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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 길

2017.05.09. [산티아고 순례길 27]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오 세브레이로

by 사천거사 2017. 5. 9.


산티아고 순례길 트레킹 27

 

일시: 20175 9일 화요일 구름 많음 저녁에 비

장소: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코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 페레헤 → 트라바델로 → 베가 데 발카르세 루이텔란 → 라 파바  오 세브레이로

 거리: 27.9km  걸은 거리 620.5km  걸을 거리 244.1km

 시간: 7시간 4분 

 회원: 5






06:00   지난 밤에는 2시 30분 쯤 한 번 깨었을 뿐 잠을 잘 잤다. 알베르게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출발,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어제 저녁에 사람들로 붐비던 노천 카페에는 가로등 불빛 아래 빈 의자만 가득하다. 새벽 공기가 신선하다. 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온도계가 지금 기온이 섭씨 16도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산 니콜라스 엘 레알 수도원과 클뤼니아코의 산타 마리아 성당 옆을 지나 부르비아 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넜다.


▲ 비야프랑카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 [06:13]


▲ 알베르게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출발 [06:20]


▲ 가로등 불빛만 거리를 비추고 [06:27]


▲ 현재 외부 온도는 섭씨 영상 16도 [06:30]


산 니콜라스 엘 레알 수도원


17~18세기에 만들어진 수도원 건물. 내부에는 수도원의 설립자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왔다고 하는 ‘희망의 그리스도’(Cristo de la Esperanza)가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 산 니콜라스 엘 레알 수도원 [06:32]


▲ 클뤼니아코의 산타 마리아 성당 [06:34]


▲ 다리 입구에 서 있는 순례자 조형물 [06:38]


▲ 부르비아 강 위에 놓인 다리 위에서 바라본 비야프랑카 마을 야경 [06:39]


06:47   발카르세 계곡을 따라 흘러가는 발카르세 강 오른쪽을 따라 까미노가 계속 이어졌다. 10분 넘게 걸어 A-6 도로와 N-VI 도로가 지나가는 지점에 도착했다. 여기서 라스 에레리아스까지는 발카르세 계곡을 따라 이어지 N-VI 도로 옆길을 따라 끊임없이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차량들이 A-6 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N-VI 도로는 무척 한산한 편이고 게다가 까미노와 차도 사이에 시멘트 보호대가 설치되어 있어 안심하고 걸어가도 된다.


▲ 비야프랑카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 [06:47]


▲ 언덕을 오르다 바라본 비야프랑카 마을 [06:51]


▲ A-6 도로 및 N-VI 도로와 만나는 지점 [06:59]


▲ N-VI 도로 왼쪽을 따라 진행 [07:02]


▲ 까미노와 차도 사이에는 시멘트 보호대가 설치되어 있다 [07:16]


▲ 산티아고 가는 길 표지판 [07:21]


▲ 까미노 왼쪽으로 흘러가는 발카르세 강 [07:25]


▲ 페레헤 마을로 들어가가 위해 도로를 건너간다 [07:32]


07:35   페레헤 마을에 들어섰다. 10분 정도 마을 중심지역에 도착했는데 마침 문을 연 카페가 있어 아침을 먹고 가기로 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바게트 빵 하나를 통채로 사용해서 만든 샌드위치가 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큰 샌드위치는 생전 처음이네. 오늘은 먼 거리를 걸어야 하고 표고도 많이 올려야 하기 때문에 배를 든든히 채워야 한다.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먹자. 그렇게 아침을 먹고 출발, N-VI 왼쪽을 따라 나 있는 길에 다시 들어섰다.


페레헤(Pereje)


중세풍의 작은 마을 페레헤는 왕과 교황의 싸움이 일어났던 곳이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밤나무 숲은 순례자들에게 평온함, 휴식, 명상을 선사한다. 중세에 페레헤 주민은 세금과 군대 징집을 면제받았다. 그 이유는 여왕 도냐 우라카가 페레헤의 허름한 오레오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이었다.


