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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북山行記

2020.01.29. [충북山行記 226] 충북 청주 단재산→가래산

by 사천거사 2020. 1. 29.

단재산-가래산 산행기

◈ 일시: 2020년 1월 29일 수요일 / 맑음 구름 많음

◈ 장소: 단재산 452m / 가래산 543.2m / 충북 청주

◈ 코스: 32번 지방도 귀래리 입구 → 단재 신채호 묘소 → 단재산 → 문박리 → 가래산 → 

           512번 지방도 무송2리 입구

◈ 거리: 14.1km

◈ 시간: 4시간 26분


 

 

 

 


09:55   오늘은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 있는 산줄기를 걸어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지도를 살펴보니 원점회귀가 어려운 코스라 오늘은 시내버스를 이용해 다녀오기로 했다. 아파트 앞에 있는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511번 버스에 탑승한 후 10시 35분에 상당공원 승강장에서 미원으로 가는 211번 버스로 환승을 했다. 평일 오전이라 처음에는 승객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육거리 승강장에서 육거리시장을 보고 미원으로 가는 주민들이 꽤 많이 버스에 올랐다.

 

나는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운전기사의 언행이 너무나 꼴사나워 그의 행태를 몇 가지 적어본다. 하나, 버스 앞을 달리는 차량의 속도가 느리거나 하면 경음기를 울리는데 전자게임에서 프로 선수들이 버튼을 두들기는 것보다 더 빨리 눌러댔다. 왜 앞에서 얼쩡거려, 빨리 비켜. 둘,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이 조금 늑장을 부리다 문이 닫힌 다음에 다시 내려달라고 했더니 입에서 '씨~'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왜 빨리 안 내리고 귀찮게 하는 거야. 셋, 한 할머니가 버스 카드가 작동이 안 되어 2,000원을 돈통에 넣었는데 거스름돈이 500원이 나왔다. 왜 거스름돈이 500원만 나와요? 짜증이 가득한 기사의 답변, 아니 버스 요금이 1,500원으로 오른 게 언젠데 그래요. 그러면 지금까지 1,300원만 내고 다녔다는 거야? 자기 어머니 뻘인데 숫제 반말이다.

 

그 버스 기사는 한 마디로 말하면 짜증으로 똘똘 뭉쳐진 그런 인간이었다. 자신을 스트레스 속으로 끝없이 밀어 넣는 그런 사람이었다. 계속 저렇게 산다면 조만간에 머리 빡빡 밀고 항암치료를 받을 확률이 강 건너 불 보는 것보다 더 높아질 것 같다. 운이 좋았는지 그 기사는 효촌삼거리에서 다른 기사와 교대를 했다.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순간이었다. 귀래리에 있는 고드미마을 가는 길 입구 버스 승강장에서 하차, 차도를 따라 고드미마을 쪽으로 걸어간다. 버스 승강장에서 고드미마을까지 가는 데에는 30분 정도가 걸렸다.


▲ 아파트 앞에 있는 시내버스 승강류장 [09:56]

 

▲ 상당공원 버스 승강장에서 211번 버스를 기다리는 중 [10:20]

 

▲ 고드미마을 입구 귀래리 버스 승강장에서 하차 [11:25]

 

▲ 고드미마을 가는 길 이정표 [11:25]

 

▲ 길 양쪽으로 보이는 태극기 [11:27]

 

▲ 길 왼쪽에 있는 무죽바위방죽 [11:34]

 

▲ 길 왼쪽으로 보이는 귀래리 복지회관 [11:48]


고드미정보화마을

 

고드미정보화마을은 충북 청주 관정1,2리(할뫼, 묵정), 귀래리(큰고드미, 동녘골, 시골, 작은 고드미), 호정1,2리(호정, 전하울) 3개 리, 8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8개 마을은 청주의 동남쪽, 속리산 가는 방면으로 30여분 거리에 있다. 한강최상류에 위치한 마을들은 이 인근에서도 청정지역으로 예로부터 유명하며, 친환경농업을 통해 고소득을 올리는 마을로 청정지역의 생태를 보전하고 안전한 먹을거리 생산을 위해 지금도 노력을 다하고 있다.


