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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북山行記

2021.10.05. [충북山行記 320] 충북 보은 속리산 수정봉

by 사천거사 2021. 10. 8.

속리산 수정봉 산행기

◈ 일시: 2021년 10월 5일 화요일 / 맑음

◈ 장소: 수정봉 568.5m / 충북 보은

◈ 코스: 관광안내소 주차장 → 보은 사내1리 산제당 수정봉 → 법주사  관광안내소 주차장

◈ 거리: 6.3km

◈ 시간: 2시간 51분





09:00  국립공원 속리산에는 천왕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 등 8개의 봉우리와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사호대 등 8개의 대가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 정말 오랜만에 수정봉을 찾아간다. 대학생 시절에 법주사 입장료를 아끼기 위해 수정봉을 거쳐 법주사 경내로 내려간 적이 몇 번 있었으니 거의 46년 만이다. 그 동안 수정봉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긴 46년 전의 모습이 전혀 기억에 없으니 지금 모습과의 비교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청주 율량동 출발, 산성터널을 지나 낭성면 소재지까지 신나게 달려왔는데 계기판에 경고등이 뜬다. 기름을 넣으세요. 기름 넣을 때가 되었구나. 그 순간 언뜻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없다. 지갑이 없다. 그것 참. 하는 수 없이 차를 돌려 집으로 와서 지갑을 챙긴 후 기름을 넣고 어쩌고 하니 거의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다시 가? 일단 마음 먹은 일이니 당연히 가야지.

 

다시 율량동 출발, 미원과 보은을 지나 누청삼거리에서 좌회전, 37번 국도와 505번 지방도를 타고 속리산 법주사를 향해 달려간다. 속리산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관광안내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소형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상가 거리, 코로나19에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하기가 그지없다. 달천 위에 놓인 속리교를 건넌 후 소형주자창 오른쪽을 따라 수정초등학교 쪽으로 걸어가자 오른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산제당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 청주 율량동 출발 [09:03]

 

▲ 청주 율량동 다시 출발 [09:56]

 

▲ 속리산 관광안내소 주차장에 주차 [11:05]

 

▲ 한산한 상가 거리 [11:08]

 

▲ 왼쪽 수정초등학교 가는 길로 진행 [11:15]

 

▲ 소형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 [11:16]


11:17  보은 사내1리 산제당 앞에서 안내문을 읽어본 후 오른쪽으로 나 있는 산길에 들어섰다. 길? 뚜렷하다. 사면을 거쳐 능선으로 올라서자 길이 더 뚜렷하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취수탑 왼쪽을 돌아 능선을 따라 잠시 올라가자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자리하고 있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사내리 상가지역과 알록달록한 수정초등학교가 내려다보이고 주먹바위가 있는 봉우리도 잘 보인다.


▲ 길 오른쪽에 있는 보은 사내1리 산제당 [11:17]

 

▲ 보은 사내1리 산제당 안내문 [11:18]

 

▲ 사면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 [11:18]

 

▲ 뚜렷한 능선길을 따라 진행 [11:23]

 

▲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취수탑 [11:24]

 

▲ 전망대에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 [11:30]

 

▲ 애벌레를 닮은 바위 [11:31]

 

▲ 전망대 조망: 알록달록한 수정초등학교 [11:31]

 

▲ 전망대 조망: 사내리 상가지역 [11:31]

 

▲ 전망대 조망: 주먹바위가 있는 봉우리 [11:32]


11:35  전망대를 떠나 수정봉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속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이 계속 모습을 드러내고 법주사 절집과 천왕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주능선도 자주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는 지난 9월 28일에 걸었던, 애기업은바위에서 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길은 계속 오르막, 암릉이나 바위를 우회하는 구간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길의 경사가 별로 없어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 오른쪽 사면을 가로질러 가는 길 [11:35]

 

▲ 걷기 좋은 능선길 [11:40]

 

▲ 상학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능선 [11:43]

 

▲ 문장대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11:44]

 

▲ 줌으로 당겨 본 법주사 절집들 [11:45]

 