페레헤는 중세 때에 오 세브레이로의 수도원장과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산타 마리아 수도원이 분쟁을 벌인 곳이었다. 분쟁의 시작은 페레헤에 오 세브레이로의 수도원장이 순례자를 위한 병원과 성당을 세우려고 했던 것이었다. 비야프랑카의 수사들은 자신들이 페레헤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며 반대를 했다. 이 분쟁은 레온 왕 알폰소 9세와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끼어들면서 더 격해졌다. 결국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수사들이 이기게 되어 병원 건축의 독점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 페레헤 마을로 들어가는 길 [07:35]


▲ 마을 입구에 있는 공동묘지(납골당) [07:36]


▲ 페레헤 마을 거리 [07:39]


▲ 마침 문을 연 카페가 있어 들어갔다 [07:45]


▲ 카페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있는 회원들 [07:48]


▲ 바케트 빵으로 만든 대형 샌드위치 [07:54]


▲ 아침을 먹고 출발 준비 [08:10]


▲ 다시 N-VI 도로 왼쪽 보행자 길을 따라 진행 [08:17]


▲ 트라바델로 순례자 쉼터 [08:32]


▲ N-VI 도로 왼쪽 보행자 길을 따라 계속 진행 [08:39]


08:44   트라바델로 마을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까미노는 차도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들어갔다. 트리바델로는 페레헤에 비해 훨씬 현대적인 건물들이 있는 마을인데 태극기가 걸려 있는 숙소가 두 군데나 있었다. 순례길을 걷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하긴, 도전의식이나 성취의욕 등을 따진다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니 어련 하겠는가. 트라바델로 마을을 지나 오래 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옛 국도를 따라 걸어가다 A-6 도로 아래를 지난 후 다시 N-VI 도로 옆길에 들어섰다.


▲ 트라바델로 마을 표지판 [08:44]


▲ 트라바델로 마을로 들어가는 길 [08:48]


▲ 까미노 왼쪽으로 흘러가는 발카르세 강 [08:52]


트라바델로(Trabadelo)


트라바델로에서는 검고 넓적한 돌로 지붕을 올린 전통 가옥 만날 수 있다. 트라바델로는 바위투성이의 좁은 절벽이 있는 계곡에 있다. 이러한 지형 때문에 부패한 귀족들이 순례자들을 강탈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귀족들은 순례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통행료를 걷었고, 이를 거부하는 순례자들에게는 강도로 돌변하기도 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순례자의 발길이 뜸해졌다. 도둑떼와 귀족에게 사주 받은 강도들 때문에 순례자들이 두려워하던 트라바델로에는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아욱타레스 성에 도둑과 강도들의 은신처가 있었는데, 알폰소 6세와 템플 기사단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이들을 토벌하여 오랜 악습이 사라지게 되었다.


▲ 트라바델로 마을에 진입 [08:56]


▲ 길 왼쪽에 있는 제재소 [08:58]


▲ 태극기가 걸려 있는 숙소 [08:59]


▲ 산 니콜라스 교구 성당 종탑이 보인다 [09:03]


▲ 태극기가 걸려 있는 알베르게 [09:04]


▲ 파라델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 왼쪽 길로 진행 [09:11]


▲ A-6 도로 아래를 통과 [09:24]


09:31   왼쪽으로 산 피즈 도 세오 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다. N-VI 도로 왼쪽 보행자 도로를 20분 정도 걸어 라 포르텔라 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문'이란 뜻을 가진 라 포르텔라 마을을 벗어나자 곧 암바스메스타 마을이 나타났다. 암바스메스타스는 발보아 강과 발카르세 강이 합류하는 곳에 자리 잡은 마을로. 울창하고 그늘진 숲이 있어 더위로 고생하는 순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마을이다. 맘바스메스타 마을을 벗어나자 곧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 산 피즈 도 세오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 [09:31]


▲ N-VI 도로 왼쪽 보행자 길을 따라 계속 진행 [09:36]


▲ 왼쪽에서 오는 도로와 만나는 지점 [09:45]


라 포르텔라(La Portela)


발카르세 계곡 근처의 작은 마을인 라 포르텔라의 이름은'작은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발카르세 계곡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문과 같은 좁은 길을 지나야만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마을을 떠나는 길에 도로를 벗어나면 밤나무 그늘과 지저귀는 새소리가 자연을 갈망하는 순례자를 반긴다.


