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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경북山行記

2019.07.04. [경북山行記 126] 경북 봉화 형제봉→각화산

by 사천거사 2019. 7. 4.

형제봉-왕두산-각화산 산행기

◈ 일시: 2019년 7월 4일 목요일 / 맑음, 무더위

◈ 장소: 형제봉 834m / 왕두산 1044m / 각화산 1176m / 경북 봉화

◈ 코스: 석현1리 → 까치생이골 → 각화지맥 → 형제봉 왕복 → 왕두산 → 각화산 → 

           하산길 → 각화사 → 각화사 주차장

◈ 거리: 12.4km

◈ 시간: 5시간 6분 

◈ 회원: 청주 천봉산악회 안내 산행


 

 

 

 

 


각화산

 

각화산(해발 1,177m)은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에 걸쳐 왕두산(1,044.3m)과 나란히 솟아있다. 각화산은 고산준령에 막혀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조선 5대사고 가운데 하나인 태백산사고지(사적348호)가 설치되어있었다. 각화산이란 지명은, 본래 춘양면 서동리의 람화사(覽華寺)를 서기 676년(신라 30대 문무왕 16년)경에 원효대사가 이곳으로 이전하고 람화사를 생각한다하여 생각 "각"자로 바꿔 부른데서 기인한다. 각화산에는 창건 당시 800여 승려가 수도하여 국내 3대 사찰로 손꼽혔던 각화사가 위치해 있으며, 봉화군 춘양면은 우리나라의 수목 중 가장 쓰임새가 많은 재목 춘양목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07:30   오늘은 천봉산악회에서 안내하는 경북 봉화의 각화산 산행에 참가하는 날이다. 태백산에서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에 차돌배기가 있다. 이곳에서 뻗어 내린 각화지맥 위에 각화산이 솟아 있으며 사람들은 대개 각화산과 근처에 있는 왕두산을 연계해서 산행을 한다. 각화산 아래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태백산 사고지가 있다. 각화산이 있는 봉화군 춘양면 일대는 춘양목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로 유명하며 각화산 아래에는 천년고찰인 각화사가 자리 잡고 있다.

 

청주 한벌초등학교 옆을 출발한 버스가 서청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 북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청주에서 풍기까지는 고속도로 이용이 가능하다. 금왕휴게소에 한번 들른 버스가 풍기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난 후 영주와 봉화를 거쳐 춘양면까지 달려갔다. 춘양면소재지에 도착한 버스는 다시 운곡천 옆으로 나 있는 88번 지방도를 따라 영월 쪽으로 진행하다 미찌골 입구에서 우회전, 석현1리 마을회관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 평택제천고속도로 금왕휴게소 [08:27]


10:16   산행 들머리가 있는 석현1리 마을회관 앞 도로변에 버스가 섰다. 마을도로를 따라 가다 창천교를 건넜다. 그런데 실제로는 다리를 건너지 말고 왼쪽 도로를 따라 미곡동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지도상에 나와 있는 산행로였다. 다리를 건너자 주민이 길을 가로막는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왕두산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지역은 석현1리 마을에서 산나물과 송이 등에 대한 입찰을 본 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산나물 철도 송이 철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하여 다음에는 절대로 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허락을 받았다. 다툼이나 갈등의 상황에서는 타협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포장이 된 마을 도로를 따라가는데 일부 회원들이 왼쪽 미곡동 방향으로 가고 나머지 회원들이 계속 마을 도로를 따라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래 아무 데로나 가면 어떠냐. 나중에 형제봉 앞에 있는 봉우리에서 다시 만날 테니 말이다. 마을 도로에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조금 진행하다 왼쪽으로 나 있는 희미한 길에 들어섰다. 이 길이 맞기는 맞는 거야? 


