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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제주 올레길

2018.08.13. [제주 올레길 걷기 25] 20코스 김녕→화도

by 사천거사 2018. 8. 13.

 

제주 올레길 20코스 걷기

  

 ◈ 일시: 2018년 8월 13일 월요일 / 대체로 맑음 폭염

 ◈ 장소: 제주 올레길 20코스

 ◈ 코스: 김녕서포구 → 김녕 성세기해변  환해장성 → 월정해변 → 행원포구 → 좌가연대 → 뱅듸길  제주해녀박물관

 ◈ 거리: 17.6km

 ◈ 시간: 4시간 47분

 




07:50   오늘은 제주 올레길 남은 두 구간 중에서 20코스를 걸어 보기로 하고 아파트를 나섰다. 여늬 때와 마찬가지로 서귀포 버스터미널에 들러 8시 11분에 출발하는 201번 버스에 올랐다. 사실, 제주도 일주도로를 다니는 201번과 202번 버스를 타면 올레길 거의 모든 코스의 시작점과 도착점에 갈 수 있다. 물론 버스정류장에서 시작점과 도착점이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그에 상당하는 거리를 걸을 각오는 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제주도는 버스노선 쳬계가 그런대로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일주도로를 운행하는 버스는 정류장마다 선다. 마을이 일주도로에서 떨어져 있으면 그 마을을 들러서 간다. 따라서 목적지까지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201번과 202번을 이용하는 손님들은 대부분이 주민들이다. 그것도 자가용이 없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무릎이 시원찮아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 교통카드를 태그하는 법, 안전벨트를 매는 법 등에 서투른 분들도 꽤 있다. 운전기사 입장에서는 그 모두가 속 터질 일인데 대부분의 기사들은 잘 참고 대처를 잘 한다.


오늘 아침에 탄 201번 버스 기사님은 친절도 면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분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버스가 출발한지 20분 정도 되었을까, 버스를 탈 때는 맑았던 하늘에서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단한 빗줄기다. 한 남자 손님이 버스에서 내리려고 벨을 눌렀다. 그러자 기사분이 비옷을 하나 건네면서 입고 가라고 한다. 갑자기 비가 올 때를 대비해서 준비를 해가지고 다닌단다. 비록 1, 2천 원밖에 안 하는 비닐 비옷이지만 그 비옷 속에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따뜻한 사람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한 나이 드신 할머니가 앞좌석에 앉았다. 버스 앞좌석은 급정거를 할 때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벨트를 꼭 매야 한다고 기사분이 할머니에게 말을 했다. 할머니는 안전벨트 맬 줄을 모른다. 몇 번 시도하다 포기. 그러자 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기사분이 손수 할머니의 안전벨트를 매어주셨다.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손님이 타거나 내릴 때마다 인사를 건네는 그 기사님은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친절한 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가 점점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그쳤다. 다행이네, 우산 준비도 안 했는데. 비가 계속 내리면 나도 비옷 하나 달라고 할 참이었다. 안내서에 적힌 대로 김녕초등학교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올레길 20코스의 시작점인 김녕서포구로 가는 길은 두 코스를 더 가서 남흘동에서 내려 올레길 19코스를 따라가는 게 더 빠른 길이었다. 서귀포와는 달리 이곳 김녕에는 비 한 방울 내린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 강정동 아파트 출발 [07:57]


▲ 서귀포 버스터미널 [08:10]


▲ 서귀포 터미널에서 제주 터미널을 오가는 201번 버스 운행 시간표 [08:11]


▲ 내가 타고 갈 201번 버스 [08:12]


▲ 친절한 기사님 뒷모습만 잡았다 [08:37]


▲ 김녕초등학교 버스정류장 [10:24]


10:37   김녕서포구에 있는 올레길 20코스 시작점에 도착했다. 오늘 걸을 거리는 총 17.6km, 다른 올레길처럼 바다와 육지를 오가지만 바닷가 쪽 길이 더 많은 편이다. 바닷가에서 벗어나 김녕마을길을 따라 걸어간다. 해녀인 엄마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를 그린 벽화가 이채롭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마을길을 지나갈 때면 벽화나 조형물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모두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들이다. 비록 화려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지만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작품 속에서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 김녕서포구에 있는 올레길 20코스 시작점 표지판 [10:37]


