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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 길

2017.04.25. [산티아고 순례길 13] 벨로라도→산 후안 데 오르테가

by 사천거사 2017. 4. 25.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13

 

일시: 2017년 4 25일 화요일 비도 오고 해도 나고

장소: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코스: 벨로라도 → 토산토스 → 비얌비스타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산 후안 데 오르테가

 거리: 24km  걸은 거리 259.5km  걸을 거리 605.1km

 시간: 5시간 42

 회원: 5





06:00   신기하게도 지난 밤에는 중간에 딱 한 번만 잠에서 깼다. 6시에 일어나 바깥 날씨를 확인해 보니, 공기가 싸늘하기는 한데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벨로라도에는 아침을 먹을 곳이 없어 걸어가다 적당한 곳에서 먹기로 하고 일단 출발을 했다. 하늘이 잔뜩 흐려 있는지 시내의 가로등 불빛만 까미노를 비쳐주고 있을 뿐 사방이 캄캄하다. 주변 세상이 어둠과 고요 속에 파묻혀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벨로라도 시내를 벗어나 N-120 도로를 횡단한 후 티론 강 위에 놓여 있는 다리를 건넜다. 까미노는 N-120 도로 왼쪽을 따라 이어졌다.


▲ 벨로라도 공립 알베르게 출발 [06:30]


▲ 알베르게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06:32]


▲ 가로등 불빛만이 환한 벨로라도 거리 [06:33]


▲ 세상이 다 고요하다 [06:41]


▲ 벨로라도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 [06:50]


▲ 티론 강 위에 놓여 있는 다리 [06:51]


▲ N-120 도로 왼쪽을 따라 나 있는 까미노 [06:55]


 07:05   일기예보대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많이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비옷을 입고 배낭 커버를 씌웠다. 날이 슬슬 밝아오기 시작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고 비가 조금씩 오락가락한다. 까미노는 N-120 도로 왼쪽를 따라 토산토스 마을까지 이어지지만 도로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 자동차의 소음을 듣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흩뿌리던 비가 그쳤다. 비옷은 비를 막아주는 좋은 역할을 하지만 대신 땀을 나게 만든다. 곧바로 비옷을 벗었다.


▲ 비가 내리기 시작: 비옷 입고, 배낭 커버 씌우고 [07:05]


▲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 [07:19]


▲ 하늘이 잔뜩 흐려 있다 [07:27]


▲ 까미노 왼쪽 풍경: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미류나무들 [07:29]


▲ 잠시 오락락하던 비가 그쳤다 [07:32]


▲ 밀밭미 그려낸 아름다운 풍경 [07:32]


▲ 열심히 걷고 있는 팀원들 [07:37]


07:44   토산토스(Tosantos) 마을에 진입했다. 작은 마을이지만 알베르게가 3개나 있다. 이 마을의 라 페나 성모 소성당(Virgen de la Pena)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 위에 있는데 바위벽을 파서 만들었다고 한다. 토산토스 마을에서 비얌비스타 마을까지의 까미노는 밀밭 사이로 나 있는 아름다운 산책로 같은 길이었다. 비는 완전히 그쳤고 하늘이 조금씩 파래지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걸어 산 에스테반(San Esteban) 성당이 반겨주는 비얌비스타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토산토스


토산토스는 무성한 풀로 덮인 언덕이 있는 오카 산의 굽이치는 풍경 안에 자리 잡은 조그만 마을이다. 마을에는 커다란 떡갈나무가 많으며, 거대한 바위를 파내어 만든 신비롭고 아름다운 성당인 라 페냐 성모의 성당 잘 보존되어 있다. 매년 9월 8일 토산토스에서는 라 페냐 성모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사라센인들에게 성모상을 지키기 위해 동굴 안 종 밑에 숨겨놓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오랫동안 그 흔적을 찾지 못하였다가 동굴이 성소가 되면서 발견되었다.


