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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경북山行記

2018.01.06. [경북山行記 99] 경북 경주 단석산→입암산

by 사천거사 2018. 1. 6.

단석산-입암산 산행기

◈ 일시: 2018년 1월 6일 토요일 / 맑음, 쌀쌀한 날씨

◈ 장소: 단석산 827.2m / 입암산(입석산) 690m / 경북 경주 

◈ 코스: 단석산 공영주차장 → 신선사 → 미륵전 → 단석산 → 비지고개 → 입암산 → 

           백석암 → 백석마을 → 백석승강장

◈ 거리: 8.57km

◈ 시간: 2시간 51분

◈ 회원: 청주 토요산악회 안내 산행


 

 

 

 


07:30   오늘은 청주 토요산악회에서 안내하는 단석산 산행에 참가하는 날이다. 경주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단석산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유신이 무술연마를 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고, 정상 아래에 있는 신선사에는 국보 제199호로 지정되어 있는 마애불상이 있다. 청주의료원 앞을 출발한 버스가 서청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 남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이 아주 화창하다. 건천나들목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벗어난 버스가 20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단석산 공영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단석산(斷石山)

 

삼국통일의 공신인 김유신(金庾信)은 595년(진평왕 17년) 충북 진천에서 만노군(萬弩郡)의 태수이던 서현(敍玄) 장군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로왕의 13대손인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17세에 고구려, 백제의 잦은 침략에 삼국 통일의 큰 뜻을 품고 서라벌 서쪽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 하고 천지신명에게 고구려, 백제,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 만에 한 노인이 나타나 김유신의 인내와 정성을 가상히 여겨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劍)을 주었다고 삼국사지, 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에 소개되어 있다.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고구려, 백제와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고 하여, 이름이 단석산(斷石山)이 되었다.

이 산은 건천읍 송선리 산89번지 우중골에 있으며, 산 7∼8부 능선 4개의 바위가 둘러싸인 천연굴이 있는데 옛날에는 상인암(上人巖:일명 탱바위)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화랑들은 이 바위굴 속에 불상을 새기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석굴사원을 만들었다. 이 절을 신선사(神仙寺) 또는 단석사(斷石寺)라고 부른다. 내부의 마애불상은 국보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단석산은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827m)으로 백제에 대한 신라의 국방의 요충지였다. 이 지역은 진달래군락지로 봄철 산악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인근 조래봉(657m)과 더불어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 상주영천고속도로 낙동강의성휴게소 [08:42]


10:00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길 옆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신선사까지 거리가 3km다. 문제는 이 3km의 거리가 계속 포장도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야 도로를 걷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지만 다른 회원들에게는 조금 짜증이 나는 구간일 것 같다. 어쨌든,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은 포장도로를 따라 16분 정도 올라가자 왼쪽으로 오덕선원 큰법당이 보이고 다시 조금 올라가자 오른쪽으로 경주국립공원 지킴터 건물이 보인다. 8분 후 경주국립공원 단석산 지구가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했다.


▲ 단석산 공영주차장에 도착 [10:00]

 

▲ 신선사까지 거리는 3km [10:01]

 

▲ 신선사 2.5km 전 이정표 [10:07]

 

▲ 도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는 회원들 [10:11]

 

▲ 오덕선원에서 조성하는 108 탑림공원 [10:16]

 

▲ 뒤돌아본 오덕선원 큰법당 [10:18]

 

▲ 경주국립공원 공원지킴터 건물 [10:23]

 

▲ 경주국립공원 경계지점에 서 있는 안내도 [10:31]


10:32   경주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지점에서부터 급경사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시멘트 포장도로이기는 하지만 경사가 워낙 급하다 보니 올라가는 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6분 후 신선사 주차장에 이르렀고 다시 6분 정도 걸어 신선사 대웅보전 앞에 도착했다. 국보 제199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은 6~7세기 경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거대한 바위에 10구의 불상이 도들새김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한 바퀴 돌아보니, 불상 하나하나마다 부처님을 공경하는 신라인의 숨결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 있는 이정표 [10:32]

 

▲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을 올라오고 있는 회원들 [10:34]

 

▲ 신선사 주차장에 있는 표지석 [10:38]

 

▲ 신선사 주차장에 서 있는 이정표 [10:39]

 

▲ 신선사 대웅보전 [10:45]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慶州 斷石山 神仙寺 磨崖佛像群)

 

국보 제199호. 본존 높이 820㎝. 거대한 암벽이 ㄷ자로 솟아 자연석실을 이루고 있는데 내부 3면에 불상·보살상·반가사유상·공양상 등 10구와 200여 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은 마멸이 심해 완전한 판독이 어렵지만 이 석굴의 절 이름이 신선사(神仙寺)이며 본존상이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임을 알 수 있다. 즉 여래형의 미륵불과 보살형인 반가사유상이 함께 조성된 것으로 당시 미륵신앙에 의해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경주산천단석산(慶州山川斷石山)조에는 삼국통일에 큰 역할을 했던 김유신이 이곳에서 수련을 했다는 구전이 남아 있어 신선사라는 절 이름을 화랑과 관련된 미륵신앙의 기도처로 생각하는 의견도 있다.