▲ 올레길 20코스 안내도 [10:37]


▲ 김녕서포구 앞 바다 풍경 [10:38]


▲ 해녀인 엄마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 [10:42]


▲ 바닷가에 있는 조형물 '팡도라네': '팡돌'과 '안에'의 합성어 [10:43]


▲ 김녕리 앞 바다 풍경 [10:44]


▲ 해녀를 그린 벽화 [10:46]


▲ '제주 올레 20코스'를 형상화 [10:47]


10:54   김녕리 도대불이 보인다. '도대불'은 민간 등대를 말한다. 이 도대불은 다른 지역의 도대불에 비해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김녕포구를 지나자 김녕해수욕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해수욕장이 있는 김녕 해변을 '김녕 성세기해변'이라고도 부른다. 성세기는 외세 침입을 막기 위한 작은 성(새끼 성)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수욕장에서는 무더위에서 탈출해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열심히 물속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김녕리 도대불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도대불. 도대불은 배를 선창으로 안전하게 유도하는 신호 유적이다. 밤에 조업을 하던 배를 유도해야 하므로 도대불은 선창의 방파제 끝이나 지형이 높은 곳에 설치되었다. 원래의 김녕리 도대불은 마름모꼴의 상자형 도대불로 판단되지만, 1960년경에 태풍으로 허물어져 버리자 1961년 군청의 지원을 받아 원뿔 형태로 재축조되었다. 안정적이고 세련된 형태를 하고 있는 김녕리 도대불의 등화는 담당자를 따로 두어 등화를 하지 않고 어부들이 출항할 때 석유 호롱불을 켜놓고 맨 나중에 입항한 어부가 껐다.


김녕리 도대불은 원뿔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갈수록 좁게 쌓았는데, 약간 볼록한 듯한 벽의 모습을 하고 있어 매우 안정적인 느낌과 세련미를 풍긴다. 축조석들은 거친 다듬을 하였으나 면을 맞추고 쌓은 다음에 시멘트를 발라 보강했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원뿔 형태의 도대불에 맞추어서 밑은 넓고 위는 좁다. 상단에는 불을 켜기 위한 도구를 보호하는 설치를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집 형태의 조그만 등불 보호대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가운데 부분에는 호롱을 놓기 위한 대가 박혀 있었다. 규모는 높이 307㎝, 하단 335㎝, 상단 120㎝이다.


▲ 바닷가 언덕 위에 있는 김녕리 도대불 [10:54]


▲ 나는 김녕의 해녀입니다. 나는 먹고살기 위해 잠수를 합니다 [10:55]


▲ 풍력발전기가 보이는 김녕포구 [10:57]


▲ 김녕포구 옆 해수욕장: 이곳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10:58]


▲ 김녕해수욕장이 보이기 시작 [11:02]


김녕해수욕장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해변, 김녕 성세기해변이라고도 한다. 총 면적 4만 9000㎡, 백사장 길이 200m, 너비 120m, 평균 수심 1~2m 정도로, 규모가 자그마한 백사장에 깔린 부드러운 모래와 푸른빛의 맑은 바닷물은 주위의 기암절벽과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 준다. 주변에는 만장굴, 김녕사굴, 김녕 미로 공원, 제주 공예 단지, 함덕 해변, 해녀 박물관 등 관광 명소가 많이 있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23.4㎞ 떨어져 있으며 제주시 내에서 동회선 시외버스를 타면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 김녕 해변을 '김녕 성세기해변'이라고도 한다 [11:04]


▲ 모래가 부드러운 김녕해수욕장 [11:05]


▲ 김녕해수욕장을 지나와서 [11:07]


▲ 바다 물빛이 무척 곱다 [11:07]


▲ 멀리 김녕포구의 등대가 보이는 풍경 [11:11]


11:11   성세기 태역길에 들어섰다. '태역'은 제주어로 잔디를 의미한다. 제주올레에서 이 길 이름을 지었다는데 잔디는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바닷에서 아주 가까운 산책로 같은 길이 계속 이어졌다. 커다란 풍력발전기 옆을 지나가는가 하면, 만조 시기에는 물이 들어와 건널 수가 없는 곳도 있어 일단 도로로 나왔다 다시 바닷가 길로 들어가는 구간도 있었다. 울퉁불퉁한 곳을 조금 더 정비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냥 그런대로 걷기에 괜찮은 길이었다.  


