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여행/터키

2019.11.02. [터키 여행 6] 파묵칼레→아이발릭

by 사천거사 2019. 11. 2.

터키 여행기 6

◈ 일시: 2019년 11월 2일 토요일 / 맑음

◈ 장소: 터키 일원

◈ 코스: 파묵칼레 할리치 호텔 → 명품 아웃렛 매장 → 가죽제품 매점 → 에페소 → 쉬린제 마을 → 

           아이발릭 그랜드 호텔

◈ 회원: 백만사회원 9명 포함 10명


 

 


04:10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5시 10분에 아침을 먹으러 호텔 식당으로 갔다. 늘 비슷한 음식들, 맛은? 우리 입맛에는 그저 그렇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다 보니 햄, 소시지, 베이컨 등이 없다. 커피 대신 홍차를 많이 먹기 때문에 커피도 부실하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밥 먹고 맨 처음 들른 곳은 명품 아웃렛 매장이었다. 버버리, 프라다, 구찌와 같은 명품 중에서 아주 미세한 흠집이 있는 것으로 의류, 가방, 신발, 스카프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구입하는 사람은? 꽤 있다. 하긴 사는 사람이 있으니 저렇게 많은 직원들을 고용해서 판매를 하겠지. 9시 35분, 휴게소에 들렀다.


▲ 파묵칼레 할리치 호텔 룸 [04:57]

 

▲ 아무도 없는 호텔 프론트 데스크 [05:03]

 

▲ 호텔 식당도 손님이 우리뿐이다 [05:07]

 

▲ 아침 식사 메뉴 [05:15]

 

▲ 오늘 첫 번째 방문지는 명품 아웃렛 매장 [06:30]

 

▲ 명품 아웃렛 매장 내부 모습 [06:35]

 

▲ 마음에 드는 게 있나요? [06:39]

 

▲ 명품 아웃렛 매장 내부 모습 [06:44]

 

▲ 휴게소에 들렀다 [09:37]

 

▲ 휴게소에 서 있는 거리 표지판 [09:38]


10:21   오늘 두 번째로 들른 곳은 양가죽 제품 매장이었다.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간단한 패션쇼로 흥을 돋운다. 판매전략 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매장으로 들어갔다. 다양한 양가죽 제품이 눈길을 끄는데 가격이 만만찮다. 양가죽 제품 매장을 나온 후 조금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 메뉴는 비빔밥. 이곳도 한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식당이었다. 채소 서너 가지에 밥을 넣고 올리브유와 고추장을 곁들인 후 비볐다. 평가는? 가이드의 말대로 한국에서 판매하면 망하기에 딱 좋은 비주얼이었지만 맛으로 친다면 그냥 먹을만했다. 거의 일주일 만에 먹어보는 한국음식이니 조금 부실하다 해도 맛이 있을 수밖에.


▲ 양가죽 제품 판매점에 도착 [10:21]

 

▲ 벽에 붙어 있는 광고판: 여인들 뒤 배경은 에페소 도서관 건물 [10:22]

 

▲ 양가죽 제품 패션쇼가 열렸다 [10:25]

 

▲ 양가죽 제품 패션쇼 [10:25]

 

▲ 방문객도 패션쇼에 참여 [10:27]

 

▲ 양가죽 제품 판매점 내부 모습 [10:37]

 

▲ 점심을 먹을 한국음식점에 도착 [11:28]

 

▲ 점심 먹을 준비를 마친 회원들 [11:29]

 

▲ 점심으로 먹은 비빔밥 상차림 [11:29]


12:02   고대도시 에페소 답사가 시작되었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에페소의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리우스 목욕탕을 지나 바실리카 스토아를 따라 걸어간다. 시민들이 산책을 하거나 집회를 할 때 이용했던 바실리카 스토아는 부서진 기둥만 길 양쪽으로 남아 있었다. 오데온에 들렀다. 1,40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소극장이다. 예전에는 지붕이 있었지만 지금은 파손되어 열린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에페소 유적지는 관람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에페소(에페소스)

 

에페소는 소아시아의 서쪽 해안에 세워진 도시로서 에게 해로부터는 약 6.5km 떨어져 있었다. 에페소는 신약 시대에 로마제국의 도시들 가운데 손꼽힐 정도로 큰 도시로서 소아시아에서 정치와 종교와 상업의 중심지였다. 당시 인구가 30만 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아시아 주재 로마 총독이 거주하던 곳이기도 했다. 에페소는 또 초대 교회의 복음 선포 활동과 관련해서도 큰 의미를 지닌 도시이다.


