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도/제주 4.3길

2024.04.19. [제주 4.3길 5] 제주 아라동 4.3길

by 사천거사 2024. 4. 19.

제주 아라동 4.3길 탐방기

일시: 2024년 4월 19일 금요일 / 맑음
 장소: 제주 아라동 4.3길 / 제주 제주시 아라동 일원
코스: 산천단 버스정류장 → 1코스 2코스 산천단 버스정류장

거리: 16.93km

시간: 3시간 44분




 

 


 

 



07:29  제주 여행 4일째, 오늘은 7개의 제주 4.3길 중에서 제주 아라동 4.3길을 걸어보기 위해 아들네 집을 나섰다. 동원산업 버스정류장에서 201번 버스를 타고 표선환승정류장에 도착, 8시에 출발하는 222번 버스로 갈아탄 후 516도로에 있는 산천단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아라동 4.3길 1코스 출발지점은 산천단이다. 산천단에는 한라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오래된 제단과 비석이 남아 있다. 한라산신고비와 이약동 목사의 기적비에는 곳곳에 4·3 시기에 총 맞은 자국이 선명하다. 


▲ 표선면 표선리 아들네 집 출발 [07:29]

 

동원산업 버스정류장 [07:32]

 

표선환승정류장 도착 [07:49]

 

222번 버스 승차 [08:00]

 

산천단 버스정류장에서 하차 [08:45]

 

아라동 둘레길 1코스 이정표 [08:48]

 

▲ 수령이 600년이나 된 곰솔 [08:51]

 

▲ 제주목사 이약동 안내문 [08:52]

 

▲ 목사 이약동 선생 한라산신단기적비 [08:52]

 

산신단 제단과 비석들이 보인다 [08:52]


08:53  산천단 제사터 안내문을 읽어본다.

 

이곳은 예로부터 산천제를 비롯하여 여러 제사를 봉행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1470년 이약동 제주목사가 세운 한라산신묘를 비롯해 농사의 재해예방을 기원하는 포신제, 비를 내려줄 것을 비는 기우제 등을 올리는 곳이다. 

 

한라산 산신제는 원래 백록담에서 치러졌었다. 1470년 제주목사 이약동이 세운 한라산신고선비와 탐라기년 등의 문헌에 따르면, 한라산신제를 해마다 백록담에서 봉행한 결과 추위로 얼어 죽는 사람이 많아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약동 제주목사가 사람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제단을 백록담에서 산천단으로 옮겨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아라동 4.3길 1코스 출발지점인데 어째 4.3길 표지판이나 안내판, 표지기 같은 게 하나도 보이지 않지? 산천단을 떠나 516도로와 선돌목동길을 따라 잠시 걸어가자 그때서야 비로소 나무에 매달린 4.3 표지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암굴사 입구가 보인다. 구암굴사? 낯설지가 않는 이름인데... 도륜정사? 이 이름도 알 것 같네. 검색해 보니, 지금 걷는 길이 2020년 10월 제주 불교성지 순례길을 걸을 때 지나갔던 길이었다. 


산천단 제사 터 안내문 [08:53]

 

제주 산천단 곰솔군 안내문 [08:54]

 

▲ 산천단에 있는 곰솔 [08:54]

 

한라산신제 봉행 안내문 [08:56]

 

아라동 역사문화 탐방로 종합안내도 [09:00]

 

▲ 4.3길 표지기 발견 [09:02]

 

구암굴사 입구 [09:05]

 

아라동 4.3길 1코스 안내판 [09:06]

 

▲ 길 왼쪽에 있는 도륜정사 [09:07]

 

아라동 4.3길 1코스 안내판 [09:09]


09:10  산천단 다음 탐방 장소는 문형순 묘, 임도 수준의 널찍한 길을 따라 걸어가자 앞에 평안도민 공동묘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무덤이 한두 개가 아니다. 표지판이나 안내판이 없어 어느 게 문형순 묘인지 알 수가 없네. 무덤 찾아 삼만리, 마침내 찾았다.