▲ 성세기 태역길에 진입 [11:11]


▲ 바닷가 길을 따라 진행 [11:12]


▲ 만조 때라 도로 일부가 물에 잠겼다 [11:16]


▲ 입산봉과 구좌읍 김녕리가 보이는 풍경 [11:18]


▲ 풍력발전기 쪽으로 진행 [11:19]


▲ 만조일 경우 우회하라는 표지판 [11:23]


▲ 만조 때라 물길을 건널 수가 없다 [11:24]


▲ 다시 바닷가 길에 진입 [11;28]


▲ 시작점에서 3km 지나온 곳 [11;29]


▲ 만조 때라 건너갈 수가 없다 [11:34]


11:37   바닷가 길에서 벗어나 도로로 나왔다. 오른쪽으로 김녕 국가풍력실증연구단지 입구가 보인다. 이곳 김녕 지역도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 풍력발전기를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길 오른쪽에 제주밭담테마공원이 있어 잠시 들러보았다. 밭담은 글자 그대로 밭 경계선에 쌓은 돌담을 말한다. 제주도에 개설되어 있는 밭담길은 진빌레 밭담길을 비롯해 모두 6개인데 그 중에서 4개만 코스가 확정된 상태다. 언제 시간이 나면 밭담길도 걸어보아야겠다.

 

▲ 바닷가 길에서 벗어나 도로를 따라 진행 [11:37]


▲ 잠시 바닷가 길에 들어섰다가 [11:45]


▲ 다시 도로로 나왔다 [11:52]


▲ 남은 거리 12.5km 이정표 [11:52]


▲ 제주밭담테마공원에 있는 진빌레 밭담길 안내문 [11:55]


▲ 도로에서 벗어나 오른쪽 길로 진입 [11:57]


▲ 시작점에서 5km 걸어온 곳 표지판 [11:59]


▲ 고운 모래가 깔려 있는 길 [12:01]


▲ 잠시 다시 바닷가로 나왔다 [12:04]


12:09   진빌레 밭담길에 들어섰다. 진빌레 밭담길은 제주밭담과 농촌의 문화, 환경을 체험하기 위해 조성한 밭담길이다. 밭담은 유엔식량농업기구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월정리 해변으로 나왔다. 포구가 보이는 정자에 앉아 아주 간단히 빵과 감귤주스로 점심을 먹었다. 산행도 아니니 이 정도면 점심으로 충분하다. 월정리 해수욕장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도 보인다. 서핑하면 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생각난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넓은 모래밭,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


밭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돌을 이용하여 밭의 가장자리를 쌓은 담. 돌을 이용하여 밭의 경계를 구분 지었던 것인데, 밭의 경계도 되고 바람과 방목하는 마소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제주의 중요한 풍경 중의 하나가 된 밭담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고종(高宗)[1192~1259] 때부터라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는 경작지의 경계가 불분명해 이웃의 경작지를 침범하기도 하고 지방 세력가들이 백성의 토지를 빼앗기도 하는 등 토지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판관 김구(金坵)[1211~1278]가 지방의 사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토지 소유의 경계로 돌을 이용해 담을 쌓도록 했다고 한다.

