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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 길

2017.05.12. [산티아고 순례길 30] 사리아→포르토마린

by 사천거사 2017. 5. 12.


산티아고 순례길 트레킹 30

 

일시: 20175 12일 금요일 비 흐림 갬 맑음 비

장소: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코스: 사리아 → 바르바델로 → 렌테 → 브레아 → 페레이로스 → 빌라차  포르토마린

 거리: 22.4km  걸은 거리 682.0km  걸을 거리 182.6km

 시간: 6시간 6

 회원: 5







06:00   지난 밤에는 한 번만 잠에서 깨었다. 6시에 일어나 밖에 나와보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진다. 비옷을 입기도 그렇고 안 입기도 그렇고 아주 애매하다. 일단 입고 출발, 알베르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침 문을 연 바가 있어 아침을 먹고 가기로 했다. 토스트, 커피, 오렌지주스가 오늘 아침 메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적게 먹고 긴 거리를 걸을 수 있어요? 나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토스트, 크로아상, 샌드위치 등으로도 충분히 아침 요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바로 이번 트레킹이었다.


▲ 알베르게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출발 [06:31]


▲ 알베르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문을 연 바(bar)가 있어 들어갔다 [06:36]


▲ 아침식사 메뉴: 토스트, 커피, 오렌지주스 [06:55]


▲ 비가 내리고 있는 사리아 거리 [07:05]


▲ 전망대에서 바라본 사리아 신시가지 [07:09]


▲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우리 팀원들 [07:10]


▲ 공동묘지 앞에 있는 성당 [07:14]


▲ 사리아 공동묘지 [07:15]


07:15   바르바델로 2.5km 전 이정표를 지났다. 도로를 따라 가던 길이 페케노 강 위에 놓인 폰테 아스페라 다리를 건너면서 들판길로 바뀌었다. 철도를 만났다. CG-2.2 도로 위 조금 벗어진 하늘 사이로 붉은 빛이 잠시 비쳤다. 철도를 건넜다. 잠시 숲속으로 들어갔던 길이 다시 들판으로 나왔다. 작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길, 비는 잠시 소강상태다. 덥고 답답해서 비옷을 벗었더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 바르바델로 2.5km 전 이정표 [07:15]


▲ 페케노 강 위에 놓인 폰테 아스페라 다리를 건너간다 [07:21]


▲ 철도를 만났다 [07:23]


▲ 페케노 강 오른쪽을 따라 진행 [07:26]


▲ CG-2.2 도로 위로 잠시 붉은 빛이 비치고 있다 [07:30]


▲ 철도를 건너간다 [07:34]


▲ 잠시 숲속으로 들어갔던 길이 [07:38]


▲ 다시 들판으로 나왔다 [07:46]


▲ 마을을 이어주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진행 [07:48]


▲ 목초지 사이로 나 있는 그림 같은 길 [07:50]


07:58   빌레이 마을에 도착했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가자 바르바델로 마을이다. 오늘 걷는 코스에서는 아주 많은 마을을 지나가게 되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곳도 여러 곳이라고 한다. 빌레이 마을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렌테 마을을 지나 15분 정도 걸어가자 커다란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지역에 들어섰는데, 최근에 내린 비가 길을 진창으로 만들어놓았다. 오늘 하루만 걷는 길이라면 대충 걸어가겠는데 내일도 모레도 걸어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신발을 더럽히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서 걸어야 했다.  


바르바델로(Barbadelo)


중세 시대에 바르바델로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번성했었지만 지금은 오래된 수도원의 유적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수도원 때문에 바르바델로는 오 모스떼이로(O Mosteiro; 수도원)라고도 불립니다. 수도원의 유적에는 현재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과 요새의 약간 부분만 남아 있습니다. 팀파눔에는 어떤 남자가 장미와 십자가로 둘러싸인 채 팔을 펼치고 있는 장면이 새겨져 있는데, 이 장면이 템플 기사단의 입회자가 로사끄루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 빌레이 마을에 도착 [07:58]


▲ 빌레이에서 바르바델로 가는 길에 바라본 CG-2.2 도로 [08:02]