▲ 고드미 녹색마을 안내판 [11:54]


11:54   고드미마을에서는 예전에 체험활동을 하는 사업을 벌였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중단된 상태로 보였다. 말해 무엇하랴. 농촌마을에서 야심 차게 시작했다가 용두사미 격으로 끝난 사업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당과 묘소를 둘러보았다. 신채호 선생은 대전시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난 후 8세부터 이곳 고두미마을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소박하게 꾸며져 있는 묘소와 사당을 둘러본 후 단재산을 오르기 위해 조금 떨어져 있는 동역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청주 신채호 사당 및 묘소

 

청주 신채호 사당 및 묘소(淸原 申采浩 祠堂 및 墓所)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 있는, 일제강점기시대 독립운동가, 역사가, 언론인이었던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사당 및 묘소이다. 1993년 11월 5일 충청북도의 기념물 제90호로 지정되었다. 신채호 선생은 20세에 성균관박사가 되었으며, 황성신문의 기자로 논설을 쓰며 불법적인 을사조약 체결을 단호히 배격하였고, 대한매일신보에 초빙되어 주필로서 국권회복, 민족의식 고취에 공헌하였다.

 

28세 무렵에 이동녕,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였으며, 1910년 해외에 망명한 후 본격적으로 국사 연구에 힘써『조선상고사』,『조선사연구초』등의 저서들을 집필하였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수립 후에는 의정원 전원위원장으로 독립운동에 힘을 기울였고, 1929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여순(旅順)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순국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되었고, 1978∼1979년 사이에 묘역을 정화하고 이 곳에 사당을 세웠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간결한 맞배지붕집이다. 정면에 ‘단재영각(丹齋影閣)’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사당 앞에 ‘정기문(正氣門)’이라 이름 붙인 대문을 세우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묘소는 선생이 어린 시설에 살던 옛 집터에 안장한 것으로, 묘역에는 한용운 등이 세운 묘표석과 1972년 세운 사적비가 있다.


▲ 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 및 묘소 표지판 [11:54]

 

▲ 단재기념관 [11:55]

 

▲ 사당 안내도 [11:55]

 

▲ 신채호 묘소 [11:58]

 

▲ 신채호 사당 '단재영각' [12:00]

 

▲ 신채호 동상 [12:01]

 

▲ 길 옆에 웬 물고기? [12:05]

 

▲ 차도에서 동역골로 가는 길 왼쪽으로 갈라지고 있다 [12:07]

 

▲ 동역골 마을 [12:16]


12:17   널찍한 임도에서 벗어나 왼쪽으로 보이는 묘지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주 신씨 묘원을 지나 몇 개의 무덤을 거친 후 임도로 내려섰고 임도를 건너 다시 능선에 올라붙었다. 능선을 따라 오래된 무덤들이 계속 나타났다. 고색이 창연한 묘비가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역력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해발 452m의 단재산 정상에는 표지판과 함께 도요새 님의 표지기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표지기 색깔을 보니 다녀가신 지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 임도에서 벗어나 왼쪽으로 진행 [12:17]

 

▲ 아주 신씨 묘원 [12:22]

 

▲ 숙부인 동래 정씨 묘소 [12:25]

 

▲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는 석물들 [12:30]

 

▲ 임도 건너 다시 능선으로 [12:31]

 

▲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는 묘비석 [12:33]

 

▲ 능선을 따라 걸어간다 [12:36]

 

▲ 해발 452m의 단재산 정상 표지석과 도요새 님의 표지기가 보인다 [12:42]

 

▲ 단재산 정상에 박혀 있는 삼각점 [12:42]


12:45   단재산 정상을 떠나 능선을 따라 걸어간다. 올겨울은 눈도 없고 날씨도 따뜻하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정말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오른쪽으로 출입을 금지하는 줄이 두 가닥 쳐져 있는 게 보인다. 다시 만난 임도를 건너 능선으로 올라선 후 능선을 따라가다 표지기 몇 개가 매달려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서 제법 길이 뚜렷한 왼쪽으로 진행을 했더니 벌목 지대가 나타나고 도로를 따라 마을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마을을 문박리 마을로 생각하고 도로를 따라 열심히 내려가는데...


