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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전북山行記

2016.12.31. [전북山行記 66] 전북 무주 적상산

by 사천거사 2016. 12. 31.

적상산 산행기

◈ 일시: 2016년 12월 31일 토요일 / 잔뜩 흐린 날씨

◈ 장소: 적상산 1034m / 전북 무주 

◈ 코스: 서창마을 주차장 → 장도바위 → 서문 → 향로봉 → 적상산 → 안렴대 → 

           안국사 → 송대 → 치목마을

◈ 거리: 9.78km

◈ 시간: 2시간 50분

◈ 회원: 청주 토요산악회 안내 산행


 

 

 


07:25   오늘은 청주 토요산악회에서 안내하는 적상산 산행에 참가하는 날이다.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이자 가을 단풍으로 이름이 나 있는 적상산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것이 2007년 11월이니 그게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청주의료원 앞을 출발한 버스가 서청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 남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인삼랜드휴게소에 잠깐 들른 버스에서 내려 보니, 하늘은 잔뜩 흐려 있지만 날은 포근한 편이다. 무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난 버스가 이번에는 19번 국도를 따라 산행 들머리가 있는 서창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 통영대전고속도로 인삼랜드휴게소 [08:21]


09:01   산행 들머리인 서창마을 주차장에 버스가 섰다. 포장도로를 따라 서창 공원지킴터 쪽으로 올라가는 길, 청주 산내음산악회에서 온 팀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공원지킴터 건물을 지나 조금 올라가자 오른쪽으로 향로봉 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적상산은 덕유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이정표도 확실해 산행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곳이다. 맨 앞에 서서 걸음을 조금 빨리하며 돌계단을 계속 올라갔다.


▲ 서창마을 주차장에 버스 정차 [09:01]

 

▲ 서창 공원지킴터 가는 길 이정표 [09:04]

 

▲ 덕유산국립공원 서창 공원지킴터 건물 [09:07]

 

▲ 도로 오른쪽에 서 있는 이정표: 향로봉 쪽으로 진행 [09:09]

 

▲ 국립공원이라 산행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09:09]

 

▲ 계류를 건너 데크 길을 따라 진행 [09:13]

 

▲ 향로봉 2.9km 전 이정표 [09:17]

 

▲ 경사가 별로 없는 돌계단길 [09:25]

 

▲ 응달에는 눈이 쌓여 있다 [09:28]


09:30   향로봉 2.1km 전 이정표를 지났다. 잠시 후 길이 지그재그 모양으로 바뀌며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응달에는 눈이 조금 쌓여 있지만 아이젠을 착용할 정도는 아니다. 20분 정도 걸어 장도바위 앞에 도착했다. 적상산성 서문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이 바위는 고려말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혀 장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 갔다는 전설이 있다. 장도바위 옆에 있는 계단길을 올라가자 적상산성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 향로봉 2.1km 전 이벙표 [09:30]

 

▲ 지그재그 모양의 길이 시작되었다 [09:34]

 

▲ 가끔 커다란 바위가 보이기 시작 [09:43]

 

▲ 길 왼쪽 벤치가 있는 쉼터 [09:49]

 

▲ 낙석지역 위험 표지판 [09:50]

 

▲ 왼쪽에서 바위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조심할 것 [09:50]

 

▲ 바위를 지탱해 주는 작은 나뭇가지들 [09:51]

 

▲ 전설이 깃들어 있는 적상산 장도바위 [09:51]

 

▲ 적상산성 성벽이 보인다 [09:53]


09:53   적상산성 서문지에 도착했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적상산성의 길이는 8km가 넘는다고 한다. 일단 서문지에 올라서면 적상산 산행은 무척 수월해진다. 향로봉, 기봉, 안렴대 등의 높이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문지와 향로봉의 고도 차이도 별로 크지 않다. 향로봉과 안국사 갈림길인 서창고개에서 700m 떨어져 있는 향로봉을 다녀오는데 15분 정도 걸렸는데, 해발고도 1024m의 향로봉 정상은 주변에 안개가 깔려 있어 조망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적상산성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고려 말기의 산성으로 사적 제146호. 지정면적 214,975㎡, 둘레 약 8,000m. 현재 북문지·서문지 및 사고지(史庫址)가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성은 석축으로 둘레 1만6920척, 높이 7척이었으나 지금은 폐성된 상태다. 당시 성내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 있었다. 1612년(광해군 4)에 실록전(實錄殿)이, 1614년에 사각(史閣)이, 1641년(인조 19)에 선원각(璿源閣)·군기고(軍器庫)·대별관(大別館)이 1643년 호국사(護國寺) 등이 세워졌는데, 이들은 별장·참봉·승장 들이 거느리는 무리에 의하여 수호, 보존되었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불과 90여년 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성이 있는 상산(裳山)은 상성산(裳城山)이라고도 하는데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요로이기도 하였으며, 산 가운데에는 넓은 분지가 있다.

