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 여행/국내 旅行

2021.10.02. [국내旅行 144] 충남 당진 솔뫼성지/합덕성당/신리성지/몽산성 마룻길/면천읍성/

by 사천거사 2021. 10. 4.

솔뫼성지-합덕성당-신리성지-몽산성 마룻길-면천읍성 탐방기

◈ 일시: 2021년 10월 2일 토요일 / 맑음

◈ 장소: 솔뫼성지 / 합덕성당 / 신리성지 / 몽산성 마룻길 / 면천읍성 / 충남 당진

◈ 코스: 청주 → 솔뫼성지 → 합덕성당 신리성지  몽산성 마룻길 면천읍성 청주

 회원: 아내와 함께 


▲ 솔뫼성지: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

 

▲ 합덕성당: 충남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275-2

 

▲ 신리성지: 충남 당진시 합덕읍 신리 62-3

 

▲ 몽산: 충남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산 53-1

 

▲ 면천읍성: 충남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930-1




09:40  10월이 왔다. 시간적으로 보면 가을이 본격적으로 무르익어 가는 때이니 집을 떠나 여행이나 산행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딘가로 떠나야지. 이런 날 집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은가. 어디로 갈까? 그래, 일전에 지인의 블로그에서 보았던 솔뫼성지와 면천읍성을 보러 가자. 당진 가본 지도 꽤 오래되었잖아?

 

청주 율량동 출발, 내비게이션에 솔뫼성지를 입력하고 무료도로를 선택했더니 천안과 아산을 거쳐 합덕으로 가는 길은 안내한다. 1시간 20분 정도 걸려 솔뫼성지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그 넓은 주차장에 차량이 가득하다. 솔뫼성지가 이렇게 유명한 곳이었나? 다른 성지하고는 클래스가 다르네.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초대 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가 태어난 곳이며 2014년 8월 15일에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대건 신부의 조형물이 있는 곳을 지나 성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청주 율량동 출발 [09:41]

 

▲ 널찍한 솔뫼성지 주차장에 주차 [11:05]

 

▲ 방문 차량들로 가득 차 있는 솔뫼성지 주차장 [11:06]

 

▲ 솔뫼성지 기억과 희망 안내문 [11:10]

 

▲ 솔뫼성지 기억과 희망 게이트 [11:10]

 

▲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대건 신부 조형물 [11:11]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唐津 솔뫼마을 金大建神父 遺蹟)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은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1846년)를 비롯하여 김대건신부의 증조할아버지(김진후), 작은할아버지(김종한), 아버지(김제준) 등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이다. 1998년 7월 28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146호 김대건신부생가지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9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29호로 승격되었다.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은 우리나라 천주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장소로 전해지며,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발생한 천주교 전래 및 사상과 신앙의 자유에 대한 박해과정 등을 집약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종교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사상적 변천을 반영하는 중요 유적으로 평가된다.


▲ 김대건 신부 탄생지인 솔뫼성지 표지석 [11:12]

 

▲ 솔뫼성지로 들어가는 문 [11:13]


솔뫼 아레나

 

아레나라는 말은 모래 혹은 모래밭을 의미하고, 현대적 의미로는 원형 경기장이나 원형공연장을 말한다. 이곳을 아레나로 명명한 것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동료 밀사들이 새남터 모래밭에서 순교하신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또한 12사도상(최영철 바오로, 2011년 작품)을 세움으로써 가톨릭 교회가 12사도로부터 이어져왔다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마지막 회유문의 정신을 본받아 이 시대에 우리가 바로 사도가 되어야 함을 전하고자 하였다. 솔뫼 아레나에서는 음악회와 연극, 야외 미사를 봉헌할 수 있으며, 1,200명이 앉을 수 있는 장소로 2011년 5월 14일에 봉헌되었다. 대형 행사 때에는 3,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에 있는 솔뫼 아레나를 만난다 [11:15]

 

▲ 길 왼쪽에 있는 조형물들 [11:17]


11:18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서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조형물이 보인다. 신분적 측면에서 보면 교황과 신부는 하늘과 땅 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개 신부의 초상화 앞에서 고개를 숙인 교황의 모습은 겸손과 존경의 표본이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1906년 합덕 성당의 크램프 신부님에 의해 고증된 생가터가 1998년 충청남도 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되면서 2003년 김대건 신부의 집 안채가 복원되었고, 이어서 문화재의원들의 고증과 와편들의 발굴을 통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현재 성체조배실로 개방하고 있다.