▲ 석현1리 마을회관 입구 도로변에 버스 정차 [10:16]

 

▲ 석현1리 마을회관 입구를 통과 [10:17]

 

▲ 창천교를 건너자 마을 주민이 길을 막고 있었다 [10:22]

 

▲ 출입 허가를 받고 마을 도로를 따라 진행 [10:30]

 

▲ 계속 이어지는 마을 도로 [10:33]

 

▲ 계속 이어지는 마을 도로 [10:37]

 

▲ 임도 갈림길 지점에서 왼쪽 길로 진행 [10:41]

 

▲ 사람이 다니지 않아 길이 아주 희미하다 [10:44]

 

▲ 물이 흐르지 않는 개울을 건너간다 [10:46]


10:46   다시 임도에 올라섰다. 아까 헤어졌던 임도가 이곳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회원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임도를 오가며 확인을 했으나 찾을 수가 없다. 앞서 간 회원들을 따라갔을 거라고 생각하며 다른 회원 한 명과 임도를 따라 계속 걸어갔다. 임도 끝에는 주택이 한 채 있었다. 집 옆에는 승용차도 한 대 서 있다. 임도를 따라 운행을 하는 모양이다. 집 마당을 지나 계곡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길이 없는 곳 같은데 먼저 간 회원들이 길을 만들어 놓아 그냥 따라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지금 걷고 있는 곳은 까치생이골로, 예전에는 사람들이 다녔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길이 없어진 상태였다. 앞서 가는 회원들이 만들어 놓은 길도 놓치고 말았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계곡 오른쪽에 있는 능선에 번듯한 길이 나 있었다. 문제는 능선까지 올라가는 일인데... 별 수 있나, 길을 만들어 올라가는 수밖에. 가파른 사면을 따라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나무줄기를 잡고 스틱에 의지하며 한 발 두 발 올라갔다. 뒤를 따라오는 회원이 무척 힘들어한다. 계곡에서 길이 나 있는 능선까지 올라가는 데에는 25분 정도가 걸렸다. 


▲ 다시 비포장 임도에 올라섰다 [10:46]

 

▲ 회원 한 명을 찾다 포기하고 다시 임도를 따라 진행 [10:53]

 

▲ 임도 끝에 있는 주택 [10:58]


하늘말나리

 

하늘말나리는 나리꽃의 일종으로 꽃이 하늘을 보고 있으며, 잎이 나오는 모습은 말나리를 닮았다고 해서 하늘말나리라고 한다. 나리는 꽃이 어디를 향하는가에 따라 하늘을 보면 하늘나리, 땅을 보면 땅나리, 중간쯤에 비스듬히 있으면 중나리라고 한다. 하늘말나리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반그늘이고 부엽질이 많거나 모래 성분이 많은 토양에서 자라며, 줄기는 곧게 서며 거의 털이 없고, 키는 60~90㎝이다.

 

잎은 크게 돌려나는 잎이 줄기 중앙에 6~12개씩 달리고, 타원형으로 뾰족해진 끝과 점차적으로 좁아진 밑부분이 직접 원줄기에 달려 있다. 또한 길이 9㎝, 폭 2㎝의 작게 어긋나는 잎이 줄기 윗부분에 달린다. 하지만 이 잎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 작아진다. 꽃은 7~8월에 피는데 황적색 바탕에 자주색 반점이 많이 있고, 지름은 4㎝ 정도이다. 원줄기 끝과 곁가지 끝에 1~3개의 꽃이 위를 향해 달린다. 9~10월에 편평한 열매가 익는다. 백합과에 속하며 우산말나리, 산채, 소근백합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이며, 어린잎의 줄기와 비늘줄기는 식용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에 분포하며, 꽃말은 ‘변치 않는 귀여움’, ‘순결’이다.


▲ 하늘말나리가 꽃을 피웠다 [10:59]

 

▲ 쓰러진 소나무 사이를 통과 [11:03]

 

▲ 계곡 오른쪽 사면을 따라 능선으로 [11:07]

 

▲ 능선으로 올라가는 사면길 [11:12]

 

▲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 [11:17]

 

▲ 길 오른쪽 사면에 서 있는 춘양목들 [11:25]

 

▲ 마침내 번듯한 길이 나 있는 능선에 올라섰다 [11:30]


11:33   춘양은 소나무의 고장이다. 금강소나무를 일컫는 춘양목은 춘양면이란 지명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금강소나무는 껍질이 붉은 육송으로 이 지역의 금강소나무들이 춘양면에서 거래가 되었기 때문에 춘양목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능선을 따라 걸어간다. 능선 오른쪽 사면은 벌목을 한 후 심어 놓은 소나무들이  꽤 크게 자라 있었다. 능선을 따라 20분 넘게 걸어가다 시간도 그렇고 해서 점심상을 차렸다. 오늘 참 더운 날이다. 해는 쨍쨍한데 바람도 별로 없고 길도 뚜렷하지 않아 걷기가 만만치 않다.