▲ 라 포르텔라 마을에 진입 [09:50]


▲ 라 포르텔라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야고보 성인상 [09:50]


▲ 산 후안 바우티스타 성당 [09:54]


▲ 라 포르텔라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 [09:55]


▲ 암바스메스타스 마을 표지판 [10:01]


▲ 암바스메스타스 마을 거리 [10:07]


▲ 암바스메스타스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 [10:10]


10:15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 표지판을 지났다. 마을을 지나가는 N-006A 도로가 까미노를 대신하고 있다. 이 마을은 해발 1300m에 자리잡은 오 세브레이로에 오르기 전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큰 마을이다. 그래서 오 세브레이로에 오르는 것이 조금 부담이 가는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가기도 한다. 아직 레온 주를 벗어나 가르시아 주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주변 풍경은 이미 메마르고 탁 트인 평원을 지나 습하고 닫힌 듯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


발카르세 계곡에서 가장 큰 마을인 베가 데 발카르세는 편의시설이 더 많이 갖춰져 있다. 이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오 세브레이로까지 가는 가파른 길을 힘차게 출발하기 위해 이곳에서 묵기로 결정한 순례자들이다. 두 개의 요새 유적과 성 때문에 전설이 가득한 중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에 진입 [10:15]


▲ 말도 누워서 잠을 자는 구나 [10:23]


▲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 거리 [10:24]


▲ 산타 마리아 막달레나 교구 성당 [10:28]


▲ 언덕 위에 자리잡은 사라신 성의 잔해가 보인다 [10:29]


▲ 텃밭에 상추를 재배하고 있는 모습 [10:30]


▲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 [10:33]


▲ N-006A 도로를 따라 진행 [10:37]


▲ 길 왼쪽으로 보이는 풍경 [10:49]


10:51   루이텔란 마을에 들어서면서 길은 다시 N-VI 도로와 접속했다. 작은 마을 루이텔란은 밤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몇 채 없는 집과 오래된 성당이 고풍스러운 마을의 분위기를 풍기고, 동굴 위에 세워진 성 프로일란 성당 때문에 널리 알려졌다. 성 프로일란은 이 성당에서 기도와 명상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루이텔란 마을을 벗어나자 라스 에레리아스와 오스피탈 마을이 연달아 나타났다. 까미노는 CV-125/1 도로를 따라 계속 이어졌다. 



▲ 루이텔란 마을에 진입 [10:51]


▲ 세례자 요한 교구 성당 [10:55]


▲ 루이텔란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 [10:58]


라스 에레리아스(Las Herrerias)


라스 에레리아스에는 발카르세 강이 울창한 숲 사이로 흐르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순례자들은 계절에 따라 푸른 초원과 길가로 목동들이 몰고 나온 소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라스 에레리아스에서는 오래된 전통 가옥들과 물레방아와 같이 오래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기도 하다.


마을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 마을은 중세부터 대장간이 있던 곳이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대장간은 지금도 완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간혹 15세기에 지어진 대장간 터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17세기에 이 지역을 지나가던 라피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순례자는 대장간에서 사용되는 커다란 망치와 불꽃에 매료되어 순례를 포기하고 이 마을에 정착하였다 한다. 이 대장간은 지난 세기까지 운영되었기 때문에 현재에도 대장간의 큰 건물을 볼 수 있다.