에페소는 해양 무역을 하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주요 무역로로 통하는 간선 도로들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중요한 항구도시로서 그리고 상업과 재정의 중심지로서 경제적인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이 도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웅장한 아르테미스 신전이었다.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의 실상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이 신전은 에페소에 경제적인 부를 가져다준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신전을 방문하려는 수많은 순례객들이 에페소를 찾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장인들은 신전 모형이나 기념품들을 만들어 팔았으며  숙박업자나 음식업자들의 영업 활동도 대단히 활발했다. 에페소인들은 에페소의 다이아나라고 새긴 동전을 발행해 아르테미스 숭배를 촉진하기도 했다. 신전 외에도 에페소에는 25,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극장, 공중목욕탕, 체육관, 도서관, 시장, 광장, 상업과 행정 사무소 등 여러 건축물과 문화 시설이 있었다. 극장과 항구를 잇는 큰 도로도 유명했는데 이 도로 양쪽에는 높은 원형 기둥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 매표소 가는 길에 만난 루까의 묘 [12:02]

 

▲ 관광용 마차 [12:03]

 

▲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12:04]


바리우스 목욕탕(Bath Of Varius)

           

1세기에 건립된 목욕탕이다. 하이퍼코스트라는 난방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바닥 아래로 통하는 열기로 온탕, 사우나, 미온탕, 냉탕 등의 시설을 운영할 수 있었다. 로마 목욕탕은 로마법대전을 정리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남녀 혼욕을 금지하기 전까지는 혼탕이었다고 한다. 혼욕이 금지된 이후에도 남탕과 여탕을 구분한 것이 아니라 목욕탕의 입장 시간을 오전에는 여자, 오후에는 남자 이런 식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로마의 목욕당에는 남탕과 여탕이 구분이 없다고 한다.


▲ 목욕 시설인 바리우스 목욕탕 [12:06]


바실리카 스토아((Basilica Stoa)

           

지금은 거의 터만 남아 있는 바실리카는 시공회당에서 바리우스 욕장까지 이어지는 165m의 길이다. 건물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건립된 것이다. 스토아란 고대의 아고라에 있던 기둥들이 늘어선 복도를 일컫는 말이다. 시민들이 집회를 하거나 산책을 할 때 이용했다고 한다. 바실리카 스토아에는 로마 제국의 초대황제인 아우구스투스와 황후 리비아의 좌상 기념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에페소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바실리카 스토아가 보인다 [12:06]


국립 아고라

 

셀수스 도서관 옆에 있는 남부아고라와 구분하기 위해 국립 아고라라고 부른다. 현재는 돌조각만 남아 있는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지배하던 기원전 27년부터 기원 후 14년까지 세워졌으며 국가가 직접 운영했다고 한다. 아고라는 도시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는 자리이다. 에페소에 있는 두 개의 아고라 중에서 이곳이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위쪽 아고라'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 잔해만 남아 있는 국립 아고라 [12:12]


이크티스(Ixoye)

 

이크쑤스, 이크씨스(그리스어: ἰχθύς 이흐시스, 대문자 표기로 그리스어ΙΧΘΥΣ)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흔히 "익투스" 라는 발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비밀스럽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기독교의 상징으로 두 개의 곡선을 겹쳐 만든 물고기 모양으로 나타낸다.