▲ 바르바델로 마을에서 수리바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08:03]


▲ 렌테 마을로 가는 포장도로 [08:11]


▲ 렌테 마을 표지판 [08:17]


▲ 열심히 걷고 있는 처제 부부 [08:24]


▲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08:31]


▲ 최근에 내린 비로 길이 진창이다 [08:33]


▲ 미류나무가 서 있는 풍경 [08:35]


08:36   순례자를 위한 급수대가 보인다. 예전 모든 시설이 열악할 때에는 순례자들이 이런 급수대를 아주 요긴하게 이용했을 텐데 지금은 까미노 곳곳에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LU-633 도로를 건너 페르수카요 쪽으로 걸어간다. 시내를 따라 나 있는 길을 거쳐 잠시 걸어가자 돌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농경지를 돌담으로 나누어놓았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제주도나 네팔의 농촌에 있는 돌담을 연상케 한다.


▲ 길 옆에 자리잡고 있는 급수대 [08:36]


▲ 누군가가 돌에 격려의 글귀를 써놓았다: 부엔 까미노 [08:41]


▲ LU-633 도로변에 서 있는 페루스카요와 도미스로 가는 길 이정표 [08:51]


▲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진행 [08:56]


▲ 하늘이 조금 벗어지려나 [09:00]


▲ 시내를 따라 나 있는 길 [09:08]


▲ 돌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09:13]


▲ 제주도를 연상케하는 돌담들 [09:15]


09:21   이 지역의 주택에는 대부분 좁고 길다란 구조물이 대문 위나 마당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맨 윗부분 양쪽에 십자가 같은 장식이 있어 처음에는 어떤 종교적 시설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구조물의 정체는 바로 곡물 저장고였다. 벽면은 벽돌이나 나무로 막았는데 공기가 통할 수 있게 틈새를 만들어놓았다. 브레아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에서 산티아고까지 딱 100km가 남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석을 만났다. 산티아고여 조금만 기다려라, 우리가 가고 있다.


▲ 대문 위에 있는 구조물은 곡식저장고 [09:21]


▲ 참 평화로운 풍경 [09:28]


▲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도로 [09:38]


▲ 고색창연한 소성당 [09:42]


▲ 목초지 사이로 나 있는 길 [09:43]


▲ 등산화 한 벌이 걸려 있는 풍경 [09:47]


▲ 페레이로스 가는 길 이정표 [09:58]


▲ 길 왼쪽 성당과 공동묘지 [10:02]


▲ 브레아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 [10:07]


▲ 산티아고 100km 전 표지석 [10:07]


페레이로스(Ferreiros)


전형적인 갈리시아 마을인 페레이로스는 로이오 강의 계곡을 따라 조성된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다. 중세부터 순례자들에게 포르토마린에 도착하기 전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는 마지막 마을이었다. 따라서 이 마을에는 아직까지도 순례자들을 친절하게 대접하는 뿌리 깊은 전통이 있다.


마을의 이름인 페레이로스는 이 마을에 옛날부터 순례자들을 위한 에레리아(Herreria; 대장간)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마을을 지나는 순례자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의 순례길을 위해서 이 마을에 머물면서 신발을 수선하고 징을 박고 말의 편자를 갈고 갑옷을 수선했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을 지나가기 이전에 순례자들은 이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00킬로미터가 남았다는 유명한 이정표를 보게 된다.


▲ 페레이로스 마을이 보인다 [10:13]


10:14   페레이로스 마을을 벗어났다. 오늘 걷는 길은 거의 대부분이 들판길이나 숲길이라 풍광이 좋은 편인데, 딱 한 가지 비가 오락가락하는 하늘이 좋은 그림을 망쳐놓고 있었다. 하늘에는 비록 구름이 잔뜩 끼어 있지만 그래도 좋다. 넓게 펼쳐져 있는 목초지 위에 나무 한두 그루가 서 있는 그림도 좋고, 돌담 사이로 나 있는 나무터널길도 좋다. LU-P-4023 도로를 건너 마르카도이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소나무숲이 보인다. 우리나라 소나무와 다르지만 그래도 소나무는 소나무다. 


