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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포르투갈 길

2019.05.01. [산티아고 까미노 포르투갈 길 9] 파티마 관광

by 사천거사 2019. 5. 1.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길 9

 

일시: 2019년 5 1일 수요일 / 흐린 후 맑음

장소: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길 / 포르투갈

 코스: 토마르 → 파티마  토마르

 거리: 0km / 걸은 거리 155.5km

 시간: 0시간 0





파티마


레이리아 남동쪽 29㎞ 지점의 코바다이리아 고원에 있다. 12세기에 무어 공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1917년 이래 세계적으로 가장 큰 성모 마리아 성지가 되었다. 파티마는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로,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성모 발현의 역사는 1917년 5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 명의 어린 목동 루치아(10세), 야신타(7세), 프란시스쿠(9세)의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서 세 가지 예언을 했고, 죄인들의 회개 기도와 로사리오에 대한 기도를 당부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비밀을 굳게 지켰지만, 성모 마리아가 매월 13일 여섯 차례 나타난다는 소문이 나면서 13일이 되면 몇 천 명의 신도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에 포르투갈을 분열시키려는 음모라면서 아이들은 감금됐다.


성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발현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성모가 나타나기로 한 마지막 날인 10월 13일, 자리에 모인 약 7만 명의 사람들 앞에 거대한 빛이 나타나면서 성모 발현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처음부터 성모 발현과 예언을 교황청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1930년 레이리라 주교가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바티칸 교황청에서도 성모 발현지로 인정하였고 파티마는 세상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전국적인 규모의 파티마 성지순례는 1927년에 처음 이루어졌다. 1928년에 바실리카가 건축되기 시작했고, 1953년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65m 높이의 탑 위에 거대한 청동 왕관과 수정 십자가가 있으며, 교회당의 양측면에는 병원과 피정의 집이 있고, 정면에는 작은 성모 마리아 출현 예배당이 있는 거대한 광장이 있다. 기적적인 치유사건이 많이 보고되었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1967년 5월 13일 첫 출현의 50주년 기념일에는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군중들이 교황 파울루스 6세가 평화를 기원하며 집전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운집했다.




06:00   오늘은 까미노 걷기를 하루 쉬고 파티마 성지를 다녀오기로 한 날이다. 산타렝에서 파티마까지 직접 걸어서 가는 순례길 코스가 있지만 그 길을 택하면 산타렝에서 이곳 토마르로 오는 까미노를 걷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 토마르에서 버스로 파티마를 다녀오는 일정을 잡는다. 어제 성당 앞에서 만났던 순례자 3명도 같은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호스텔 식당에서 빵과 오렌지 주스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파티마를 다녀올 준비를 했다.


토마르 버스터미널에서 파티마로 가는 첫 버스는 7시 50분에 있다. 토마르로 돌아올 때는 파티마에서 3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그런데... 파티마에 함께 가기로 한 다렐이 버스 출발시간이 7시 30분이라고 한다. 그래? 7시 50분이 아니고?  그랬다.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7시 30분에 첫 버스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이 주말은 아니잖아? 뭐지? 오늘은 5월 1일 수요일. 노동절로 공휴일이었다. 늑장을 부리고 있다가 부리나케 준비를 마친 다음 10분 거리에 있는 토마르 버스터미널을 향해 걸어갔다.


7시 30분에 출발하는 파티마행 버스 승객은 순례자 다섯 명에 일반인이 한 명이었다. 조금 이른 시각이라 승객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운전기사는 여성이고 버스 요금은 왕복 6.90유로였다. 토마르에서 파티마까지 거리는 약 18km. 정시에 버스가 출발했다. 오우렝(Ourem) 마을 버스터미널에 들렀다. 꽤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오른다.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인 것 같다. 토마르 버스터미널에서 파티마 버스터미널까지 이동을 하는 데에는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 2300 토마르 호스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 [06:34]


▲ 요리할 시간입니다 [06:36]


▲ 빵과 잼, 오렌지 주스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06:37]


▲ 맛있게 드세요 [06:44]


▲ 2300 토마르 호스텔 출발 [06:57]


▲ 토마르 버스터미널 도착 [07:07]


▲ 토마르와 파티마를 오가는 버스 시간표 [07:08]


▲ 우리가 타고 갈 버스 [07:18]


▲ 오우렝 마을 버스터미널에 잠시 정차 [08:01]


08:31   파티마 버스터미널에 버스가 무사히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파티마 성지까지 가는 데에는 10분 정도 걸렸다. 파티마 성지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교황 바오로 6세 동상이었다. 이어서 성 삼위일체 성당에 잠깐 들렀다. 이 성당은 원형의 비잔틴 양식으로 지었으며 8,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이다. 공사비는 순례자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했으며 초석은 베드로 무덤에서 나온 대리석 조각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기증했다고 한다. 성 삼위일체 성당에는 소성당이 여러 개 있었다.