▲ 단재산 정상을 떠나 다시 능선길에 진입 [12:45]

 

▲ 길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 [12:50]

 

▲ 걷기 좋은 능선길 [12:55]

 

▲ 출입을 금지하는 줄 두 가닥이 보인다 [12:58]

 

▲ 임도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13:04]

 

▲ 표지기가 매달려 있는 갈림길 지점: 오른쪽으로 가야하는데 왼쪽으로 잘못 진행 [13:11]

 

▲ 능선을 따라 진행 [13:15]

 

▲ 벌목지대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13:18]

 

▲ 작은 소류지에 비친 풍경 [13:21]

 

▲ 마을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13:22]


13:26   계속 이어지는 포장도로,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지금 가는 길은 신채호 사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허,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나? 아하, 아까 표지기가 매달려 있던 곳에서 오른쪽으로 갔어야 하는구나. 발걸음을 돌려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니 커다란 비닐하우스 두 동이 보이고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흐릿하게 나 있었다. 아까 놓쳤던 길을 다시 찾아 잠시 진행하다 문박리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무덤 옆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출발, 문박리로 내려가는 길에는 잣나무 묘목 단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 포장도로를 따라 능선 쪽으로 [13:26]

 

▲ 길 왼쪽으로 보이는 대형 비닐하우스 두 동 [13:33]

 

▲ 멧돼지가 목욕하는 곳인 듯 [13:39]

 

▲ 마침내 능선에 올라섰다 [13:45]

 

▲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무덤 발견 [13:50]

 

▲ 무덤 옆에서 오메기떡, 빵, 요구르트, 커피로 점심을 먹고 [13:54]

 

▲ 점심 먹고 출발 [14:06]

 

▲ 길 옆에 펼쳐져 있는 잣나무 묘목 재배 단지 [14:10]

 

▲ 잣나무 묘목 재배 단지 [14:13]

 

▲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 [14:14]


14:20   문박리 마을에 도착했다. 상의원직장 신간의 유허비 뒤로 아주 신씨 직장공파 세거비가 보인다. 마을도로를 따라 초정 쪽으로 진행하다 왼쪽을 갈라지는 도로에 진입, 벌목지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른쪽으로 무덤이 보이는 곳에서 임도를 벗어나 무덤 위에 올라서니 문박리 삿갓말 방면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벌목을 한 지역이라 능선을 따라 나무들이 서 있을 뿐 양쪽 사면은 허허벌판이다. 능선을 따라 계속 나타나는 무덤들, 묘비를 보니 벼슬 깨나 한 사람들의 무덤인 것 같은데 지금은 그저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는 평범한 무덤일 뿐이다.


아주 신씨(鵝洲 申氏)

 

아주 신씨(鵝洲 申氏)는 경상남도 거제시 아주동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아주 신씨(鵝洲 申氏)의 시조 신익휴(申益休)는 평산 신 씨의 시조인 신숭겸(삼능산)의 12세손으로,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랑(文下侍郞)에 오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아주군(鵝洲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조선 순조 때 도와(陶窩) 신정주(申鼎周)가 저술한 『호서기행』에 의하면 1817년(순조 17) 공주의 김노정(金魯定)이 『만성보』를 만들 때 신익휴라는 가공 인물을 평산 신씨의 시조인 신숭겸(申崇謙)과 연계시켜 위조했다고 한다. 조선 영조 때 편찬된 『문헌비고』와 1924년에 발행된 『조선씨족통보』에는 고려 때 아주현의 권지호장(權知戶長)을 지낸 신영미(申英美)가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아주 신씨 대종회는 1589년(선조 22) 편찬된 《대동운부군옥》에 아주 신 씨가 평산 신씨로부터 분관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점, 1666년에 간행된 《호계공유집》에 익휴가 시조로 기록된 사실 등을 들어 익휴를 시조로 삼고 있다. 신영미는 신익휴의 아들이라고 한다.