▲ 왼쪽은 천왕봉, 오른쪽은 남산 [11:51]

 

▲ 커다란 바위 사이를 통과 [11:55]

 

▲ 왼쪽 조망: 애기업은바위에서 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11:59]

 

▲ 상수도수원지 뒤로 보이는 속리산 천왕봉 [12:00]

 

▲ 수정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12:07]


12:09  아무런 표지도 없는 해발 568.5m의 수정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남아 있는 여섯 개의 주춧돌은 무슨 건물이 있었다는 흔적인데... 그러고 보니 주변에 건물을 헐어내 쌓아둔 자재들이 보인다. 여기서 곧장 가는 길은 민판동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에 있는 봉우리가 가야 할 곳이다. 무심코 똑바로 나 있는 길로 진행하기 쉬우므로 미리 진행 방향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정봉과 높이가 거의 같은 오른쪽 봉우리에 널려 있는 바위에는 새겨진 글자가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水晶(수정봉)이라는 세 글자가 가장 뚜렷하게 보였다. 사실 오늘 수정봉을 찾은 것은 이 세 글자를 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水晶 세 글자를 확인한 후 봉우리를 떠나 묘봉 쪽으로 가는 길, 능선 오른쪽 아래에 있는 법주사 쪽으로 내려가는 뚜렷한 길이 두 번이나 나타났다.


▲ 해발 568.5m 수정봉 정상 도착 [12:09]

 

▲ 수정봉 정상에서 오른쪽에 있는 봉우리로 가는 길 [12:19]

 

▲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구간 [12:21]

 

▲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12:22]

 

▲ 바위에 새겨진 여러 글자들 [12:24]

 

▲ 바위에 새겨진 글자: 관찰사 이석규 [12:24]

 

▲ 바위에 새겨진 글자: 水晶(수정봉) [12:26]

 

▲ 바위에 새겨진 또 하나의 水晶(수정봉) 글자 [12:27]

 

▲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길 [12:28]

 

▲ 위로 보이는 것은 천왕봉, 아래로 보이는 것은 법주사 [12:30]


12:33  시간도 그렇고 해서 길 옆에 앉아 점심상을 차렸다. 쑥인절미에 치즈와 포도즙. 와, 오늘은 애플망고도 들어있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출발, 묘봉 쪽으로 잠시 걸어가다 걸음을 멈추고 잠깐 생각, 목표했던 수정봉을 들렀으니 굳이 계속 진행을 할 게 아니라 여기서 법주사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길은 없지만 오른쪽 사면을 따라 내려가면 될 것 같은데... 그리하여 10분 가까이 사면을 개척하며 내려간 곳은? 법주사 경내에 있는 절집 미룡선당 앞이었다. 하산 성공. 이제 천천히 법주사 구경이나 하자.


▲ 길 옆에 앉아 차린 점심상: 쑥인절미, 애플망고, 치즈, 포도즙 [12:33]

 

▲ 점심 먹고 조망: 문장대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12:58]

 

▲ 능선을 따라 잠시 진행하다가 [13:00]

 

▲ 오른쪽 사면을 따라 내려간다 [13:04]

 

▲ 뚜렷한 길이 나 있지 않아 대충 진행 [13:07]

 

▲ 개울을 건너간다 [13:09]

 

▲ 법주사 미룡선당 [13:12]

 

▲ 법주사 경내에서 바라본 수정봉 [13:16]


대웅보전

 

보물 제915호, 얕은 기단 위에 서 있는 중층인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총 120간,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대규모의 건축물이다. 내부에는 앉은키가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3신불(三身佛)이 안치되어 있다. 중앙에 봉안한 불상은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다는 진여의 몸인 법신 비로자나불상이고, 법신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안치한 불상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한 과보로 나타날 보신의 노사나불(노사나불)상이며, 우측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화신으로 나투신 석가모니불상이다.