 

점심 먹고 출발, 7분 후 각화지맥 위에 올라섰다. 여기서 왼쪽은 왕두산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형제봉으로 길이다. 앞서 간 회원들이 깔아 놓은 진행 표지가 없는 것을 보니 형제봉을 다녀오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서 빤히 보이는데 왜 가지 않았지? 각화지맥을 따라 형제봉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트랭글이 팡파르를 울린다. 형제봉은 배지를 발급해 주는 봉우리였다. 삼거리에서 형제봉 정상까지 가는 데에는 13분 정도가 걸렸다.


춘양목

 

백두대간을 두고 북쪽으로 모레기재를 넘어간 춘양면 우구치(牛口峙)를 흐르는 물길은 남한강이 되고, 춘양천은 남한에서 제일 긴 강인 낙동강의 상류가 된다. 봉화군 춘양면은 예로부터 이곳에서 나거나 모여드는 소나무 재목인 춘양목으로 이름이 높다. 춘양목은 한옥을 짓는 데에 으뜸가는 목재로 쳤으므로 봉화읍의 청암정(靑巖亭)과 석천정(石泉亭) 같은 조선 중기의 건물과, 흔히 ‘ㅁ’ 자로 이루어진 안동의 세도가나 서울의 반듯한 양반집들은 대부분 춘양목으로 지어졌다.

 

춘양목은 겉껍질이 붉은빛이 돌아 적송이라고도 부르는 육송인데, 춘양목이라는 이름은 집산지인 춘양의 지명을 딴 것이다. 춘양목은 다른 지역의 육송과는 달리 곧게 자라는 데다가 껍질이 얇고 결이 곱고 부드럽다. 또한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으며, 켜면 그냥 하얗게 보이기 쉬운 다른 지역의 육송과는 달리 붉은빛 또는 보랏빛을 띤다. 그리고 벌레가 먹거나 썩지 않으며, 대패질을 해놓으면 윤기가 자르르 돈다.

춘양목은 춘양면의 북쪽인 소천면과 강원도 지역에까지 분포되어 있었다. 육로로 수송할 수 없었으므로 일제 때만 해도 뗏목을 만들어 낙동강에 띄우면 소천면의 석포리, 현동리, 임기리와 명호면을 지나 안동에서 건져 매매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은 거의가 춘양면에 모여서 서로 계약을 맺었다. 안동이나 영주에서 춘양면으로 가려면 봉화읍을 거쳐야 했는데, 봉화읍에 상권이 형성되는 데 춘양목의 구실이 컸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능선 위에 서 있는 춘양목들 [11:33]

 

▲ 세 봉우리 중 가운데 봉우리가 형제봉 [11:36]

 

▲ 능선을 따라 계속 걸어간다 [11:43]

 

▲ 능선 따라 계속 진행 [11:49]

 

▲ 능선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결정 [11:55]

 

▲ 점심 후 출발 [12:05]

 

▲ 각화지맥 능선 삼거리에 올라섰다 [12:12]

 

▲ 각화산에서 형제봉까지는 각화지맥 길이다 [12:14]

 

▲ 형제봉 가는 길을 웃자란 나뭇가지들이 막고 있다 [12:18]

 

▲ 형제봉 정상이 많이 가까워졌다 [12:22]


12:25   해발 834m의 형제봉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나무에 매달려 있는 여러 개의 표지기가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줄 뿐 별 다른 표지는 없었다. 형제봉 정상에서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이번에는 왕두산으로 이어지는 각화지맥 길에 들어섰다. 고만고만한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944봉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십승지 춘양둘레산길이 지나간다는 표지판이 하나 매달려 있었다. 잡목 사이로 나 있는 경사가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졌다. 같이 가던 회원이 중간에서 내려간다고 해서 발걸음의 속도를 최대로 높였다.