 

생가에서 김대건 신부 상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이다. 10,000여 평에 이르는 소나무 숲에는 제멋대로 구부러진 노송들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집안 순교자들의 신앙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70-80그루의 소나무들은 수령이 200년을 넘어섰으며, 300년 이상 된 소나무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상 옆에는 순교복자비와 성인비가 모셔져 있다. 현재의 성상은 1977년 전뢰진 교수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서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조형물이 보인다 [11:18]

 

김대건 신부 생가 [11:19]

 

▲ 2021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김대건 신부 안내문 [11:19]

 

▲ 솔뫼성지 성모 마리아 상 [11:20]

 

▲ 솔뫼성지 소나무 숲 [11:20]

 

▲ 솔뫼성지 김대건 신부 상 [11:21]

 

솔뫼성지 소나무 숲 [11:22]

 

솔뫼성지 소나무 숲에서 [11:23]


11:25  김대건 신부 상이 있는 곳에서부터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솔뫼성지에는 십자가의 길이 두 가지로 형태로 제작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손을 주제로 모자이크화한 십자가의 길과 인체 크기로 브론조로 설치한 환조 형태의 십자가의 길(김종필 작가 2012년 설치)이 바로 그것이다.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지점을 지나 입구 쪽으로 나오면 왼쪽으로 솔뫼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 안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생애와 한국교회의 박해상황들, 그리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편지와 기해박해 보고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안을 둘러보는 것으로 솔뫼성지 탐방은 끝이 났다. 당진에서 꼭 보아야 할 천주교 성지가 바로 솔뫼성지, 합덕성당, 신리성지 세 곳이라고 한다. 방금 솔뫼성지를 둘러보았으니 이제 두 번째 방문 장소인 합덕성당으로 가자.


▲ 십자가의 길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11:25]

 

▲ 십자가의 길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11:27]

 

▲ 십자가의 길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심 [11:28]

 

▲ 솔뫼성지 고상 조형물 [11:28]

 

▲ 솔뫼성지 성모 마리아 상 [11:29]


솔뫼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밀사들이 조선 입국을 위해 탔던 라파엘호(하느님이 보호하신다는 뜻으로 페레올 주교님이 명명)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건축하였다. 서해 폭풍우에 라파엘호가 돛이 찢기고 키까지 부러져 망망대해에 있는 수반과 같이 방향성을 모두 잃었지만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조선에 입국할 수 있었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모두가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 하였기에 외관을 붉은 색깔이 나는 소재를 사용하였고, 가운데 큰길은 김대건 신부의 드넓은 세계를 향한 기개를 표현하여 2006년 봉헌되었다.

 

기념관 안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생애와 한국교회의 박해상황들, 그리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편지와 기해박해 보고서를 전시하고 있다. 한국어, 중국어, 영어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생애에 관한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솔뫼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입구 [11:30]

 

솔뫼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표지판 [11:32]

 

▲ 조선에 입국할 때 타고 온 라파엘호 모형 [11:36]

 

▲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장미꽃을 드리는 소녀 조형물 [11:37]

 

▲ 기념관 둘레에 피어 있는 수련 [11:38]


11:47  두 번째 방문지인 합덕성당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합덕성당은 작은 읍소재지에 있지만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 1929년에 지어진 성당 건물도 멋있지만 주변 풍경도 작은 공원처럼 아름답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합덕성당이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사제 30명, 수녀 54명, 수사 5명이 배출시킨 성소의 모범이라는 사실이다.