돌담을 쌓은 후부터 토지 경계의 분쟁이 없어지고 방목했던 소와 말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줄었다. 또한 제주 특유의 바람을 막아 농작물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였으며 돌밭에서 돌을 치우고 나니 경지 면적이 넓어지고 농사일도 편해지면서 수확량이 많아져 농업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울러 제주의 밭담은 서로 완만한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지형에 맞게 계단형식으로 조성된 경우도 있어 독특한 제주의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밭담의 과학성과 창의성, 역사성이 인정되어 2013년 1월에는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14년 4월에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제주 밭담은 6천400㎞인 만리장성보다 훨씬 긴 약 2만 2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검은 용이 용틀임을 하듯이 구불구불 이어진 제주 밭담을 흑룡만리(黑龍萬里)라고 한다. 이러한 제주 밭담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그 가치를 기리기 위해 2015년부터는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서 제주 밭담 축제도 열리고 있다.


▲ 제주 진빌레 밭담 [12:09]


▲ 날이 가물어 스프링클러가 작동 중이다 [12:10]


▲ 밭담 위로 피어오른 하얀 구름 [12:12]


▲ 월정포구가 보이는 정자에서 점심: 빵, 감귤주스 [12:22]


▲ 어선이 정박해 있는 월정포구 [12:30]


▲ 물허벅을 메고 있는 여인 [12:31]


▲ 월정리해수욕장: 여기도 그늘이 대세다 [12:32]


▲ 물빛 고운 월정리해수욕장 [12:34]


▲ 월정리해수욕장 서핑 구역 [12:34]


▲ 시작점에서 7km 걸어온 곳 표지판 [12:36]


12:40   올레길이 도로에서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다시 바닷가로 나왔다.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행원포구를 지나자마자 길이 도로에서 벗어나 왼쪽에 있는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 길 왼쪽에 불턱이 하나 보인다. 이름하여 어멍불턱, 불턱은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휴식을 취하던 장소를 말한다. 올레길은 해안도로를 건너 다시 내륙에 있는 마을길과 이어졌다. 마을길과 밭길을 거친 올레길은 잠시 후 도로와 만났다.


▲ 해안도로에서 벗어나 내륙으로 [12:40]


▲ 밭담과 풍력발전기가 어울린 풍경 [12:44]


▲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행원포구 [12:51]


▲ 해녀상과 해녀 노젓는 소리 노래비 [12:56]


불턱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쉬던 장소. 불턱은 일종의 탈의실인데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불을 쬐며 쉬는 곳으로 공동체의식을 나누는 공간이다. ‘화톳불’과 그 의미가 유사한데, ‘불[火]’은 글자 그대로 불씨를 뜻하며 ‘덕’은 ‘불자리’를 뜻한다. 가리개 모양의 바위를 자연 그대로 이용하기도 하고, 크고 작은 돌을 이용해 외부의 시선을 가릴 수 있도록 키보다 높게 돌담을 쌓기도 하였다. 돌담 가운데에 돌을 쌓아 불자리를 만들고 땔감 등을 가져와 불을 지핀다. 해녀들은 구덕(바구니)을 지고 가서 불턱에 놔두고 물질을 하다가 밖으로 나와서 불을 쬔다.

옛날엔 마을마다 여러 개의 불턱이 있었는데 지금은 온수 시설을 갖춘 잠수탈의장이 생겨서 불턱에 모여 앉지 않는다. 물소중이를 입고 물질을 할 때는 바닷물 속에 오래 있지 못하므로 물 밖으로 나와서 불을 쬐다가 다시 들어가기 때문에 불턱이 존재했지만 1970년대에 고무옷이 잠수복으로 등장하면서 해녀들의 작업 시간도 달라지고 불을 쬘 필요도 줄어들어서 불턱은 그 기능을 상실했다.


▲ 길 왼쪽에 있는 어멍불턱 [12:57]


▲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쪽으로 진행 [13:07]


▲ 행원리 마을길을 따라 진행 [13:13]


▲ 벌써 9km나 걸어왔네 [13:16]


▲ 밭 사이로 나 있는 길 [13:21]


13:27   도로를 따라가던 올레길이 다시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야산길에 들어섰다. 신기한 것은, 전혀 밭이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곳에도 밭이 일구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산길을 이리 저리 돌아 좌가연대 앞에 도착했다. 좌가연대는 조선시대 별방진 소속의 연대로 동쪽으로 왕가봉수, 서쪽으로 무주연대와 교신을 했다고 한다. 밭 사이로 나 있는 길을 걸어 잠시 후 해안도로에 내려섰다. 오늘 걷는 올레길 20코스는 해안과 내륙을 오가는 길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그런 길이 대부분이다.


