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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경북山行記

2018.10.25. [경북山行記 110] 경북 봉화 청량산

by 사천거사 2018. 10. 25.

청량산 산행기

◈ 일시: 2018년 10월 25일 목요일 / 맑음

◈ 장소: 청량산 장인봉 869m / 경북 봉화 

◈ 코스: 청량지문 → 축융봉 → 입석 → 청량사 → 뒷실고개 → 자란봉 → 하늘다리 →

           장인봉 → 금강대능선 → 청량지문

◈ 거리: 11.47km

◈ 시간: 4시간 26분

◈ 회원: 천봉산악회 안내 산행


 

 

 


07:30   오늘은 천봉산악회에서 안내하는 청량산 산행에 참가하는 날이다. 경북 봉화에 있는 청량산은 2005년 9월 아내와 함께, 2011년 11월 백만사회원들과 산행을 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해 자소봉과 장인봉을 거쳐 금강대능선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잡혀 있었다. 청량산에 있는 봉우리는 모두 12개, 그중에서 11개의 봉우리는 한쪽에 모여 있고 유일하게 축융봉만 따로 떨어져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축융봉에서 바라보는 11개의 봉우리의 풍경이 환상적이라는 사실. 그래서 오늘은 회원들과 코스를 달리해서 축융봉을 들러보기로 했다.

 

청주 한벌초등학교 옆을 출발한 버스가 서청주 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남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예전에 청주에서 청량산을 가려면 괴산, 문경, 예천, 영주를 경유해 갔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많이 개설되어 국도보다 고속도로를 더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남안동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난 버스가 이번에는 안동시내을 지난 후 35번 국도를 따라 청량산을 향해 달려갔다. 낙동강 위에 놓인 청량교를 건너자 청량산 도립공원의 청량지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 상주영덕고속도로 의성휴게소 [09:21]


10:21   축융봉 산행을 할 3명의 회원이 청량지문 앞에서 내렸다. 나머지 회원들은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해 8개의 봉우리를 거친 후 금강대능선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낙동강 지류에 놓인 아치교를 건너는 것으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완만하던 산행로의 경사가 점점 급해지기 시작했다. 전망대에 들렀다. 낙동강 위에 놓인 청량교와 상가지역, 그리고 넓은 청량산 도립공원 주차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경사가 급한 곳에 설치되어 있는 데크 계단이 계속 나타났다. 


▲ 청량지문 탐방안내소 앞에서 하차 [10:21]

 

▲ 축융봉까지 거리는 2.9km [10:22]

 

▲ 낙엽이 깔려 있는 길 [10:25]

 

▲ 축융봉 2.61km 전 이정표 [10:27]

 

▲ 오르막 계단길 [10:29]

 

▲ 이 코스에는 계단이 많이 나타난다 [10:33]

 

▲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량산 도립공원 주차장 [10:38]

 

▲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량교와 낙동강 [10:38]

 

▲ 경사가 급한 데크 계단길 [10:42]


10:47   축융봉 2.2km 전 이정표를 지나면서 오르막 경사가 많이 완만해졌다. 축융봉으로 가는 길을 따라 단풍이 계속 모습을 드러낸다. 단풍나무가 별로 없는 산이라 나뭇잎들이 대부분 노란색으로 물이 들었다. 단풍의 색은 왜 다르게 나타날까? 단풍은 잎 속의 엽록소가 분해되고, 새로 안토시아닌이 생성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식물의 종류가 달라도 안토시아닌은 크리산테민 한 종뿐이다. 식물의 종류마다 단풍 빛깔이 다른 것은 이 홍색소와 공존하고 있는 엽록소나 노란색, 갈색의 색소 성분이 양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토시아닌 색소를 만들지 못하는 나무들은 비교적 안정성이 있는 노란색과 주황색의 카로틴 및 크산토필 색소를 나타내게 되어 투명한 노랑의 잎으로 변한다. 또한, 붉은색의 안토시아닌과 노란색의 카로틴이 혼합되면 화려한 주홍색이 되는데 이것은 단풍나무류에서 관찰할 수 있다. 어떤 수종에 있어서는 엽록소와 카로티노이드가 동시에 파괴되고 새로운 카로티노이드가 합성되기도 한다. 그래서 녹색의 색소가 없어지고 노랑의 색소가 나타나며, 또 적색의 색소가 형성되고 이것들이 서로 어울려 여러 가지 빛깔의 단풍을 만들게 된다. 참나무류와 너도밤나무에 있어서는 탄닌 때문에 황갈색을 나타낸다.