▲ 표지판은 서 있는데 어느 것이 마을 이름인지 알 수가 없네 [10:14]


▲ 목초지 위에 나무들이 서 있는 풍경 [10:18]


▲ 돌담 사이로 나 있는 길 [10:21]


▲ 무엇을 의미하는 문양인가? [10:27]


▲ 나무터널 아래로 나 있는 길 [10:31]


▲ LU-P-4203 도로변에 있는 버스정류장 [10:34]


▲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십자가 [10:37]


▲ 마르카도이로 마을로 가는 길 [10:41]


10:45   길 왼쪽에  페테르 팡크(Peter Pank)라는 이름의 가게가 있는데 신라면에 김치가 있다고 한글로 적혀 있었다. 라면에 김치라. 그냥 갈 수 없네. 팀원들이 오기를 기다려 컵라면과 캔 김치를 주문했다. 아, 얼마만에 먹어보는 김치냐. 역시 한국인은 김치를 먹어야 신체 리듬이 제데로 돌아간다. 이 지역에서는 목축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목초지가 자주 눈에 들어왔다. 아 파로차 마을과 빌라차 마을을 지났다. 이제 포르토마린까지 남은 거리는 3km에 불과하다.


▲ 페테르 팡크에서 판매하는 소품들 [10:45]


▲ 여러 가지 물건을 판매하는 페테르 팡크 [10:45]


▲ 신라면과 김치로 간식을 먹고 [11:05]


▲ 아스 코르테스 마을 표지판: 아 파로차 마을을 거쳐 갈 수 있다 [11:33]


▲ 목초지 위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11:38]


▲ 아 파로차로 가는 포장도로에 진입 [11:38]


▲ 아 파로차 마을 통과 [11:44]


▲ 아 파로차 마을을 지나 빌라차 마을로 가는 길 [11:47]


▲ 빌라차 마을 거리 [12:00]


▲ 까미노 왼쪽 풍경 [12:05]


12:07   갈림길 지점에 도착했다. 왼쪽은 LU-633 도로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LU-613 도로로 내려가는 길이다. 오른쪽 길을 택했다. 13분 정도 걸어 미뇨 강 위에 놓여 있는 베야 다리 입구에 도착, 다리를 건너 포르트마린 마을로 들어갔다.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35분, 문을 여는 시각은 1시, 잠시 기다렸다 첫 번째로 접수를 하고 방을 배정받았다. 꽤 많은 침대가 놓여 있는 침실에 들어가 침대에 배낭을 내리놓고 샤워와 빨레를 한 후 잠시 휴식을 취했다. 2시 30분, 점심을 먹으러 시내로 나갔다. 


▲ 갈림길 지점에 서 있는 안내판 [12:07]


▲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12:13]


▲ LU-613 도로에서 바라본 미뇨 강과 포르토마린 [12:19]


포르토마린(Portomarin)






몬테 데 크리스토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마을로 미뇨 강에서 이 마을을 바라보면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다. 1966년 이 마을은 벨레사르 저수지를 건설하면서 수몰되었고, 현재의 포르토마린은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중세부터 순례자들이 오랫동안 건너오던 다리 역시 저수지에 잠겨 있으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들은 새로운 주거지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역사적, 예술적 풍성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포르토마린은 과거와 현재의 조합이 잘 이루어진 매력적인 곳이 되었다.






역사적인 건축물 이외에도 포르토마린에서 벨레사르 저수지까지 산책과 자전거일주를 하기에 알맞는 카타마란 산책로(Paseos en Catamaran)를 즐길 수 있다. 또한 벨레사르 저수지 주위의 길과 페레이라 강 계곡의 길에서 여러 개의 다리와 풍차 등을 보며 산책과 승마를 즐길 수도 있다. 덧붙여 포르토마린은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서비스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맛있는 전통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포르토마린에서는 특히 아몬드와 밀가루, 계란, 설탕을 넣어 생일 케익처럼 만든 비스코초 파이(Tarta de Bizcocho)와 스페인의 전통 브랜디인 아구아르디엔테(Aguardiente)가 유명하다. 부활절에는 아구아르디엔테를 알리기 위해 알키타라 축제(Fiesta Alquitara)가 열린다. 또한 여름철에는 가까운 벨레사르 저수지에서 다양한 수중 스포츠와 레저를 즐길 수 있다.