 

이 물고기라는 단어에는 예수님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다. 물고기란 뜻의 그리스어 '익투스'(ΙΧθΥΣ)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고백의 의미를 가졌다. 왜냐면 공교롭게도 예수(Ιησoυs), 그리스도(Χριστοs), 하느님(θεοs), 아들(Υιοs), 구세주(Σωτηρ)의 첫 머리 글자만을 따서 모아보면 물고기라는 그리스어 '익투스'(ΙΧθΥΣ)라는 단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 대리석에 새겨져 있는 익투스(IXOYE) 글자 [12:14]

 

▲ 무서진 기둥만 남나 있는 바실리카 스토아 [12:15]


오데온(Odeon)

           

1,4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지붕이 있었던 소극장이다. 2세기에 귀족 베디우스 안토니우스와 그의 부인이 세운 것으로, 오데온 앞에는 위층에는 아고라가 있고, 왼쪽에는 시공회당이 있는 등 정치적인 기능을 하는 시설들 사이에 있었다. 당시에는 시 낭송이나 음악회 등 소규모 공연과 대표자 회의가 치러지기도 했고, 정치적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원래는 지붕이 있었으나 지금은 파괴되어 열린 공간으로 남아 있다.


▲ 1,400명 수용이 가능한 소극장 오데온 [12:19]

 

▲ 바실리카 스토아를 걷고 있는 회원들 [12:20]

 

▲ 사람이 오건 말건 내 팔자가 상 팔자다 [12:21]


12:22   왼쪽으로 시공회당 프레타네이온의 도리아식 기둥 두 개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볼거리가 많았다. 특히 아스클레피우스의 지팡이나 승리의 여신 니케의 부조 등이 인상적이었다. 헤라클레스의 문을 지나면서 셀수스 도서관까지 이어지는 쿠레테스 거리가 시작되었다. 머리가 없는 조각상 서 있는가 하면 트라야누스의 샘도 보인다. 길 왼쪽으로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위해 아름다운 문양으로 장식한 길이 보인다. 엄청난 사랑의 결과물이다.


시공회당 프레타네이온(Prytaneion)

           

시공회당은 에페스의 도시 행정 업무를 관장했던 곳으로, 고대 에페스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 건물 중 하나였다. 건물은 3세기에 완공되었는데, 도리아식의 기둥이 있는 회랑이 있었다. 그리고 1956년 발굴 도중 아르테미스의 두 가지 중요한 동상이 발견되어 현재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지어졌는데 영원히 꺼지지 않는 순수하고 성스러운 불을 모셨다고 한다. 제의가 거행되고 공식행사와 연회가 열리던 도시 행정의 중심 건물이다. 


▲ 시공회당 프레타네이온의 도리아식 기둥 [12:22]

 

▲ 엠마우스 기념관 [12:25]


아스클레피우스의 지팡이

 

아스클레피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이다. 케이론 밑에서 의술을 배워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자 제우스는 인간이 그의 능력을 빌어 불사의 존재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 번개를 내리쳐 아스클레피우스를 죽였다. 그의 상징은 뱀이 감고 있는 지팡이의 모습인데 지금도 각 나라의 병원 마크에는 이 모습이 들어있다고 한다. 허물을 벋는 뱀이 생명과 재생을 상징한다고 그 당시의 사람들은 믿었던 것이다.


▲ 아스클레피우스의 지팡이 [12:26]


니케 여신상

 

니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의 빅토리아에 해당하며, 영어로는 나이키라고 읽는다. 티탄 신족의 하나인 팔라스와 저승에 흐르는 강의 여신 스틱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질투 또는 경쟁심을 뜻하는 젤로스와 힘을 뜻하는 크라토스, 폭력을 뜻하는 비아의 남매이다. 전쟁의 여신이기도 한 아테나와 관계가 깊고 모습도 비슷하지만, 단독으로 그려질 때는 날개가 달려 있고 종려나무(실제로는 대추야자) 잎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니케 여신상 [12:29]

 

▲ 니케 여산상 앞에서 [12:29]

 

▲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바실리카 스토아 [12:30]

 

▲ 바실리카 스토아가 끝나는 지점의 헤라클레스의 문 [12:30]

 

▲ 쿠레테스 길 머리 없는 조각상 [12:32]


트라야누스의 샘(Fountain of Trajanus)

           

2세기 초 로마의 황제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샘으로, 원래 높이는 9m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2층으로 되어 있는 샘은 트라야누스 황제의 석상 발끝에서 물이 흐르는 구조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비너스, 바커스 등의 신과 왕족 후예들의 12조각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현재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는 바이티카 이탈리아 출생으로 로마 제국의 판도를 최대로 과시한 황제라고 한다.