성 삼위일체 성당 앞에 있는 높이 34m, 폭 17m 규모의 강철 십자고상은 독일 조각가 로베르트 샤드의 작품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을 현대적 감각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성 삼위일체 성당 앞에 있는 또 하나의 동상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에 발현한 성모님이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야친타에게 전한 세 가지 비밀 중 세 번째 비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교황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우리나라를 두 번이나 방문할 정도로 관계가 깊었는데 1989년 세계 제44차 성체대회를 맞아 두 번째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 나도 직접 요한 바오로 2세의 얼굴을 뵌 적이 있다.


▲ 파티마 버스터미널에 무사히 버스 도착 [08:31]


▲ 버스터미널에 있는 파티마 성모님 판매점 [08:32]


▲ 파티마 로도비아리오 버스 터미널 [08:33]


▲ 버스터미널에서 파티마 성지로 가는 길 [08:34]


성모 발현


성모 발현(聖母發現)은 기독교, 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모 마리아가 한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으로 나타난다고 여겨지는 기적 현상의 일종이다. 성모 발현은 발현한 마을이나 발현한 이유에 따라 각기 다른 호칭이 부여된다. 때때로 발현은 장기간에 걸쳐 같은 장소에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도 있다. 지금까지 성모 발현의 대다수는 목격자들이 소수에 그쳤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사도들이 이승에서의 삶을 마침과 동시에 공적 계시의 시대도 끝났다고 한다. 성모 발현은 교회 당국에 의해 진짜라고 승인받을 경우, 공적 계시의 일부 측면들을 강조하려는 특별한 목적을 위한 사적 계시로 다루어진다.


교회의 인가를 받은 발현은 이후 더는 개인적인 체험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성스러운 힘이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개입한 것으로 믿어진다. 이러한 발현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 가운데 일부를 강조하여 상기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발현에서는 사람들이 메시지에 관심을 두도록 유도함과 동시에 메시지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치유와 그 밖의 다른 기적들을 수반하지만, 교회 상층부에서는 이를 성모 발현의 주된 목적으로 보고 있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교회 안에서 성모 마리아가 실제로 존재한 인물이었으며, 이러한 발현을 통해 그녀가 여전히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보살펴 주고 있다는 증거로 여겨진다.


▲ 파티마 성지: 성 삼위일체 성당 [08:43]


교황 바오로 6세


교황 바오로 6세(라틴어: Paulus PP. VI, 이탈리아어: Papa Paolo VI)는 제262대 교황(재위: 1963년 6월 21일~1978년 8월 6일)이며 로마가톨릭의 성인이다. 본명은 조반니 바티스타 엔리코 안토니오 마리아 몬티니(이탈리아어: Giovanni Battista Enrico Antonio Maria Montini)이다. 바오로 6세는 교황 요한 23세의 유지를 이어받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재개하여 교회의 쇄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또한, 교황 비오 12세 이래 시작된 교회의 국제화를 계속 이어가도록 기초를 다졌으며, 동방 정교회와 개신교 등 다른 노선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역사적인 만남을 갖고 협정을 맺음으로써 기독교 교파 간의 일치와 관계 개선을 도모하였다.


▲ 교황 바오로 6세 동상: 제262대 교황으로 1967년 파티마 방문 [08:43]


▲ 성 삼위일체 성당 미사와 로사리오 시간표 [08:46]


▲ 성 삼위일체 성당에는 여러 개의 소성당이 따로 있다 [08:47]


▲ 성 삼위일체 성당 안에 있는 조형물 [08:4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년 5월 18일~2005년 4월 2일)는 제264대 교황(재위: 1978년 10월 16일~2005년 4월 2일)이며 로마 가톨릭의 성인이다. 그는 기독교 역사상 교황 하드리아노 6세 이래 455년 만의 비(非) 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계 교황이다. 동시에 20세기 교황들 가운데 최연소로 즉위한 교황이기도 하다. 또한, 27년 가까이 재임한 그는 34년 동안 재임한 베드로와 31년 동안 재임한 교황 비오 9세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오래 재임한 교황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김대중의 구명운동을 하면서 한국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전에 두 차례 방한하였다. 1984년 5월 3일에 그는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식을 맞아 방문했으며,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 103명을 바티칸이 아닌 현지에서 성인으로 시성하였다. 그 뒤 교황은 1989년 10월 5일부터 10월 8일에 걸쳐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 성체대회를 맞아 대한민국을 두 번째로 방문하였다. 그는 65만여 명이 운집한 여의도 광장에서 남북간의 화해를 바라는 평화 메시지를 낭독하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한국에 큰 사건이나 재해가 있을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왔다.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때에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고,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태풍 매미로 말미암은 피해 때는 위로 메시지를 전해왔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동상 [08:51]