▲ 라스 에레리아스 마을에 진입 [11:04]


▲ 자신의 꿈을 종이에 적어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11:09]


▲ 길 왼쪽 주택이 순례자 소품들로 꾸며져 있다 [11:10]


▲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소 떼 [11:12]


▲ 오스피탈 마을에 진입 [11:15]


▲ 오스피탈 마을을 통과 [11:20]


▲ CV-125/1 도로를 따라 진행 [11:29]


11:36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른쪽은 CV-125/1 도로를 따라 가는 길로 자전거 순례자가 이용하는 길이고 왼쪽은 쉼터를 거쳐 라 파바로 올라가는 길이다. 왼쪽 길에 진입, 샘이 있는 쉼터까지는 경사가 거의 없는 길인데 쉼터부터 급경사 오르막길이 라 파바 마을까지 15분 정도 계속 이어졌다. 꽤 힘든 길이다. 라 파바는 피에드라피타 골짜기를 오르는 숲 속의 오르막길에 아늑하게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라 파바 마을을 벗어나서도 비포장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 도보용 길과 자전거용 길이 갈라지는 지점 [11:36]


▲ 샘이 있는 쉼터 [11:42]


▲ 라 파바 마을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11:44]


▲ 길 오른쪽으로 보이는 순례자 격려문 [11:49]


▲ 언덕을 오르고 있는 순례자들 [11:53]


▲ 라 파바 마을을 통과 [11:57]


▲ 까미노 노란 화살표 [12:03]


▲ 길 왼쪽으로 산불이 난 흔적이 보인다 [12:08]


▲ 길 왼쪽 풍경 [12:12]


12:17   비포장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왼쪽으로 노란 꽃이 잔뜩 피어 있는 초원이 나타났다. 알프스 지역 분위기가 풍겨난다. 해발 1000m 지역에 자리잡은 라구나 데 카스티야 마을을 지났다. 산길을 따라 언덕을 하나 넘어가자 레온과 갈리시아 지방의 경계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보였다. 지금까지 나바라, 라 리오하, 부르고스, 팔렌시아, 레온 지역을 지나왔고 마지막 갈리시아 지역에 들어선 것이다. 36구간으로 나눈 까미노 여정 중에서 오늘이 25번 째 구간이니 이제 11구간이 남은 셈이다.  


▲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산길 [12:17]


▲ 노란 꽃이 피어 있는 초원이 알프스를 연상시킨다 [12:25]



라구나 데 카스티야(Laguna de Castilla)


라구나 데 카스티야를 지나면 순례의 마지막 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서게 된다. 라구나 데 가스티야는 해발 1000미터 이상 되는 초원 위에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순례자는 갈리시아 지방의 전통 건축물인 오레오를 처음 볼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산꼭대기와 그늘진 계곡이 물결처럼 펼쳐지는 라구나 데 가스티야는 언덕을 오르는 순례자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럼 느껴진다.


▲ 라구나 데 카스티야 마을에 진입 [12:32]


▲ 라구나 데 카스티야 마을 중심부 [12:36]


▲ 오른쪽은 자전거 순례자 이용 도로, 왼쪽은 보행자 도로 [12:39]


▲ 길 왼쪽으로 보이는 풍경 [12:45]


▲ 언덕을 넘어가고 있는 순례자 [12:49]


▲ 눈을 왼쪽으로 돌리니 걸어온 길이 보인다 [12:50]


▲ 갈리시아 주에 들어섰다 [12:53]


12:54   갈리시아 주에서 까미노에 설치한 특이한 이정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각형 돌기둥 이정표에는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160.948km라고 적혀 있다. 경사가 거의 없는 산길을 15분 정도 걸어 십자가 상이 서 있는 오 세브레이로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차도를 건너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해발 1300m 지역에 있는 마을인데 학생들이 몰려다니는 모습도 보이고 사람들도 꽤 많이 보인다. 무슨 일이 있나?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알베르게부터 찾고 보자.  


▲ 갈리시아 주에 있는 사각형 돌기둥 이정표 [12:54]


▲ 비포장 산길을 따라 계속 진행 [13:01]


▲ 말이 뒷발질을 하면 어떡하지? [13:06]