▲ 트라야누스의 샘이 보인다 [12:34]

 

▲ 안토니우스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위해 장식한 도로 위 문양 [12:37]

 

▲ 쿠레테스 거리에서 만난 유적 [12:37]


12:38   에페소 유적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인 하드리아누스 신전 앞에 도착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쿠레테스 거리다. 공중화장실과 유곽을 거쳐 셀수스 도서관 앞에 도착했다. 세계사 책이나 참고서 표지에 자주 등장하는 사진이 바로 셀수스 도서관 건물이란다. 양피지로 만든 책만도 1만 권 이상이 소장되어 있었다는 이 도서관 오른쪽에는 시장이 열리는 아고라가 있어 클레오파트라도 화장품을 사러 여러 번 왔었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 신전(Temple of Hadrian)

           

118년에 세워져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친 신전이다.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코린트식 기둥과 조각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정면 아치 위에는 여신 니케가 조각되어 있고, 내부에는 메두사가 조각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리고 벽에는 에페스의 기원 전설이 새겨져 있다. 터키의 20리라 짜리 지폐에 이 건물이 인쇄되어 있다고 한다.


▲ 하드리아누스 신전 [12:38]


쿠레테스 거리(Curetes Street)

           

셀수스 도서관에서 헤라클레스 문까지 뻗어 있는 도로이다. 로마의 행정 실무와 종교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제들을 ‘쿠레티’라고 불렀으며, ‘쿠레테스’라는 말은 ‘쿠레티들의 거리’라는 뜻이다.


▲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쿠레테스 거리 [12:40]

 

▲ 사람 구경이 한창인 고양이 [12:41]


유곽과 공중 화장실(Brothel and Latrine)

           

대리석 거리와 쿠레테스 거리가 만나는 곳에는 유곽과 공중 화장실이 있다. 매춘소는 4세기경에 지어졌는데, 예전에는 입구에서 남자들이 손과 발을 씻어야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위생에 철저했다. 지상층의 객실에는 돌침대가 있고 리셉션 룸의 바닥은 모자이크로 덮여 있다. 유곽 바로 앞에는 50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공중 화장실이 있다. 그 앞에는 수로가 마련되어 있어서 볼일을 마친 후 손을 씻는 것까지 철저히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 수세식 공중 화장실 [12:42]

 

▲ 유곽 유적 [12:45]


셀수스 도서관

 

2세기 중반, 135년에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였던 셀수스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아들이 지은 것이다. 이 도서관의 앞문은 코린트식 기둥으로 화려하게 지어져 있다. 정면 맞은편 왼쪽부터 여인 네 명의 석상이 있는데, 각각 지혜, 덕성, 학문, 지식을 상징한다. 셀수스의 무덤이 이곳 중앙 아래 지하에 위치해 있다. 또한 이 도서관은 약 1만 2천 권의 장서를 보관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에페스 유적들 중에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곳이며, 최근에 재건되어 그 화려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셀수스 도서관 앞에서 [12:49]

 

▲ 에페소 유적물 중 가장 훌륭한 셀수스 도서관 [12:50]


남부 아고라

 

대리석 길에서 셀수스 도서관으로 가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이 남부 아고라이다. 남부 아로라는 상업적인 역할을 하는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아고라로 들어가는 문은 셀수스 도서관 오른쪽에 있는데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이라고 부른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아내 리비아, 따라 율리아, 사위 아그리파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아고라는 길이가 110m로 지붕은 없다. 이 시장에서는 각지에서 온 물건들 뿐만 아니라 노예들도 거래되었다.


▲ 셀수스 도서관 오른쪽에 있는 남부 아고라 [12:50]

 

▲ 셀수스 도서관에서 [12:53]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Gate of Mazeus and Mitridates)

           

셀수스 도서관의 정면 오른쪽에는 마제우스와 미트라다테스의 문이 있는데, 직접 상업 아고라로 연결되어 있다.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는 노예였는데,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되면서 황제와 그의 가족을 위해 이 문을 바쳤다고 한다.