▲ 대웅보전: 보물 제915호 [13:17]


법주사대웅전소조삼불좌상

 

2003년 2월 3일 보물 제1360호로 지정되었다. 불상 크기는 비로자나불 509㎝, 노사나불 492㎝, 석가모니불 471㎝이다. 점토로 만들어졌으며,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노사나불,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을 배치한 삼존불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1626년(인조 4)에 조성되었고, 1747년(영조 23)에 불상에 다시 금칠을 하였다.


법주사대웅전소조삼불좌상: 보물 제1360호 [13:19]


13:19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법주사는 보물 상자와 같다.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3점, 보물 12점, 충북 유형문화재가 21점, 문화재자료 1점이 법주사에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법주사 문화재 관람료가 비싼 편이다. 5,000원. 그래도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예전에 구례에서 성삼재로 올라가는 도로를 막고 천은사라는 절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한 적이 있다. 대법원에서까지 불법이라고 판결을 내렸는 데도 막무가내. 스님들도 돈맛을 보면 눈에 보이는 게 없는가 보다.

 

2005년 7월 주왕산에 오르기 위해 대전사에 들어가는데 문화재관람료 1,600원을 지불했다. 그때 대전사에는 어떤 문화재가 있었는가? 대전사 보광전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다. 국보나 보물도 아니고 도지정 유형문화재로 관람료를 받아먹고 있었던 것. 도지정 유형문화재로 관람료 받아먹는 게 염치가 없었는지 2008년 7월에 보광전을 보물로 지정받았다. 보물로는 보광전 달랑 하나 뿐인 대전사의 문화재 관람료가 현재 얼마인지 아는가? 3,500원이다. 국보 3점, 보물 12점이 있는 법주사 관람료가 5,000원인데 말이다.


사천왕석등

 

보물 제15호, 신라 성덕왕 19년(720년) 경 제작된 사천왕석등은 우리나라 석등의 정형이라고 할 수 있는 8각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높이 3.9m에 이르는 이 석등은 지대석, 하대, 중대(간주), 상받침대, 상대(화사석),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중요한 상대의 각 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어 사천왕석등으로 불리고 있다.


▲ 사천왕석등: 보물 제15호 [13:19]


쌍사자석등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은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10척에 이르는 8각석등으로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 서서 뒷발로 복련석을 디딤하여 앞발로 양련석을 받들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자가 디딤한 복련석은 8각 지대석 위에 놓여 있으며, 양련석 주위에는 이중으로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신라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신라시대 석조예술품 중 뛰어난 걸작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 쌍사자석등: 국보 제5호 [13:20]

 

▲ 금동미륵대불 [13:21]


팔상전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은 사찰 창건 당시에 의신대사가 초창했다고 전하며, 신라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02년부터 사명대사(송운 유정)와 벽암대사에 의해 조선 인조 2년(1624)에 다시 복원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1968년, 팔상전 해체 중수공사 시 중앙의 거대한 심주(心柱) 밑에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팔상전 건립 경위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전각 내부에는 사방 네 벽에 두 폭씩의 팔상도(석가여래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가 모셔져 있으며, 그 앞에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하고 불상 앞에는 납석원불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 팔상전: 국보 제55호 [13:22]


철확

 

신라 성덕왕 때 주조되었다고 전해오며 높이 1.2m, 직경 2.87m, 두께 10.8cm의 거대한 이 쇠솥은 신도 3만 명이 먹을 장국을 끓이던 솥이라고 하기도 하며,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이 솥을 이용하여 배식하였다고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보물 제1413호.


▲ 철확: 보물 제1413호 [13:24]


법주사 철당간

 

법주사 철당간은 고려 목종 9년(1006)에 16m 정도의 높이로 조성되어 약 900년을 이어오다가 고종 3년(1866) 흥선대원군이 당백전 주조를 명목으로 징발하여 역사에서 사라졌다. 현재의 철당간은 대한제국 순종 4년(1910)에 22m 높이로 복원된 것이다.


