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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국내 旅行

2021.02.06. [국내旅行 136] 전북 전주 고궁/덕진공원/한옥마을/치명자산 성지

by 사천거사 2021. 2. 11.

고궁-덕진공원-한옥마을-치명자산 성지 탐방기

◈ 일시: 2021년 2월 6일 토요일 / 흐림 포근한 날씨

◈ 장소: 고궁 / 덕진공원 / 한옥마을 / 치명자산 성지 / 전북 전주

◈ 코스: 청주 → 고궁 → 덕진공원 → 한옥마을 → 치명자산 성지 → 청주

 회원: 아내와 함께 


 

 



10:00  흔히 전주를 예향이라고 한다. 예술을 알고 행하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춤과 노래가 있고 고유한 전통 음식과 가옥이 있는 곳, 그런 전주를 오늘 찾아간다. 먼저 고궁에서 전주비빔밥을 점심으로 먹고 덕진공원과 한옥마을을 들른 후 치명자산 성지순례를 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날씨는 흐리지만 기온이 영상 12도까지 올라간다니 여행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청주 사천동 출발, 고속도로를 달려 전주에 들어선 후 전주비빔밥 전문식당인 고궁을 찾아갔다. 예전에 한 번 들렀던 곳인데 음식 맛이 좋아 오늘 다시 들른 것이다. 육회비빔밥을 주문했다. 아주 맵거나 짜지 않아 자극적인 맛은 덜하지만 여러 가지 재료가 잘 어울린 맛이 역시 전주비빔밥은 전주비빔밥이었다. 비빔밥은 김치, 불고기와 함께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 청주 사천동 출발 [10:10]

 

▲ 전주비빔밥 전문음식점 고궁 주차장에 주차 [11:51]

 

▲ 고궁 입구: 맛있는 녀석들에 나왔다네 [11:52]

 

▲ 고궁 영업시간표 [11:53]

 

▲ 고궁 전주비빔밥 메뉴 [11:54]

 

▲ 고궁 세트 메뉴 [11:56]

 

▲ 전주비빔밥 곁들이 반찬 [11:56]

 

▲ 고궁 실내 모습 [11:57]

 

▲ 육회비빔밥 비주얼 [12:00]

 

▲ 행복하십니까? [12:02]


12:42  맛있게 점심을 먹고 고궁 바로 옆에 있는 덕진공원으로 향했다. 덕진공원은 덕진호에 자라고 있는 연이 꽃을 피우는 7~8월이 가장 인기가 높은 시기이다. 겨울철인 지금은 그저 썰렁한 모습만 기대될 뿐, 그럼에도 덕진공원을 찾은 것은 지금부터 34년 전인 1987년 8월 우리 가족 네 명이 함께 방문했을 때 보며 느꼈던 좋은 인상이 추억 한쪽에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덕진공원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호수 중앙을 가로지르던 연화교가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 것, 40여 년 전에 설치했던 현수교를 전통 담장 형태의 석교로 탈바꿈시켰다. 안전성 문제 때문에 그랬다지만 예전 모습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추억을 빼앗겨버린 그래서 무언가 생소한 그런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덕진공원

 

덕진공원은 하나쯤의 사연을 간직한 추억의 장소이다. 전주시내에 위치하는 멋진 공원은 드넓은 호수를 안고 있다. 옛 전주 땅의 완산부에 도읍을 정한 후백제의 견훤이 풍수지리를 따라 땅을 파고 물을 끌어 연못을 만들었다고 하나 지금 형태는 고려시대에 들어 이루어진 자연호수로 보인다. 무엇보다 공원을 상징하는 경관은 여름날 호수 위를 가득하게 채우는 연꽃의 장관이다.

중심을 가르는 현수교를 따라 호수의 절반을 채우는 넓고 푸른 연잎과 그 위로 하얗게 피어나는 하얀색 연꽃은 찾아오는 모두를 감탄하게 만드는 장관이다. 뜨거운 햇빛의 여름날보다 보슬비가 내리는 호수 주변을 우산 아래 좋은 사람과 함께한다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 된다. 인근의 전북대학교 주변의 멋진 찻집과 함께하면 더욱 좋다.

