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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남山行記

2017.10.17. [충남山行記 101] 충남 금산 금성산

by 사천거사 2017. 10. 17.

금성산 산행기

◈ 일시: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 맑음

◈ 장소: 금성산 458m / 충남 금산 

◈ 코스: 칠백의총 주차장 → 뱀이실재 → 십리장등 → 사지봉 → 돌고개 → 금성산 → 

           소나무숲 → 돌고개 → 칠백의총 주차장

◈ 거리: 12.69km

◈ 시간: 3시간 10분


 

 

 

 


09:05   오늘은 충남 금산에 있는 금성산을 둘러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금성산 술래길 위에 솟아 있는 금성산은 칠백의총과 금성산성 등의 역사적 유적지와 함께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청주 출발, 서청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남쪽을 향해 달리다 추부나들목에서 통영대전고속도로 탈출, 이번에는 3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려가다 의총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칠백의총 주차장을 향해 가속페달을 밟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넓은 주차장에는 세워놓은 차가 별로 없었다.

 

간단히 산행준비를 하고 주차장을 벗어나 차도를 따라 조금 진행하자 왼쪽으로 금성산 술래길 들머리가 나타났다. 조금 경사가 있는 길을 8분 정도 올라가자 오른쪽으로 금산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였다. 술래길은 칠백의총 울타리를 따라 계속 이어졌다. 경사가 거의 없는 길, 쭉쭉 뻗은 리키다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길은 완전 산책로 수준이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은 금성산 술래길, 금산군에서는 특이하게도 둘레길 대신 '술래길'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 칠백의총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18]

 

▲ 금성산 술래길 들머리 [10:27]

 

▲ 들머리에 있는 금성산 술래길 안내도 [10:27]

 

▲ 칠백의총 울타리 옆으로 나 있는 길 [10:30]

 

▲ 금산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 [10:35]

 

▲ 칠백의총과 금산성 의병전투 안내문 [10:38]

 

▲ 리기다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10:39]

 

▲ 금성산 정상 5km 전 이정표 [10:42]

 

▲ 가끔 돌탑도 모습을 드러내고 [10:44]


10:45   왼쪽으로 전망이 트였다. 뱀실저수지가 보인다. 어? 철쪽꽃이 피었네? 지금이 시월하고도 중순인데 철쭉꽃이? 길 옆에 심어놓은 철쭉들이 꽃을 피운 것이다. 사람도 그렇지만, 식물들도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모양이다. 사지봉에 올랐다. 돌탑과 쉼터용 육각정자가 있는 정상에서는 '금성산 술래길 쉼터'라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물 한 모금 마시며 하늘을 보니, 전형적인 파란 가을 하늘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 왼쪽으로 전망이 트여 뱀실저수지가 보인다 [10:45]

 

▲ 첫 번째 만난 다리 [10:49]

 

▲ 구절초가 반겨주는 길 [10:50]

 

▲ 금성산 정상 4km 전 이정표 [10:55]

 

▲ 주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벤치와 운동기구도 설치되어 있다 [11:00]

 

▲ 철 모르는 철쭉이 꽃을 피웠네 [11:07]

 

▲ 금성산 정상 3km 전 이정표 [11:09]

 

▲ 돌탑과 육각정자가 있는 사지봉(사두봉) 정상 [11:12]

 

▲ 사자봉 정상에 있는 금성산 술래길 쉼터 표지판 [11:12]


11:14   철쭉군락지 안내판이 보인다. 지금도 철쭉이 피는데 봄철에는 오죽하겠는가. 두 번째 다리를 건너니 이번에는 진달래군락지가 나타났다. 봄철에 오면 꽃구경 한번 거나하게 하겠네. 마수리와 두곡리를 이어주는 도로가 지나가는 돌고개 위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소나무숲과 금성산 정상이 보인다. 돌고개를 떠나 금성산으로 가는 길, 하늘 향해 솟아 있는 나무들을 칡덩굴이 온통 감싸고 있는 게 보인다. 칡, 정말 생명력이 끈질긴 식물이다. 또한 나무를 고사시키는 무서운 존재다.


▲ 철쭉군락지 안내판 [11:14]

 

▲ 두 번째 만난 다리 [11:16]

 

▲ 진달래 군락지 안내판 [11:20]

 

▲ 돌고개 안내판 [11:22]

 

▲ 돌고개 위에 놓인 다리 옆에 서 있는 이정표 [11:23]

 

▲ 돌고개에서 바라본 금성산 [11:24]

 

▲ 돌고개에 서 있는 금성산 술래길 코스 안내도 [11:24]

 

▲ 칡덩굴이 나무를 감싸고 있는 모습 [11:31]

 

▲ 주변이 칡덩굴 천지다 [11:33]


11:39   금성산 정상 1km 전 이정표를 지났다. 길 옆에서 보랏빛의 꽃향유가 반겨준다. 상마수마을 갈림길을 지나 나무계단길을 올라가자 금성산성 안내판이 보이고 다시 나무계단길이 나타났다. 정상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해발 438m의 금성산 정상에는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망데크에서는 멀리 서대산과 천태산이 아련히 보였다. 금성산 정상에서 마수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조금 거칠었다. 그래도 명색이 금성산 술래길인데 말끔하게 다듬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 금성산 정상 1km 전 이정표 [11:39]

 

▲ 지금은 꽃향유가 피는 계절 [11:40]

 

▲ 상마수마을 갈림길 이정표 [11:41]

 

▲ 나무계단길 [11:50]

 

▲ 금성산성 안내문 [11:50]

 

▲ 해발 438m 금성산 정상 표지판 [11:55]

 

▲ 데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대산과 천태산 [11:57]

 

▲ 길이 조금 거칠어졌다 [12:01]


12:02   마수리 갈림길 이정표를 만났다. 해너머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마수리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다. 20분 정도 걸어 작은 봉우리 하나는 넘은 후 마수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해너머재에 도착했다. 마수리 마을 차도를 따라 돌고개 쪽으로 조금 올라가자 왼쪽으로 상마수 소나무숲 산림욕장 표지석이 보였다. 한번 들러 봐? 말어. 오른쪽으로 조금 전에 올랐다 내려온 금성산 정상이 보인다. 정상 위 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들이 제멋대로 떠 있었다.


