 뭐야! 거의 똥물 수준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물색깔이 나올 수 있지? 동가름을 지나 새가름으로 가는 중에는 잠깐 길을 잃어 되돌아오는 일이 벌어졌다. 동가름과 새가름은 둘 다 4.3 사건으로 인해 잃어버린 마을로 변했단다.

 

동가름은 동쪽에 위치한 동네라는 의미로 4·3 사건 당시 50여 가구가 살았으나 소개령으로 지금은 대나무 들만 남아 잃어버린 마을임을 짐작케 한다. 이 주변부터 각생이내까지 남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새가름은 새로 생긴 동네라는 의미로 주로 동가름에 살던 양 씨들이 모여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처녀당에서 가족의 무사안녕을 빌며 새가름물과 각생이내를 식수원으로 사용하여 한때는 30여 가구까지 살았다. 이곳 또한 4.3 사건으로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버렸다.


새새미 안내문 [12:32]

 

새새미: 무슨 물 색깔이 이렇나? [12:32]

 

동가름 가는 길 이정표 [12:32]

 

▲ 꽃무릇이 피었고 [12:33]

 

▲ 부용도 피었다 [12:33]

 

동가름 안내문 [12:37]

 

산티아고 순례길 생각이 나네 [12:39]

 

▲ 길을 잠깐 잘못 들었다가 다시 제 길을 찾았다 [12:48]

 

새가름으로 가는 길 [12:53]

 

새가름 안내문 [12:54]


12:54  민병듸묘역 가는 길 안내판이 보인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민병듸가 안내판에 만벵듸, 만벵디로 바뀌어 나오는데,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만벵듸가 맞는 것 같다. 10분을 걸어 만벵듸묘역에 도착. 

 

이곳 일대 지명이 만벵듸라서 묘역 명칭을 만벵듸묘역이라고 한다. 이곳에 안장된 영령들은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8월 20일(음 7월 7일) 새벽 예비검속이란 명목으로 송악산 섯알오름 일본군탄약고 터(현, 백조일손묘역)였던 곳에서 무참히 학살된 무고한 민간인들이다. 유족들은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살다 6년 만인 1956년 3월에야 시신을 수습하여 이곳에 안장하였다. 당시 이 지역 희생자 수는 62명인데 이 묘역에는 46위가 안장되었다. 

 

만벵듸묘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처녀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처녀당은 하르방당과 할망당사이의 7남매 중 넷째 막내딸로 태어난 처녀의 몸으로 좌정하여 당신(堂神)이 되었다고 전해 내려오는 주요 민속 신화지역이다. 지금도 그 문화가 계승되고 있으므로 이곳을 방문할 때는 경건한 자세로 예를 갖추어야 한다. 4·3 사건 당시 이 당에 숨어있다 경찰에 잡힌 무장대 간부가 당 건너편 밭에서 자신의 가지고 있던 큰 칼로 목이 베여 죽임을 당했다. 그의 시신은 밭에 버려지고 머리만이 관덕정 마당 깃대에 걸렸다고 한다.


▲ 민병듸묘역 가는 길 안내판 [12:54]

 

▲ 지금은 메밀꽃이 피는 철 [12:58]

 

만벵듸 묘역 260m 전 이정표 [13:00]

 

만벵디 공동묘역 표지판 [13:04]

 

7.7 희생자영령 위령비 [13:04]

 

예비검속 섯알오름 7.7 만벵듸묘역 [13:05]

 

만벵디 공동묘역의 내력 안내문 [13:06]

 

한수풀 역사순례길은 또 뭐지? [13:09]

 

▲ 금악리 처녀당 안내문 [13:11]


13:11  아까 올랐던 금오름을 바라보며 벵듸못 쪽으로 걸어간다. 벵듸못, 꽤 큰 연못이다.

 

벵듸못은 넓은 물 혹은 큰 못이라는 의미로 한라산에 살던 멧돼지들이 내려와 땅을 헤쳐서 습지를 만들어 놀던 자리를 물통으로 만든 곳이라 한다. 목축이 성행하던 과거에는 저지, 봉성 등에서도 이 물을 소와 말에게 먹일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밭에서 돌아온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빨래를 하기도 했고, 해가 지면 처녀, 총각들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기도 했다.

 

벵듸가름은 벵듸못이 있는 마을 이름이다.

 

벵듸가름은 향사와 학교 그리고 풍부한 물이 있어 자연스럽게 마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동네이다. 1919년 3·1 만세운동을 기념하여 네 그루의 나무를 모양으로 심었다. 4·3 당시 이 나무 중 먹구슬나무에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매달려 고문을 당했고 며칠 후 나무들은 베어져 버리고 향사와 학교마저 불에 타 사라진다. 지금의 월대 나무들은 마을을 재건한 후 심은 나무들이다.

 

13:32  금악초등학교 앞에 도착하는 것으로 제주 한림 금악마을 4.3길 걷기는 모두 끝이 났다. 버스정류장에 있는 시간표를 보니 동광으로 가는 운행 스케줄은 없고 2시 20분부터 옵서버스를 이용하란다. 옵서버스? 일정한 운영 시간은 없고 연락을 하면 버스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버스란다. 그래? 일단 슈퍼에 들러 캔맥주를 하나 사서 가져간 빵과 함께 조금 늦은 점심으로 먹고 슈퍼 주인에게 동광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정류장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참고하란다. 오후에는 운행하는 버스가 없고 옵서버스를 이용하라고 적혀있다고 했더니 옵서버스가 뭐냐고 나에게 되묻는다.

아니, 지역주민이 있는지도 모르는 버스 운행 체계를 외지인인 나보고 이용하라고? 아이고, 편하게 살자. 택시 호출번호를 물어 전화를 했다. 한림에서 출발하는 택시라 동광까지는 15,000원, 한림까지는 10,000원이란다. 한림까지 가기로 하고 호출. 택시 타고 한림읍 소재지에 있는 한림리 버스정류장에서 2시 32분에 떠나는 202번 버스 승차, 제주버스터미널에서 4시 5분에 출발하는 222번 버스 승차, 표선면 소재지에 있는 제주은행 버스정류장에서 5시 28분에 떠나는 201번 버스 승차, 5시 36분 표선리 아들 집 도착. 끝.


▲ 길 왼쪽으로 보이는 금오름 [13:11]

 

금악 포크빌리지 안내문 [13:25]

 

벵듸못 안내문 [13:29]

 

벵듸못 뒤로 보이는 금오름 [13:29]

 

벵듸가름 안내문 [13:31]

 

한림리 버스정류장 [14:24]

 

▲ 도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제주버스터미널 [15:57]

 

제주버스터미널에서 222번 버스 승차 [16:01]

 

▲ 표선면 소재지 제주은행 버스정류장 [17:15]

 

▲ 오늘 걷기 일정을 모두 마치고 표선리 아들 집에 귀환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