▲ 토산토스 마을에 진입 [07:44]


▲ 토산토스 마을 거리 [07:50]


▲ 벽을 타고 뻗어 올라가는 포도나무 줄기 [07:52]


▲ 멀리 바위벽을 파서 만든 라 페나 성모 소성당이 보인다 [07:57]


▲ 밀밭이 그려낸 아름다운 풍경 [08:00]


▲ 유채꽃밭도 보기에 좋고 [08:02]


▲ 농경지 사이로 나 있는 그림 같은 까미노 [08:05]


▲ 열심히 걸어오고 있는 팀원들 [08:07]


▲ 비얌비스타 마을이 지척이다 [08:14]


▲ 비얌비스타 마을 입구에 있는 산 에스테반(San Esteban) 성당 [08:16]


08:18   비얌비스타 마을에 도착했다. 별 다른 특징이 없는 작은 마을이다. 20분 정도 걸어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전원풍의 아름다운 목조건물들이 특색을 이루는 곳으로, 은퇴한 스페인 노인들이 여생을 보내기에 알맞은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앞에서 지나 온 마을 두 군데에는 아침을 먹을 곳이 없어 그냥 지나쳤는데 이 마을에는 마침 문을 연 바(bar)가 있어 아침을 먹고 가기로 했다. 간단한 스낵 메뉴, 햄버거와 커피, 오렌지주스를 주문했다.


▲ 비얌비스타 마을에 들어섰다 [08:18]


▲ 비얌비스타 마을을 벗어나고 있다 [08:19]


▲ 하늘이 많이 파래졌다 [08:24]


▲ N-120 도로를 건너 오른쪽에 있는 마을로 진입 [08:34]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는 부르고스 지역의 전통 가옥과 대중적인 건축물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은 전원풍 목조 건축물이 많으며 그 중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문장으로 장식된 것도 있다. 8월 15일에는 성 로께의 성모를 기리는 축제열린다.


▲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 마을 입구에 도착 [08:37]


▲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 마을에서 아침식사를 한 바(bar) [08:38]


▲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에 있는 바 내부 모습 [08:51]


▲ 아침 햇살이 비치는 야외 식탁에서 아침식사 [08:52]


▲ 햄버거, 커피, 오렌지주스가 아침 식사 메뉴 [09:01]


09:09   맛있게 아침을 먹고 출발, 마을의 출구는 성모승천 성당을 오른쪽으로 두고 이어져 있으며 왼쪽으로 바르셀로나의 은퇴한 사업가가 운영한다는 사설 알베르게를 볼 수 있었다. 아주 이쁘게 꾸며놓은 알베르게였다. 밀밭 사이로 나 있는 아름다운 까미노가 계속 이어졌다. 내리막을 내려가자 오른쪽으로 아치형 문을 한 건물의 잔해가 보인다. 부르고스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디에고 포르셀로스 백작이 말년을 외롭게 보낸 산 펠리세스 수도원의 유적이었다. N-120 도로 오른쪽을 따라 조금 진행하다 오카 강을 건너니 비야프랑카 마을이다.


▲ 아침 식사 후 출발 준비 [09:09]


▲ 산티아고 가는 길 이정표 [09:11]


▲ 바르셀로나의 은퇴한 사업가가 운영한다는 사설 알베르게 [09:12]


▲ 밀밭 사이로 나 있는 그림 같은 까미노 [09:16]


▲ 외롭지만 평화로운 길 [09:22]


▲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들 [09:32]


산 펠리세스 데 오카 수도원 (Monasterio de San Felices de Oca)


9세기 경에 만들어진 이 수도원은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를 1킬로미터 남겨둔 까미노 위에 세워졌다. 모사라베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오래된 수도원에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서고트 양식을 따른 발굽 모양의 아치와 소성당의 잔해이다. 이 수도원은 부르고스 시를 세운 돈 디에고 로드리게스 포르셀로스가 영원히 잠든 곳이라고 한다.


▲ 까미노 오른쪽 산 펠리세스 데 오카 수도원 흔적 [09:34]


▲ 까미노를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들 [09:41]


▲ N-120 도로를 오른쪽을 따라 진행 [09:46]


▲ 오카 강을 건너간다 [09:49]


09:51   N-120 도로 오른쪽에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마을의 산티아고 교구 성당이 보인다. 마을을 지나면서 오카 산(Montes de Oca)으로 올라가는 오르막 산길이 시작되었다. 오카 산을 넘어가는 일은 중세의 순례자들에게는 무척 위험했지만 지금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 소음이 들리지 않는 떡갈나무 숲 속을 걷다 보면, 옛 순례자가 걸으면서 느꼈던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길이 아주 널찍하게 잘 닦여져 있고 날씨도 제법 선선해서,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까미노를 걷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마을 입구에 도착 [09:51]


▲ 비야프랑카 마을의 산티아고 교구 성당 [09:53]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아름다운 자연 풍경, 크리스탈 같은 개울, 노루와 늑대의 은신처가 되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은 로마 시대에는 아우카로 불렸으며 주교가 살던 곳이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와 부르고스의 중간인 이 마을에는 신비로운 전설과 많은 전통이 남아 있다. 오카 산은 오랫동안 순례자들을 노린 도둑들이 들끓던 곳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서 한 순례자가 도둑에게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슬픔에 잠긴 순례자의 부모가 간절하게 야고보에게 기도를 올리자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실제로 도메니코 라피라는 이름의 순례자는 이곳 오카 산의 숲에서 길을 잃어 오랫동안 빠져나올 수 없었는데, 숲에서 나는 버섯을 먹고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한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에서는 이곳의 명물인 오야 포드리다(Olla Podrida; 썩은 냄비라는 뜻)라는 부르고스 식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마을 근교에는 수령이 오래된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자작나무가 자라는 숲이 있다.


