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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국내 旅行

2017.06.10. [국내旅行 98] 수원 화성

by 사천거사 2017. 6. 10.

  

수원 화성 탐방기

 

 ◈ 일시: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맑음

 ◈ 장소: 수원 화성 경기도 수원시

 ◈ 코스: 수원 화성 주차장 → 창룡문 → 장안문 → 화서문 → 서장대 → 화성행궁 → 장안문  수원 화성 주차장

 ◈ 시간: 2시간 47분

 ◈ 회원: 백만사 회원 7명








13:00   오늘은 백만사에서 수원 화성을 답사하러 가는 날이다. 며칠 전에 충청 이남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북쪽에 있는 곳으로 탐방 장소를 정했는데 비는 커녕 전국이 날만 좋다. 신흥고 주차장에 7명의 회원이 모여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탄 후 오창나들목을 향해 달려갔다. 평택제천고속도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출발, 동수원나들목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벗어난 후 수원화성 주차장을 향해 달려갔다.


▲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 [14:11]


▲ 안성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14:17]


▲ 안성휴게소: 이웃돕기 모금을 위한 남미 민속음악 공연 [14:20]


15:15   수원 화성 주차장에 도착, 간단히 탐방준비를 하고 창룡문을 향해 출발했다. 수원 화성에는 4개의 성문이 있는데 창룡문은 그 중 동문에 해당된다. 수원 화성 탐방로는 성벽 안쪽으로 성벽을 따라 나 있는데 우리는 창룡문에서 왼쪽을 따라 돌기로 했다. 탐방길에 올라서자 성 안 모습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수원 화성에는 모두 48개의 시설물이 있는데 처음 만난 것은 동북노대, 노대는 성 가운데서 쇠뇌를 쏠 수 있도록 높이 지은 시설물이다. 접근하는 적을 공격할 수 있다. 화성에는 서노대(西弩臺)와 동북노대 두 곳이 있다.


수원 화성


수원 화성(사적 제 3호)은 팔달산과 그 동쪽의 낮은 구릉과 평지를 감싸며 쌓은 평산성(평지와 산을 이어서 쌓은 성)으로 타원형태를 이루고 있다. 성의 전체둘레는 5.744km이고 높이는 4.9~6.2m이다. 정조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마련하게 위해 신도시 화성을 계획하게 되었다. 수원 화성은 당시의 최첨단 과학과 건축술이 빗어낸 역작으로 동양 성곽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화성 건설에 관한 모든 과정은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에 모두 담겨 있다.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으로써, 한국의 세계적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수원 화성의 그 방대한 공사를 2년 9개월이라는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다산 정약용이라는 젊은 실학자의 역할이 컸다. 그는 화성의 설계를 맡아 전통적인 방법을 기초로 중국을 통해 들어온 여러 서양의 건축을 참고하였다. 화성은 정약용의 설계를 바탕으로 채제공을 비롯한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와 같은 유능한 실학자들의 젊은 패기와 기중기, 녹로와 같은 과학기술이 접목되어 만들어졌다. 당시 건설된 주요시설물로는 문루와 옹성을 갖춘 4대문과 행궁, 암문, 수문, 연못, 장대, 공심돈, 각루, 포루, 봉돈, 궁대, 치성, 용도, 적대 등 48개소이다.


▲ 수원화성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5:15]


▲ 화성 탐방 준비 끝 [15:19]


창룡문


창룡문(蒼龍門)은 성의 동문이다. 이름은 음양오행설에서 푸를 '창'자가 동쪽을 의미한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크게 소실된 것을 1978년 복원하였다. 홍예의 크기만을 놓고 볼 때는 장안문보다 더 크다. 서남으로 행궁과 1,040보 떨어져 있고, 안팎으로 홍예를 설치하였는데, 안쪽은 높이가 16척 너비가 14척, 바깥쪽은 높이가 15척 너비가 12척, 전체 두께는 30척이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각각 아래 너비가 30척 높이 18척 5촌이며, 좌우의 와장대(臥長臺)는 길이가 각각 20척이고 돌계단은 각각 14층이며 너비는 9척이다. 바깥쪽 좌우 무사의 너비는 각각 25척 높이는 18척이며, 안팎 홍예 사이의 좌우 무사는 높이가 각각 17척, 양쪽 선문 안은 쇠로써 빗장을 설치하였다.


