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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국내 旅行

2020.08.30. [국내旅行 130] 경기 안성 미리내 성지→박두진 문학길

by 사천거사 2020. 9. 2.

미리내 성지-박두진 문학길 답사기

 일시: 2020년 8월 30일 일요일 / 맑음 구름 많음

 장소: 미리내 성지 / 박두진 문학길 / 경기 안성

 코스: 청주 사천동 → 천주교 미리내 성지 → 박두진 문학길  청주 사천동

 거리: 4.9km(박두진 문학길) 

◈ 시간: 1시간 12분(박두진 문학길)

회원: 아내와 함께    


 

▲ 미리내 성지 안내도

 

 

▲ 박두진 문학길 안내도

 

 

 

 


11:10  오늘은 주일이라 미사 참례를 하러 성당에 가야 하는 날이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늘어남에 따라 9월 4일까지 일시적으로 미사가 중단되었다. 성당에 갈 수 없다면? 그래, 여행도 할 겸 성지순례를 떠나자. 주일에 답답하게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더 낫지 않겠는가. 청주에서 비교적 거리가 가까우면서도 안 가본 성지가 어디에 있을까, 인터넷을 한참 뒤져서 찾아낸 곳은 바로 안성에 있는 미리내 성지였다. 미리내 성지는 우리나라 첫 번째 사제인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묘가 있는 곳이다.

 

청주 사천동 출발, 오창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북쪽을 향해 달려가다 남안성나들목에서 고속도로 탈출, 이번에는 지방도로를 따라 미리내 성지가 있는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를 향해 달려갔다. 미리내 성지 제1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는데 주차장 오른쪽에 있는 김대건 신부 동상 아래에서 한 여성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도하는 모습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아름답다.

 

성지 안내소 옆을 지나가는 것으로 본격적인 순례길 걷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길이 엉망이다. 파여나가고 유실되고... 지난 장마에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일을 하는 게 자연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순례길을 따라 묵주기도를 할 수 있는 기도처가 마련되어 있는 게 보인다. 묵주기도는 천주교에서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 양식으로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로 구성되어 있다. 


미리내 성지

 

경기도 안성에서 북쪽으로 40리쯤 떨어져 있다. 은하수라는 뜻의 아름다운 우리말로 불리우고 있는 미리내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우르술라, 김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성지에 들어서면 고요하면서도 편안함이 가슴에 와 닿는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지를 둘러보면 가슴이 깨끗해짐은 느낄 수 있다. 이곳이 미리내로 불리게 된 것은 천주교 신자들이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밤이면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하여 붙여졌다.

본래 미리내는 경기도 광주, 시흥, 용인, 양평, 화성, 안성 일대 등 초기 천주교 선교지역을 이루었던 곳의 하나이다. 따라서 김 신부가 미리내에 묻힌 지 50년 후인 1896년 비로소 본당이 설정됐을 때 이곳에는 이미 1천6백여명의 신자가 있었다. 26세의 나이에 처형당한 김대건 신부는 조정에서 장례마저 치르지 못하게 하여 처형당한 지 40일이 지난 다음에야 이민식 빈첸시오가 간신히 시신을 빼내어 남의 눈을 피하며 일주일을 등에 지고 이곳 미리내로 옮겨와 안장할 수 있었다.

 

미리내는 1972년부터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이 시작되고 1989년에 웅장한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이 완성되었다. 성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어는 것은 성지 한가운데 웅장하게 서있는 기념성당이다. 이 성당은 천주교 103위의 시성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김대건 신부의 무덤과 하악골(아래턱뼈)이 모셔져 있는 미리내성당, 김신부의 동상, 성모성당, 겟세마니 동산(여기저기 나뒹구는 바위를 자연 그대로 이용한 동산)등도 돌아볼만한 곳이다.


▲ 103위 순교 성인과 124위 순교 복자 부조 [12:23]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동상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드리는 모습 [12:23]

 

▲ 미리내 성지 표지석 [12:24]

 

▲ 미리내 성지 안내문 앞에서 [12:24]

 

▲ 미리내 성지 안내도 [12:25]

 

▲ 성지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12:26]

 

▲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1단 기도처 [12:27]

 

▲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 [12:30]

 

▲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곳 [12:31]


12:33  왼쪽 언덕에 있는 103위 시성 기념 성당이 보인다. 올라가 보니, 코로나19로 인해 성당 내부는 살펴볼 수 없었다. 이 성당은 1984년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우리나라 천주교 순교자 103위가 시성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성인 품위에 오른 순교자 103위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목숨을 맞바꾼 사람들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한 사람들이다.

