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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경남山行記

2017.09.28. [경남山行記 98] 경남 창녕 화왕산→구룡산

by 사천거사 2017. 9. 28.


화왕산-구룡산 산행기

 

일시: 2017 9 28일 목요일 구름 많음

장소: 화왕산 756.6m / 관룡산 754m / 구룡산 741m 경남 창녕 

 코스: 송현동고분군 → 목마산성 → 화왕산 → 천문관측소  청간재 → 관룡산  구룡산 → 암릉  관룡사  옥천차장

 거리: 10.41km

 시간: 4시간 11분

 회원: 청주 천봉산악회 안내 산행







07:30   오늘은 천봉산악회에서 안내하는 화왕산 산행에 참가하는 날이다. 봄에는 진달래꽃, 가을에는 억새로 유명한 화왕산은 지금까지 여러 번 가본 곳이지만, 오늘 예정된 산행 코스에서 송현동고분군~화왕산 정상 구간과 구룡산~관룡사 구간은 처음 걸어보는 길이라 기꺼이 산행에 참가하게 되었다. 청주체육관 앞을 출발한 버스가 청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 남쪽을 향해 달려가다 추풍령휴게소로 들어갔다. 추풍령휴게소, 참 오랜만이네. 창녕나들목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벗어난 버스가 창녕읍내를 통과해 송현동고분군 쪽으로 달려갔다. 


▲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08:51]


10:15   자하곡 입구 도로변에 버스가 섰다. 자하곡을 경계로 왼쪽 길은 송현동고분군과 목마산성을 거쳐 화왕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코스이고, 오른쪽 길을 따르면 도성암 입구에서 다시 3개의 코스가 갈라진다. 화왕산 창화사 앞을 지나자 송현동고분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고분군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교동고분군과 함께 가야시대 고분으로 알려져 있다. 고분군이 끝나는 지점에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다. 목마산성 안내판을 지나자 흩어져 있는 성돌이 보이기 시작했다. 걷는 길 오른쪽 사면을 무너져내린 성돌들이 덮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 자하곡 입구 도로변에 버스 정차 [10:15]


▲ 화왕산 창화사 앞을 통과 [10:18]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교동 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기슭의 목마산성 아래에 있는 송현동 고분군과는 현풍으로 통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남쪽에 위치한 대형 고분군이다. 교동에는 왕릉이라고 불리는 대고분을 중심으로 주위에 대소 수십 기의 고분들이 모여 있었으나, 현재는 8기만이 남아 있고 그나마 봉토들의 파손이 심하다.

이 고분군은 1918년에서 1919년 사이 일본인에 의해 그 일부가 발굴조사되어 유물은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가고 지금은 일부만 국내에 남아 있다. 당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 고분군은 횡구식(橫口式) 또는 횡혈식(橫穴式) 고분이었다고 한다. 출토 유물은 금봉관을 비롯하여 순금이식(純金耳飾) 등 각종 귀금속으로 된 장신구와 동, 철제의 무구, 토기 등 대량의 유물이 출토 되었다고 한다. 일본인이 남긴 발굴 보고서가 간단하여 교동고분군의 구조와 출토된 유물 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현존하는 고분 중 21기(基)는 지금까지 복원한 것인데 그중 1기는 입구 쪽을 개봉했다. 구조는 현실(玄室)과 연도는 구별이 없고 다만 장방형(長方形)이 평면횡혈식(平面橫穴式) 석실로 삼면의 측벽은 크고 작은 돌덩이이고 판석(板石)으로 천장을 덮은 것이다. 일본인에 의해 개략적인 보고서가 출판되기는 하였으나 그 많은 유물들의 출토 경위와 유구(遺構)들의 특징이 자세하게 밝혀지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다.