08:56   성 삼위일체 성당 앞에서는 파티마 광장 뒤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파티마 성당이 잘 보였다. 시간이 조금 이른 탓인지 방문객이 별로 없는 광장을 지나  파티마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에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바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한 세 아이의 무덤이다. 열 살의 루치아, 아홉 살의 프란치스코, 일곱 살의 히야친타 앞에 성모 마리아는 20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월 13일에 모두 여섯 번 발현하셨다. 루치아의 두 사촌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는 각각 1919년과 1920년에 스페인 독감으로 죽었지만 수녀가 된 루치아는 2005년 97세 나이에 선종했다.


▲ 예수성심상 뒤로 보이는 파티마 성당 [08:56]


▲ 파티마 로사리오 성당 [08:57]


파티마 성당


파티마 성당1928년에 착공하여 1953년에 완공(完工)되었다.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명의 아이 중 남매였던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는 그 후 2~3년 뒤 스페인에서 유행했던 독감으로 인해 사망했고, 당시 제일 나이가 많았던 루치아는 수녀가 되어 코임브라 수녀원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루치아 앞에 성모의 예언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2005년 2월 13일 9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세 명의 시신은 파티마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현재 루치아는 성인으로 추대되는 심사가 진행 중에 있다. 해마다 성모가 처음으로 발현했던 5월 13일과 마지막으로 발현했던 10월 13일이 되면 엄청난 인파가 파티마의 순례지를 찾고 있다.


▲ 파티마 성당 내부 [09:02]


▲ 스테인드 글라스와 마리아의 일생을 그린 부조 [09:04]


▲ 1919년에 죽은 프란치스코의 무덤 [09:05]


▲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프란치스코의 무덥 [09:05]


▲ 무덤 위에 벽에 걸려 있는 조형물 [09:05]


▲ 파티마 로사리오 성당 제대 [09:07]


▲ 루치아 조형물 [09:07]


▲ 히야친타와 루치아의 무덤 [09:08]


09:14   파티마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성모 마리아 발현 소성당 옆에 초를 봉헌하는 장소가 있어 들렀다. 초는 무인 판매대에서 구입할 수 있다. 어머니, 아내와 나, 딸네 가족, 아들네 가족을 위해 모두 네 개의 초를 구입한 후 정성껏 봉헌했다. 성모님, 저희 가족을 위해 은총 내려주소서! 마침 성모 마리아 발현 소성당에서 미사가 진행 중이어서 나도 참례를 했다. 성모님이 직접 발현하신 곳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어 정말 기뻤다. 미사 참례를 마친 후 성지에서 잠깐 벗어나 다렐과 함께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 파티마 로사리오 성당 외관 [09:14]


파티마의 성모


파티마의 성모(포르투갈어: Nossa Senhora de Fátima, 영어: Our Lady of Fatima)는 포르투갈의 산타렝현 빌라노바데오렘에 있는 마을 파티마에서 세 명의 어린 목동에게 나타났다는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칭호이다. 파티마의 성모는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월 13일 여섯 번 나타났으며, 그녀가 처음 나타난 5월 13일은 파티마의 성모 발현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성모 마리아를 목격한 세 명의 아이는 루치아 도스 산토스와 그녀의 사촌 프란치스코 마르토, 히야친타 마르토이다.