▲ 형제봉 834m의 형제봉 정상에 매달려 있는 표지기들 [12:25]

 

▲ 형제봉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 [12:27]

 

▲ 앞으로 가야 할 능선과 봉우리들 [12:28]

 

▲ 삼거리에서 왕두산 쪽으로 진행 [12:38]

 

▲ 길은 그런대로 잘 나 있는 편이다 [12:42]

 

▲ 춘양면에서 매단 표지기가 계속 보인다 [12:47]

 

▲ 944봉으로 올라가는 길 [12:51]

 

▲ 해발 944봉 정상 표지판 [12:55]

 

▲ 길은 뚜렷하고 걷기에 좋다 [13:04]

 

▲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13:11]


13:16   잡목 사이로 나 있는 능선길이 계속 이어졌다. 짧은 암릉 구간도 있고 아름다운 춘양목이 서 있는 구간도 있다. 지금은 꼬리진달래가 피는 철, 산행로 양쪽으로 하얀색의 동글동글한 꽃송이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에는 야생화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인데 그나마 꼬리진달래가 있어 다행이다. 경북, 충북, 강원도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경사가 조금씩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쓰러진 소나무들이 길을 막고 있다. 어떻게 해서 저렇게 큰 소나무들이 쓰러졌지? 바람 때문인가?


▲ 잡목 사이로 나 있는 능선길 [13:16]

 

▲ 짧은 암릉 구간 [13:22]

 

▲ 아름다운 춘양목도 보이고 [13:27]


꼬리진달래

 

경상북도, 충청북도, 강원도에 분포한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도란상 타원형 또는 거꿀피침형이며 첨두 예형이고 길이 2~3.5cm로, 표면은 녹색이고 흰색 점이 있으며, 뒷면은 갈색 비늘조각이 밀생하고 잎자루 길이는 1~5mm로 짧은 털과 비늘조각이 있다. 꽃은 6~8월에 피며, 총상꽃차례에 20개씩 꽃이 모여 달리고, 포는 넓은 달걀모양이고, 꽃대 길이 6~8mm로 흰색 샘이 있으며, 꽃받침조각은 작으며 샘이 있고 밑부분에 2개의 작은포가 있으며 꽃부리는 깔때기모양이고 지름 1cm 정도로 흰색이다. 열매는 삭과로 긴 타원형이며 길이 5~8mm로 9~10월에 성숙한다. 줄기는 잔털 또는 비늘조각이 있고 이년지는 갈색이 돌며 털이 있고 재부는 황록색이며 속은 갈색이다. 양지바른 산지에 난다. 실생, 삽목으로 증식한다.


▲ 지금은 꼬리진달래가 피는 철이다 [13:27]

 

▲ 이곳은 석현1리 송이채취구역이다 [13:30]

 

▲ 오르막 경사가 조금씩 심해진다 [13:36]

 

▲ 쓰러진 소나무를 넘어간다 [13:43]

 

▲ 왕두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13:51]

 

▲ 쓰러진 소나무가 길을 막고 있다 [13:56]


13:57   해발 1044m 왕두산 정상 표지석을 만났다. 그런데 이게 왜 능선에 있지? 이전에 이 표지석을 누군가가 치워버리는 바람에 다시 찾아내어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표지석을 지나 조금 걸어가자 삼각점이 박혀 있는 왕두산 정상이다. 표지석을 여기에 설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산에 사람들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정상 표지석을 치워버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문제지만 정확한 위치에서 벗어난 곳에 표지석을 설치한 사람들도 문제가 많다.

 

여름 야생화인 조록싸리와 숙은노루오줌 꽃을 보며 계속 고도를 높여 간다. 왕두산과 각화산의 해발고도 차이는 130m 남짓이지만 오르내리는 봉우리가 여러 개 있어 그리 쉬운 코스는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회원들은 모두 하산을 하고 나 혼자서만 걷는 길이라 약간의 초조함마저 생겨났다. 하산 마감시간이 몇 시라고 했지? 3시 30분이었던가? 시간에 대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다시 각화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가자 가자 가자 각화산으로 가자 ♪ ♬


▲ 해발 1044m 왕두산 정상 표지석 [13:57]

 

▲ 삼각점이 박혀 있는 실제 왕두산 정상 [13:58]


조록싸리

 

산야에서 자란다. 높이 2∼3m이며 목재는 연한 녹색이다. 잎은 어긋나고 세 장의 작은잎이 나온 잎이며 작은잎은 달걀 모양의 타원형으로 뒷면에 긴 털이 있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6월에 홍자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서 총상꽃차례로 달리며 밀원식물이다. 꽃받침은 중간 정도로 갈라지고 갈래조각 끝이 바늘같이 뾰족하다. 꽃잎에서는 기판이 자적색, 익판이 홍자색, 용골판이 연한 홍색이다. 열매는 협과로 9∼10월에 익고 넓은 바소꼴이며 길이 10∼15 mm로서 끝이 뾰족하고 꽃받침과 더불어 털이 있다.