창녕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한의 12개 나라 중 하나인 불사국으로, 비사벌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송현동 무덤들은 크게 2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1지역은 목마산 기슭에서 서쪽으로 80여기의 무덤이 있던 큰 무덤들이었으나, 지금은 16기 정도만이 남아 있다. 2지역은 송현동석불이 있는 부근에 20여 기 정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논으로 변하여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무덤은 겨우 몇 기 정도이다. 근처의 교동 무덤들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무덤의 구조와 유물의 성격이 거의 같다고 여겨진다. 교동무덤과 함께 1918년에 발굴되어 많은 양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유물 중 일부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것도 있다고 한다.


▲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송현동고분군 [10:21]


▲ 산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내려다본 송현동고분군과 창녕읍내 [10:23]


▲ 본격적인 산길에 진입 [10:23]


목마산성


둘레 약 1,900m, 지정면적 82,116㎡. 사적 제65호. 창녕읍의 동쪽에 있는 화왕산(火旺山)의 북쪽 봉우리로부터 서쪽으로 낮게 뻗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측면식(側面式, 山腹式) 또는 반면식(半面式) 산성의 대표적인 예이다. 확실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진흥왕이 대가야를 완전히 정복하고 이 곳에 하주(下州)를 두었는데, 이전에도 이 성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부근에는 가야시대의 고분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 성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시대의 임진왜란과 관련있는 산성이라 하나, 이는 이 때 의병장 곽재우(郭再祐)가 왜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산성터를 수축하였기 때문이다. 형태상으로 볼 때 삼국시대의 산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면식으로 성의 정면이 계곡입구를 향하여 있으므로 수비를 위한 산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산성의 명칭이 목마산성이기 때문에 혹시 후대에 말을 기르기 위한 목마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석벽은 자연석 또는 네모꼴의 할석을 이용하였으며 아랫부분을 약간 내밀어 쌓아 견고히 하려 하였다. 한편, 산성으로서의 규모는 매우 커서 부근의 마안형(馬鞍形)의 화왕산성(火旺山城)과 비슷하여 같은 지방에 있는 산성 사이의 좋은 양식사적(樣式史的) 비교가 된다. 옛 가야지방에 남아 있는 성으로는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 길 왼쪽 목마산성 안내판 [10:29]


▲ 흩어져 있는 목마산성 성돌 [10:29]


▲ 목마산성 성벽길을 따라 진행 [10:40]


▲ 길 오른쪽으로 사면을 따라 흩어져 있는 성돌 [10:41]


10:47   분명 무너진 성돌로 쌓았을 돌탑 3개가 보인다. 돌탑 주변에는 문화재 시굴 어쩌구 저쩌구 때문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나붙어 있었다. 하늘을 향해 쭉쭉뻗은 소나무 사이로 사면을 가로질러 가는 산행로가 계속 이어졌다. 왼쪽에 있는 능선길을 이용해도 되는데 그냥 편하게 걸어갔다. 자하곡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 이정표에 정상까지 거리가 600m 라고 적혀 있다. 조금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이 이어지더니 곧 전망이 트이면서 화왕산 정상이 눈 앞에 나타났다. 


▲ 왼쪽 언덕으로 돌탑 3개가 보인다 [10:47]


▲ 쭉쭉뻗은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10:49]


▲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이 계속 이어지고 [10:54]


▲ 계속 사면을 가로질러 진행 [11:03]


▲ 자하곡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 [11:10]


▲ 날은 맑고 바람은 없다 [11:12]


▲ 능선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 [11:16]


▲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구간 [11:19]


▲ 화왕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배바위 갈림길 이정표 [11:22]


▲ 화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창녕읍내 [11:22]


11:23   해발 756.6m의 화왕산 정상에 올랐다. 멋진 표지석이 서 있는 화왕산 정상은 사방이 틔어 있어 전망이 좋은 곳인데 특히 화왕산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상을 떠나 성벽길을 따라 동문 쪽으로 걸어간다. 왼쪽이 깎아지른 절벽이라 따로 성벽을 쌓을 필요도 없는 지형이다. 억새가 얼굴을 간지른다. 아직 완전히 피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보기에 괜찮다. 억새가 한창 피어나는 10월 되면 이곳도 인산인해를 이루리라.