▲ 화성 동문 창룡문 [15:25]


▲ 성벽길에 올라 내려다본 성안 풍경 [15:29]


▲ 성벽을 따라 안쪽으로 나 있는 탐방로 [15:30]


▲ 동북노대: 창룡문과 동북공심돈 중간에 위치, 정조 20년 4월 14일 완공 [15:31]


동북공심돈


공심돈은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지은 망루와 같은 곳이다. 남한산성에도 설치가 되어 있지만 성제상으로 돈의 내부가 비어 있도록 설계된 것은 화성이 처음이다. 중국의 병성인 '성서'(城書)에는 공심돈을 "벽돌로 3면에 섬돌을 쌓고 그 가운데를 비워 둔다. 가운데를 2층으로 구분하여 널빤지로 누(樓)를 만들고 나무사다리를 이용하여 위아래에 공안을 많이 뚫어서 바깥의 동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불랑기나 백자총들을 발사하여도 적으로서는 화살이나 총탄이 어느 곳에서부터 날아오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은 창룡문의 근처에 있는 공심돈으로, 서북공심돈과 남공심돈과 달리 성벽을 쌓은 안쪽에 건조되었다. 이 공심돈은 동심원 형태의 건축물이다. 높이는 17척 5촌(5.42m), 바깥 원 둘레 122척(38m),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1.24m), 안쪽 원 둘레 71척(22m),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척 5촌(1.39m)의 공간을 비워두고, 내부에는 나선형의 계단을 설치하였고 2층 덮개판으로 둘렀다. 아래 층 높이는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는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다. 아래층 공심에서 나선형의 벽돌 계단으로 윗층의 집을 이르기 때문에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 수원 화성 동북공심돈 [15:32]


15:35   '연무대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동장대에 도착했다. 장대는 성곽 일대를 조망하면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일종의 지휘소 같은 곳이다. 화성에는 서장대(西將臺)와 동장대(東將臺) 두 곳이 있다. 동북포루 옆을 통과했다. 포루(舖樓)는 보병용 진지로 치성 위에 지은 목조 건물이다. 동북포루(東北舖樓)는 '각건대(角巾臺)'라고도 불린다. 동북포루는 1796년 (정조 20년) 5월 15일 준공되었다. 3면의 치성이 성 밖으로 돌출되었고, 하부 1.46m까지는 석축을, 위에는 전축을 했으며, 상부에 여장을 쌓았다.


화홍문 바로 옆에 있는 동북각루(방화수류정)는 모양이 매우 아름다워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홍문은 수원천 이에 놓인 북수문이다. 주변환경과 잘 어울려 수원팔경 중 하나인 '화홍관창'을 만들어낸다. 옛 사람들의 지혜는 감탄의 대상이다. 성은 외부 침입을 막는 게 주목적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거기에다 미적 요소까지 더했으니 성을 그냥 단순한 성으로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수원 화성에 있는 모든 시설물들은 하나의 작품이라고 보아도 된다.


동장대(연무대)


동장대(東將臺)는 성의 동쪽 동북공심돈과 동암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1795년 (정조 19년) 7월 15일에 공사 착수, 8월 10일에 상량, 8월 25일에 장대 건물을 완공하였다. 이 장대의 지형은 높은 곳은 아니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험하게 높이 솟아 있는 곳으로 동쪽 구릉인 선암산(仙巖山)의 요지이자 성중에서 지휘소를 설치하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3단으로 쌓은 대가 있고, 3층의 대에서는 총수(銃手)가 숨어서 쏘기에 편리하게 시설되어 있다. 한가운데 좌우에 와장대(臥長臺)를 설치하고, 흙을 판판하게 해서 돌로 깔아 하대에서 말을 타면서도 장대에 올라 갈 수 있도록 하였다. 장대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9칸의 익공식(翼工式) 단층의 팔작기와지붕이다. 건물 주변에는 터를 동서로 80보, 남북으로 240보로 넓이를 잡아 조련장(操鍊場), 일종의 훈련장 같은 것을 닦아 놓았다.