▲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마을에 진입 [09:53]


▲ 마을을 벗어나 오카 산을 향하여 [09:57]


▲ 까미노 왼쪽으로 보이는 풍경 [09:58]


▲ 딱갈나무 사이로 나 있는 오르막길 [10:09]


▲ 길 왼쪽에 있는 전망대 [10:12]


▲ 길 오른쪽 까미노 서비스 센터 [10:14]


▲ 계속 이어지는 숲 길 [10:14]


10:18   길 한쪽에 하얀 야생화가 피어 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소박하면서도 수수한 모습의 꽃이다. 봄철에 까미노를 걸으면서 보게 되는 다양한 종류의 꽃은 순레자들의 지친 발걸음에 힘을 불어넣어 준다. 딱갈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을 20분 정도 올라가자 오른쪽에 기념비 하나가 서 있는게 보였다. 1936년 이곳에서 살해된 순례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라고 한다. 그분은 순례를 하다 목숨을 잃었으니 분명 성인이 되었을 거다. 널찍한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졌다.


▲ 길 옆에 피어 있는 수수한 모습의 야생화 [10:18]


▲ 떡갈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10:23]


▲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10:29]


▲ 순례자 추모 기념비 제작 안내문 [10:39]


▲ 1936년에 이곳에서 살해된 순례자 추모 기념비 [10:39]


▲ 끝없이 뻗어 있는 까미노 [10:41]


▲ 해는 났지만 선선해서 걷기에 좋다 [10:48]


▲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 두 명: 아마 부부인 듯 [10:56]


▲ 까미노 한복판에 돌멩이로 만든 사랑 마크 [11:02]


▲ 고원에 있는 순례자 쉼터 가는 길 이정표 [11:08]


11:14   순례자를 위한 쉼터를 만났다. 이름하여 '오아시스 델 카미노'. 넓은 고원에 여러 가지 조형물도 세워놓고 순례자를 위한 간단한 식품과 음료수를 팔고 있었다. 지금 걷는 길의 해발고도가 1100m가 넘다 보니, 소나무를 제외한 다른 나무들은 아직 가지가 앙상하다. 잎이 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경사가 거의 없는 길이 계속 이어지더니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고 있는 게 보였다. 순레자들은 아니고 단체로 관광을 온 사람들인 것 같다.   


▲ 고원에 있는 순례자 쉼터 '오아시스 텔 까미노' [11:14]


▲ 높은 곳이라 그런지 아직 나무에 잎이 나지 않았다 [11:28]


▲ 경사가 거의 없는 걷기 좋은 길 [11:34]


▲ 까미노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는 순례자 [11:40]


▲ 소나무 숲 사이로 나 있는 길 [11:40]


▲ 여기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 [11:45]


▲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고 있는 관광객들 [11:51]


▲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11:52]


▲ 산 후안 오르데카 마을로 이어지는 길 [11:58]


12:04   산 후안 오르테카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표지판을 지나 8분 정도 걸어가자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수도원 성당과 붙어 있는 알베르게가 보였다. 도착 시각 12시 12분, 다른 공립 알베르게와 마찬가지로 이 알베르게 문에도 1시에 문을 연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알베르게 문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문을 열기를 기다리는데, 조금 늦게 도착한 연 선생님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로부터 얻었다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여러 개 가져왔다.