▲ 성모 마리아 발현 소성당에서 기도하는 순례자들 [09:17]


▲ 왼쪽으로 파티마 성모님이 보인다 [09:21]


▲ 초를 봉헌하는 장소 [09:23]


▲ 봉헌 초 무인판매대 [09:28]


▲ 나도 네 개의 초를 봉헌했다 [09:31]


▲ 성모 마리아 발현 소성당에서 미사 참례 [09:36]


▲ 미사 참례를 마치고 나서 [09:57]


▲ 멀리 성 삼위일체 성당이 보인다 [09:57]


▲ 성모 마리아 발현 소성당과 파티마 로사리오 성당이 보인다 [10:02]


10:30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다렐과 헤어졌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다렐이 파티마 성지에 대해서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일단 각자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다 토마르로 돌아갈 때 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다시 파티마 성지로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방문객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성모 마리아가 처음 발현하신 5월 13일과 마지막으로 발현하신 10월 13일에는 100만 명 가까운 순례자들이 모인다고 하니 파티마 성지가 얼마나 대단한 곳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파티마 성지 주변에 있는 기념품 상점 [10:30]


▲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다양한 기념품 판매 [10:31]


▲ 파티마 성지에서 만난 전시품 [10:36]


▲ 파티마 성지 방문객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10:38]


▲ 아이의 손을 잡고 무릎으로 걷고 있는 순례자 [10:39]


▲ 파티마 성 삼위일체 성당 [10:43]


▲ 파티마 로사리오 성당 [10:59]


▲ 파티마 광장 [10:59]


▲ 파티마 광장 [11:08]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동상 [11:10]


11:13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 삼위일체 성당으로 들어갔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단의 규모도 대단하고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미사 참례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12시가 넘었다. 시간도 그렇고 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선물 센터를 지나 조금 만만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무척 많았다. 소고기 콤비네이션과 비노 한 잔을 시켰다. 소고기 8.5유로 비노 1유로, 음식의 양도 많고 맛도 좋아 만족스러운 점심식사였다.


파티마 성지 주변에는 수많은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 그리고 숙박업소가 있다. 성모 마리아가 이곳에 발현하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기념품 판매 센터에 들러 묵주를 2개 구입했다. 가격은 14.5유로. 다시 파티마 성지로 돌아오는 길에 '베를린의 벽'을 만났다. 베를린의 벽은 파티마에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을 때 예언한 공산주의 몰락을 기리기 위해 독일에 사는 포르투갈 이민자들이 보내왔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공산주의는 그냥 몰락한 것이 아니다.


▲ 성 삼위일체 성당 미사에 참례 [11:13]


▲ 성 삼위일체 성당 미사에 참례 [11:19]


▲ 파티마 성지 주변 기념품 판매점들 [12:13]


▲ 파티마 성지 주변 기념품 판매점들 [12:14]


▲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렀다 [12:22]


▲ 점심 메뉴는 소고기 콤비네이션과 비노 한 잔 [12:39]


▲ 공산주의 몰락을 기리는 베를린의 벽 [13:17]


▲ 파티마 성지에 있는 조형물 [13:27]


▲ 파티마 로사이로 성당을 옆에서 본 모습 [14:00]


▲ 파티마 로사리오 성당에서 바라본 파티마 광장 [14:05]


14:07   성모 마리아 발현 소성당에 다시 들렀다. 소성당에서는 또 다른 미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성 삼위일체 성당에서 성모 마리아 발현 소성당으로 가는 길에는 무릎으로 걷는 참회의 길이 마련되어 있다. 무릎으로 걷는 사람들 중에는 무릎 보호대를 한 사람들도 많지만 맨 무릎으로 걷는 사람들도 꽤 있다. 보통 힘든 일이 아닐진대 묵주기도를 하며 한 무릎씩 나아가는 모습이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 불교 신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종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을 인간에게 준다.


사람들은 파티마 성지에서 초를 봉헌하고 무릎으로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친다.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초를 봉헌하고 누구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는 걸까? 천주교에서는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하라고 강조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바로 성모 마리아가 인간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이자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성모 마리아가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빌어주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께 빌어주어야 마땅하다.


▲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성모 마리아 발현 소성당 [14:07]


▲ 성모 마리아 발현 소성당에서는 또 다른 미사가 진행 중 [14:08]


▲ 무릎으로 걷고 있는 남자 순례자 [14:09]


▲ 초를 봉헌하고 있는 많은 방문객들 [14:10]


▲ 무릎으로 걸으면서 [14:12]


▲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있는 순례자 [14:12]


▲ 무릎으로 걷는 참회의 길 시작점 [14:18]


▲ 파티마 성지의 하늘이 무척 파랗다 [14:20]


