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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남山行記

2020.03.29. [충남山行記 133] 세종 전동 운주산

by 사천거사 2020. 3. 29.

운주산 산행기 

◈ 일시: 2020년 3월 29일 일요일 / 맑음 

◈ 장소: 운주산 457.7m / 세종시 전동면 봉대리 

◈ 코스: 운주산성 주차장 → 고산사 → 서문지 → 성벽길 → 운주산 → 성벽길 → 서문지 → 

           임도/도로 → 운주산성 주차장 

◈ 거리: 8.2km 

◈ 시간: 3시간 17분 

◈ 회원: 아내, 외손자들과 함께


 

 

 

 

 


08:50   외손자들과 함께 하는 산행 열여섯 번째, 오늘 산행의 대상지는 운주산이다. 운주산에는 산행 들머리에 의자왕과 백제 부흥군의 원찰로 자리매김한 고산사가 있고 백제 부흥운동군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운주산성이 있다. 운주산은 이미 여러 번 가본 곳이지만 고산사 쪽 코스는 거의 11년 만이다. 딸네 아파트 앞에서 아이들을 픽업한 후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조치원을 거쳐 고산사 주차장으로 가던 중 왼쪽에 새로운 주차장에 조성되어 있어 들어갔다.

 

운주산성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지 주차장 규모가 엄청나다. 주차장 한쪽에 서 있는 운주산 등산로 종합 안내도를 살펴본 후 데크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의 끝은 고산사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차도였다. 그렇다면 고산사 주차장까지 차도를 걸어가야 한다는 말인데... 그래, 오늘 산행 거리도 짧고 그러니 걸어가자. 시간이 조금 이른 탓인지 고산사 주차장으로 가는 차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운주산성 주차장에서 고산사 주차장까지 가는 데에는 17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 지금 바깥 온도는 영상 4도 [08:45]

 

▲ 새로 조성한 넓은 주차장에 주차 [09:39]

 

▲ 주차장 한쪽에 서 있는 운주산 등산로 안내도 [09:40]

 

▲ 데크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산행 시작 [09:40]

 

▲ 계단 끝에서 종현이가 주저앉았다 [09:42]

 

▲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 [09:44]

 

▲ 부안 임씨 쌍효 정려 [09:47]

 

▲ 부안 임씨 쌍효 정려 안내문 [09:48]

 

▲ 향토음식 체험장 '또바기' 표지석 [09:52]

 

▲ 포장도로 따라 계속 진행 [09:54]


09:57   승용차 몇 대가 서 있는 고산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일주문을 지나 고산사 경내로 들어갔다. 백제 부흥군의 원찰답게 고산사 절집에는 모두 후백제와 관련이 있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었다. 백제루, 백제삼천범종,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 백제극락보전, 도침당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원찰이란 사찰 가운데 창건주가 자신의 소원을 빌거나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건립하는 불교건축물을 말한다. 고산사는 1966년에 창건된 작은 사찰이지만 백제 부흥군을 새롭게 조명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산사

 

세종특별자치시 서북쪽의 운주산에는 고산사(高山寺)라는 크지 않은 절이 있다. 운주산(雲住山)은 글자 그대로 ‘구름이 머무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해발고도가 460m 정도이니 다른 고을에 있었다면 이렇게 번듯한 이름이 붙지는 못했을 듯하다. 고산사는 운주산 등산로 초입에 있다. 고산사는 1966년 창건됐으니 천년고찰이 수두룩한 마당에 역사랄 것도 없다. 게다가 고산사가 백제 부흥군의 원찰로 성격을 굳힌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해마다 10월에는 고산사에서 ‘백제 고산대제’가 열린다. ‘백제 부흥군을 위한 천도제’인 셈이다.

 

들머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왼쪽의 전각이 ‘백제루’(百濟樓)다. 절집 누각으로는 매우 독특한 이름이다. 백제루에는 ‘백제삼천범종’이 걸려 있다.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 나당연합군과 마지막까지 싸우다 비명에 숨진 백제 부흥군의 원혼을 위로하고자 조성한 범종이라고 한다. 마당으로 올라서면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百濟國 義慈大王 慰魂碑)가 눈에 들어온다. 위혼비 너머에 새로 조성된 전각은 ‘백제극락보전’(百濟極樂寶殿)이다. 당나라에 끌려가 세상을 떠난 의자왕과 백제를 재건하려다 산화한 부흥군의 극락왕생을 비는 의미일 것이다.