 

성모당을 지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묘가 있는 경당 앞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최초 사제의 묘이지만 별로 화려하지 않고 무척 소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를 알리기 위해 활발한 전교 활동을 하다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 신부. 2019년 11월 유네스코는 제40차 총회에서 김대건 신부를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확정했다고 한다. 2021년은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3위 성인

 

한국의 초기 천주교회사는 곧 순교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혹한 박해를 받았고, 이에 따른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이 가운데 1839년 기해년부터 1846년 병오년 사이의 순교자 79위의 시복식(諡福式)이 1925년 7월 5일 거행되었고,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흥선대원군의 박해로 순교한 24위의 시복식이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되었다. 이로써 한국의 천주교회는 모두 103위의 순교복자(殉敎福者)를 지니게 되었다.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순교복자 103위 시성식(諡聖式)을 거행함으로써 이들은 복자에서 성인의 품위로 오르게 되었다. 103위의 구성을 보면, 김대건 신부(성인이 된 유일한 한국인 성직자)와 평신도 92명, 파리 외방전교회소속 선교사 10명(주교 3명, 신부 7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 103위 시성 기념 성당 [12:33]

 

▲ 103위 시성 기념 성당 [12:35]

 

▲ 103위 시성 기념 성당 [12:38]

 

▲ 십자가의 길 11처: 십자가에 못박힘 [12:39]

 

▲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 기념 경당: 1928년 7월 준공 [12:42]

 

▲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묘소 [12:43]

 

▲ 순례길 왼쪽 소나무숲 [12:45]

 

▲ 미리내 성지에서 은이 성지로 이어지는 트레킹 안내도 [12:46]

 

▲ 김대건 신부의 무덤이 있는 경당을 뒤에 두고 [12:48]

 

▲ 잔디밭 뒤로 보이는 103위 시성 기념 성당 [12:51]


12:55  103위 시성 기념 성당과 성모당을 바라보며 순례길을 계속 걸어간다. 길 왼쪽으로 묵주기도를 위한 기도처가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50분 정도 걸린 미리내 성지 순례를 마치고 주차장을 벗어나면서 점심 먹을 곳을 찾는데 광고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태웅이네 막국수. 미리내 성지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니 손님이 가득하다. 맛집인가? 명태막국수와 고기왕만두를 주문했다. 음식 맛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성지 순례도 했고 점심도 먹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차례인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없잖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를 만한 곳을 물색하다 금광호수에 조성되어 있는 둘레길을 찾아냈는데, 이름하여 박두진 문학길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트레킹 코스였다. 그럼 가볼까. 내비게이션을 켜고 안성시 금광면 오흥리에 있는 금광호수를 향해 달려간다.


▲ 103위 시성 기념 성당과 성모당 [12:55]

 

▲ 103위 시성 기념 성당 [12:58]

 

▲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 1단 기도처 [13:03]

 

▲ 미리내 성지를 떠나며 [13:10]

 

▲ 점심을 먹은 태웅이네 막국수 식당 [13:22]

 

▲ 태웅이네 막국수 식당 차림표 [13:26]

 

▲ 명태막국수 [13:37]

 

▲ 고기왕만두 [13:37]


14:48  박두진 문학길이 시작되는 수석정 앞은 주차공간이 그리 넉넉지 않아 오늘 같은 휴일에는 주차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수석정에서 조금 떨어진 하록동 버스정류장 옆 공터에 차를 세우고 수석정까지 걸어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수석정 앞 데크 길에 들어서는 것으로 박두진 문학길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호반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데크길이 걷기에 참 좋다.


금광호수

 

1965년 9월에 준공된 금광호수는 V자 계곡형 호수로서 물낚시와 얼음낚시가 잘 되어 겨울철 빙어 낚시터로 많이 찾는 곳이다. 도로에 인접해 교통이 편리하고, 좌대, 연안 낚시 모두 좋다. 봄철 산란기에는 최상류 수초밭에서 떡붕어 월척이 대량으로 낚이고 여름철에는 최상류보다는 중ㆍ하류에서 호황을 보인다. 포인트 이동이 쉽다. 또한 금광호수 주변에는 소문난 맛집들이 많고, 조각공원과 음악이 잔잔한 청학대 미술관도 둘러볼 수 있다. 금광호수를 끼고 산림이 우거진 도로변을 따라 진천방향으로 향하는 드라이브 코스도 일품이다. 경기도투어호텔로 지정된 금강모텔과 비치호텔 등 고급 숙박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 하록동 버스정류장 옆 공터에 주차 [14:48]

 

▲ 박두진 문학길 가는 길 표지판 [14:49]

 

▲ 수석정 앞 주차장을 차지한 차량들 [14:52]

 

▲ 박두진 문학길 들머리에 서 있는 안내도 [14:53]

 

▲ 데크길에 들어서는 것으로 문학길 트레킹 시작 [14:53]

 

▲ 잠시 흙길을 걷는다 [14:55]

 

▲ 물속에서 자라는 나무들 [14:56]

 

▲ 걷기 좋은 수변 데크길 [14:59]

 

▲ 데크길에서 바라본 금광호수 [15:00]

 

▲ 걷기 좋은 수변 데크길 [15:01]


15:02  금광호수는 양산 팔경 중 하나다. 양산 팔경에는 금광호수 외에 조금 전에 다녀온 미리내 성지, 비봉산, 죽주산성, 칠장사, 서운산, 석남사가 들어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자기 고장의 명승지를 팔경이나 구곡 등으로 정해 놓고 이를 널리 알리려고 노력을 한다. 그런데 내가 사는 청주는? 청주 팔경? 들어본 적이 없다. 자료를 찾아보니 조선환여승람에 서원 팔경이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 서원은 청주의 옛 이름이다.