 

서쪽으로 트인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 바위면에 모두 7구의 상이 위아래로 나뉘어 조각되어 있다. 윗면 앞쪽 3구의 상은 우견편단(右肩偏袒)과 통견(通肩)의 여래입상으로 모두 손으로 굴의 안쪽을 가리키는 독특한 자세를 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그 옆에 조각된 반가사유상을 향한 자세로 해석된다. 안쪽의 삼면관을 쓴 반가사유상은 정면으로 부조되어 있어 신라 반가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우견편단의 여래입상은 삼국시대 불상 중에서는 특이한 형식으로 주로 신라 7세기 전반의 금동약사여래입상에서 볼 수 있으며 이곳 단석산의 마애불상군 중에도 우견편단의 상이 보이는 것은 당시 이러한 불상양식이 유행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암벽 아래에는 우견편단의 여래입상과 손에 향로와 나뭇가지 형태의 공양물을 들고 안쪽을 향해 서 있는 2구의 공양자상이 있다. 다시 그 안쪽의 바위면을 돌아가면 석굴의 주존불인 거대한 여래입상과 보살입상, 명문, 다시 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불상과 보살상은 미륵삼존상으로 보기도 한다. 여래입상은 거불로 자세나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 경직되고 도식적인 조형을 보이는데 매우 고졸한 느낌을 준다. 머리는 소발(素髮)이고 육계는 마치 상투를 묶은 듯하다. 얼굴은 둥글넓적한데 이목구비 역시 평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이 깊게 벌어져 둥근 띠매듭이 보이며, 옷주름은 둥근 U자형으로 늘어져 있다. 손은 시무외·여원인을 취하고 있는데 자세가 어색하며 표현이 둔중하다.

 

비교가 되는 불상으로는 6세기말이나 7세기초 백제에서 조성된 태안이나 서산마애삼존불상 등을 들 수 있다. 단석산 불입상의 경우는 매우 고신라적인 양식으로 표현된 예라 할 수 있다. 따라서 7세기 전반 정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다양한 도상의 불상표현이나 명문으로 보아 단석산의 불상군은 고신라 불교미술 내지는 신앙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안내판 [10:46]

 

▲ 북암: 삼존불 및 반가사유상 [10:47]

 

▲ 남암: 지장보살상 [10:48]

 

▲ 동암: 관음보살상 [10:48]

 

▲ 북암: 미륵본존불상 [10:48]


10:49   신선사 미륵전을 떠나 단석산 정상 1km 전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과 경사가 거의 없는 길이 번갈아 이어졌다. 단석산 정상 300m 전 이정표를 지나 조금 올라가자 정상으로 가는 길에 야자매트가 깔려 있는 게 보였다. 야자매트는 산길에서 여러 모로 유용한데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지극히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왜? 콘크리트나 쇠나 플라스틱과는 달리 야자매트는 시간이 지나면 썩어 없어지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 단석산 정상 1km 전 이정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 곳 [10:49]

 

▲ 오르막 나무계단길 [10:52]

 

▲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회원들이 보인다 [10:54]

 

▲ 단석산 600m 전 이정표 [10:59]

 

▲ 경사가 조금 있는 오르막길 [11:03]

 

▲ 경사가 거의 없는 길 [11:09]

 

▲ 단석산 정상 300m 전 이정표 [11:13]

 

▲ 단석산 정상으로 가는 길: 야자매트가 깔려 있다 [11:16]


11:18   해발 827.2m의 단석산 정상에 올랐다. 꽤 널찍한 정상부에는 삼각점과 이정표가 있고, 정상 표지석도 두 개나 서 있었다. 김유신이 칼로 잘랐다는 바위 앞에 예전에 있던 작은 표지석이 있고 그 앞에는 커다란 표지석이 또 하나 서 있었다. 단석산 정상에서 백석마을로 가려면 일단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내지 쪽으로 가야 한다. 공원지킴터 건물을 지나 조금 걸어가니 백석마을 이정표가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백석마을 쪽으로 계속 진행을 하면 된다. 