 

문형순 서장은 1949년 모슬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면서 좌익 혐의를 받던 주민 백여 명을 자수시켜 훈방하였고, 1950년 성산포 경찰서장 재임 중에는 군 당국의 예비검속자 총살명령에 대해 부당하므로 불이행한다며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이백여 주민의 목숨을 구하였다.

 

문형순 묘를 떠나 오솔길 수준의 길을 잠깐 걸은 후 한북로에 접속해서 5분 정도 걸어가다 한북로를 건너 잃어버린 마을 죽성새가름을 지나자 죽성마을 안내문이 나타났다.

 

오등리 죽성마을은 4·3 당시 76여 가구 400명 내외의 주민들이 농축업에 종사하며 살아가던 오등리의 가장 큰 마을이다. 1948년 11월 7일 군인들이 죽성을 포함한 오등리 마을 전체를 초토화시킴에 따라 주민들은 산에서의 피신이나 소개 생활 중 희생당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1951년 아랫마을 오드싱을 중심으로 성을 쌓아 어려운 재건 생활을 했다. 하지만 죽성은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끝내 잃어버린 마을이 되고 말았다.

 

죽성마을 안내문이 서 있는 곳을 떠나 10분 정도 걸어가자 오백나한 기도도량인 죽림성 덕흥사 일주문이 보인다.


▲ 4.3 유적지 임형순 묘로 가는 길 [09:10]

 

▲ 묘비: 경찰서장 문형순지묘 [09:16]

 

▲ 오솔길 수준의 좁은 길 [09:18]

 

▲ 삼나무 사이로 노루 한 마리가 보인다 [09:20]

 

한북로를 따라 진행 [09:26]

 

▲ 전봇대에 부착되어 있는 아라동 4.3길 표지 [09:28]

 

아라동 4.3길 1코스 안내판 [09:33]

 

▲ 잃어버린 마을 죽성마을 안내문 [09:35]

 

아라동 4.3길 1코스 안내판 [09:41]

 

오백나한 기도도량 죽림성 덕흥사 일주문 [09:43]


09:44  죽성교차로를 건너 다시 4.3길을 이어간다. 길 옆에 자리하고 있는 감귤 과수원이 나타났다. 지난겨울에는 물가가 너무 올라온 나라가 들끓었는데 그중에서 감귤 값도 크게 한몫을 했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아들 말에 의하면 예년보다 무려 세 배까지 올라간 적도 있단다. 32년 만에 일어난 현상이라나. 감귤 값 폭등의 원인은 여름철 폭염과 폭우 등의 기상 이변. 이산화탄소를 발생량을 줄이지 않는 인간들에게 하느님이 내리신 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다 업보요,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이다.


죽성교차로를 건너간다 [09:44]

 

▲ 4.3 표지기를 확인하며 진행 [09:53]

 

아라동 4.3길 이정표 [10:01]

 

▲ 길 옆 감귤 과수원 [10:03]

 

▲ 길 왼쪽에 있는 목초지 [10:07]

 

길 왼쪽에 있는 목초지 [10:07]

 

▲ 혼자 하는 그림자놀이 [10:11]

 

▲ 마을길을 따라 진행 [10:16]

 

▲ 1131번 도로를 따라 진행 [10:23]

 

▲ 마을길을 따라 진행 [10:29]


10:30  하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무 옆을 지나 잠깐 걸어가자 아라동 4.3길 1코스가 끝나는 지점인 박성내다. 안내문이 서 있네. 어디 보자.

 

1948년 12월, 함덕에 주둔하던 군부대는 조천면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무장대에 협조했던 사람이 자수하면 살려준다고 선전했다. 군인들은 자수한 청년들에게 3일만 토벌에 참여하면 양민으로 살게 해 준다며 트럭에 태운 뒤 제주읍 농업학교로 끌고 가 감금했다. 그리고 일주일정도 지난 12월 21일 이곳, 박성내로 끌고 와 학살했다. 학살에 앞서 군인들은 값나가는 소지품은 모두 빼앗았다. 학살한 뒤에는 사체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웠다.