▲ 마수리 갈림길 이정표 [12:02]

 

▲ 작은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 [12:07]

 

▲ 소나무숲 1km 전 이정표 [12:11]

 

▲ 길은 나 있으나 그리 뚜렷하지는 않다 [12:14]

 

▲ 해너머재에 서 있는 금성산 술래길 안내도 [12:20]

 

▲ 해너머재에서 내려오다 바라본 마수리 마을 [12:23]

 

▲ 소나무숲 쪽으로 진행 [12:30]

 

▲ 소나무숲 산림욕장 표지석 [12:31]

 

▲ 도로에서 바라본 금성산 [12:32]


12:38   돌고개 위에 놓여 있는 다리 위에 올라섰다. 이제부터는 아까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아까 지나왔던 길이라 눈에 익은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금성산 술래길은 돌고개에서 금성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구간을 제외하고는 경사가 거의 없어 아무런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게다가 소나무 사이로 길이 나 있어 피톤치드를 마음껏 마시며 걸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돌고개에서 50분 정도 술래길을 걸어 다시 차도에 내려선 후 칠백의총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


▲ 돌고개 위 다리 옆에 서 있는 이정표 [12:38]

 

▲ 돌아오는 길에 만난 첫 번째 다리 [12:45]

 

▲ 사지봉 육각정자 [12:49]

 

▲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12:59]

 

▲ 마지막 다리를 건너고 [13:09]

 

▲ 걷기 좋은 소나무 숲길 [13:15]

 

▲ 금산 갈림길 지점에 도착 [13:21]

 

▲ 차도를 따라 칠백의총 주차장으로 [13:28]


13:31   차를 세워둔 칠백의총 주차장에 돌아와 이번에는 칠백의총을 둘러보기 위해 경내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무료였다.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맞서 싸우다 금성산성에서 전사한 조헌과 의병, 영규와 승병들의 무덤이다. 425년 전 임진왜란으로 시작되었던 일본의 침략은 1910년 한일합방을 계기로 절정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러한 일제의 잔재가 여전히 우리 주변에 남아 우리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칠백의총은 일본의 침략 사실을 역사적으로 밝혀주는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칠백의총을 한 바퀴 둘러보고 출발, 청주에 도착한 시각이 3시 15분, 이렇게 해서 칠백의총과 함께 한 금산의 금성산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칠백의총

 

사적 제105호.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에 있다. 1592년(선조 25) 8월 18일 조헌(趙憲)이 이끄는 의병과 승장 영규가 거느리고 있던 승병이 합군하여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의 왜군과 금성산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전사했다. 뒤에 조헌의 문인인 박정량(朴廷亮)과 김승절(金承節:또는 全承業)이 시체를 모아 큰 무덤을 만들고 칠백의사총이라 했다. 1603년(선조 36)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重峰趙憲先生一軍殉義碑)가 세워지고, 1634년(인조 12)에는 순의단이 설치되어 해마다 제향을 올렸다. 1647년(인조 25) 종용사를 세워 700의사의 위패를 모시고, 1663년(현종 4) '종용사'라는 사액과 4결의 토지를 내려 춘추제향에 쓰게 했다. 그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사우와 의총을 허물고 일군순의비를 파괴한 것을 8·15해방 후 군민이 의총과 종용사를 재건하고, 국가에서 기념관·칠백의사순의탑 등을 새로 짓고 묘역을 조경하여 사적으로 지정했다.


▲ 칠백의총 주차장에 귀환 [13:31]

 

▲ 칠백의총으로 들어가는 문 [13:36]

 

▲ 칠백의총 숭의지 [13:36]

 

▲ 칠백의총 취의문 [13:37]

 

▲ 700의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칠백의총 [13:39]

 

▲ 칠백의총 기념관 내부 [13:42]

 

▲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금산혈전순절도 [13:43]

 

▲ 칠백의총 기념관 안내문 [13:43]


중봉 조선생 일군순의비

 

중봉 조헌선생이 지휘하는 칠백의사가 청주성을 수복하고 금산싸움에서 순국하기까지의 사적을 기록한 비문이다. 임진왜란 11년후 즉 1603년 4월 당시 해평부원군 윤근수가 글을 짓고 김현성의 글씨로 새겨 건립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금산경찰서장에 의해 폭파되었던 것을 주민들이 일제의 눈을 피하여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8·15 광복 이후 파내어 보관하여 오던 중 1971년 경역 확장시 그 파손된 비를 붙여서 비각을 세우고 보존하여 왔다. 2009년 9월에 분리된 상태로 비각안에 있었던 몸체와 머릿돌을 현재의 모습으로 접합 · 복원하여 다시 세웠으며, 비의 규모에 맞추어 비각도 목조양식으로 새롭게 개축하였다.


▲ 중봉 조선생 일군순의비 [13:44]

 

▲ 가을이 찾아오고 있는 칠백의총 주차장 [1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