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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경기山行記

2019.01.03. [경기山行記 95] 경기 하남 남한산

by 사천거사 2019. 1. 3.

남한산 산행기

◈ 일시: 2019년 1월 3일 목요일 / 맑음, 한파주의보

◈ 장소: 남한산 522m / 경기 하남

◈ 코스: 물방아 관광지 주차장 → 한봉 → 남한산 → 벌봉 → 법화리 → 북문 →

           연주봉 → 청량산 → 남문 → 동문주차장

◈ 거리: 10.78km

◈ 시간: 3시간 43분

◈ 회원: 청주 천봉산악회 안내 산행


 

 

 

 


남한산성(南漢山城)

 

흔히 북한산성(北漢山城)과 함께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8세기 중반에 조성된 성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되어, 신라 주장성(晝長城)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주봉인 해발 497.9m의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연주봉(467.6m), 동쪽으로는 망월봉(502m)과 벌봉(515m), 남쪽으로도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데 비해 안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면서도 적의 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봉암성(蜂巖城), 한봉성(漢峰城), 신남성(新南城) 등 3개의 외성과 5개의 옹성도 함께 연결되어 견고한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성벽과 성 안에는 많은 시설물과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보(堡)·누(壘)·암문·우물 등의 방어 시설과 관청, 군사훈련 시설 등이 남아 있다.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다.


07:30   오늘은 천봉산악회에서 안내하는 남한산 산행에 참가하는 날이다. 경기도 하남시와 광주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성에 속해 있는 남한산은 2009년 10월 아내와 함께, 2015년 3월 화요산악회를 따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오늘은, 검복리에서 산행을 시작해 한봉, 남한산, 벌봉을 거쳐 남한산성 동장대터에 이른 후 성벽 둘레길을 따라 동문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잡혀 있었다. 주의할 점은, 성벽 둘레길이라고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레길의 길이가 길고 오르내림도 꽤 심하기 때문이다.

 

한벌초등학교 옆을 출발한 버스가 서청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 북쪽을 향해 달려가다 음성휴게소에 한번 들렀다. 연말부터 시작된 강추위가 계속 이어져 오늘도 한파주의보가 내렸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그런지 아주 춥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광주나들목에서 중부고속도로를 벗어난 버스가 이번에는 342번 지방도를 따라 산행 들머리가 있는 검복리를 향해 달려갔다. 청주에서 산행 들머리까지는 그리 먼 길이 아니어서 도착하는 데에 채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 중부고속도로 음성휴게소 [08:24]


09:24   산행 들머리가 있는 물방아 관광지 주차장에 버스가 섰다. 버스 밖으로 나오니 공기는 차갑지만 그리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잠시 진행하자 건너편으로 산길이 열려 있었다. 처음부터 오르막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아무런 준비 운동도 없이 회원들은 잘도 올라간다. 겨울산에는 눈이 있어야 제격인데 눈은커녕 겨울 가뭄이 심해 바닥에서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15분 넘게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자 길이 평탄해졌다.


▲ 물방아 관광지 주차장에 버스 정차 [09:24]

 

▲ 주차장 옆에 서 있는 이정표 [09:25]

 

▲ 차도 건너 산행 들머리가 보인다 [09:28]

 

▲ 줄을 지어 올라가고 있는 회원들 [09:29]

 

▲ 오르막 경사가 매우 심하다 [09:33]

 

▲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 [09:38]

 

▲ 오르막길은 언제 끝나나 [09:41]

 

▲ 경사가 완만한 지점에 도착해서 [09:45]


09:46   해발 418m의 한봉 정상에 도착했다. 예전에 두 번이나 남한산성에 왔었지만 한봉에 오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성벽 위로 나 있는 길을 잠시 걸어가자 오른쪽으로 노적산 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노적산 가는 길은 2015년 3월에 걸었던 길이다. 남한산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오른쪽으로는 남한산성 성벽이 계속 보인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주로 산악회 회원들이 이용하는 길이라 그런지 성벽 복원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명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남한산성이 아닌가.


▲ 해발 418m의 한봉 정상 [09:46]

 

▲ 한봉 정상부에 서 있는 벌봉 가는 길 이정표 [09:47]

 

▲ 성벽 길을 따라 진행 [09:47]

 

▲ 2015년 3월에는 여기서 노적산 쪽으로 내려갔었다 [09:50]

 

▲ 여기는 경사가 없는 길 [09:52]

 

▲ 동문 갈림길 이정표: 벌봉 쪽으로 진행 [09:53]

 

▲ 성벽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09:59]

 

▲ 이제 오르막길도 막바지다 [10:05]

 

▲ 벌봉 쪽으로 올라가면 남한산 정상이다 [10:06]