 

아라동 4.3길 1코스 걷기는 대충 끝이 났고 이제부터는 2코스 출발지점인 영평상동 마을회관까지 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한다. 마을이 생길 때 지금까지 영평마을을 속칭 가시나물로 부르고 있다. 왜? 영평초등학교에서 동남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올리소라는 봉천수가 있는데 이 올리소 주위에 가시나무가 울창했고, 옛 선조들이 이곳에서 자라는 가시나무를 베어다 농기구 등 생활에 필요한 용구를 만들어 사용하거나 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가시나물은 올리수 주변에 많았던 가시남과 물이 합쳐져 생겨난 말이다.


▲ 하귤이 주렁주렁 [10:30]

 

아라동 기자길에 조성한 올레올레 안심길 [10:37]

 

▲ 4.3 유적지 박성내 안내문 [10:38]

 

기자길 안내문 [10:38]

 

▲ 사거리에서 영평상동 마을회관 쪽으로 진행 [10:49]

 

영평 가시나물 마을 표지판 [10:49]

 

▲ 보행자 도로를 따라 진행 [10:54]

 

▲ 아라동 4.3길 2코스 출발지점인 영평상동 마을회관 [11:18]

 

영평 가시나물의 유래비 [11:19]

 

영평상동 마을회관 앞에 서 있는 보호수 [11:20]

 

영평상동 마을회관 앞에 서 있는 보호수 [11:20]


11:21  영평상동 마을회관 앞을 떠나는 것으로 아라동 4.3길 2코스 걷기에 들어간다. 4.3 유적지 안내판이나 표지판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확인하기가 어렵기에 유적지 들르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길을 걷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코스를 이탈하게 되고 4.3길 표지기도 어느 순간인가 사라지고 말았다. 상관없다. 원효대사도 말했잖아, 일체유심조라고.


영평상동 마을회관 앞에 매달려 있는 4.3 표지기 [11:21]

 

아라동 4.3길 2코스 안내판 [11:29]

 

▲ 길 왼쪽에 서 있는 보호수 [11:30]

 

▲  CASA de Bube: 스페인어로 CASA는 집이라는 뜻인데... [11:35]

 

▲ 화려하게 피어 있는 왕벚꽃 [11:37]

 

영평 가시나물 마을 표지석 [11:41]

 

▲ 어허, 아무리 그래도 길을 막나 [11:44]

 

아라동 둘레길 2코스 안내도 [11:49]

 

▲ 보행자 도로를 따라 진행 [11:53]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표지판 [11:56]


12:06  도로 오른쪽에 있는 카카오 본사 건물이 보인다. 내가 지금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티스토리에 글을 올리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참 거시기한 자(者)들이다. 한 마디로 운영 정책이나 절차가 거의 Dog Table 수준. 제주대학교 후문 근처에서 다시 4.3길 2코스 안내판을 만났다. 12시 32분 신천단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아라동 4.3길 1코스와 2코스를 연계한 탐방이 모두 끝이 났다.

 

표선으로 가는 222번 버스 시간에 맞추려고 엄청 서둘러 왔더니 여유시간이 28분이나 된다. 근처에 있는 세븐 일레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시고 산천단 버스정류장에서 222번 버스에 승차, 1시 45분 표선환승정류장에서 하차, 다시 202번 버스를 타고 동원산업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아들 집으로 돌아오니 시계가 2시 1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도로 오른쪽에 있는 카카오 본사 건물 [12:06]

 

카카오 스페이스 1 표지판 [12:07]

 

▲ 제주대학교 후문 근처에 서 있는 아라동 4.3길 2코스 안내판 [12:18]

 

제주대학교 말산업전문인력양성센터 앞을 통과 [12:21]

 

제주특별자치도제주의료원 [12:26]

 

산천단 버스정류장에 도착 [12:32]

 

표선환승정류장 도착 [13:45]

 

▲ 왕벚꽃 뒤로 보이는 아들네 집 [14:17]

 

아라동 4.3길 걷기를 모두 마치고 아들네 집에 귀환 [14:18]

 

▲ 오늘 저녁은 야외 테라스에서 돼지고기구이로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