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 산행/전북山行記

2018.02.23. [전북山行記 80] 전북 부안 우금산

by 사천거사 2018. 2. 23.

우금산 산행기

◈ 일시: 2018년 2월 23일 금요일 / 대체로 맑으나 미세먼지 심함

◈ 장소: 우금산 331m / 전북 부안 

◈ 코스: 개암가든 → 차도 → 개암산천 → 우금산성 → 우금산 → 우금바위 → 베틀굴 → 

           원효굴 → 개암사 → 개암가든

◈ 거리: 6.1km

◈ 시간: 3시간 6분

◈ 회원: 백만사 회원 12명


 

 

 


09:00   오늘은 백만사에서 서해안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여행 첫날인 오늘 일정은, 청주를 출발해 새만금방조제를 거쳐 변산반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우금산 답사와 천년고찰인 내소사 방문을 마친 후 대명리조트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다. 산남동 천주교회 주차장에 12명의 회원이 모여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세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출발, 서세종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해 서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날은 맑은데 미세먼지로 하늘이 부옇다.

 

공주휴게소에 들러 빵과 커피로 간식을 먹은 후 출발, 군산나들목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벗어나 새만금방조제 도로에 들어섰다. 77번 국도를 겸하고 있는 새만금방조제는 길이가 33.9km에 달해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신시도에 있는 새만금휴게소에 들러 잠시 바람을 쐬었다. 새만금방조제 건설로 인해 차량통행이 가능해진 신시도에는 산행객들이 많이 찾는 월명산과 대각산이 있고, 고군산대교와 선유대교가 개설되어 신시도에서 차량을 이용해 선유도까지 갈 수도 있다.

 

새만금방조제를 통과한 후 변산반도에 진입, 오늘 일정의 메인 이벤트인 우금산 산행에 나서기 전에 점심을 먹기 위해 마땅한 식당을 찾다가 개암사 입구 변산반도국립공원 상서분소 맞은편에 있는 개암가든 식당으로 들어갔다. 닭과 오리, 토끼, 비둘기 등으로 만든 요리가 메뉴판에 적혀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토종닭곰탕, 처음 들어보는 요리라 기대감이 컸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하는 말: 근처에 닭곰탕 집이 많지만 내가 원조라우.


▲ 산남동 천주교회 주차장에 회원들 집결 [09:04]

 

▲ 당진영덕고속도로 공주휴게소 도착 [09:59]

 

▲ 휴게소에서 빵과 커피로 간식을 먹고 [10:03]


새만금 방조제

 

새만금 간척 사업은 전라북도 군산, 김제, 부안 앞바다를 연결하는 방조제 33.9km를 세우고, 그 안에 땅 28,300 ha, 호수 11,800 ha를 만드는 계획이다. 사업 자체는 전라북도 옥구군 옥서면을 중심으로 한 금강, 만경강, 동진강 하구를 둘러싼 갯벌을 개발하려는 옥서 지구 농업 개발 계획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나중에 새만금 사업으로 바뀌었고 1991년부터 사업이 추진되었다. 새만금 방조제는 기존에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알려졌던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32.5km)보다 1.4km 긴 33.9km의 길이로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 신시도에 있는 새만금휴게소 주차장에서 바람 한번 쐬고 [11:38]

 

▲ 신시도에 있는 월명산: 2011년 2월에 대각산과 연계산행을 했던 곳 [11:39]

 

▲ 개암사 입구에 있는 개암가든 [12:33]

 

▲ 개암가든에서 토종닭곰탕으로 점심식사 [13:22]

 

▲ 개암가든 토종닭곰탕 상차림 [13:22]


14:06   개암가든 주차장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본격적인 우금산 산행에 나섰다. 맑은 날인데도 미세먼지 때문에 시야가 밝지는 않다. 개암저수지 왼쪽을 따라 나 있는 차도를 15분 정도 걸어가자 개암산천 간판이 나타났고 그 뒤로 산길이 열려 있어 들어섰다. 국립공원에서 비탐방지역으로 지정했지만 공공연히 산행을 할 수 있는 코스라고 보면 된다. 처음부터 꽤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더니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산을 오르는 회원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 개암가든 주차장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14:06]