▲ 문박리에 있는 상의원직장 신간의 유허비 [14:20]

 

▲ 아주 신 씨 직장공파 세거비 [14:20]

 

▲ 문박리 버스 승강장 [14:22]

 

▲ 차도에서 벗어나 왼쪽으로 진행 [14:28]

 

▲ 포장도로에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에 진입 [14:31]

 

▲ 임도에서 벗어나 오른쪽에 있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14:38]

 

▲ 무덤 위에 올라 뒤돌아본 문박리 삿갓말 방면 [14:43]

 

▲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무덤들 [14:44]

 

▲ 벌목지대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느 길 [14:48]

 

▲ 나무 사이로 보이는 벌목지대 풍경 [14:55]


14:56   아름다운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능선길을 한동안 걸어가자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서 있는 가래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543.2m의 가래산 정상에는 손으로 쓴 정상 표지판과 도요새 님의 표지기가 철망에 매달려 있었다. 태봉산이라고도 하는 이 가래산은 2014년 10월과 2015년 1월에 오른 적이 있다. 원래는 이곳에서 리틀봉, 인경산, 갈매봉을 연계하는 산행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었는데 시간적으로 무리일 것 같아 오늘은 여기서 산을 내려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가래산에서 태봉말 쪽으로는 길이 잘 나 있는 편이었다.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은 무시하고 계속 능선을 따라 걸어갔다.


▲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14:56]

 

▲ 길이 뚜렷하고 걷기에 좋다 [15:01]

 

▲ 가래산 정상으로 가는 길 [15:07]

 

▲ 가래산 정상에 서 있는 무인산불감시카메라 [15:09]

 

▲ 철망에 매달려 있는 가래산 정상 표지판 [15:09]

 

▲ 가래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 [15:12]

 

▲ 길 오른쪽으로 보이는 벤치 [15:17]

 

▲ 통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길 [15:18]

 

▲ 길이 아주 뚜렷하다 [15:23]

 

▲ 걷기 좋은 능선길 [15:25]


15:31   길 왼쪽으로 보이는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 조금 걸어가자 나뭇가지에 매달린 표지기 하나가  보였다. 그렇다면 지금 제대로 갈 가고 있다는 말인데... 철조망을 만나 오른쪽 방향으로 진행하자 길이 사라졌다. 이제부터는 대충 알아서 내려가야 한다. 잠시 후 아래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담장 때문에 왼쪽으로 트레버스를 한 끝에 마침내 어렵사리 포장도로에 내려섰다. 여기가 어디지? 길 옆에 서 있는 간판에 식별이 힘든 '장애인 표준 사업장 생활낙원'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게 보였다. 장애인 표준 사업장은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 재활법’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장애인이 근로하기에 적합한 생산 시설을 갖춘 사업장을 말한다. 이곳은 현재 문을 닫은 상태였다.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자 눈에 익은 곳이 나타났다. 낭성면소재지에서 명암저수지로 이어지는 512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무성교 앞이었다. 시내버스 승강장에 들러보니 인경리 종점에서 청주의료원을 순환하는 864번 버스가 운행 중이었다. 40분 넘게 기다린 끝에 4시 34분에 864번 버스에 올랐고 5시 25분에 지하상가 앞에서 환승을 해 아파트로 돌아온 시각이 5시 50분, 이렇게 해서 청주시 낭성면의 한 산줄기를 답사한 2020년 1월의 마지막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 길 왼쪽으로 보이는 자작나무 군락지 [15:31]

 

▲ 오랜만에 표지기를 하나 만났다 [15:34]

 

▲ 철망 오른쪽을 따라 진행 [15:39]

 

▲ 길이 애매해졌다 [15:41]

 

▲ 나무 사이로 건물이 보인다 [15:44]

 

▲ 길이 막혀 왼쪽을 따라 트레버스 하는 중 [15:47]

 

▲ 산길을 마감하고 포장도로에 내려섰다 [15:50]

 

▲ 512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무성교 앞에 도착 [15:52]

 

▲ 낭성면소재지에서 명암방죽으로 이어지는 512번 지방도 [15:52]

 

▲ 시내버스 승강장에 있는 864번 시내버스 노선도 [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