▲ 동장대에서 여성회원들 [15:35]


▲ 동장대에서 바라본 열기구 [15:36]


▲ 성벽길을 따라 진행 [15:39]


▲ 동북 포루 옆을 통과 [15:44]


▲ 동북각루와 화홍문이 보이는 풍경 [15:46]


동북각루(방화수류정)


각루는 성곽 부분 가운데 높은 구릉을 택하여 누각 모양의 건물을 세워, 주위를 감시하고, 가끔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정자처럼 다기능성이 있는 건축물이다. 화성에는 동북각루, 서북각루, 동남각루와 서남각루 등 4개의 각루가 설치되어 있다. 동북각루(東北角樓)는 화홍문 바로 옆에 있으며, 용연이라는 연못 위에 있다. 화성의 시설물 중에서도 아름다워 '방화수류정'이라고도 한다. 1794년 (정조 18년) 9월 4일에 공사 착수, 10월 7일에 상량했으며, 10월 19일에 완공했다. 2011년 3월 3일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되었다.


▲ 수원 화성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보물 제1709호 [15:47]


화홍문


화홍문(華虹門)은 성의 북수문이다. 화홍문은 화성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홍수를 대비하여 수원천 북쪽에 세워진 수문이다. 1794년 (정조 18년) 2월 28일 공사에 착수하여 8월 3일에 상량이 이루어지고, 이듬해 1795년(정조 19년) 1월 13일 문루가 준공되었다. 북수문에는 물이 흐를 수 있도록 7개의 홍예문이 있고, 남수문과 달리 북수문 위에는 누각이 있다. 누각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누마루 형식으로 하고 초익공(初翼工)의 겹처마이며, 지붕은 5량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누각을 설치해서 홍예에서 쏟아지는 장쾌한 물보라와 주변 환경이랑 잘 어우러져서 수원8경의 하나로 '화홍관창(華虹觀漲)'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해 놓았다. 화홍문의 누각은 평상시에는 수문 및 교량으로서, 비상시에는 군사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총안과 포혈을 갖추어 설계된 실용성이 있고 아름다운 외관이 조화된 화성 성곽의 대표적인 시설물 중 하나이다. 소요된 건축 비용은 30,940냥 4전 3푼으로, 장안문 및 팔달문 다음으로 많이 소요되었다.


▲ 수원 화성 화홍문(북수문) [15:49]


▲ 성벽길을 따라 진행 [15:50]


15:55   북동적대에 들렀다. 적대는 치와 비슷한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는 시설물로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설치했다.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에 도착했다. 장안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 아닌가? 그렇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 서안)에서 따온 말이다. 화성의 서문인 화서문에 도착, 화서문은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제 수원 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서장대를 향해 올라가야 한다.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에서는 수원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북동적대


적대는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해 팔달문과 장안문 좌우에 설치된 방어 시설물로서 구조와 기능은 치와 비슷하다. 장안문으로는 북서적대(北西敵臺)와 북동적대(北東敵臺)가, 팔달문에는 남서적대(南西敵臺)와 남동적대(南東敵臺)가 있지만 남서적대와 남동적대는 시가지화와 더불어 인멸되어 현재는 미복원 상태이다. 북동적대(北東敵臺)는 현안과 총안을 두어 성문과 옹성을 방어하던 곳이다.


▲ 북동적대를 둘러보고 있는 회원들 [15:55]


장안문


장안문(長安門)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보통 성(城)의 남문을 정문으로 삼으나, 그러나 화성은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2칸의 다포 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있다. 또한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으며, 양옆에 다른 성벽보다 높이가 약간 높은 두개의 적대가 설치되어 있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前漢), 수(隋), 당(唐)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시안 시)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 수원 화성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 [15:59]


▲ 북서포루 옆을 통과 [16:03]


화서문


화서문(華西門)은 성의 서문이다. 동남으로 행궁과 460보 떨어졌으며, 홍예와 문루의 제도는 모두 창룡문과 같다. 다만 좌우의 돌 계단을 꺾이게 해서 층을 만들었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아래 너비가 각각 9척이고, 바깥 쪽은 너비가 각각 22척 2촌이다. 홍예문 사이 좌우의 무사는 높이가 각각 18척이고 수문청은 문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다. 서옹성의 제도는 동옹성과 같은데 높이는 11척, 안쪽 둘레는 76척 정문에서 36척 떨어져 있으며 바깥 쪽 둘레는 110척이다. 안과 바깥 면 모두에 평평한 여장을 설치하고 외면에는 방안 총혈 19개의 구멍과 활 쏘는 구멍 6개를 뚫었다. 나머지는 모두 동옹성과 같다. 1964년 9월 3일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 보물 제403호인 화서문 앞에서 [16:07]