▲ 화왕산 정상에서 신동갑 회원 [11:23]


▲ 화왕산 정상에서 회원들 [11:24]


▲ 화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암벽 [11:25]


▲ 화왕산 정상부 풍경 [11:25]


▲ 정상을 내려오며 바라본 화왕산성과 배바위 [11:28]


▲ 왼쪽 화왕산성 성벽길을 따라 진행 [11:31]


▲ 억새 뒤로 보이는 화왕산성과 배바위 [11:32]


▲ 억새 뒤로 보이는 화왕산성과 배바위 [11:35]


11:36   이정표를 만났다. 여기서 동문 쪽으로 내려가면 동문을 통과해 임도를 따라 청간재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다. 왼쪽은 능선길로 천문관측소가 있는 곳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계속 능선을 따라 걸어갈 수도 있다. 능선길에 들어섰다. 사람이 그리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그런지 웃자란 나뭇가지들이 자꾸 얼굴을 때린다. 계속 능선을 따라 청간재까지 갈 수 있는데 오늘은 천문관측소 앞을 거쳐 동문에서 이어지는 임도에 내려섰다. '옥천삼거리'라고도 부르는 청간재에서 계속 임도를 따르면 옥천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관룡산을 가려면 왼쪽으로 열려 있는 산길에 들어서야 한다.


▲ 동문 갈림길 이정표: 천문관측소 쪽으로 진행 [11:36]


▲ 진달래밭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관룡산이다 [11:37]


▲ 상월마을 갈림길 이정표 [11:40]


▲ 억새밭을 지나가고 있는 회원들 [11:48]


▲ 경북대 아마추어 관측소 쉼터 건물 [11:53]


▲ 청간재에서 동문으로 이어지는 임도에 내려섰다 [11:54]


▲ 청간재 앞 이정표: 박월산 가는 길이 갈라진다 [12:02]


▲ 여러 가지 안내판이 서 있는 청간재(옥천삼거리) [12:02]


▲ 청간재에서 올라가는 통나무 계단길 [12:06]


12:09   길 왼쪽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밥 한 줄과 포도, 사과 등으로 점심을 먹고 출발, 15분 정도 약간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을 걸어 해발 754m의 관룡산 정상에 도착했다. 관룡산 정상에서는 보물 제295호인 석조 석가여래좌상이 있는 용선대를 거쳐 관룡사로 내려갈 수도 있고 구룡삼거리를 거쳐 관룡사로 내려갈 수도 있다. 구룡산에 가려면 이정표에 적혀 있는 청룡암 쪽으로 가야 한다.  


▲ 길 왼쪽에 적당한 공터가 있어 점심을 먹고 가기로 결정 [12:09]


▲ 점심 먹고 출발준비 중 [12:25]


▲ 경사가 별로 없는 평탄한 길 [12:31]


▲ 관룡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12:38]


▲ 관룡산 삼거리에 서 있는 이정표 [12:39]


▲ 해발 754m 관룡산 정상 표지석 [12:40]


▲ 암벽을 왼쪽으로 우회 [12:46]


▲ 암봉 뒤로 보이는 게 구룡산 정상 [12:50]


12:52   구룡삼거리에착했다. 오른쪽은 관룡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쪽은 노단이마을로 가는 길인데 구룡산을 가려면 왼쪽 길을 택해야 한다. 왼쪽 길은 다시 두 갈레로 갈라지는데 왼쪽은 평탄한 길이고 오른쪽은 암벽을 기어올라야 하는 난코스다. 예전에 한번 가본 적이 있어 난코스를 택했는데 밧줄이 설치되어 있어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해발 741m의 구룡산 정상에 도착, 여기서 계속 능선을 따르면 부곡온천으로 가게 된다. 정상에서 왔던 길로 조금 되돌아나오면 지도상에 헬기장 표시가 된 지점에 이르게 되고 여기서 왼쪽으로 갈라지는 길을 따르면 암릉을 거쳐 관룡사로 내려가게 된다.