팀원들과 그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샌드위치 하나가 얼마나 큰지 다 먹는데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했다. 연 선생님 덕분에 오늘 점심값은 굳었네. 시간에 맞춰 알베르게가 문을 열었다. 예전에는 열악하기로 소문이 난 알베르게였는데 지금은 모두 2층 침대를 갖추어 시설을 재정비했다고 한다. 알베르게 이용료 10유로, 저녁식사 9유로, 침대는 선착순. 점심도 먹었겠다. 샤워를 하고, 커피 한 잔에 캔맥주 하나를 마셨더니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험악해지더니 강풍이 불면서 비가 한 차례 쏟어졌다. 그러더니 다시 날이 개면서 해가 쨍쨍하게 비쳤다. 놀랄 것 없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게 스페인의 봄날씨란다. 내일 아침은 영하로 내려가고 비가 온다는 예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도 모른다. 하늘이 하는 일을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일은 내일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아무리 걱정을 한들 내일 일어날 일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산 후안 데 오르테가는 12세기부터 17세기를 거치면서 교황과 주교, 왕과 귀족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도시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스페인의 외딴 마을은 안전하고 쾌적하며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했고, 순례자들은 편히 쉴 수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는 오래된 삼림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로 로마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 등의 우아한 건물이 있으며, ‘빛의 기적’처럼 지금도 눈으로 경험 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 산 후안 데 오르테가 마을 입구 [12:04]


▲ 산 후안 데 오르테가 마을이 지척이다 [12:08]


▲ 길 왼쪽에 서 있는 조형물 [12:08]


▲ 이 마을에도 폐가가 있네 [12:09]


▲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수도원 성당 벽에 게시되어 있는 환영 글귀 [12:11]


▲ 알베르게 문에 1시에 문을 연다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12:12]


▲ 산 후안 데 오르테가 마을 급수대 [12:14]


▲ 멀리 관광객들이 타고 온 버스가 보인다 [12:18]


▲ 알베르게 앞에서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는 팀원들 [12:43]


15:13   알베르게 바로 옆에 있는 수도원 성당 구경에 나섰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시골에 있는 성당 치고는 내부가 아주 화려하고 오밀조밀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6시에 미사가 있다고 해서 참례하기로 하고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5시 48분,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다시 성당으로 갔는데,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그런지 '빛의 기적'을 볼 수는 없었다. 나이가 지긋하고 잘 생긴 신부님이 미사 집전을 하셨다. 전세계 모든 성당의 미사 과정이 거의 같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아도 미사에 참례하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이 성당에는 우리말로 된 미사책이 마련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사 참례를 마친 후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순례자 메뉴가 9유로에 제공되었다. 뷔페식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직원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우리 팀으로서는 선택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어 마음에 들었다. 채소, 돼지고기, 빵, 감자튀김, 마카로니가 나왔고 와인은 한 병에 5유로 이었다. 저녁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빼먹으러 자판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가 밖을 내다보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래, 지금 팍팍 내리고 내일 아침에는 부디 그쳐라.


9시가 넘어서 순례자 3명이 알베르게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중 한 명이 내 침대 위에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하니 나머지 두 사람에게는 돌아갈 침대가 없게 되었다. 이 마을에는 알베르게가 하나밖에 없는데 비가 내리는 지금 어디 간단 말인가. 그들은 침실 바닥에 담요를 있는 대로 깔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가만히 보니, 10유로를 지불하고 배정받은 침대보다 공짜로 자는 바닥이 더 나은 것 같다. 내일 비가 내리지 않기를 빌며 10시 가까이 되어 잠을 청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수도원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이다. 건물 내부에는 복잡하게 장식된 주두가 눈에 띄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인정되는 고딕 양식의 천개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조각된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성인의 석관이 있다.


▲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수도원 성당 [15:13]


▲ 성당 내부 모습 [15:15]


▲ 성당 내부 모습 [15:16]


▲ 성당 내부 모습 [15:16]


▲ 알베르게 침실 모습 [16:19]


▲ 6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당에 도착 [17:50]


▲ 성당 제대 모습 [17:54]


수태고지 빛의 기적


춘분(3월 21일)과 추분(9월 21일)은 선과 악의 상징이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이 날이 되면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는 단순한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신기한 현상이 성당의 주두에 일어난다. 오후가 되면서 약 10분 정도 햇빛이 성당 주두의 부조를 비춘다. 처음으로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이라고 성모에게 나타난 대천사의 부조부터 시작하여 예수의 탄생, 예수를 경배한 동방박사, 목동들에게 예수가 태어났다고 알려주는 장면을 차례로 비춘다. 첫 번째 부조에서는 성모는 천사가 아니라 주두를 비추는 빛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빛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자연현상이자 잊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경험인 이 현상을  ‘빛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 수태고지 빛의 기적 현상이 일어나는 성당의 부조 [17:55]


▲ 알베르게 식당 저녁식사 메뉴 [18:44]


▲ 알베르게 식당에서 단체로 저녁식사 [18:44]


▲ 알베르게 앞 마당에 비가 내리고 있다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