합덕성당(合德聖堂)

 

합덕성당은 충남 당진시 합덕읍에 위치한 성당이다. 1998년 7월 28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1890년 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양촌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899년 당시 초대 본당 주임이었던 퀴를리에(Curlier, J. J. L.) 신부가 현 위치의 대지를 매입하여 성당 건물을 건축하고 성당을 옮겨오면서 합덕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61년 합덕읍 운산리에 신합덕 성당이 생기게 되어 구 합덕성당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나 1997년 다시 합덕성당으로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정면의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인 이 성당은 3개의 출입구와 창들이 모두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외벽은 붉은 벽돌로, 창 둘레와 종탑의 각 모서리는 회색 벽돌로 쌓았다. 창 아래와 종탑의 각각 면에는 회색벽돌로 마름모형의 장식을 하였다. 현재 존재하는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다. 1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에는 순교의 장소가 되기도 한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곳이다. 합덕성당은 성소 못자리로도 유명하다. 사제 30명, 수녀 54명,  수사 5명(수사와 수녀는 1990년 통계)을 배출하였다.


▲ 합덕성당 표지석 [11:47]

 

▲ 합덕리 성소마을 안내판 [11:48]

 

▲ 당진시 천주교 성지 안내판 [11:48]

 

▲ 합덕성당 첨탑 두 개가 우뚝하다 [11:48]

 

▲ 합덕성당 성모동굴 [11:50]

 

▲ 당진 합덕성당 안내문 [11:52]

 

▲ 합덕성당 종 조형물 [11:54]

 

▲ 합덕성당 앞에서 [11:55]

 

▲ 합덕성당 성모 마리아 상 [11:58]

 

▲ 1929년에 지어진 합덕성당 [12:03]


12:04  예비 신혼부부인가? 젊은 남녀가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 찍기에 바쁘다. 다른 좋은 곳도 많을 텐데 굳이 시골에 있는 성당을 찾은 이유가 무엇일까? 성당을 한 바퀴 돌아본다. 김대건 신부 상과 성직자 묘지를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치형 천장과 파란색 기둥이 돋보이는, 그리 화려하지 않으면서 평화로운 분위기가 가득 넘치는 성당 안에서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 젊은 남녀가 사진을 찍으러 왔네 [12:04]

 

▲ 김대건 신부 상 [12:05]

 

▲ 합덕성당에 있는 성직자 묘지 [12:06]

 

▲ 외관이 아름다운 합덕성당 [12:10]

 

▲ 두 개의 첨탑이 압권인 합덕성당 [12:11]

 

▲ 아치형 천장과 파란색 기둥이 돋보이는 합덕성당 [12:12]

 

▲ 합덕성당 제대 [12:13]

 

▲ 합덕성당 안에 있는 성모 마리아 상 [12:15]


12:29  세 번째로 방문할 성지는 신리성지, 공식 명칭은 당진 신리 다블뤼 주교 유적지이다. 신리성지에는 1865년부터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주하였던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다블뤼 주교, 오메르트 신부, 위엥 신부, 황석두 루카, 손자선 토마스가 신리에서 체포되어 보령 갈매못과 공주에서 순교하였다. 신리성지에는 이 다섯 분의 순교자를 기리는 경당이 조성되어 있다.


▲ 당진 산리 다블뤼 주교 유적지 안내도

 

당진 산리 다블뤼 주교 유적지 안내문 [12:29]

 

▲ 건물 벽을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 앞에서 [12:30]

 

▲ 신리성지 성모 마리아 상 [12:32]

 

▲ 신리성지 순교미술관을 배경으로 [12:34]

 

▲ 넓은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있는 신리성지 [12:37]

 

▲ 평화로운 분위기가 넘쳐 나는 신리성지 [12:38]

 

▲ 신리성지에서 멋진 자세로 [12:39]

 

▲ 순교미술관과 경당이 보이는 풍경 [12:40]


12:41  성당 왼쪽에 있는 성 다블뤼 주교관에 들렀다. 평범한 초가 한 채,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인 다블뤼 주교의 주교관은 순교자 성 손자선 토마스의 생가이기도 하다. 주교관 오른쪽에 있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제대 뒤 하얀 벽면에는 아무런 장식하지 않지 않았지만 공간 중앙에 있는 십자고상이 주변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신리성지 방문을 끝으로 성지 순례를 마감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면천면에 있는 에이스 식당으로 달려갔다. 면천읍성 풍락루 앞에 있는 이 식당은 여름에는 쑥콩국수, 겨울에는 칼국수만 제공한다. 식당 외관은 조금 허름한 편이지만 인터넷에서 맛집으로 검색될 정도로 국수 맛이 괜찮은 편이다. 쫄깃한 면발과 걸죽한 콩국이 어우러진 쑥콩국수 맛은? 일품이었다.