▲ 1910년에 복원된 법주사 철당간 [13:26]


석연지

 

국보 제64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연지는 신라 성덕왕 19년(720년) 경에 조성된 것으로서,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괴임을 만들고 다시 복련을 두른 굄돌을 올렸으며, 그 위에 구름을 나타낸 동자석을 끼워 연지를 받치고 있다. 원래 이 석연지는 법주사의 본당이었던 용화보전이 있었을 때 그 장엄품을 설치했던 것으로 극락정토의 연지를 상징하며 화강석으로 조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품 연화장으로 환희원만 영원무궁 상품상생 광도중생 무량수의 감로천이다. 높이 1.95m, 둘레 6.65m.


▲ 석연지: 국보 제64호 [13:27]


마애여래의상

 

보물 제216호, 마애여래의상은 사리각 옆 추래암(墜來岩) 암벽에 조각되어 있는 불상으로서 둥근 얼굴과 감은 듯이 뜬 눈, 그리고 두툼한 입술, 반듯한 어깨, 유난히 잘록한 허리 등 비사실적 추상성을 띠고 있다. 의자가 된 연봉은 연꽃잎이 불상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며, 발아래 지면에는 절반만 조각된 연화문상석이 놓여 있다. 전체 높이 6.18m, 연화대좌석 높이 2.84m, 평면 연화석 폭 2.27m.


▲ 추래암에 새겨진 마애여래의상: 보물 제216호 [13:28]


13:30  법주사 경내를 떠나 수정암 쪽으로 간다. 수정암은 법주사에 속해 있는 12개의 산내암자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암자가 본사에서 한참 떨어진 깊은 산중에 자리하고 있는 게 일반적이지만 수정암은 특이하게도 법주사 바로 옆에 있다. 수정암을 거쳐 다리를 건너자 왼쪽으로 일주문이 보인다. 속리산 자연관찰로를 따라가다 오리숲길에 들어섰다.

 

그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으로 돌아오다 차가 도로 턱과 부딪쳐 범퍼, 휠, 바퀴가 파손되었단다. 견인차를 불러 내가 이용하는 카센터로 보냈더니 그곳에서는 보험처리가 안 된단다. 다시 신봉동에 있는 아일공업사로 이동을 시키고 서둘러서 아일공업사로 달려갔다. 차량 수리와 보험 등에 관한 설명 내용을 듣고 아내 차에 있는 짐을 내 차로 옮기기 위해 내 차를 아내 차 옆으로 접근시키다 그만 앉아서 아내 차의 바퀴를 살펴보고 있는 직원의 등을 건드리고 말았다.

 

왜 사람이 안 보였지? 그 직원은 지금은 모르겠지만 자고 나면 어떨지 모르니 사고 접수를 해달라고 한다. 피해자가 원하니 어쩔 수 있나. 사고 접수를 시키고 나니 오늘 하루가 참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출발할 때 지갑을 가져가지 않아 한 시간을 허비한 일, 아내의 자차 사고, 나의 대인 사고. 하루에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세 번이나 일어났으니, 복무쌍지 화불단행(福無雙至 禍不單行)이 따로 없구나.


법주사 수정암

 

법주사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암자로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553년(백제 성왕 31년) 의신 스님이 법주사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914년에 태수 스님이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사용하는 대선방을 지었으며 1973년에는 극락전 등 암자 내 여러 전각이 건립되었다. 수정암 내 전각으로는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 진영각 등이 있고 입구에는 태수 스님의 부도와 행정을 기리는 탑비가 세워져 있다.


▲ 수정암 가는 길 이정표 [13:30]

 

▲ 금오대종사 부도와 석상대종사 부도 [13:30]

 

▲ 금오대종사 부도비 [13:31]

 

행복은 늘 단순하고 간소한 데 있다 [13:34]

 

▲ 법주사 일주문: 현판에 호서제일가람이라고 적혀 있다 [13:37]

 

▲ 속리산 자연관찰로를 따라 진행 [13:37]

 

▲ 속리산 조각공원 왼쪽으로 나 있는 길 [13:49]

 

▲ 속리산 오리숲길에 있는 인공폭포 [13:54]

 

▲ 산행을 마치고 관광안내소 주차장에 귀환 [13:58]

 

▲ 청주 신봉동에 있는 아일공업사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