▲ 고산사 입구에 있는 주차장: 예전에는 이곳에 주차를 했었다 [09:57]

 

▲ 고산사 일주문 [09:57]

 

▲ 고산사 표지석 [09:57]

 

▲ 백제삼천범종 안내문 [10:00]

 

▲ 백제삼천범종이 있는 백제루 [10:00]

 

▲ 도침당: 도침은 백제 부흥운동을 한 승려의 이름이다  [10:01]

 

▲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 [10:02]

 

▲ 벡제극락보전 [10:03]

 

▲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 안내문 [10:04]

 

▲ 고산사에서 백제극락보전을 뒤에 두고 [10:04]


10:07   고산사 왼쪽에 있는 계류를 건너 운주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들어섰다. 걷기 좋은 흙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곧이어 돌계단길이 나타났는데 오르막 경사도 심하고 돌길이라 걷기가 만만찮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늦어지면서 길 옆에 있는 돌 위에 앉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은 조금 걸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올라가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서문지가 보이는 성벽 앞에 도착, 여기서 아이들은 길이 좋은 서문지 쪽으로 가고 나는 성곽 순환로를 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 고산사에서 나와 걷기 좋은 흙길에 진입 [10:07]

 

▲ 돌계단길이 시작되었다 [10:11]

 

▲ 종현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10:14]

 

▲ 벤치가 없어 돌 위에 앉은 아이들 [10:16]

 

▲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돌계단길 [10:20]

 

▲ 길 옆에 진달래는 무심히 피어 있고 [10:26]

 

▲ 서문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10:29]

 

▲ 삼거리 갈림길 이정표 [10:32]


운주산성(雲住山城)

 

운주산성은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송리 산90 일대에 있는 백제의 산성이다. 3210m 길이의 외성과 1,230m의 토축 내성이 이중성을 이루고 있으며, 문 터는 3곳이 확인된다. 1989년에 연기군에서는 상징탑을 세우기도 했다. 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79호로 지정되었으나,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의 기념물 제1호로 재지정되었다.

 

운주산성은 북으로 천안, 청주는 물론 아산만을 한눈에 내려달 볼 수 있는 중요한 군사적 거점지역에 축조하였다. 축조시기는 백제시대로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풍왕과 복신, 도침장군을 선두로 일어났던 백제부흥운동군의 최후의 구국 항쟁지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의현 고적조에 간단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조선초기에는 이미 폐성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운주산성은 내성과 외곽성이 함께 갖추어져 있으며 성내에서 백제시대 기와편이 출토되고 있다.


▲ 운주산성 서문지 쪽으로 가고 있는 아이들 [10:34]


10:35   아이들을 운주산성 서문지 길로 보낸 후 혼자서 성벽을 따라 나 있는 성곽 순환로에 들어섰다. 경사가 조금 있는 성벽길을 올라가자 왼쪽으로 공사현장이 보였다. 아, 예전에 있는 팔각정자가 낡아 다시 짓는 거구나. 성벽길은 걷기에 좋은 편이다. 길 오른쪽 사면으로는 흩어져 있는 성돌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서문지와 함께 복원이 잘 되어 있는 동문지를 지나자 다시 오르막길이다. 길 옆에 활짝 피어 있는 진달래꽃의 색갈이 참 곱다. 그런데 오늘 날씨는 왜 이렇게 좋은 거야. 


▲ 성곽 순환로 통나무 계단길에 진입 [10:35]

 

▲ 예전에 있는 팔각정자가 낡아 신축하는 모양이다 [10:37]

 

▲ 요즘은 어느 산에 가나 진달래가 만발 [10:40]

 

▲ 걷기 좋은 성곽순환로 [10:44]

 

▲ 길 오른쪽 사면에 흩어져 있는 성돌들 [10:46]

 

▲ 운주산성 동문지 주변도 복원이 되어 있다 [10:50]

 

▲ 운주산성 안내문 [10:51]

 

▲ 청송약수터 갈림길 이정표: 운주산 정상 쪽으로 진행 [10:51]

 

▲ 진달래꽃의 색깔이 참 곱다 [10:52]

 

▲ 사면에 흩어져 있는 성돌들 [10:53]


10:58   운주산 정상 아래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벌써 도착했을 리는 없고 먼저 정상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운주산 정상에는 정상 표지석이 없고 대신 '고유문'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다. 고유문은 국가나 일반 개인의 집에서 큰일을 치르고자 할 때나 치른 뒤에, 그 이유를 신명(神明)이나 사당(祠堂)에 모신 조상에게 고하는 글을 말한다. 무슨 이유로 '고유문' 표지석을 산 정상에 세워 놓았는지 모르겠네.