▲ 신리성지 야외 성당 [12:41]

 

▲ 성 다블뤼 주교 상 [12:42]

 

▲ 성 손자선 토마스의 생가이자 성 다블뤼 주교의 주교관 [12:43]

 

▲ 성 다블뤼 주교관 안내문 [12:45]

 

▲ 신리성지 성당 내부 [12:46]

 

▲ 신리성지 성당 제대 [12:46]

 

▲ 면천읍성 풍락루 앞에 있는 에이스 식당 [13:18]

 

▲ 여름에는 쑥콩국수, 겨울에는 칼국수만 제공 [13:19]

 

▲ 에이스 식당 쑥콩국수 상차림 [13:32]


13:49  점심도 맛있게 먹었겠다, 본격적으로 몽산성 둘레길 걷기에 나서볼까. 백제시대 군사적 요충지인 몽산성 성벽을 따라 조성한 둘레길에 몽산성 마룻길이란 이름을 달아놓았다. 마룻길 걷기는 점심을 먹은 에이스 식당 바로 앞에 있는 풍락루에서 시작한다. 풍락루는 1852년 면천군수 이관영이 중수했다는 누각으로 그동안 쇠락을 거듭하다 1943년 철거됐으나 1972년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아미산 방향으로 마을길을 따라 10분 가까이 걸어가자 몽산성 마룻길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는 마룻길 들머리이다.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널찍한 길에 들어서는 것으로 마룻길 걷기가 시작되었다. 오르막 경사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몽산 정상 해발이 299m이니 크게 부담이 갈 정도는 아니다. 길은 성벽 안으로 나 있었다.


▲ 1972년에 새로 세웠다는 풍락루 [13:49]

 

▲ 풍락루 앞에 서 있는 이정표: 아미산 정상 쪽으로 진행 [13:49]

 

▲ 몽산성 마룻길 가는 길 이정표 [13:51]

 

▲ 길 오른쪽에 있는 아미산 안내도 [13:55]

 

▲ 본격적인 몽산성 마룻길이 시작되는 곳 [13:58]

 

▲ 몽산성 마룻길 안내도 [13:59]

 

▲ 몽산성 마룻길 걷기가 시작되었다 [14:00]

 

▲ 면천면사무소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 몽산 등산로 정상 쪽으로 진행 [14:07]

 

▲ 산악오토바이 출입통제 시설 [14:07]

 

▲ 몽산여단 안내문 [14:10]


14:13  경사가 조금 급한 곳에는 어김없이 계단이나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주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길의 정비는 아주 잘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성벽은 어디에 있는 거야? 성돌도 안 보이네. 고압선 철탑 옆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성돌이 슬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풍락루에서 50분 가까이 걸어 몽산 정상에 올라섰다. 해발 299m. 널찍한 정상부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가을바람이 선선하다.


▲ 오르막 나무계단길 [14:13]

 

▲ 몽산성 망루 추정지: 모두 8개가 망루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 [14:14]

 

▲ 면천 박 씨의 시조인 박술희 장군 안내문 [14:18]

 

▲ 오르막 나무계단길 [14:28]

 

▲ 고압선 철탑 옆을 통과 [14:31]

 

▲ 길 오른쪽으로 보이는 성돌 [14:33]

 

▲ 해발 299m 몽산 정상부에 도착 [14:40]

 

▲ 몽산 정상 표지판 [14:41]

 

▲ 정상에 있는 벤치에서 잠시 휴식 [14:43]

 

▲ 몽산 정상에 서 있는 이정표: 아미산 쪽으로 진행 [14:44]


14:44  몽산 정상을 떠나 아미산 쪽으로 조금 걸어가자 갈림길 지점이다. 오른쪽은 아미산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이 몽산성 마룻길이다. 사실 몽산 탐방이 오늘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4월, 아미산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해 아미산, 몽산, 다불산을 연계하는 산행을 할 때 이미 들렀던 곳이다. 갈림길 지점에서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라 걷는 데 아무런 부담이 없다. 34분 정도 걸어 마을길에 내려섰고 다시 10분을 더 걸어 풍락루 앞에 도착했다. 몽산성 마룻길 걷기 끝.