▲ 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 [13:27]


▲ 밭담과 풍력발전기가 어울린 풍경 [13:31]


▲ 위풍당당한 풍력발전기 [13:32]


▲ 밭이 없으리라 생각 되는 곳에도 어김없이 밭이 있다 [13:39]


좌가연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별방진 소속의 연대. 좌가연대는 동쪽으로 왕가봉수(직선 거리1.2㎞), 서쪽의 무주연대(직선 거리 4.7㎞)와 서로 교신을 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주변 지형을 보면 지금은 소나무 숲으로 시야가 막혀 있지만, 동쪽으로 별방진이 있는 하도리 해안, 서쪽으로 행원리 해안까지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55x40㎝, 50x40㎝, 50x50㎝ 크기의 거친돌을 허튼층으로 막쌓기하였으며 허리 부분은 각을 주지 않고 둥글게 모접기하였다.

좌가연대는 바다 쪽으로 향한 북측 면과 동측 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무너진 상태이나 그 윤곽은 뚜렷하다. 하부 폭은 7.6x8.4m이고, 높이는 1.8m~2.2m 가량 남아 있다. 상부 폭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하부의 폭으로 미루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3-15호로 지정되었다. 2005년 복원이 완료되었는데, 외벽 모서리를 각을 내지 않고 둥글게 모접기를 하였다. 가운데에는 연소실 시설을 복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1차 방호벽을 꽤 높게 쌓아 모양을 특이하게 만들었다.


▲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좌가연대 [13:41]


▲ 이제 남은 길이 6.5km 정도다 [13:42]


▲ 밭담을 따라 나 있는 길 [13:50]


▲ 해안도로에 도착 [13:55]


▲ 한동리 앞 바다 풍경 [14:04]


14:05   도로 오른쪽에 호국영웅 고태문로 안내판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외국에는 역사적으로 큰 업적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을 딴 지명, 건물, 도로 등이 많다. 최근에 우리나라도 그러한 상황이 늘어나는 추세다. 도로에서 벗어나 한동리 마을로 들어갔다. 마침 작은 언덕 위에 정자가 하나 있어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꽤 시원하다. 휴식 후 출발, 마을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자 길이 다시 해안으로 내려갔다. 평대리해수욕장,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호국영웅 고태문로


한동리 해맞이 해안로에서 계룡동으로 들어가는 지점에 ‘호국영웅 고태문 표지석’과 ‘명예도로 소개’ 표지판이 서 있다. 고태문 대위는 이곳 한동리에서 태어나 1950년 10월 육군 소위로 임관, 1951년 8월 제11사단 제9연대 7중대 소대장으로 근무했는데, 펀치볼 일대의 884고지 탈환을 위하여 앞장서 포복으로 적진에 들어가 백병전으로 적을 무찌르고 고지 탈환에 성공했다.

또 1952년 11월 9일, 제5사단 27연대 9중대장으로 고성지역 351고지를 점령 방어하던 중 적 2개 중대의 공격을 받아 1차 공격은 방어하였으나, 2차 방어에 실패해 ‘진지를 고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남긴 채 전사하고 말았다. 이 명령을 지킨 중대원들은 다음 날 그의 유언대로 재공격함으로써 마침내 진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1952년 충무무공훈장, 1952년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명예도로 고태문로’는 그의 희생정신을 후세대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출신지역인 동리 해안도로 2.4㎞ 구간을 명예도로로 지정하게 된 것이다.