종자는 신장형이며 녹색 바탕에 짙은 갈색 무늬가 있다. 나무껍질은 섬유로, 잎은 사료용으로, 줄기는 농가 소공예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잎과 가지를 해열 이뇨제로 사용한다. 한국·일본에 분포한다. 흰조록싸리(for. albiflora)는 백색 꽃이 달리고, 삼색싸리(var. tricolor)는 백색의 기판과 자주색 익판 및 홍색 용골판이 특이하며 한국 진도에서 자란다.


▲ 조록싸리도 지금이 제 철이다 [14:02]


숙은노루오줌

 

조선홍승마(朝鮮紅升麻)라고도 한다.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 60cm에 달하고 갈색 털이 있다. 뿌리에서 나온 잎은 2∼3회 작은잎이 3장씩 나온 잎이며 잎자루가 길다. 작은잎은 달걀 모양 또는 타원형이고 끝이 꼬리처럼 길게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깊게 패어진 톱니가 있다. 꽃은 6∼7월에 피고 연한 홍색이며 원추꽃차례가 옆으로 처지기 때문에 숙은노루오줌이라고 한다. 꽃받침은 중앙에서 5개로 갈라지고 털이 없으며, 꽃잎은 줄 모양이고 연한 홍색이다. 수술은 10개로 꽃잎보다 다소 짧고 암술대는 2개이다. 열매는 삭과로서 2개로 갈라지고 밑에 꽃받침이 있으며 9월에 익는다. 관상용으로 심는다. 어린 순은 식용하고 뿌리는 벌레독에 약용한다. 한국, 중국 북동부, 일본 남쪽에 분포한다.


▲ 숙은노루오줌이 꽃을 피웠다 [14:08]

 

▲ 경사가 별로 없는 길 [14:15]

 

▲ 작은 바위가 깔려 있는 길 [14:21]

 

▲ 이 능선에는 소나무가 별로 없다 [14:26]

 

▲ 길은 계속 뚜렷하다 [14:33]

 

▲ 이 산에도 조록싸리가 많다 [13:37]

 

▲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 [13:39]


14:43   미역줄나무에 꽃이 피었다. 산길을 걷다 보면 의외로 미역줄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폐헬기장을 지나 조금 걸어가자 각화산 정상이다. 해발 1176m의 각화산 정상에는 표지석이 있고 정상부는 헬기장을 겸하고 있었다. 각화산 정상에서 각화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두 군데다. 첫 번째 하산길은 각화사로 곧장 내려가는 길이고 두 번째 하산길은 조선왕조실록 태백산 사고지 옆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각화산 정상 출발, 하산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만나게 된다.

 

첫 번째 하산길 통과, 잠시 후 두 번째 하산길이 시작되는 폐헬기장에 도착했다. 표지기 하나 매달려 있지 않은 하산 지점을 찾은 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겅사가 심하지만 길은 제대로 잘 나 있었다. 태백산 사고지로 이어지는 희미한 길이 왼쪽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표지판 하나 보이지 않지? 그래도 명색이 사적 제348호인 문화재인데... 한번 들러볼까 하다 먼저 도착한 회원들에게 폐를 끼칠 것 같아 그냥 하산을 하기로 했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졌다.


미역줄나무

 

메역순나무라고도 한다. 산기슭이나 골짜기 또는 숲 속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길이는 2m이고, 가지는 적갈색이며 혹 모양의 돌기가 빽빽이 나고 5개의 모가 난 줄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5∼15cm의 달걀 모양 또는 타원 모양이며 밝은 녹색이고 뒷면의 맥 위에 털이 있으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가 1.5∼3cm이다. 꽃은 6∼7월에 흰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 또는 가지 끝에 길이 10∼25cm의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꽃의 지름은 5∼6mm이고, 꽃받침조각·꽃잎·수술은 5개씩이며, 암술은 1개이고, 씨방은 3실이고 삼각형이다. 열매는 시과이고 넓은 바소 모양이며 연한 녹색이지만 흔히 붉은빛이 돌고 9∼10월에 익으며 3개의 날개가 있다. 날개는 끝이 오목하고 길이와 폭이 각각 12∼18mm이다.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 미역줄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14:43]