▲ 오 세브레이로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십자가 [13:08]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갈리시아 지방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오 세브레이로는 성체와 성배의 기적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또한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에게 오 세브레이로는 한 명의 인간이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기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오 세브레이로에서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부활시킨 선구자 돈 엘리아스 발리냐의 흉상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오 세브레이로의 교구 신부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부활시키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노란색의 페인트로 칠한 화살표 표시를 처음 만들었으며 까미노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까미노의 친구 협회’를 설립하고 강화한 인물이다. 실로 그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소수의 신앙인의 순례길로 남아있을 것이다. 단 한 명의 노력으로 까미노 부활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작지만 매년 수많은 순례자들이 반드시 들린다는 이 마을은 로마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소박한 전통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더욱이 오 세브레이로 근교에는 오스 안카레스 산맥이 펼쳐져 있다. 울창한 숲을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이 있고, 2000미터에 달하는 고지엔 대뇌조, 곰 같은 동물들이 산다. 가벼운 등산로가 여러 개 조성되어 있어 등산을 좋아하는 순례자들이 행복해 질 수도 있다.


▲ 오 세브레이로 마을에 도착: 단체로 답사를 온 학생들이 보인다 [13:09]


파요사


파요사는 스페인에 남아 있는 건축물 중 가장 원시적이고 오래된 구조물이다. 먼저 돌로 원형이나 타원형의 작은 구조물을 쌓고 가운데에는 길고 둥글게 땋은 밀짚으로 원추형 지붕을 세운다. 지붕은 직접 돌 벽에 닿아 있으며 쿠미오라고 하는 나무로 만든 기둥이 원추형 지붕을 지탱하며 한가운데에 솟아 있다. 고대 켈트인들이 주거용으로 만들어 사용했던 파요사에는 가축이 함께 생활했으며, 굴뚝도 없이 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우는 극단적 형태의 원시 건축물이었다. 오 세브레이로에 남아 있던 세 채의 파요사 가운데 나머지 두 채는 알베르게로 재건축되어 사용되고 있다.


▲ 스페인의 가장 원시적이고 오래된 구조물 파요사 [13:09]


▲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성당 [13:10]


▲ 기념품 상정 앞에 서 있는 야고보 석상 [13:16]


13:24   마을 출구 쪽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잠시 후 연 선생님이 도착했는데 나머지 회원들이 영 소식이 없어 마을 입구로 마중을 나갔다. 바에 들러 맥주를 한 잔 시켜 마신 후 다시 한 잔을 시켰더니 토스트에 소스와 하몽을 얹은 것을 안주로 준다. 그거 고맙네. 잠시 후 회원들이 모두 도착해 대전에서 왔다는 남자 분과 함께 8명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어디로 갔을까? 당연히 아까 맥주 먹을 때 서비스 안주를 준 식당으로 갔다.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순례자 메뉴를 주문했는데 그라시안 수프와 돼지갈비 맛이 아주 좋았다.


이 지역은 스페인의 가장 원시적이고 오래된 '파요사'라는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단체로 답사를 온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샤워하고 빨레하고 쉬는데, 그렇게 참았던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비 예보가 있었는데 오기는 오는구나. 비가 뜸해져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점심을 먹은 식당에 다시 들러 문어 숙회 두 접시와 개인별 단품 요리를 주문하기로 결정, 나는 하몽 오믈렛을 주문했는데 맛이 괜찮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맥주를 한 잔 마시는데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해발 1300m가 넘는 지역이라 그런지 날씨를 종잡을 수가 없다. 비가 그치기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알베르게까지 들고뛰었는데 도착해 보니 패딩이 적당히 젖어 있었다. 제안이 들어왔다. 내일도 비가 온다고 하니 아침 7시에 출발하면 어떠냐고. 글쎄, 정해진 규칙은 가능한 한 지켜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 그냥 6시에 출발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 여성 순례자가 줄창 기침을 해댄다. 귀마개를 했는데도 귓속을 파고드는 소리, 미칠 지경이다. 


▲ 마을 출구 쪽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 [13:24]


▲ 연 선생님 도착 [13:28]


▲ 팀원들을 기다리며 맥주 한 잔 [13:41]


▲ 순례자 메뉴 메인 요리로 나온 돼지갈비 [14:54]


▲ 점심 먹고 알베르게로 귀환 [15:43]


▲ 오 세브레이로 알베르게 침실 [17:18]


▲ 오 세브레이로 알베르게 침실 [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