▲ 축융봉 2.2km 전 이정표 [10:47]

 

▲ 축융봉 가는 길 단풍 [10:51]

 

▲ 능선을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 [11:02]

 

▲ 축융봉 가는 길 단풍 [11:09]

 

▲ 축융봉 가는 길 단풍 [11:15]

 

▲ 축융봉 가는 길 단풍 [11:18]

 

▲ 이 코스에서는 단풍나무를 보기가 힘들다 [11:20]

 

▲ 축융봉 가는 길 단풍 [11:23]


11:25   축융봉 500m 전 이정표를 지났다. 15분 후 도착한 해발 845.2m의 축융봉 정상, 소문대로 청량산 외산의 11개 봉우리, 하늘다리, 청량사, 응진전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천혜의 전망대였다. 그중에서도 띠를 두른 것 같은 암벽 사이에 자리 잡은 청량사 절집들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축융봉 정상에서 회원 두 분을 만났다. 산성 입구에서 올라오셨다고 한다. 나이가 일흔이 넘었지만 산행 실력은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분들이다. 아쉬움을 남긴 채 축융봉 정상을 떠나 산성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축융봉 500m 전 이정표 [11:25]

 

▲ 축융봉 가는 길 단풍 [11:30]

 

▲ 축융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11:38]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축융봉(祝融峰)

 

내산의 최남단 산성마을 서쪽에 위치하며 청량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유리보전에서 보면 남쪽에 자리한다. ‘축융’이란 말은 남방의 불을 담당하는 화신(火神)을 의미하며, 주세붕이 중국 남악(南嶽)의 이름을 본 따서 지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는 화재를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이용했는데, 화재를 막기 위한 선인들의 깊은 뜻이 담긴 이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유리보전과 응진전, 외산에 있는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다.


▲ 축융봉 정상 조망: 장인봉, 선학봉, 하늘다리, 자란봉, 향로봉, 연화봉,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11:40]

 

▲ 축융봉 정상 조망: 하늘다리, 자란봉, 향로봉, 연화봉,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금탑봉, 경일봉, 탁립봉 [11:40]

 

▲ 축융봉 정상 조망: 청량사와 응진전 [11:41]

 

▲ 축융봉 정상에 있는 조망 안내도 [11:42]

 

▲ 해발 845.2m의 축융봉 정상 표지석 [11:42]

 

▲ 축용봉에서 청량산성 쪽으로 가는 길 [11:44]


11:46   갈림길 지점에 도착, 널찍한 길을 따라 청량산 쪽으로 진행하다 다시 만난 이정표에서 밀성대 쪽으로 걸어간다. 곧이어 나타난 청량산성 성벽길, 청량산성은 2004년부터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옛 모습을 되찾도록 거의 완벽하게 복원되었다고 한다. 공민왕이 숨어 지냈다고 알려진 청량산성 공민왕당은 안동시 도산면의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 공동으로 공민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성벽길 주변의 단풍이 곱고 왼쪽으로 틈틈이 모습을 드러내는 하늘다리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 갈림길에서 청량산 쪽으로 진행 [11:46]

 

▲ 공민왕당 갈림길 이정표: 밀성대 쪽으로 진행 [11:48]

 

▲ 길 왼쪽으로 보이는 장인봉 방면 풍경 [11:49]

 

▲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 축융봉 [11:50]

 

▲ 내리막 데크 계단길 [11:53]


청량산성

 

산성이 축조된 시기는 산성유지에서 삼국시대로 보이는 일부 유물이 수습된 바 있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공민왕이 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해 왔을 때 개축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보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의 형태는 험준한 지세를 이용해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흙과 돌을 섞어 성벽을 연결시킨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의 형태를 띤다. 지금도 산 곳곳에는 산성의 흔적이완연하며 장군의 지휘소였던 장대와 건물터, 성문터 등의 유구가 남아 있다.