 

내가 운주산 정상에 도착한 지 20분이 넘어서야 정상으로 올라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뭐, 괜찮다.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고유문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운주산 정상은 전망이 좋은 곳으로 망경산과 동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림산에서 망경산을 거쳐 운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이전에 두 번 걸은 적이 있다. 오늘은 휴일이라 그런지 운주산을 찾은 사람들이 꽤 많다. 그래, 코로나19로 활동 기회가 줄어든 요즘, 산에라도 와서 스트레스를 풀어야겠지.


▲ 운주산 정상 바로 아래에 서 있는 이정표 [10:58]

 

▲ 운주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고유문' 표지석 [11:00]

 

▲ 운주산 정상에서 바라본 망경산과 동림산 [11:00]

 

▲ 운주산 정상에 서 있는 이정표 [11:03]

 

▲ 운주산 정상부에 있는 백제의 얼 상징탑 [11:02]

 

▲ 아이들이 올라오고 있다 [11:20]

 

▲ 고유문 제단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 [11:24]

 

▲ 백제의 얼 상징탑에서 [11:36]

 

▲ 백제의 얼 상징탑 앞에서 [11:36]

 

▲ 백제의 얼 상징탑 건립기 [11:39]


11:40   운주산 정상에서의 하산은 오른쪽 성곽 순환로를 따르기로 했다. 백제의 얼 상징탑 뒤에 서 있는 '성곽로' 표지판이 하산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흩어져 있는 성돌을 보며 걷는 성곽로는 두어 번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하지만 대부분이 내리막길이라 걷기에 좋은 편이다. 게다가 성곽로에는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롯이 우리들 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서문지 앞에 도착했다. 얼마 안 되는 공간에 차량이 가득하다. 이들은 운주산에 온 사람들이 아니라 운주산성에 온 사람들이다.


▲ 오른쪽 성곽로를 따라 하산 시작 [11:40]

 

▲ 성돌이 흩어져 있는 성곽 순환로 [11:44]

 

▲ 운주산성 1km 전 이정표: 운주산성은 서문지를 말한다 [11:47]

 

▲ 걷기 좋은 성곽 순환로 [11:53]

 

▲ 열심히 걷고 있는 첫째 [11:59]

 

▲ 빨리 오세요 [12:04]

 

▲ 서문지에 내려서면 만나는 이정표 [12:07]

 

▲ 차량들이 많이 서 있는 서문지 주차장 [12:07]

 

▲ 서문지 앞에 서 있는 이정표: 임도 따라 진행 [12:08]


12:08   서문지에서의 하산은 아까 올라올 때 이용했던 돌계단길 대신 임도를 따르기로 했다. 가끔 차량이 오가기는 하지만 임도라 걷기에 좋다. 30분 조금 더 걸려 사방댐에 조성되어 있는 데크 산책로에 도착했고 여기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도 올라올 때 이용했던 차도 대신 마을길과 마을 도로를 이용했다. 3시간 17분 걸린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주차장에 도착한 후 차에 올라 청주 아파트로 돌아온 시각이 1시 45분이었다. 얘들아, 배고프다. 우리 빨리 점심 먹자.


▲ 길 오른쪽에 서 있는 운주산성 표지석 [12:08]

 

▲ 비포장 임도따라 진행 [12:13]

 

▲ 봉대리로 가는 임도 갈림길 이정표: 미곡리 쪽으로 진행 [12:19]

 

▲ 쉼터용 정자가 보인다 [12:25]

 

▲ 임도를 따라 내려오고 있는 아이들 [12:28]

 

▲ 사방댐에 설치되어 있는 데크 산책로 [12:40]

 

▲ 차도 대신 마을길로 진행 [12:44]

 

▲ 마을 도로를 따라 진행 [12:53]

 

▲ 차를 세워둔 운주산성 주차장에 도착 [12:56]

 

▲ 지금 바깥 온도는 영상 20도 [1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