 

▲ 도로 오른쪽 개암저수지 [14:10]

 

▲ 개암저수지 앞에서 여성회원들 [14:10]

 

▲ 우금산성 가는 길 이정표 [14:18]

 

▲ 차도를 따라 진행 [14:20]

 

▲ 차도를 따라 진행 [14:21]

 

▲ 개암산천 간판 뒤가 산행 들머리 [14:24]

 

▲ 처음부터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 [14:26]

 

▲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 [14:28]


14:31   경사가 너무 심해 한번에 오를 수가 없어 오르막길 중간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돌렸다. 다시 산행 시작,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 한동안 더 이어지더니 나즈막한 봉우리가 나타났다. 222봉인 모양이다. 222봉을 지나면서 길의 오르막 경사가 많이 완만해졌다. 길 오른쪽을 따라 야트막한 둔덕이 계속 이어지는데 추측컨데, 성돌은 보이지 않지만, 우금산성 성벽과 나란히 가고 있는 모양이다. 삭막한 늦겨울 산길에서 빨간 청미래덩굴 열매가 돋보인다.


▲ 오르막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 [14:31]

 

▲ 휴식 후 출발 [14:33]

 

▲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 [14:36]

 

▲ 마침내 222봉에 도착 [14:39]

 

▲ 걷기 좋은 소나무 숲길 [14:44]

 

▲ 길 옆 청미래덩굴 열매가 보기에 좋다 [14:47]

 

▲ 틈 나는 대로 쉬고 [14:50]

 

▲ 또 걸어간다 [14:53]

 

▲ 아직까지는 조금 삭막한 기분이 드는 겨울 산길 [15:01]

 

▲ 쓰러진 나무 아래를 통과 [15:03]


15:04   산길이 끊어졌다. 아니, 문화재 조사구역 지정으로 인해 폐쇄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금산성 동문지 발굴 현장이었다. 우금산성은 백제 부흥군이 최후 항전을 별였던 역사적 현장으로 전해지고 있다. 왼쪽으로 나 있는 사면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자 이런, 길이 끊어졌다. 어쩌나,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하는 수 없이 사면을 치고 올라가기로 하고 지형을 살펴보니, 경사가 조금 있는 암벽이 펼쳐져 있어 올라붙었다. 부서지는 돌에 신경을 쓰며 어렵사리 암벽구간을 통과했다.   


우금산성

 

부안은 내륙으로 김제, 정읍, 고창과 붙어있으며 바다 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불쑥 튀어나왔다. 변산반도의 중심쯤 되는 지점에 자리한 우금산성은 일명 울금산성, 주류성이라고도 한다. 개암사 뒤 산길로 30분쯤 올라가면 울금바위를 만난다. 본래 우진암이라 했으나 소정방이 김유신을 만난 곳이라 해서 우금암이 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우금산성은 660년 백제 의자왕이 부여를 빼앗겨 연합군에 투항하고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백제 광복군이 왕자 "부여풍" 을 받들어 최후 항전을 벌였던 역사적 현장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성은 양 능선을 따라 동서로 연장되었으며 남변의 길이는 수구에서 동측선이 563m로 우금암까지, 서측선은 675m, 계 1,238m에 이르며, 동변은 1,100m이고 북변은 830m, 서변은 838m로서 평면은 북변이 좁고 남변이 넓은 사다리꼴을 이루는 형태를 하고 있다. 울금바위 정상에서는 드넓은 호남평야와 서해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 문화재 조사구역 출입금지 표지판 [15:04]

 

▲ 우금산성 동문지 발굴 현장 [15:07]

 

▲ 왼쪽 사면을 따라 진행 중 [15:08]

 

▲ 길이 끊어져 오른쪽 암벽을 올라가기 시작 [15:16]

 