 

[네이버 지식백과] 덕진공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 덕진공원 주차장에 주차 [12:42]

 

▲ 덕진공원 연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12:43]

 

▲ 덕진공원 호수 앞에서 [12:44]

 

▲ 덕진공원 호수 앞에서 [12:45]

 

▲ 호수에 만들어진 물그림자 [12:48]

 

▲ 징검다리도 새로 만들었네 [12:50]

 

▲ 청사초롱 트리 앞에서 [12:51]

 

▲ 덕진호수 물그림자 [12:51]

 

▲ 수령 240년의 왕버들 가지가 늘어져 있다 [12:52]

 

▲ 새로 조성된 연화교 앞에서 [12:54]


12:55  덕진공원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연밭이다. 지금은 철이 아니라서 호수를 덮고 있는 것이 바짝 마른 대궁뿐이지만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 상황은 돌변한다. 넓고 푸른 잎 사이로 긴 대궁을 올려 피는 백련과 홍련이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덕진공원을 떠나 한옥마을로 간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길게 늘어서 있는 차량들. 주차장에 차가 가득 찼는지 차량 한 대가 빠져나오면 한 대를 들여보내고 있다.


▲ 연밭 뒤로 보이는 전북대학교  [12:55]

 

▲ 연밭 뒤로 보이는 연화교 [12:56]

 

▲ 연지교 들머리에서 [12:59]

 

▲ 연지교에서 정자를 뒤에 두고 [13:00]

 

▲ 호수 중간에 있는 왕버들 [13:01]

 

▲ 왕버들을 뒤에 두고 [13:02]

 

▲ 연밭 위를 가로지르는 연지교 [13:03]

 

▲ 덕진공원 안내도 [13:06]


13:33  잠시 동안 인내심을 발휘한 끝에 한옥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생전처음 와본 전주 한옥마을, 그런데 이게 뭐야? 고풍스러운 한옥들이 모여 있을 곳이라고 예상했는데 완전 딴판이었다. 이곳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한옥마을이 아니라 한옥으로 지어진 집단 상가 지역이었다. 골목마다 한복 및 교복 대여점, 음식점, 숙박장소, 찻집 등이 즐비하다. 이게 아닌데...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한복을 입고 걸어가는 젊은 남녀 연인이 보인다. 누가 먼저 입자고 제안했을까? 나는 안다. 여기서 잠깐,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지금 보고 있는 한옥마을의 모습에 실망하면서 진짜 볼거리를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인 전동성당, 한옥마을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오목대, 보물 제308호인 풍남문 등을 그냥 지나친 것이다. 최명희 문학관을 들른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전주 한옥마을

 

전주시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걸쳐 700여 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진 전주 한옥마을은 1977년 한옥마을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우리 전통의 가옥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한옥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1930년대로, 양곡 수송을 위해 전군가도가 생기면서 전주부성이 허물어지자 서문 밖 천민 거주지역에 모여 살던 일본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와 상권을 형성하여 세력이 커지자 이에 대한 반발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지어 살기 시작했다. 한옥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목대에 올라 한옥마을 전경을 굽어보면 회색의 빌딩과 적산 가옥이 둘러싼 가운데에 팔작지붕에 검은 기와가 멋스러운 한옥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전동성당, 선조 때 지어진 전주향교와 이성계가 왜적을 무찌른 후 승전 기념으로 지은 오목대, 상류층 가옥의 전형적인 예로 민속자료 제8호인 학인당 등 문화유적을 비롯해 전통술박물관, 전통한지원, 한방문화센터 등의 전시관이 있고 소설 《혼불》의 작가 고 최명희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최명희 문학관, 전주전통문화센터도 꼭 들러야 할 한옥마을의 명소다.