 

▲ 폐헬기장을 지나고 [14:43]

 

▲ 해발 1176m 각화산 정상 표지석 [14:47]

 

▲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각화산 정상부 [14:50]

 

▲ 각화사로 내려가는 첫 번째 갈림길 [14:52]


태백산 사고지

 

각화산 아래에는 사적 제348인호 태백산 사고지(太白山 史庫址)가 있는데, 태백산 사고지는 한야의 춘추관 및 강화도, 묘향산, 오대산의 사고(史庫)와 더불어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의 하나로 1606년에 건립하여 왜정시대인 1913년까지 약 300여년 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은 당시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성제대학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중이다. 건물은 해방 이후 원인 모를 불로 완전히 타버렸다.


▲ 폐헬기장: 태백산 사고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4:53]

 

▲ 내리막 경사가 꽤 심하다 [15:02]

 

▲ 각화사로 내려가는 길 [15:07]

 

▲ 내리막길의 경사가 많이 완만해졌다 [15:14]


15:17   주능선에서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24분 정도 내달려 산길을 마감하고 급수 탱크 옆에 내려섰다. 도로 오른쪽에 있는 각화사를 주마간산 격으로 보면서 버스가 서 있는 주차장에 도착, 간단히 뒤풀이를 하고 버스 안에서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조금 힘든 산행을 마치고 3시 50분 출발, 풍기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청주에 도착한 시각이 7시, 이렇게 해서 무더위 속에 이루어진 형제봉과 왕두산, 그리고 각화산을 연계한 오지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 산길을 마감하고 급수 탱크 옆에 도착 [15:17]


각화사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각화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봉화군태백산각화사중건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각화사 귀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89호) 안내표지판에는 686년(신문왕 6)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 예종 때 국사 무애계응(無礙戒膺)이 중건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쳐, 1606년(선조 39) 삼재불입지(三災不入地) 중의 하나인 이곳에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를 건립하여 왕조실록을 수호하게 한 뒤 8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여 국내 3대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1913년 의병을 공격하기 위하여 일본군이 사고와 절을 불태웠다고 하며, 혹은 1945년 광복 후 소실되었다고도 한다. 1926년에 달현(達玄)이 법당을 비롯한 다섯 동의 건물을 중건하였고, 1970년에 금오(金烏)가 요사채를 중건하였고, 1979년 범종을 주조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사고 건물을 발굴하고 사고지를 정비하여 1991년 2월 26일 사적 제348호로 지정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2층의 누각인 범종각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된 귀부(龜趺)와 삼층석탑이 있다. 이 중 귀부는 가로 2m, 세로 1.85m의 방형석(方形石) 위에 놓인 길이 1.75m의 것으로서, 시대나 유래 등은 알 수 없으며, 비석이 꽂혔던 자리만 남아 있다. 삼층석탑은 완전히 도괴된 것을 다시 모아 조성한 것으로, 높이는 약 3m이며 체감률이 낮고 상륜부가 없다.

 

절이 있는 석현리와 인접한 서동리의 춘양고등학교(春陽高等學校) 부지에는 각화사의 전신인 남화사지(覽華寺址)가 있다. 원효는 이 절을 이건하여 각화사를 창건한 뒤, 옛 절인 남화사를 생각한다고 하여 각화사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남화사지에는 보물 제52호로 지정된 봉화서동리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2기 가운데 동탑에서 사리병과 99기의 소형 토탑(土塔)이 둘려 있는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사찰 남쪽 약 200m 지점에 백월대사(白月大師) 등 10기의 부도가 보존되어 있다.


▲ 길 오른쪽 천년고찰 각화사 [15:19]

 

▲ 마음이 급해 그냥 각화사 절집만 보며 내려간다 [15:19]

 

▲ 태백산 각화사 [15:20]

 

▲ 우리 버스가 서 있는 곳에 도착 [15:22]

 

▲ 풍기나들목 입구에 있는 소백산장터 인삼휴게소 [16:39]

 

▲ 평택제천고속도로 금왕휴게소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