 

청량산의 산성은 산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 동문지가 있는 밀성대 아래에서 축융봉을 거쳐 구축된 일명 ‘공민왕산성(恭愍王山城)’과 다시 경일봉에서 선학봉을 지나 청량사가 있는 계곡 옆으로 포곡선을 그리며 형성된 일명 ‘청량산성(淸凉山城)’으로 구분되며, 축융봉과 경일봉을 잇는 일명 ‘오마대로(五馬大路)’로 불리는 ‘오마도산성(五馬道山城)’이 공민왕산성과 청량산성을 이어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오마도 산성은 산성의 기본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방어기능 외에도 청량산성과 공민왕 산성을 이어주는 도로의 기능을 하고 있어 다른 지역의 산성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산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 청량산성 성벽길을 따라 진행 [11:57]

 

▲ 성벽길에서 바라본 청량산 외산 풍경 [11:58]

 

▲ 청량산성 성벽길을 따라 진행 [12:00]

 

▲ 청량산성 성벽길을 따라 진행 [12:03]


12:07   밀성대에 도착했다. 밀성대의 유래는? 공민왕이 청량산에 산성을 쌓고 군사 훈련을 하며 백성들과 살고 있었다. 군사훈련 도중 명령을 듣지 않는 군졸이나 백성들을 바위 위에서 밀어서 처형을 했는데 그 형장을 밀성대라고 한다. 밀성대가 그런 곳이구나. 밀성대를 떠나 13분 정도 성벽길과 데크 길을 걸어 널찍한 길에 내려섰다. 이정표를 보니 오른쪽은 공민왕당을 거쳐 축융봉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왼쪽이 산성입구로 가는 길이다. 산성입구에 도착, 도로를 따라 입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슬픈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밀성대에 있는 정자 [12:07]

 

▲ 밀성대에서 바라본 장인봉 방면 [12:07]

 

▲ 데크 계단길에서 만난 단풍 [12:11]

 

▲ 성벽길에서 만난 단풍 [12:18]

 

▲ 공민왕당 가는 길 이정표 [12:20]

 

▲ 산성입구로 가는 길 [12:21]

 

▲ 산성입구에 서 있는 청량산 도립공원 안내도 [12:24]

 

▲ 산성입구에 서 있는 이정표 [12:24]

 

▲ 입석에 도착 [12:28]


12:28   입석 오른쪽으로 청량사로 가는 길이 나 있어 들어섰다. 이름하여 '원효대사 구도의 길', 원효대사는 우리나라에 안 다닌 곳이 없는 분이다. 잠시 후 자소봉 갈림길 지점에 도착했다. 마음 같아서는 자소봉 쪽으로 올라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산행 마감시각에 늦어질 것 같아 청량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축융봉을 다녀왔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입석에서 청량사로 가는 길은 단풍이 아름다운 산책로였다. 산꾼의 집을 지나 청량사 경내로 들어간다.


▲ 입석 오른쪽 청량사 가는 길 이정표 [12:28]

 

▲ 청량사 가는 길을 따라 진행 [12:34]

 

▲ 자소봉 가는 길 이정표: 청량사 쪽으로 진행 [12:34]

 

▲ 산책로 같은 길 [12:42]

 

▲ 청량산 가는 길 단풍 [12:44]

 

▲ 2005년 아내와 함께 들렀던 산꾼의 집 [12:45]

 

▲ 청량사 설선당 [12:47]

 

▲ 연화봉 아래 자리잡고 있는 청량사 절집들 [12:49]

 

▲ 청량사 오층석탑과 축융봉 [12:51]


청량사 유리보전

 