 

수변 데크길이 끝나는 지점에 강건너빼리라는 이름을 가진 음식점이 있다. 둘레길이 생기기 전에는 이곳에서 음식을 먹기 위해 배를 타고 건너왔다고 한다. 강건너빼리, 이름이 좀 거시기하지만 맛집으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데크길이 끝나고 흙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아내와 잠시 헤어지기로 했다. 아내의 신발도 그렇고 해서 나머지 구간은 나 혼자서 다녀오기로 한 것, 경사가 조금 있는 언덕을 오른 후 혜산정 갈림길 지점에서 청록뜰 쪽으로 내려간다.


서원 팔경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청주의 형승(形勝)은 동남쪽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땅이 넓고, 인구가 조밀하며, 물이 공(功)자처럼 돌고, 현사(懸寺)가 강에 닿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환여승람에 나와 있는 서원팔경은 다음과 같다.

 

1경 상당귀운(上黨歸雲) 상당산 휘감아 도는 운해

2경 금천어화(金川漁火) 금천(무심천) 개울의 고기잡이 횃불

3경 선루제월(仙樓霽月) 비 개인 망선루에 걸린 달

4경 봉림조하(鳳林朝霞) 운천 봉림의 아침 아내

5경 석교석구(石橋石狗) 남석교의 돌로 만든 개

6경 동장철학(銅檣鐵鶴) 용두사지 철당간 위의 학

7경 우산목적(牛山牧笛) 우암산 목동의 피리소리

8경 낙가석조(洛伽夕照) 낙가산에서 본 저녁노을


▲ 수변 데크길에 있는 쉼터에서 [15:02]

 

▲ 쉼터에서 바라본 금광호수 [15:03]

 

▲ 걷기 좋은 수변 데크길 [15:04]

 

▲ 수변 데크길이 끝나는 지점에 서 있는 안내판: 미리내 성지와 금광호수는 양산팔경에 속한다 [15:08]

 

▲ 배 타고 가는 맛집 강건너빼리 [15:08]

 

▲ 흙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아내와 잠시 이별 [15:09]

 

▲ 청록뜰, 혜산정 쪽으로 진행 [15:10]

 

▲ 경사가 조금 있는 오르막길 [15:13]

 

▲ 갈림길 이정표: 청록뜰 쪽으로 진행 [15:15]

 

▲ 청록뜰로 내려가는 길 [15:16]


15:18  여러 대의 차가 서 있는 청록뜰 주차장에 내려섰다. 이름이 왜 청록뜰일까? 그렇다. 안성에서  태어난 시인 박두진이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공동시집인 청록집을 펴내면서 청록파의 일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이곳에다 청록뜰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학창시절에 열심히 외웠던 청록파 시인들의 시가 생각난다. 청록뜰에서 혜산정으로 가는 길은 널찍한 흙길이라 걷기에 아주 좋았다.


▲ 청록뜰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 [15:18]

 

▲ 청록뜰 표지판 [15:18]

 

▲ 청록뜰에 설치되어 있는 박두진의 시비 [15:19]

 

▲ 청록뜰에서 바라본 금광호수 [15:20]

 

▲ 걷기 좋은 둘레길 [15:22]

 

▲ 걷기 좋은 둘레길 [15:28]

 

▲ 혜산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 [15:31]

 

▲ 금광호숫가에 자리하고 있는 혜산정 [15:33]

 

▲ 혜산정에서 바라본 금광호수 [15:34]

 

▲ 혜산정에서 바라본 금광호수 [15:34]


15:38  혜산정에서 걸어 나오다 보니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샛길이 나 있는 게 보였다. 질러가는 길인 것 같다. 잠시 후 헤어졌던 아내와 다시 만난 후 수변 데크길을 걸어 차를 세워둔 곳에 도착하는 것으로 박두진 문학길 트레킹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302번 지방도를 따라 옥정재를 넘은 후 이월면에서 17번 국도에 진입했다. 5시 30분 청주 도착, 이렇게 해서 아내와 함께 한 미리내 성지 순례와 박두진 문학길 걷기 여정은 무사히 끝이 났다. 


▲ 오른쪽으로 갈라진 샛길을 따라 진행 [15:38]

 

▲ 샛길을 마감하고 다시 널찍한 길에 진입 [15:40]

 

▲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 도착 [15:41]

 

▲ 강건너빼리 음식점 [15:44]

 

▲ 수변 데크길에 진입 [15:45]

 

▲ 수변 데크길에서 [15:51]

 

▲ 길 옆에 있는 벤치에서 [15:53]

 

▲ 육각정자 수석정 [15:56]

 

▲ 하록동 버스정류장 [16:01]

 

▲ 박두진 문학길 트레킹을 마치고 차를 세워둔 곳에 귀환 [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