▲ 단석산 정상에서 바라본 선도산 방향: 맨 오른쪽에 있는 봉우리가 선도산 [11:18]

 

▲ 단석산 정상: 삼각점과 이정표 [11:18]

 

▲ 단석산 정상: 예전 표지석 뒤에 있는 바위가 김유신이 칼로 잘랐다는 바위 [11:19]

 

▲ 해발 827.2m 단석산 정상 표지석 [11:19]

 

▲ 단석산 정상부에 있는 공원지킴터 건물 [11:20]

 

▲ 백석마을 갈림길 이정표: 백석마을 쪽으로 진행 [11:21]

 

▲ 앞서 걸어가고 있는 회원들 [11:24]

 

▲ 백석마을 3km 전 이정표 [11:30]


11:37   백석마을 2.5km 전 이정표를 지나 6분 후에 도착한 곳은 비지고개, 4거리 안부로 여기서 백석마을까지 남은 거리는 2km다. 고만고만한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졌다. 지금 걷는 코스가 국립공원에 속해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그런지 길이 뚜렷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희미한 길 위에 낙엽이 덮여 있어 자주 지도를 확인해야 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단석산 지구가 경주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마애불상군과 김유신 때문인가?


▲ 백석마을 2.5km 전 이정표 [11:37]

 

▲ 해발 581m 사거리 안부 비지고개 [11:43]

 

▲ 비지고개에 서 있는 이정표: 백석마을 2km 전 [11:43]

 

▲ 경사가 별로 없는 길 [11:49]

 

▲ 백석마을 1.5km 전 이정표 [11:53]

 

▲ 경사가 약한 내리막길 [11:56]

 

▲ 경사가 조금 있는 내리막길 [12:00]

 

▲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 [12:02]


12:04   백석마을 1km 전 이정표를 지나 7분 후 관음기도도량인 백석암에 도착했다.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큰 바위 앞 공터에 백석암 절집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소박하고 순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백석암에서 백석마을로 내려가는 길, 경사가 꽤 심한 오르막길을 한 남자가 등짐을 지고 올라오는데 얼굴 전체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백석암으로 가는 짐인 모양인데 부처님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백석마을 1km 전 이정표 [12:04]

 

▲ 백석암으로 가는 길 [12:10]

 

▲ 바위벽을 따라 자리잡고 있는 백석암 [12:11]

 

▲ 관음기도도량 백석암 전경 [12:12]

 

▲ 관음기도도량 백석암 전경 [12:14]

 

▲ 예전 화장실인 모양인데 그냥 '사용 중'이면 되지 신분은 왜 적어 놓았을까? [12:15]

 

▲ 백석마을 500m 전 이정표 [12:18]

 

▲ 등짐을 지고 올라오는 남자가 보인다 [12:22]

 

▲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 [12:26]


12:28   국립공원 경계 지점에 도착했다. 이정표에 적혀 있는 백석마을은 바로 이곳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백석마을까지는 여기서 1.5km 정도를 더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왜 국립공원 당국에서는 이정표에 이곳을 백석마을이라고 적어 놓았을까? 단석산 정상에서 실제 백석마을까지 거리는 5km가 넘는데 3.6km라고 적어 놓았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다시 하산길이 이어졌다. 경사가 거의 없는 길이라 걷는데 부담이 전혀 없다. 가뭄 탓인지 계곡에는 물이 거의 없었다. 


▲ 국립공원 경계 지점에 서 있는 이정표 [12:28]

 

▲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 [12:31]

 

▲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12:34]

 

▲ 계곡에 흐르는 물은 거의 없다 [12:37]

 

▲ 주차장 옆에 서 있는 이정표 [12:38]

 

▲ 널찍한 도로를 따라 진행 [12:40]

 

▲ 산수유 열매가 나무에 그대로 달려 있다 [12:41]

 

▲ 길 왼쪽 작은 저수지: 가뭄 탓에 물이 거의 말라 있다 [12:42]


12:46   길 왼쪽에 입암산 백석암이 또 있다. 법당 이름은 관음전이다. 화천3리 마을회관을 지나 904번 지방도에 있는 백석 버스정류장에 도착, 일단 오늘의 실질적인 산행은 마감을 했는데 버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화천 보건진료소 앞에서 기다리란다. 잠시 후 버스 도착, 차에서 옷을 갈아입고 후미를 기다렸다. 산행 코스가 쉬운 탓인지 3시가 산행 마감시각인데 그전에 회원들이 모두 내려와 2시 27분 출발, 건천읍내에 있는 '시골어탕' 식당에서 어탕수제비로 회식을 하고 다시 3시 37분에 출발, 6시 15분에 청주에 도착했다. 이렇게 해서 삼국통일을 이룩한 김유신의 화랑정신이 깃들어 있는 단석산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 입암산 백석암: 법당 이름이 관음전 [12:46]

 

▲ 보호수 뒤로 보이는 화천3리 마을회관 [12:49]

 

▲ 904번 지방도 백석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12:50]

 

▲ 904번 지방도 옆 화천 보건진료소 [12:55]

 

▲ 건천읍소재지 건천교 옆에 있는 시골어탕 식당 [14:50]

 

▲ 시골어탕 식당에서 어탕수제비로 회식 [14:56]

 

▲ 상주영천고속도로 낙동강구미휴게소 [1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