명호면 북곡리 청량산 한 가운데 자리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동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 고찰로 한때는 연대사를 비롯한 27개의 암자가 있어서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증·개축하였다고 전해져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건물의 구조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다포계인 듯하면서 주심포계와 절충한 양식을 하고 있어 현존하는 건물은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공포는 외1출목 내 2출목의 형식으로 첨차의 짜임이 고졸하고 쇠서의 내부 끝은 연화 및 용수형 조각을 새기고 있으며, 정면 중간기둥위에는 용두와 용미를 주두 밑에 내외로 뻗게 하고 있다. 내부는 판상이고 천장은 우물반자이며 천장에는 운궁이 설치되어 있다. 이 건물의 큰 보 밑에 간주를 세워 후불벽을 구성한 특징은 다른 건물에서 보기 드문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불단에는 건칠불로 알려진 약사여래좌상과 협시보살인 지장보살과 문수보살이 봉안되어 있으며, 유리보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로 전해온다.


▲ 청량사 유리보전 [12:52]


12:52   청량사 왼쪽으로 하늘다리로 올라가는 길이 열려 있었다. 청량사에서 뒷실고개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고통의 계단길이었다. 2011년 11월 이 길을 따라 하늘다리로 올라갈 때에는 그다지 힘이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나는데 오늘은, 축융봉을 다녀온 탓인지, 무척 힘이 든다. 22분 정도 뒷다리가 팽팽하게 당길 정도로 힘을 쓴 끝에 뒷실고개에 올라섰고 다시 자란봉을 거쳐 하늘다리 앞에 섰다. 2008년 5월에 준공된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의 선학봉(826m)과 자란봉(806m)을 연결하는 길이 90m의 산악형 현수교량이다. 그리 늦은 시각이 아닌데도 하늘다리를 오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 청량사 왼쪽 하늘다리 가는 길 이정표 [12:52]

 

▲ 자소봉 갈림길 이정표 [12:55]

 

▲ 뒷실고개 가는 길 단풍 [13:00]

 

▲ 뒷실고개 가는 길 단풍 [13:04]

 

▲ 뒷실고개로 올라가는 계단길 [13:10]

 

▲ 뒷실고개에 서 있는 이정표: 하늘다리 쪽으로 진행 [13:14]

 

▲ 자란봉으로 올라가는 계단 [13:20]

 

▲ 청량산 하늘다리 [13:23]

 

▲ 청량산 하늘다리 [13:23]

 

▲ 하늘다리에서 바라본 축융봉 [13:24]


13:30   청량폭포 갈림길 지점에 도착, 장인봉까지 남은 거리는 300m다. 해발 870m의 장인봉 정상에는 아담한 표지석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삼각점이 박혀 있었다. 정상 출발, 처음 걸어 보는 금강대능선 코스로 하산에 들어갔다. 경사가 무지하게 급한 계단이 계속 나타났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올라가만큼 내려온다고, 오르막 경사가 그렇게 심했으니 내리막 경사가 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단풍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청량폭포 갈림길 이정표: 장인봉 쪽으로 진행 [13:30]

 

▲ 장인봉으로 올라가는 철계단 [13:33]


장인봉

 

외산(外山)의 주봉(主峯)인 장인봉은 청량사(淸凉寺) 유리보전(琉璃寶殿)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량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870m)이다. 봉우리 중 가장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축융봉(祝融峯)과 관리사무소에서 보았을 때 그 위용이 가장 잘 드러난다. 원래 이름은 대봉(大峯)이었는데 신재 주세붕(愼齋 周世鵬, 1495-1554)이 중국 태산(泰山) 장악(丈岳)의 장인봉에 비유하여 지은 이름이다. 정상에서 굽어보면 산 아래는 빼어난 기암절벽들이병풍처럼 늘어서고, 눈앞에 펼쳐지는 원근 수 백리의 크고 작은 산맥과 하천들이 연출하는 장관은 예부터 선인들의 아낌을 받아 왔고 현재까지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해발 870m 장인봉 정상 표지석 [13:39]

 

▲ 장인봉 정상에 박혀 있는 삼각점 [13:39]

 

▲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낙동강 [13:41]

 

▲ 내리막 계단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13:43]

 