10:07   해발 522m의 남한산 정상에는 삼각점이 하나 박혀 있을 뿐 아무런 표지도 없었다. 그래도 남한산성이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산의 정상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홀대를 받는지 모르겠다. 두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해발 515m의 벌봉에 도착했다. 암봉으로 되어 있는 벌봉 정상에서 내려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동장대터로 가면 산성 둘레길을 따라 편안하게 걸을 수 있지만 두 번이나 걸은 길이고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법화골 쪽으로 한번 내려가 보기로 했다. 위례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법화사지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왼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 벌봉 암봉 중에서 오른쪽에 있는 봉우리 [10:10]

 

▲ 글자가 많이 마모된 봉암산성신축비 [10:12]

 

▲ 벌봉 정상에 올랐다 [10:14]

 

▲ 벌봉 아래에 있는 위례 둘레길 이정표 [10:15]

 

▲ 벌봉 아래에 있는 암문 [10:16]

 

▲ 벌봉 아래서 객산 쪽으로 진행 [10:20]

 

▲ 안부에 서 있는 이정표: 법화사지 쪽으로 진행 [10:26]

 

▲ 법화사지로 내려가는 길 [10:27]


10:30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6호로 지정되어있는 법화사지와 법화사 부도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법화사의 건물은 없어진 채 터만 남아 있었고 그 아래에는 부도 3기가 나란히 서 있었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한참 동안 걸어 하남시 고골 입구에 도착, 지도를 확인한 후 고골을 따라 나 있는 길에 들어섰다. 남한산성 북문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이정표에는 '먹거리촌'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길이었지만 계절 탓인지 분위기가 아주 썰렁했다. 


하남 법화사지 및 부도

 

하남 법화사지 및 부도(河南 法華寺址 및 浮屠)는 경기도 하남시 상사창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법화사터 및 부도이다. 1994년 7월 2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86호로 지정되었다. 법화사터는 남한산성 북문 근처의 법화골 벌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청나라 태종의 매부였던 양고리 장군은 ‘법화장군’이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병자호란 때 조선에 들어왔다가 원두표 장군의 계략에 의해 이곳에서 전사하였다. 훗날 청태종이 그를 기리기 위해 절을 짓고 이름을 ‘법화사’라 하였다 한다.

 

절터에는 여러 건물터와 불상, 석탑조각,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으며, 절터 아래쪽으로 부도가 남아있다. 건물터로는 대웅전터와 산신각터로 추측되는 공터가 있고, 대웅전터 오른쪽으로 머리와 팔 등이 부서진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이 있는데 훗날에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건물터 아래로는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벽이 조금 남아있는데, 절을 처음 지을 때 함께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돌벽 아래로 약간 떨어진 곳에 3기의 부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부도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는 것으로, 시신을 화장한 후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앞에서 보아 왼쪽의 것은 6각 받침돌 위로 계란 모양의 탑몸돌을 올려놓았고, 나머지 2기는 6각의 받침돌 위에 종모양의 탑몸돌을 얹어놓았다. 특히 가운데 부도의 탑몸돌에는 ‘평원당선백대사’라는 글귀를 새겨 놓아 모신 사리의 주인공을 밝히고 있다. 비록 터만 남아 있긴 하나, 남아 있는 여러 유물과 건물터는 조선 후기 당시의 절터구조와 건축 및 조각미술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법화사지 안내판 [10:30]

 

▲ 법화사지에 서 있는 이정표: 법화골 쪽으로 진행 [10:31]

 

▲ 법화사지 아래에 있는 법화사 부도 [10:32]

 

▲ 내리막 경사가 아주 심하다 [10:39]

 

▲ 계곡 물이 얼어붙었다 [10:42]

 

▲ 마을에 내려와 고골 쪽으로 진행 [10:53]

 

▲ 남한산성 쪽으로 진행 [11:01]

 

▲ 남한산성 북문으로 올라가는 길 [11:04]

 

▲ 북문과 광주향교 갈림길 이정표 [11:08]


11:10   남한산성 북문 1km 전 이정표를 지났다. 잠시 후, 양봉장 앞에 도착을 했는데... 그냥 널찍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편안하게 무난히 북문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에 능선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눈에 들어왔다.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본 것이다. 이럴 때는 그냥 무시하고 제 길을 따라가면 되는데 나로서는 그게 제대로 안 되는 게 문제다. 어디 한번 올라가 볼까? 그런데 입구에 출입을 금지하는 쇠줄이 세 가닥이나 쳐져 있었다. 왜 막아 놓았지? 그런다고 내가 못 갈 줄 알고.

 

객기를 부린 결과는 대부분이 좋지 않다. 널찍하게 잘 닦여 있는 길을 따라 잠시 올라갔더니 우려했던 대로 가족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길은 끊어졌다. 대략난감. 모르겠다, 능선으로 올라가자.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올라가는 개척 산행이 시작되었다. 세상에 남한산성 둘레길 걸으러 와서 길을 잃고 헤매다니... 15분 정도 개척 산행을 한 후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번듯한 능선길과 만났다. 어휴, 이제 안심이다. 잠시 후 왼쪽으로 고골을 거쳐 올라오는 제 길과 만났다. 그러고 보니, 좋은 길을 모두 제쳐 놓고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올라온 셈이 되었다.