과거 포르토마린은 로마인들이 미뇨 강 위에 다리를 놓았을 때부터 강가에 위치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마을의 다리는 남편 알폰소 1세와 맞섰던 도냐 우라카의 명령으로 파괴되었다. 후에 이 다리는 산티아고 대성당을 건축한 거장 마테오 데우스탐벤의 아버지이자 ‘순례자 페드로’로 불렸던 페드로 데우스탐벤에 의해 재건되었다. 1940년대에 스페인 역사예술단지로 지정된 포르토마린이었지만 근대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름다운 다리는 수몰되었지만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 산 페드로 성당의 파사드, 마사 백작의 집, 베르베토의 궁전 등은 자리를 옮질 수 있었다.


▲ 미뇨강 위에 놓인 베야 다리 입구 [12:20]


▲ 베야 다리에서 바라본 미뇨 강 [12:22]


▲ 포르토마린 마을에 진입 [12:29]


▲ 포르토마린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 [12:37]


▲ 알베르게에서 바라본 풍경 [14:34]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이 12세기 말에 설립한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으로 망루가 있는 벽과 건물의 높이가 요새로서 사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장미창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과 매우 비슷한 외양의 정문 장식이 아름답다. 이 정문을 장식하고 있는 24명 인물상은 산티아고 대성당을 건축한 거장 마테오 데우스탐벤(Mateo Deustamben)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수태고지 장면을 조각한 부분을 보면 성모와 천사 사이에 다산과 불멸을 상징하고 가톨릭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세 개의 솔방울이 있다.


주두 장식에는 왕관을 쓴 사람 머리에 새의 몸통을 한 동물의 부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마테오 데우스탐벤의 아버지이자 까미노의 가장 훌륭한 건축가 페드로 데우스탐벤(Pedro Deustamben)의 작품이다. 원래 성당 건축의 규칙은 제단이 있는 곳이 동쪽이나 예루살렘을 향해 있고 파사드가 서쪽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돌을 하나씩 옮겨 성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성당의 제단과 파사드의 방향이 잘못되었는데 이 때문에 다른 성당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빛의 향연을 만끽 할 수 있다.


▲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이 보이는 포르토마린 거리 [14:37]


14:49   중간에 간식으로 라면을 먹었기에 이번에는 이탈리아 음식점에 들러 피자 3개를 시키고 와인과 물을 곁들였다. 피자는 참 만만한 음식이다. 대충 그림 보고 아무거나 시켜도 맛이 괜찮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 한다. 파란 하늘에 금방 구름이 끼면서 비가 쏟아지는 것이 바로 이곳 날씨다. 벌써 사흘 때 그런 날이 이어지고 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보니, 비어 있던 침대가 거의 찼는데 대부분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포르토마린은 저수지를 조성하면서 마을이 물에 잠겨 성당 건물만 옮겨오고 나머지 건물들은 모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건축 재료가 돌이 아니라 모두 시멘트다.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문어요리 두 접시, 샐러드, 돼지갈비 등을 주문했다. 스페인 음식은 대체로 우리 입맛에 아주 잘 맞아 먹는데 거의 부담감이 없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 맛있게 저녁을 먹고 알베르게 귀환, 내일의 또 다른 여정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점심을 먹은 이탈리아 음식점 [14:49]


▲ 피자는 어느 것을 먹어도 맛이 좋다 [15:11]


▲ 저녁을 먹으러 다시 시내로 나왔다 [19:48]


▲ 저녁식사 메뉴: 문어요리와 혼합 샐러드 [20:18]


▲ 저녁을 먹고 있는 팀원들 [20:26]


▲ 내가 주문한 돼지고기 요리 [20:36]


▲ 포르토마린 공립알베르게 [21:15]


▲ 알베르게 입구에서 바라본 포르토마린 하늘 [21:31]


▲ 알베르게 침실 풍경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