▲ 삼거리 안부에 서 있는 이정표 [12:52]


▲ 왼쪽은 편한 길, 오른쪽은 암릉길 [12:52]


▲ 밧줄을 잡고 올라오고 있는 신동갑 회원 [12:55]


▲ 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관룡사와 옥천리 일대 [12:55]


▲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정표 [13:01]


▲ 화왕산에서 부곡온천까지도 산행로가 열려 있다 [13:02]


▲ 해발 741m 구룡산 정상에서 회원들 [13:08]


▲ 헬기장 삼거리에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 [13:11]


13:15   등산로 이정표를 만났다. 아직까지는 길이 좋은 편이다. 잠시 후 올라가야 할 암봉이 정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밑에서 보니 암벽 중간 지점에 밧줄이 드리워져 있어 곧바로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전을 위하여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두 번째 만난 암봉은 곧장 가는 길이 없어 올라갔다 내여와야 했다. 이정표를 만났다. 계속 이어지는 능선길은 노단이 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사면길이 관룡사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도 송이가 나는지 송이 채취 출입금지 경고문이 금줄에 매달여 있었다.


▲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진행 [13:15]


▲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는 암벽들 [13:18]


▲ 저 암봉을 올라가야 한다 [13:21]


▲ 앞으로 가야 할 암릉이 보인다 [13:23]


▲ 관룡사 가는 길 이정표 [13:33]


▲ 능선 삼거리에서 내려가는 길 [13:39]


▲ 송이버섯 채취 출입금지 경고문 [13:46]


▲ 앞서 가는 신동갑 회원이 보인다 [13:54]


13:58   구룡삼거리에서 내려오는 관룡사 앞 임도에 올라섰다. 실제적인 산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보물이 4개나 있는 관룡사를 둘러본 후 도로를 따라 걸어 옥천주차장에 도착, 버스에 배낭을 싣고 주차장 한켠에 있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물에 들어가기는 뭐하고 그냥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3시 40분 버스 출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에 한 번 들른 후 청주에 도착한 시각이 6시 50분, 이렇게 해서 9월 마지막 주의 화왕산과 구룡산 연계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 관룡사 앞 임도 옆에 서 있는 안내도 [13:58]


▲ 관룡사 앞에 서 있는 이정표 [13:59]


관룡사


관룡사는 화왕산 군립공원 구룡산 병풍바위 아래 있는 고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신라 8대사찰의 하나로, 394년(내물왕 39)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583년(진평왕 5) 증법(證法)이 중창하고 삼국통일 후 원효가 중국 승려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대도량(大道?)을 이루었다. 748년(경덕왕 7) 추담(秋潭)이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1401년(태종 1)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당우(堂宇)가 소실되어, 1617년(광해군 9)에 영운(靈雲)이 재건하고, 1749년(영조 25)에 보수하였다. 

관룡사에는 대웅전(보물 212호)과 약사전(藥師殿, 보물 146호)을 비롯하여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519호)과 약사전 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11호), 용선대(龍船臺) 석조 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 등이 있다. 또한 관룡사 입구에는 고려 공민왕 때 개혁정치를 주도한 신돈(辛旽 ? ~ 1371년)이 출가한 사찰인 옥천사지(玉泉寺址)가 있으며, 또 신돈이 태어났다는 일미사지(一味寺址)가 있다. 주변의 깊은 옥천계곡은 많은 피서객이 찾아온다.  


▲ 보물 제212호인 관룡사 대웅전 [14:00]


▲ 관룡사 경내에서 바라본 암릉 [14:01]


▲ 보물 제146호 약사전과 보물 제519호인 석조여래좌상: 앞에 있는 3층석탑은 지방유형문화제 제11호 [14:02]


▲ 관룡사 석장승 [14:09]


▲ 옥천삼거리(청간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 [14:18]


▲ 옥천주차장에 서 있는 우리 버스 [14:26]


▲ 옥천주차장에서 바라본 암릉: 우리가 걸은 길이다 [15:18]


▲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