▲ 서북공심돈과 화서문미 보이는 풍경 [16:09]


▲ 성벽 쌓는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16:10]


▲ 휴일이라 성벽길을 걷는 사람들이 꽤 많다 [16:13]


▲ 서장대로 올라가는 길 [16:20]


16:22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에 도착했다. 서장대(西將臺)는 화성의 군사지휘본부로서 '화성장대(華城將臺)'라고도 불린다. 팔달산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1794년(정조 18년) 8월 11일 공사에 착수, 9월 16일에 상량하고, 9월 29일에 완공됐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는 편액은 정조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원 화성에 있는 동장대나 서장대 같은 누각에는 탐방객들이 마루에 앉아 쉬는 게 허용되어 있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인간적인가. 금줄을 쳐놓고 출입을 금지시키는 것과 비교해보라.


우리 회원들도 서장대 마루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방울토마토, 배, 참외 등으로 간식을 먹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 아주 좋다. 휴식 끝 출발,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길이다. 도로에 내려섰다. 여기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팔달문을 거쳐 성벽을 따라 창룡문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화성행궁을 둘러본 후 창룡문으로 갈 것인지를. 우리 회원들은 화성행궁을 택했다. 화성행궁으로 가는 길 양쪽에는 여러 공방과 먹거리를 파는 아담한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 [16:22]


▲ 서장대 마루에 앉아 간식을 먹고 [16:24]


▲ 방울토마토, 배, 참외 등등 [16:25]


▲ 팔달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수원 시내 [16:43]


▲ 세계 유명 지역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조형물 [16:44]


▲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노대와 서장대 [16:45]


▲ 세계문화유산 화성 표지석 앞에서 회원 일동 [16:49]


▲ 성벽길을 따라 이동 [16:51]


▲ 회원들 뒤로 서남암문이 보인다 [16:53]


17:14   화성행궁에 들르기 위해 표를 끊었다. 정조가 머물던 화성행궁은 역사적인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대단한 볼거리는 아니다. 그냥 사람이 기거하던 집들이 양쪽으로 죽 늘어서 있다고 보면 된다. 화성행궁을 대충 둘러본 후 다시 장안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벽길을 따라 창룡문 쪽으로 잠시 걸어가다 삼일공고 앞을 거쳐 주차장으로 향했다. 수원 화성 탐방을 모두 마치고 주차장 출발, 아침에 왔던 길을 되짚어 달려 청주에 도착, 율량동에 있는 양고기 꼬치구이집에서 회식을 하는 것으로 백만사 6월 나들이를 마감했다.


화성행궁


화성행궁(華城行宮)은 정조가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소에는 부사(府使) 또는 유수(留守)가 집무하던 곳으로 활용되던 곳이다. 화성 행궁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행궁 중 규모면에서 가장 크며, 성곽과 함께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다. 경기도기념물 65호로 지정되어 있다가, 2007년 6월 8일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화성행궁은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 아래의 산기슭을 중심으로 경사지가 펼쳐지고, 시가지가 시작되는 곳의 평지에 위치해 있다. 구조는 앞쪽으로 긴 형태의 장방형 구조이다. 정문인 신풍루 양쪽으로 남군영과 북군영이 있으며 신풍루로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서리청과 비장형, 오른쪽으로는 집사청이 위치해있다. 서리청과 비장청, 집사청을 좌우로 지나 마당을 가로지르면 좌익문이 있고, 이를 통과하면 중앙문이 나온다. 이 중앙문을 지나면 화성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이 나타난다. 화성행궁과 따로이 떨어져 있는 화령전은 정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17:14]


▲ 화성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앞에서 [17:20]


▲ 여성회원들 고리던지기 놀이 [17:22]


▲ 다시 성벽길에 올라섰다 [17:40]


▲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 [17:52]


▲ 수원 화성 주차장에 귀환 [18:06]


▲ 어둠 속에서 화이팅을 외치는 백만사 회원들 [2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