▲ 몽산 정상에서 아미산 쪽으로 진행 [14:44]

 

▲ 아미산 갈림길 지점: 몽산 등산로 쪽으로 진행 [14:45]

 

▲ 임도 옆에 서 있는 돌탑 [14:53]

 

▲ 마룻길 왼쪽 당산나무 [14:56]

 

▲ 리기다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15:05]

 

▲ 진달래꽃술 면천두견주 안내문 [15:11]

 

▲ 면천중학교 건물이 보인다 [15:16]

 

▲ 마룻길을 마감하고 도로에 내려서면서 만난 이정표: 면천읍성 쪽으로 진행 [15:19]

 

▲ 마을길을 따라 풍락루로 [15:26]

 

▲ 마룻길 시작 지점인 풍락루 앞에 귀환 [15:29]


15:32  오늘 여정의 마지막 코스인 당진 면천읍성 탐방이 시작되었다. 면천이란 지명에는 서북쪽 산에서 많은 하천이 흘러내려 물이 가득 모여 흐르는 고장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지금의 면천은 쇠락한 면面단위 고을이지만 조선시대에는 군郡단위 행정치소로 이웃 옛 당진군보다 훨씬 더 번창한 고을이었다고 한다. 서문터에서 성벽 위로 올라섰다. 성 안은 현대식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고 성 안으로 들어가는 도로 때문에 성벽은 금방 끊어졌다. 도로 건너 다시 성벽 위로 올라섰더니 복원한 남문과 옹성이 보인다.

 

남문을 지나자 성벽이 끊어졌고 동문 쪽으로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렇다면? 발걸음을 돌려 성벽 바깥쪽을 따라 서문터로 돌아왔다. 오늘 목적했던 순례지와 역사적 장소 탐방을 모두 마치고 청주로 돌아오는 길,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황금색 들판이 참 보기에 좋다. 만물이 풍성하게 익어가는 가을, 마음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라도 계속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다. ♪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곳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


당진 면천읍성(唐津 沔川邑城)

 

당진 면천읍성은 충남 당진시 면천면 있는 조선시대의 읍성이다. 1993년 12월 3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었다. 이 읍성은 1439년(세종 21년) 11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평지읍성으로 조선 후기까지 면천의 군사 및 행정중심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성벽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쌓았는데, 외부는 석축이고 내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고 쌓았다.

 

현 성벽의 둘레는 1,336m인데, 성을 쌓을 당시는 치성과 옹성의 길이를 합한 전체 길이는 1,564m 정도로 추정된다. 현재 옹성 1개소, 문 터 4개소를 비롯하여 치성 3개소가 확인되었으나 원래 치성은 7개소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벽의 바깥면에 옥천, 진잠, 석성 등 충청도 관내의 군현 명칭이 새겨진 성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읍성을 쌓는데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면천읍성은 조선시대 성을 쌓은 규정이 가장 잘 반영된 우수한 유적으로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읍성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 당진 면천읍성 안내판 [15:32]

 

▲ 면천읍성 서문터에 서 있는 면천군지 표지석 [15:32]

 

▲ 일단 성벽 위로 올라섰다 [15:36]

 

▲ 면천읍성 남문 원기루와 옹성 [15:38]

 

▲ 면천읍성 복원 관아 건물 [15:39]

 

▲ 면천읍성 남벽과 남문 옹성 [15:45]

 

▲ 면천읍성 옹성과 남문 [15:46]

 

▲ 성돌에 새겨진 글자 안내문 [15:50]

 

▲ 성돌 각자: 기미년 옥천시면 장육십척 사촌 [15:50]

 

▲ 면천읍성 서쪽 성벽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