한옥생활체험관에서는 하룻밤 묵으며 다양한 전통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전주 향교의 부속건물인 양사재와 조선의 마지막 황손이 머물고 있는 승광재가 같이 자리한 설예원, 전통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세헌, 넓은 마당이 인상적인 동락원에서도 한옥 체험 숙박이 가능하다. 다양한 테마의 공방들이 있어 볼거리도 많고 전통 찻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주 한옥마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 전주 한옥마을 주차장 [13:33]

 

▲ 전주 한옥마을 표지석 앞에서 [13:38]

 

전주 한옥마을에서 [13:40]

 

▲ 진정한 술꾼 [13:41]

 

▲ 한복을 차려입고 걸어가는 젊은 두 연인 [13:45]

 

▲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한복과 교복 대여점 [13:45]

 

전주 한옥마을 거리 [13:47]

 

▲ 전주 한옥마을 거리  [13:48]

 

▲ 전주 한옥마을 거리에서 [13:51]

 

▲ 전주 한옥마을 숙박 거리 [13:52]


13:53  길 옆에 최명희 문학관이 있어 들러보았다. 최명희는 아름다운 모국어로 전통문화와 민속, 풍습을 치밀하고 폭넓게 복원해낸 대하소설 혼불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쉽게도, 장장 17년 동안 혼불을 써내려가던 최명희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남으로 혼불은 미완성 작품으로 남아 있다. 수박 겉핥기식의 한옥마을 탐방을 마치고 치명자산 성지를 찾아간다.


최명희

 

최명희는 1972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72∼81년 전주 기전여자고등학교와 서울 보성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등단한 최명희는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 당선작인 〈혼불〉 제1부로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후 1988∼95년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5부를 연재했으며, 1996년 12월 제1∼5부를 전 10권으로 묶어 완간했다.


혼불

 

최명희(崔明姬)가 지은 장편소설.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제1부가 당선되어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다. 1988년 9월부터 제2부가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1995년 10월까지 만 7년 2개월 동안 계속되어,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 기록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1990년 12월에 제1부와 제2부가 네 권 분량으로 한길사에서 출간하였다. 이후 ≪신동아≫ 연재 부분과 새로 집필한 부분이 더해지고 기존 출간 부분도 대폭 수정 보완되어, 최종적으로 1996년 12월에 전 5부 10권으로 한길사에서 출간하였다.

 

이후 작가는 지병인 암이 악화되어 투병하던 중에도 제5부 이후 부분을 구상하고 자료를 정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끝내 집필하지 못하고 타계하여, 1996년에 간행된 판이 최종본이 되었다. 이 소설의 중심 이야기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지나는 동안 남원의 매안 마을과 거멍굴을 중심으로, 매안 이 씨 가문의 삼대를 이루는 청암 부인과 그 아들 이기채 부부, 손자 이강모, 허효원 부부, 그리고 거멍굴 천민인 춘복이 등이 주요 인물이 되어 펼쳐진다.


▲ 최명희 문학관 안내판 [13:53]

 

▲ 최명희 문학관 입구 [13:53]

 

▲ 최명희 문학관 [13:54]

 

▲ 최명희 문학관에서 [13:55]

 

▲ 최명희가 고하문예관을 방문했을 때 남긴 메모 [13:55]

 

▲ 살아 있든 죽어 있든 마스크 착용은 필수 [13:56]

 

▲ 이건 뭐지? [13:57]

 

▲ 아무리 보아도 참 좋은 글이다 [13:58]

 

▲ 전주 한옥마을 거리 [13:59]


14:17  치명자산 성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찾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주차장에는 꽤 많은 차량들에 세워져 있었다. 차도를 건너 성지 순례길에 진입, 파티마 성모동산을 지나 조금 올라가자 십자가의 길 첫 번째 기도처인 1처가 나타났다. 모두 14처로 이루어진 십자가의 길은 계속 오르막길이다.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신 길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치명자산 성지

 

이곳은 예부터 승암산(중바위산)이라 불렸는데 산정에 천주교 순교자들이 묻힌 이후로는 치명자산 혹은 루갈다산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이곳에는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 문화 수용을 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부인 신희, 동정부부로 순교한 큰 아들 유중철(요한)과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둘째 아들 유문석(요한),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마태오) 7분이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다. 