▲ 암벽을 올라오고 있는 여성회원들 [15:19]

 

▲ 암벽을 올라오고 있는 여성회원들 [15:20]

 

▲ 부서진 돌이 많아 조심 조심 [15:21]

 

▲ 이제 한시름 놓은 듯 [15:23]


15:29   힘든 오르막 암벽 구간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능선에 올라서자 능선을 따라 나 있는 번듯한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걷기 좋은 능선길을 따라 우금산 정상 쪽으로 가는 길, 전망이 트이면서 사산저수지 쪽이 보인다. 잠시 후 우금산성 성벽 위에 올라섰다. 물론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우금산성길이기는 하지만 지금부터는 성돌이 가장 확실하게 보이는 구간에 들어선 것이다. 성돌을 밟고 가는 성벽길은 우금산 정상까지 계속 이어졌다.


▲ 오르막 암벽 구간을 마치고 휴식 중인 회원들 [15:29]

 

▲ 능선을 따라 나 있는 번듯한 길 [15:31]

 

▲ 능선길을 따라 진행 [15:38]

 

▲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 [15:41]

 

▲ 사산저수지 방면 조망 [15:43]

 

▲ 암릉 구간 시작 [15:48]

 

▲ 암릉 구간을 걷고 있는 회원들 [15:51]

 

▲ 우금산성 성벽길에 진입 [16:00]

 

▲ 두 번째 보이는 봉우리가 우금바위 [16:01]

 

▲ 우금산성 성벽길을 따라 진행 [16:01]


16:04   해발 331m의 우금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돌탑과 표지석, 삼각점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깃대에서 휘날리던 태극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우금산 정상은 전망이 좋은 곳인데 오늘은 미세먼지 때문에 조망이 별로다. 우금산성 성벽길을 따라 우금바위 쪽으로 이동을 했다. 우금바위가 잘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울금바위, 우금암 등으로도 불리는 우금바위 꼭대기를 우금산 정상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 우금산 정상에서 여성회원들 [16:04]

 

▲ 우금산 정상에서 남성회원들 [16:05]

 

▲ 해발 331m 우금산 정상: 돌탑, 표지석, 삼각점이 보인다 [16:06]

 

▲ 우금산 정상에서 바라본 우금바위 [16:09]

 

▲ 멀리 개암저수지가 보이는 풍경 [16:11]

 

▲ 우금바위로 가는 길 [16:12]

 

▲ 길 오른쪽 시루떡 바위 [16:20]

 

▲ 우금바위가 잘 보이는 곳에 도착 [16:26]


16:31   우금바위를 오른쪽으로 돌아가자 작은 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베틀굴이었다. 굴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풍경이 마치 커다란 텐트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풍경과 닮았다. 베틀굴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베틀굴보다 규모가 더 크 굴이 나타났는데 원효굴이었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 굴에 머물면서 개암사를 중수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원효굴 위 바위벽에서 거꾸로 자라는 나무들의 모습이 보였다. 신기한 자연현상이다. 우금바위에서 개암사까지는 계속 내리막길, 거리는 700m 정도가 된다.


▲ 우금바위 아랫부분에 있는 베틀굴 [16:31]

 

▲ 베틀굴 안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 [16:32]

 

▲ 베틀굴 앞에서 여성회원들 [16:32]

 

▲ 우금바위 원효굴 [16:34]

 

▲ 원효굴 안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 [16:35]

 

▲ 원효굴 앞에서 여성회원들 [16:36]

 

▲ 만석동 갈람길 이정표: 개암사 쪽으로 진행 [16:38]

 

▲ 뒤돌아본 우금바위 [16:39]

 

▲ 개암사로 내려가는 길 [16:47]


16:52   천년고찰인 개암사에 도착했다. 개암사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물론 보물 제292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보전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대웅전과 우금바위가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온 후 만나는 풍경, 우금바위를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대웅전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개암사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멋진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개암사

 