▲ 남부 아고라로 들어가는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 [12:54]


12:57   셀수스 도서관을 떠나 계속 탐방을 이어간다. 대리석 길 인도에 새겨져 있는 유곽 광고, 그때나 지금이나 성을 매매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모양이다.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대극장을 마지막으로 에페소 답사를 마치고 북문 매표소 쪽으로 걸어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도시가 폐허가 되어 있는 모습을 둘러보며 세월이 흘러가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 28분에 버스가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인 쉬린제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스인들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은 포도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과일로 만든 와인이 유명하단다. 에페소에서 쉬린제 마을까지 가는 데에는 20분 정도가 걸렸다.


대리석 거리(Marble Street)

           

대극장과 셀수스 도서관을 잇는 대리석 길이다. 이 거리의 길가에도 가로등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길 바닥에는 여인의 모습과 왼발이 새겨진 돌이 있는데, 이는 매춘소 광고를 의미한다. 이 발보다 크기가 작은 남자는 출입을 금지한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당시 어른 남자들의 발 크기가 상당히 컸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다.


▲ 대리석 길을 따라 진행 [12:57]


길바닥 유곽 광고

 

대리석 길의 중간 지점 인도에 고대 유곽을 알리는 광고가 대리석 위에 새겨져 있다. 광고에는 왼쪽 발자국, 왕관을 쓴 여인, 하트 모양, 그리고 사각형 하나가 새겨져 있다. 이 광고의 내용은, 여왕처럼 우아하고 예쁜 여자가 있습니다. 이 여자와 사랑을 나누려면 발의 크기가 그림보다 커야 하고 어음으로도 결재가 됩니다 라고 한다. 가장 오래된 유곽 광고로 알려져 있다.


▲ 길바닥 유곽 광고 [13:01]


대극장(Great Theater)

           

아르카디안 거리 끝에 있는 거대한 원형 극장이다. 1~2세기 피온 산의 경사면에 지어진 것으로, 2만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원래 이곳은 연극과 문화예술을 위한 극장이었지만, 로마 시대 말기에는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도 벌어졌다. 관객석 위에서 바라보면 고대의 항만 유적 등이 한눈에 들어오며, 현재도 에페스 문화예술 축제 기간 중에는 공연장으로 사용되어 1년에 한 번 정도 특별 공연이 개최된다. 자연환경을 이용해 마이크 없이도 관객석 위까지 목소리가 잘 들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대극장 [13:04]


아르카디안 거리(Arcadian Street)

           

예전 에페스가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항구 도시였을 때 항구에서 상인들과 선원들이 처음 도착한 거리다. 고대 항구에서 대극장까지 길이 530m, 폭 11m의 길의 양쪽으로 열주가 뻗어 있었다. 그리고 거리 양쪽에 상점과 갤러리 등이 늘어서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밤에도 열주에 불을 켜서 가로등을 만들었는데, 그 당시 가로등이 있었던 도시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뿐이었다고 한다. 도로는 헬레니즘 시대에 건축되었지만, 아르카디우스 황제 재위 기간 동안 복원되었기 때문에 황제의 이름을 따서 아르카디안 거리라고 부른다.


▲ 고대 항구에서 대극장까지 이어지는 아르카디안 거리 [13:11]

 

▲ 아르카디안 거리에서 대극장을 배경으로 [13:12]

 

▲ 씨어터 김나지움 유적지 [13:14]

 

▲ 북문 매표소로 가는 길 [13:15]

 

▲ 에페소 고대도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13:19]


쉬린제 마을

 

이즈미르(Izmir) 주 셀추크 동쪽으로 8km 거리에 있는 그리스인 마을이다. 에페소(Ephesos) 지역에 거주하던 그리스인들이 15세기 무렵에 이주해와 형성한 마을이다. '못 생긴'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치르킨제(Cirkince)가 원래 마을 이름이었으나, 1926년 이즈미르 주정부에서 터키어로 '즐거움'을 의미하는 현재의 지명으로 바꾸었다. 여러 가지 과일로 담은 과일주가 유명한 곳이다.