15:02   3시에 시작하는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 삼위일체 성당을 다시 찾았다. 오늘만 세 번째로 참례하는 미사다. 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어? 저게 누구야. 리스본 호스텔에서 만났던 프랑스 부부였다.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세상은 넓기도 하지만 이렇게 좁기도 하다. 토마르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이 6시 30분이니 아직도 두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지루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그냥 광장 한쪽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나? 파티마 성당에서 성 삼위일체 성당까지 사람들이 양쪽으로 줄을 지어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나타난 하얀 옷을 입은 행렬, 그 행렬은 끝도 없이 계속 이어졌다. 그들은 각 지역에서 단체별로 파티마를 찾은 순례자들이었다. 그들이 가는 곳은 파티마 성당 앞 광장이었다. 아마 단체 야외 미사를 거행하려는 것 같았다. 순례자들을 좀 더 잘 보려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친다. 돌아보니, 이전에 같은 숙소에 묵은 적이 있는 긴 머리의 이탈리아 순례자였다. 여기서 또 만나네.


▲ 미사 참례를 위해 성 삼위일체 성당에 다시 왔다 [15:02]


▲ 성 삼위일체 성당에 있는 딸린 소성당에서 미사 참례 [15:04]


▲ 성 삼위일체 성당 벽면 그림 [15:41]


▲ 성경에 나오는 빵과 물고기(오병이어) [15:45]


▲ 자전거 순례자들도 파티마에 왔다 [15:48]


▲ 흰옷을 입은 단체 순례자들 행진 [16:48]


▲ 흰옷을 입은 단체 순례자들 행진 [16:49]


▲ 흰옷을 입은 단체 순례자들 행진 [16:50]


▲ 흰옷을 입은 단체 순례자들 행진 [16:50]


16:53   하얀 옷을 입은 순례자들과 그 옆에 늘어서 있는 관광객들로 파티마 광장은 그야말로 사람들 천지였다. 하얀 옷을 입은 순례자들이 모두 집합 장소에 모였다. 장관이다. 도대체 저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 오게 만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단순히 성모님이 발현한 장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한 무언가가 있단 말인가? 곧 거행될 야외 미사를 보고 싶은데 토마르로 가는 버스 시간이 임박했다. 아쉬움을 안은 채 파티마 광장을 떠나 파티마 버스터미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전에 헤어진 다렐은 먼저 집에 갔나? 영 보이지 않네. 


▲ 파티마 로사리오 성당으로 가고 있는 순례자들 [16:53]


▲ 파티마 로사리오 성당으로 가고 있는 순례자들 [16:56]


▲ 파티마 로사리오 성당 앞에 모인 순례자들 [17:03]


▲ 파티마 로사리오 성당 앞에 모인 순례자들 [17:20]


▲ 파티마 로사리오 성당 앞에 모인 순례자들 [17:23]


▲ 토마르로 가는 버스 출발 시간이 가까워졌다 [17:30]


▲ 참회의 길을 무릎으로 걷고 있는 순레자들 [17:31]


▲ 파티마 성지를 떠나면서 바라본 로사리오 성당 [17:31]


17:42   파티마의 로도비아리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목이 마르다. 카페에 들러 맥주 한 병을 시켰다. 갈증 해소에는 맥주 따라갈 게 없다. 6시 30분, 토마르행 버스에 올랐다. 다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추측컨대 혼자 먼저 가셨나 보다. 토마르로 가는 버스는 거의 만원이었다. 한 시간 정도 걸려 토마르에 도착, 버스터미널에서 호스텔 쪽으로 걸어가다 다렐을 만났다. 혼자서 오긴 왔구나. 호스텔에 도착해 보니, 침대 위에 쪽지가 놓여있었다.


쪽지에는 '11시 버스로 먼저 토마르로 돌아왔다. 어제저녁에 맥주 마셨던 곳으로 오라.'라고 적혀 있었다.  밥은 별로 생각이 없고 맥주라도 한 잔 마시러 갔더니 다렐이 다른 순례자 두 명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한 명은 한국인이었는데 네 번째로 순례길을 걸으러 왔단다. 맥주 한 잔 마시고 호스텔 귀환, 샤워하고 침대에 누우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호스텔에 투숙객 세 명이 더 들어왔다. 오늘 하루 까미노를 걷지 않아 그런지 발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내일 아침의 힘찬 출발을 기대하게 하는 좋은 징조다.


▲ 파티마의 로도비아리오 버스터미널에 도착 [17:42]


▲ 2300 토마르 호스텔에 귀환 [19:38]


▲ 순례자 두 명과 식사를 하고 있는 다렐 [20:12]


▲ 시청 옆에 있는 Taverna Antiqua 식당에서 다렐과 함께 맥주 한 잔 [20:16]


▲ 시청 맞은편에 있는 천주교 성당(Igreja de São João Baptista) [2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