개암사는 부안에서 보안을 향해 내려가다, 봉은에서 개암저수지를 휘돌아 올라가면 울금바위 아래 자리잡고 있다. 이 절은 백제무왕 35년(634년)에 묘련왕사가 변한에 있는 궁전을 절로 고쳐 지을 때 묘암의 궁전을 묘암사, 개암의 궁전을 개암사라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40여 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들어와 절을 다시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는 대웅보전, 응진전, 월성대, 요사채가 있어 한적한 편이다. 대웅전 오른쪽 새로 지은 요사를 둘러싼 대나무가지 울타리와 갈대는 입구의 단풍길과 함께 개암사의 고요한 멋을 더해준다. 보물 제292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 개암사 입구에 서 있는 이정표 [16:52]


부안 개암사 대웅전

 

보물 제292호.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개암사는 634년(백제 무왕 35)에 묘련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1314년(고려 충숙왕 1)에 원감국사가 절을 다시 지어 큰 절로 거듭나게 되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중수했다. 부안 개암사 대웅전은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의 건물이다.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았으며, 건물에 비해 굵은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우람한 기둥 덕분에 안정감이 느껴지며, 조각기법에서도 세련미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번지 개암사에 있다.


▲ 보물 제292호인 개암사 대웅보전 [16:54]

 

▲ 우금바위와 개암사 대웅보전이 어우러진 풍경 [16:55]

 

▲ 우금바위와 개암사 대웅보전이 어우러진 풍경 [16:56]

 

▲ 귀여운 동자승 [16:58]

 

▲ 우금바위와 개암사 대웅보전이 어우러진 풍경: 여성회원들 [17:04]

 

▲ 전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17:08]

 

▲ 능가산 개암사 일주문 [17:09]

 

▲ 차를 세워둔 개암가든 주차장에 귀환 [17:15]


17:40   내소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내소사 일주문에는 '능가산 내소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능가산은 변산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전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을 걸어 천년고찰 내소사 경내에 도착, 보물 제277호인 고려동종을 둘러본 후 보물 제291호인 대웅보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단청이 모두 벗겨져 세월을 흐름을 역력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웅보전의 백미는 꽃살문 무늬인데, 이것은 그냥 나무로 조각한 꽃무늬가 아니라 하나의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오늘 여정이 마지막 일정인 내소사 탐방을 마친 후 오늘 밤을 묵을 대명리조트를 향해 달려갔다. 


내소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3년(무왕 34)혜구(惠丘)가 창건하여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청민(靑旻)이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 18)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 1902년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1983년 일주문을 세우고 198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986년 천왕문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1987년 봉래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88년 요사인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하였다. 1995년 수각(水閣)과 종각을 짓고 범종을 조성하였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은 중국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한 뒤, 이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고 전하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현존하는 당우 및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비롯하여 보물 제277호인 고려동종(高麗銅鐘), 보물 제278호인 법화경절본사경(法華經折本寫經), 보물 제1268호로 지정된 괘불 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요사채, 설선당(說禪堂)·보종각(寶鐘閣)·봉래루(蓬萊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1623년(인조 1)에 완공되었는데 그 의장(意匠)과 기법이 매우 독창적인 조선 중기의 대표작이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법당 내부의 벽면에 그려진 관세음보살상 등의 그림도 일품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건물은 호랑이가 화현(化現)한 대호선사(大虎禪師)가 지었다 하고, 벽화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데, 그때의 일화가 지금도 전하고 있다. 또한, 고려동종은 1222년(고종 9)변산 청림사(靑林寺)에서 만든 종인데, 1850년 땅속에서 발굴된 뒤 이 절로 옮겨졌다. 그리고 법화경절본사경은 조선 초기에 이씨 부인이 망부(亡夫)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한 글자를 쓰고 한 번 절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필사한 것이다. 정면 6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인 설선당은 인조 때 승려의 수학 장소로 건축되었고, 봉래루는 1414년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이건하였으며, 현재 산문(山門)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속암자로는 입구의 지장암(地藏庵)과 절 후방 1.5㎞ 지점에 청련암(靑蓮庵)이 있다. 절 일원이 전라북도 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소사 주차장 출발 [17:44]