▲ 호국영웅 고태문로 안내판 [14:05]


▲ 호국영웅 고태문 육군 대위 안내판 [14:05]


▲ 도로에서 한동리 마을에 진입 [14:10]


▲ 이제 4.5km 정도가 남았다 [14:11]


▲ 마을 정자에서 한참 동안 휴식 [14:28]


▲ 집主인의 친절한 안내문: 남은 거리는 4.1km [14:30]


▲ 올레길 20코스 이정표 [14:36]


▲ 벵듸고운길은 또 뭔가? [14:41]


▲ 규모도 작고 사람도 별로 없는 평대리해수욕장 [14:43]


14:52   불림모살길은 또 뭔가? 나중에 알고 보니, 불림모살길은 벵듸길의 한 구간이었다. 그렇다면 '벵듸'는 무엇인가? 벵듸는 '잡초가 자라는 넓은 들판'이라 뜻이다. 그러니까 지금 올레길이 벵듸고운길 중에서 불림모살길에 들어섰다는 말이구나. 오늘따라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들이 무척 보기에 좋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지겹도로 보았던 스페인 하늘의 구름과 비교해 볼 때 전혀 손색이 없다. 벵듸길에서 벗어나 세화리 마을에 들어섰다. 예전에 꽤 여러 날 거주했던 곳이라 눈에 익은 곳이 많이 보인다.


▲ 불림모살길 표지판 [14:52]


▲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무척 아름답다 [14:54]


▲ 새로 개설된 도로 때문에 길이 달라졌다 [14:56]


▲ 밭둑길을 따라 진행 [15:00]


▲ 벵듸고운길 안내도 [15:05]


▲ 구좌읍 세화리 읍내가 보인다 [15:08]


▲ 세화민속오일장 건물 [15:14]


▲ 물빛 고운 세화해수욕장 [15:15]


15:16   세화민속시장 정문 앞을 지났다. 2015년 6월 아내와 함께 들른 적이 있는데 오늘은 장날이 아니라서 시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세화오일장은 끝자리가 5와 0인 날에 열린다. 왼쪽으로 세화해수욕장이 보인다. 세화해수욕장은 지난 7월 25일 일어났던 여성 실종사건의 현장인 세화포구 옆에 자리하고 있다. 세화해수욕장은 물빛 고운 코발트색 바다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해수욕장 앞 삼거리에서 해녀박물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녀박물관 주차장 위에 있는 20코스 종착점에 도착하는 것으로 실제적인 올레길 20코스 걷기는 모두 끝이 났다. 해녀박물관입구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서귀포로 가는 201번 버스가 3시 48분에 있었다. 20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 정류장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하나 사서 마셨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맛이야. 정시에 도착한 버스에 올라 서귀포로 돌아온 시각이 5시 48분, 무려 두 시간이나 걸렸네. 이렇게 해서 무더위와 함께 한 올레길 20코스 걷기는 무사히 끝이 났다.


▲ 세화민속시장 정문 [15:16]


세화해수욕장


세화해수욕장은 1980년 개장된 해수욕장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코발트 빛 맑은 바다 색깔이 무척이나 예쁜 곳이다. 폭 30~40여 미터의 해수욕장이 200여 미터 정도 펼쳐지며 인근에 세화읍이 위치하고 있어 각종 숙박시설과 기타 편의 시설 이용이 용이한 곳이다. 인근에 문주란 자생지인 난도와 별방진이라는 역사유적 그리고 석다원이라는 작은 돌 공원이 위치하고 있다. 길이 1km, 폭 30-40m, 경사도 5도, 평균수심 1-2m.


▲ 바다 물빛이 고운 세화해수욕장 [15:19]


▲ 바다 물빛이 고운 세화해수욕장 [15:19]


▲ 삼거리에서 해녀박물관 쪽으로 진행 [15:21]


▲ 멀리 예전에 자주 갔던 별방촌 횟집이 보인다 [15:22]


▲ 숨비소리길은 또 뭐지? [15:23]


▲ 해녀박물관 주차장 옆에 있는 20코스 종점 표지판 [15:24]


▲ 해녀박물관 입구 버스정류장 [15:48]


▲ 고래왓 버스정류장 [17:49]


▲ 강정동 아파트에 귀환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