▲ 계속 나타나는 계단 [13:49]

 

▲ 하산길에서 만난 단풍 [13:53]


13:57   탐방안내소 2km 전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회원 몇 명을 만났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산행 마감시각인 3시 전까지는 무난히 주차장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계단길이 끝나고 금강대 암벽을 따라 산허리를 감아도는 길에 들어섰다. 길 분위기가 중국에 있는 산에 가면 만나는 잔도와 비슷하다. 약간 지루하게 느껴지던 산길을 마감하고 청량지문 앞에 도착했다. 낙동강 위에 놓인 청량교를 건너 주차장으로 가는 길, 왼쪽 학소대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인공폭포가 보기에 좋다.  


▲ 안내소 2km 전 이정표 [13:57]

 

▲ 하산길에서 만난 단풍 [14:04]

 

▲ 하산길에서 만난 단풍 [14:17]

 

▲ 금강대 암벽을 따라 나 있는 길 [14:20]

 

▲ 금강대능선 삼부자송 [14:27]

 

▲ 밧줄 구간을 내려가고 있는 산행객들 [14:32]

 

▲ 산행을 시작했던 청량지문 앞에 귀환 [14:39]

 

▲ 청량산 도립공원 표지석 [14:40]

 

▲ 청량산 학소대 인공폭포 [14:43]


14:46   주차장에 서 있는 버스에 도착, 시계를 보니 산행 마감시각 15분 전이었다. 휴, 다행이네.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잠시 기다리자 후미가 모두 도착했고 3시 13분에 버스가 출발했다. 청량산 도립공원에서는 뒤풀이를 할 수 없어 봉화 쪽으로 달려가다 918번 지방도변에 있는 지용호 호국공원 주차장에 상을 차리고 뒤풀이를 했다. 지용호는 누구인가? 그는 1949년 6월 17일 무장공비의 급습을 받았을 때 동료를 살리고 36세에 순직한 봉화경찰서장이었다. 즉, 살신성인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뒤풀이를 마치고 4시 3분에 출발한 버스가 영주시내를 거쳐 풍기읍 남원천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2018년 영주 풍기인삼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도로변에 멈추어 섰다. 가을은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 요즘은 가는 곳마다 온갖 종류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풍기는 인삼의 고장, 그런데 축제장에 인삼은 보이지 않고 휴대폰 케이스 가게, 생활용품 할인매장, 사주관상 보는 곳, 딱총 사격장, 품바 공연장 등만 보였다. 우리나라 축제는 테마와 관계없이 난장이 펼쳐져 있는 경우가 많다.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5시 4분 버스 출발, 풍기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청주에 돌아오는 것으로 처음으로 축융봉을 답사한 청량산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 주차장에 서 있는 우리 버스 [14:46]


지용호 호국공원

 

지용호[池龍浩] 호국공원[護國公園]은 고[故]지용호 봉화경찰서장과 무장공비[武裝共匪]토벌[討伐] 대원들이 관공서를 방화하고 주민들을 약탈하는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해 출동 중 포위 기습공격[奇襲攻擊]을 받아 희생된 곳으로,이들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현충공원[顯忠公園]이다. 1993년 8 월 5일 김수철 봉화경찰서장과 이우상 봉화군의회의장,지역유지 9명이 뜻을 세워 동상건립을 위한 발기인회의글 구성 추진위원 38명을 선정하고,5천만원의 성금을 모금하여 소공원을 조성 한 후 1994년 6월 17일 지금의 동상과 부조를 준공해 충혼탑 제막식을 가지고 2003년 2월 10일 현충시설로 지정 등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지용호 호국공원 표지판 [15:32]

 

▲ 호국공원 주차장에서 뒤풀이 [15:49]

 

▲ 풍기 인삼축제 포스터

 

▲ 2018 풍기 인삼축제 [16:47]

 

▲ 2018 풍기 인삼축제 [16:51]

 

▲ 2018 풍기 인삼축제 [16:53]

 

▲ 2018 풍기 인삼축제 [16:54]

 

▲ 영주 풍기 인삼축제 안내 현수막 [1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