 

▲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 능가산은 변산의 다른 이름이다 [17:47]

 

▲ 내소사 전나무 숲길 [17:50]

 

▲ 천년고찰 내소사에 도착 [17:57]


부안 내소사 동종(扶安 來蘇寺 銅鍾)

 

부안 내소사 동종(扶安 來蘇寺 銅鍾)은 전라북도 부안군 내소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구리 종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77호로 지정되었다. 이 종은 원래 내변산에 있는 청림사에서 고려 고종 9년(1222년)에 만든 것으로 조선 철종 원년(1850년)에 이 곳으로 옮겼다. 전형적인 고려 후기의 종으로 높이는 1.03m, 직경은 67cm, 무게는 420kg이다. 종을 매 다는 고리에는 용을 새겼고, 종 가운데에 세분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가운데 본존불은 연꽃 위에 앉아 있고, 좌우 협시상은 서 있는 모습이다. 종의 윗 부분과 아랫 부분에는 화려한 식물 문양을 새겼으며, 해바라기처럼 뾰족한 끝을 가진 연꽃 무늬가 종을 때리는 자리(당좌)이다. 표면의 묘사수법이 정교하고 사실적인 이 종은, 통일신라 시대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고려시대 범종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 보물 제277호인 내소사 고려동종 [17:58]

 

▲ 내소사 오색 연등 [17:58]


불사(佛事)

 

사찰에서 비용을 마련하여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을 불사(佛事)라고 한다. 불사에는 폐허가 된 사찰을 다시 세우는 ‘중창불사’, 지붕에 기와를 다시 입히는 ‘기와불사’, 범종을 주조하는 ‘범종불사’, 불상에 금색을 다시 칠하는 ‘개금불사’, 가사를 만들어 승려들에게 보시하는 ‘가사불사’ 등이 있다.


▲ 대부분의 절에서 볼 수 있는 기와불사 [17:58]


내소사 대웅보전

 

내소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291호.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팔작지붕 건물로 다포 계통의 불당이다. 잡석으로 쌓은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 낮은 기단을 두고 자연석의 초석(礎石)을 배치했으며, 그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모서리기둥[隅柱]만 배흘림이고 나머지는 곧은 원기둥[圓柱]이다. 앞면의 기둥 사이에는 중앙칸에 사분합(四分閤)문을, 좌우칸에 분합문을 달았는데 문짝은 초화무늬[草花紋]가 정교하게 투각된 꽃살문이다. 불단 위에는 아미타구품인을 한 불좌상과 좌우에 보살좌상을 안치했고 그 위에 닫집을 따로 설치하지는 않았다. 건물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니며, 평면은 중후한 방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에 비해 기둥 높이가 낮아 단정한 느낌을 준다.


▲ 보물 제291호인 내소사 대웅보전 [17:59]

 

▲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 무늬 [18:00]

 

▲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 무늬 [18:00]

 

▲ 꽃살무늬를 감상하고 있는 회원들 [18:01]


18:55   방에 짐을 옮겨놓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대명리조트에서 채석강 쪽으로 걸어가면 음식점이 많이 있다.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먹어야겠는데 어느 식당에 들어가야 할지가 고민거리다. 에라 모르겠다, 두 번째에 있는 광주횟집으로 들어갔다. 다른 곳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 생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왜? 나온 음식의 가지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음식 맛도 깔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맛있는 저녁을 먹고 리조트 룸으로 돌아와 캔맥주를 마시는 동안 변산반도의 밤은 깊어만 갔다.


▲ 대명리조트 로비에서 [18:55]

 

▲ 변산에 있는 대명리조트 건물 야경 [19:24]

 

▲ 변산 광주횟집 모듬회 상차림 [19:46]

 

▲ 백만사를 위하여! [19:49]

 

▲ 저녁회식을 한 광주횟집 앞에서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