▲ 쉬린제 마을 주차장에 도착 [13:50]

 

▲ 그리스인들이 살고 있는 쉬린제 마을 [13:51]


13:51   쉬린제 마을에 있는 과일주 시음장으로 들어갔다. 여러 가지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과일주를 아주 작은 잔으로 조금씩 나누어준다. 맛이 아주 향긋하다. 오늘 저녁 모임에 사용하기 위해 아로니아와 오디로 만든 와인 두 병을 구입했다. 가격은 30유로. 이제 오늘의 숙박지인 아이발릭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3시 30분, 메네멘 14km 전 지점을 지났고 4시 5분, 에게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계사 시간이나 지리 시간에 들어보았던 에게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4시 30분, 차량 사고? 갑자기 버스에서 꽝 하는 소리가 났다. 뭐지? 펑크가 났나? 마침 근처에 있는 수리점에 들러 확인한 결과 펑크였다. 어떻게 해서 여행 중에 같은 버스에서 두 번씩이나 펑크가 나나? 그렇게 많은 여행을 했지만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수리가 시작되었다. 작달막한 키의 수리공은 재빠른 솜씨로 펑크가 난 타이어를 빼내고 예비 타이어로 교체를 했다. 수리점 건물도 그렇고 수리하는 방법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80년대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5시 18분, 수리를 마치고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 과일주 시음 장소에 도착 [13:51]

 

▲ 시음할 과일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회원들 [13:53]

 

▲ 과일주로 유명한 쉬린제 마을 [14:09]

 

▲ 쉬린제 마을에서 [14:11]

 

▲ 쉬린제 마을 과일 가게 [14:12]

 

▲ 휴게소에 들렀다 [16:15]

 

▲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회원들 [16:23]

 

▲ 타이어가 펑크나서 수리에 들어갔다 [16:54]

 

▲ 타이어 펑크 수리 중 [17:05]

 

▲ 타이어 수리점 옆에 있는 상점들 [17:14]


18:13   아이발릭에 있는 그랜드 호텔에 도착, 체크인을 하고 룸에 짐을 푼 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저녁식사 예정시간인 7시가 되어 식당으로 내려가 보니 늘어선 줄이 장사진이다.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린 모양이다. 상관없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주어진 상황을 즐기면서 먹으면 된다. 중국인들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터키 호텔 식당에서는 채소 코너에 고수가 차려져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수를 싫어하지만 나는 꽤 좋아하는 편이다. 고수의 향이 얼마나 좋은데...

 

8시 30분, 아까 쉬린제 마을에 들렀을 때 사온 과일주를 마시기 위해 회원 모두가 한 방에 모였다. 병 모가지에 있는 테두리를 벗겨냈는데 이런! 떡하니 코르크 마개가 박혀 있는 게 아닌가! 대략난감. 와인 오프너를 가져온 회원이 아무도 없어 하는 수 없이 회원 두 명이 과일주 병을 들고 프런트 데스크에 갔다.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코르크 마개를 뽑아낸 병을 들고 도착한 회원이 하는 말, 코르크 마개를 뽑는데 10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엥? 나는 처음에 농담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와인병을 들고 프런트 데스크에 갔더니 칵테일 바로 가라고 하더란다. 칵테일 바에 가서 코르크 마개를 좀 뽑아달라고 했는데 5달러를 요구하더란다. 그것도 하나 뽑는데... 추측컨대, 이 순진하고 착한 양반들이 직원에게 당한 것이다. 상대방이 그냥 던져본 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팁으로 1달러 정도 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병마개 하나 뽑는데 5달러가 말이 되나, 그것도 자기 호텔에 머무는 손님에게.

 

어쨌든 병마개는 뽑았고 향긋한 과일 와인과 소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회원들과의 만남을 시간을 이어갔다. 이제 터키 여행도 막바지다.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트로이 유적지를 보고, 이스탄불에서 톱카프궁전과 돌마바흐체궁전을 둘러보면 끝이 난다. 모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는 법, 시작이 중요한 만큼 끝도 중요하다. 지금까지도 괜찮았지만 남은 기간 동안에도 별 다른 일없이 즐거운 여행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를 마감했다.


▲ 아이발릭 그랜드 호텔 도착 [18:13]

 

▲ 호텔 룸 내부 모습 [18:23]

 

▲ 저녁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19:01]

 

▲ 저녁 식사 상차림: 특이하게 고수가 있어 듬뿍 담아왔다 [19:17]

 

▲ 저녁 모임 준비를 하고 있는 여성회원들 [20:35]

 

▲ 호텔 룸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