 

이분들은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때, 9월부터 4개월여에 걸쳐 전주 남문 밖(현 전동선당), 전주옥, 숲정이에서 처형되어 멸족되었다. 살아남은 노복과 친지들이 은밀하게 시체를 거두었으나 고향인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 땅에 묻히지 못하고 들 건너 재남리 바위백이에 가매장되었다. 그 후 1914년 4월 19일 전동 성당 보두네 신부와 신도들이(Francois Xavier Baudounet, 尹沙勿, 1859-1915) 이 산정에 모셨다. 선인들이 해발 300미터의 산정에 순교자들을 모신 뜻은 세계교회가 ‘진주 중의 진주’라고 찬탄하는 동정부부 순교자의 순결한 신심과 고매한 덕행, 그리고 숭고한 순교정신을 높이 기리고 그 님들이 전주를 수호해 주기를 기원함이었다. 이분들 가운데 다섯 분이 2014년 8월 16일 복자의 품위에 오르셨다.


전라북도 지방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된 순교자 묘 바로 밑에는 순교복자들의 순교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4년 5월 9일 건립된 기념 성당이 있고, 그 아래 왼편에는 가파른 산길을 걸으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십자가의 길이 오른편에는 전주교구 성직자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순교신앙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이 산은 진리의 뜻을 세운 사람과 순교자들을 흠모하는 순례자들에게는 믿음의 고향이며, 기도공원으로 사랑받는 한국의 몽마르트르(순교자산)이다.


▲ 치명자산 성지 주차장에 주차 [14:17]

 

위주치명(하느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침) 표지석 [14:18]


몽마르트르

 

프랑스 파리 시내에 있는 언덕. 해발 고도 130m의 언덕으로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다. 8세기경 파리 제1사교인 성 데니스와 승려 1명을 이곳에 있는 신전에서 고문을 가하여 사형을 시킨 일이 있어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고흐, 르누아르, 위트릴로 등의 화가들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사크레쾨르 대성당, 물랭루주 등의 카바레가 있는 관광 명소의 하나이다.


몽마르트르(순교자의 언덕) 표지석 [14:19]

 

▲ 치명자산 성지 안내문 [14:19]

 

▲ 치명자산 성지 안내도 [14:19]

 

파티마 성모동산 표지석 [14:20]

 

▲ 파티마 성모동산 앞에서 [14:22]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올라가는 길 [14:24]

 

▲ 십자가의 길 1처 앞에서 [14:26]

 

산상기념성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길 [14:37]


14:42 십자가의 길 마지막 기도처인 14처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자 넓은 광장이 나오고 다시 계단을 올라가니 산상기념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제대 뒤에서 은은한 불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타일 벽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성스럽다는 분위기가 더 넘쳐나는 그런 벽화였다. 소박하면서도 주변을 압도하는 기운이 성당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성당 위에 있는 넓은 광장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나타난 커다란 묘 하나, 바로 치명자산 성지의 순교자 묘였다. 이곳에는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 문화 수용을 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과 그의 처, 큰 아들 부부, 작은 아들, 제수, 조카 등 모두 7명의 순교자가 합장되어 있다고 한다. 하느님을 위해 거의 모든 가족이 목숨을 내놓은 것이다. 위주치명을 몸소 실천한 분들이다.

 

데크 전망대에서 흐릿한 전주시내 풍경을 바라본 후 자연이 만든 작품인 성모 마리아 바위를 감상했다. 단순하지만 보면 볼수록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 바위다. 치명자산 성지 순례를 마치고 주차장에 다시 돌아와 보니 아까보다 차량이 더 늘어난 것 같다. 이제 청주로 돌아갈 시간, 오늘은 날씨가 조금 흐린 것이 흠이었지만 대신 기온이 포근해서 나름대로 여행하기에 괜찮은 하루였다. 이상 전주 여행 끝. 


▲ 산상기념성당 [14:42]

 

▲ 성당 제대 뒤 타일 벽화가 이채롭다 [14:44]

 

▲ 타일 벽화 앞에서 [14:44]

 

▲ 천주교 순교자 묘 안내문 [14:46]

 

▲ 7명의 순교자가 묻혀 있는 묘소 [14:51]

 

▲ 예수 마리아 바위 안내문 [14:51]

 

▲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주 시내 [14:53]

 

▲ 성모 마리아 바위 앞에서 [14:56]

 

▲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소나무 숲 [15:07]

 

▲ 순례길을 다 내려오면 만나는 이정표 [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