▲ 남한산성 북문 1km 전 이정표 [11:10]

 

▲ 쇠줄로 막아 놓은 길 [11:12]

 

▲ 그 길은 가족 무덤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11:15]

 

▲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능선 쪽으로 진행 [11:18]

 

▲ 다행히 올라가는 길에 큰 장애물이 없었다 [11:19]

 

▲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번듯한 길과 만났다 [11:30]

 

▲ 사면을 가로질러 나 있는 길 [11:33]

 

▲ 고골계곡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 [11:36]

 

▲ 길 오른쪽에 있는 마방 안내판 [11:37]


11:39   '전승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한산성 북문 앞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하산 지점인 동문까지는 남한산성 둘레길을 따라 걸어가면 된다. 산성 둘레길은 성벽 안으로도 나 있고 성벽 밖으로도 나 있어 취향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벽 안길을 따라 걸어간다. 15분 후, 암문을 통해 연주봉 옹성으로 갔다. 이곳은 전망이 좋은 곳으로 서울시내와 하남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데 오늘은 미세먼지 탓인지 시야가 뚜렷하지는 않았다.


▲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11:39]

 

▲ 남한산성 성벽 안쪽 둘레길을 따라 진행 [11:42]

 

▲ 서문 800m 전 이정표 [11:46]

 

▲ 오르막 계단길도 있네 [11:52]

 

▲ 연주봉 옹성 가는 길이 갈라지는 제5암문 [11:56]

 

▲ 연주봉 옹성 가는 길 [11:57]

 

▲ 남한산성 5개의 옹성 중 제일 먼저 만들어진 연주봉 옹성 [11:59]

 

▲ 연주봉 옹성 전망: 롯데월드 타워가 보이는 서울 시내 [11:59]

 

▲ 용주봉 정상 전망: 하남시 방면 [11:59]


12:03   연주봉 옹성에서 돌아와 다시 산성 둘레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우익문'이란 이름을 가진 서문 위를 지나자 길이 널찍해졌다. 잠시 후 해발 482.6m 청량산 왼쪽에 있는 수어장대 앞에 도착했다. 이 건물은 조선 인조 2년(1624년)에 남한산성 축성과 함께 축조된 동서남북의 4장대 중 유일하게 남았는 장대로 산성 내의 최고봉인 일장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 성 내부와 인근의 양주, 양평, 용인, 고양, 서울, 인천까지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산성 둘레길을 따라 계속 걸어간다.


▲ 다시 산성 둘레길을 따라 진행 [12:03]

 

▲ 남한산성 서문(우익문) [12:05]

 

▲ 수어장대로 올라가는 널찍한 길 [12:08]


수어장대

 

산성 서편의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4장대 중의 하나로 인조 2∼4(1624∼1626)년 사이에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이다. 수어장대란 요새 방어를 맡은 수어사가 지휘, 명령하는 곳이며, 건립 당시는 단층누각으로 '서장대'라 하였고, 영조27(1751)년 유수 이기진이 2층 누각을 증축하여 내편은 무망루, 외편은 수어장대라 명명하였다. 이 수어장대는 인조14(1636)년 병자호란때 인조가 친히 수성군을 지휘하면서 청태종의 12만 대군과 대치하며 45일간 항전으로 버티던 곳이며, 항전 45일만에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 남한산성 수어장대(서장대) 앞에서 [12:13]

 

▲ 소나무를 따라 내려가는 길 [12:17]

 

▲ 팔각정자인 영춘정 [12:22]

 

▲ 보수공사 자재운반용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12:28]

 

▲ 남한산성 남문(지화문)[12:36]

 

▲ 산성 둘레길을 따라 계속 진행 [12:43]


12:46   산행 날머리인 동문까지 남은 거리가 1.3km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지났다. 산성 둘레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 동문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 산악회 버스에 올라 젖은 옷을 갈아입고 빵을 점심으로 먹었다. 후미가 모두 도착해 1시 35분에 출발, 음성휴게소에 한번 들른 후 청주로 돌아온 버스는 뒤풀이 겸 천봉산악회 정기총회 장소인 복대동 태성추어탕 식당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2019년 정기총회를 무사히 마치고 추어탕과 추어 튀김으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남한산성 둘레길을 답사한 2019년 첫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 동문 1.3km 전 이정표 [12:46]

 

▲ 남한산성 둘레길을 따라 계속 진행 [12:52]

 

▲ 야자 매트가 깔려 있는 길 [12:58]

 

▲ 동문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13:04]

 

▲ '좌익문'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동문과 송암정으로 이어지는 성벽이 보인다 [13:05]

 

▲ 동문 주차장에 서 있는 우리 버스 [13:06]

 

▲ 중부고속도로 음성휴게소 [14:24]

 

▲ 산행 뒤풀이 겸 천봉산악회 총회 개최 장소인 '태성추어탕' 식당 [1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