 

고려 말에 거란병이 침입하였을 때 인근 수십여 곳의 군현이 도륙되었는데도 여기에 사는 주민들만은 그 참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최영(崔塋)은 이 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하였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崔潤德)도 이곳을 살펴본 뒤 반드시 축성하여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적상산성 서문지 [09:53]

 

▲ 무주 적상산성 안내문 [09:54]

 

▲ 향로봉 1.1km 전 이정표 [09:54]

 

▲ 서창고개로 올라가는 길 [09:57]

 

▲ 서창고개에 있는 향로봉과 안국사 갈림길 이정표 [10:04]

 

▲ 향로봉 가는 길 [10:08]

 

▲ 해발 1024m 향로봉 정상 [10:13]

 

▲ 향로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10:13]


10:20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에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안국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10분 정도 걸어가자 왼쪽으로 거대한 통신탑 하나가 보인다. 적상산 기봉 정상부를 차지하고 있는 쇳덩어리다. 정상부 출입은 밧줄을 설치해 통제를 하고 있었다. 구태여 가 볼 생각도 없다. 안국사 갈림길을 지나 안렴대로 향했다. 역사적 의미가 깃들어 있는 안렴대는 훌륭한 조망처인데 오늘은 운무가 낀 날씨라 전망이 별로다. 여행에서든 산행에서든 날씨가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에 귀환 [10:20]

 

▲ 변형된 나무줄기 모습 [10:26]

 

▲ 적상산 기봉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통신탑 [10:30]

 

▲ 삼거리 갈림길 이정표: 안국사로 바로 내려갈 수도 있고 안렴대를 거쳐 내려갈 수도 있다 [10:31]

 

▲ 안렴대 가는 길 삼거리에 서 있는 산림보호용 무선중계기 시설물 [10:35]

 

▲ 안렴대로 가는 길 [10:36]


안렴대

 

적상산은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려다 보여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고려때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했다고 한다. 또한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 실록을 안렴대 바위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는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 전망대 역할을 하는 안렴대 [10:37]

 

▲ 안렴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10:37]

 

▲ 안렴대에서 돌아오다 바라본 1005봉 [10:39]


10:41   이정표가 서 있는 국가시설물 앞에 돌아와 이번에는 안국사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키 작은 조릿대 사이로 나 있는 길을 5분 정도 걸어 안국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에 내려섰다. 금산사의 말사인 안국사에는 보물 제1267호로 지정된 안국사괘불이 있다. 이것을 빌미로 문화재관람료를 거두어들이고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단풍철에만 징수를 한다. 안국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도로에서부터 징수를 하기 때문에 안국사는 들르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옥을 많이 먹는 절이 바로 안국사다.


▲ 국가시설물 앞 삼거리에 귀환 [10:41]

 

▲ 키 작은 조릿대 사이로 나 있는 계단길 [10:44]

 

▲ 안국사 오른쪽으로 뻗어 있는 적상산성 [10:48]


안국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적상지(赤裳誌)》에 따르면 1277년(고려 충렬왕 3) 월인(月印)이 세웠다고 하나 조선 태조(재위:1392∼1398) 때 자초(自超)가 적산산성(사적 146호)을 쌓으며 지었다고도 전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 때 승병들의 거처로 쓰이기도 했다.

1613년(광해군 5) 증축하고 이듬해 사고(史庫)를 두어 사각(史閣)과 선원각(璿源閣)에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을 보관하고 덕웅(德雄)을 승장으로 하여 승병 92명을 두고 지키게 하였다. 이 때 사찰 이름을 안국사라고 바꿨으며, 1910년에 사고의 책을 규장각으로 옮기자 이철허(李徹虛)가 사고 건물을 경내로 이전하였다. 1968년 유정환(柳正煥)이 이 건물에 천불을 모시고 천불보전이라고 이름을 바꿨고, 1990년 초에 댐 건설로 절 지역이 수몰지구에 포함되자 1991년부터 이전을 시작하여 1993년에 절을 완전히 옮겼다.

건물로는 극락전과 천불보전·청하루·지장전·삼성각·범종각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된 전각으로, 내부에는 본래 1772년(영조 48) 제작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최근 도난당하였으며 현재의 탱화는 최근에 만든 것들이다. 삼성각 안에는 1899년에 만든 칠성탱화가 있는데, 화기에 따르면 본래 김천 봉곡사(鳳谷寺) 극락암에 있었다.

그밖에 유물로는 범종과 괘불·괘불대·부도가 전한다. 범종은 1788년(정조 12)에 제작된 것으로 요사 옆에 걸려 있고, 1997년 8월 보물 제1267호로 지정된 안국사괘불은 1728년(영조 4)에 의겸(義謙)·의윤(義允) 등 비구니 5명이 그린 것이다. 가로 1,075cm, 세로 750cm이며 가뭄 때 이 괘불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찰 입구에 있는 4기의 부도는 모두 석종형 부도로 조선 후기 유물이다.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인 안국사 극락전 [10:49]

 

▲ 안국사 일주문 [10:52]

 

▲ 일주문 옆에 서 있는 이정표 [10:52]

 

▲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 [10:53]

 

▲ 도로 왼쪽 주차장 [10:59]


11:01   도로 오른쪽으로 치목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치목마을까지 거리는 2.7km. 오른쪽에 있는 안국사 부도군에 눈길을 한번 주고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이 좁고 경사가 꽤 있어 신경을 쓰며 발걸음을 옮겼다. 가시 철조망으로 둘레를 막아놓은 무덤이 하나 보인다. 산행객들로부터 부모의 무덤을 지키겠다는 의도인 모양인데 마음이 짠하면서도 착잡하다. 나는 이미 아들에게 말했다. 죽으면 태워서 산에 뿌려라. 절대 봉분이 있는 무덤을 만들거나 납골당에 갖다놓으려고 하지 마라.


▲ 치목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1:01]

 

▲ 안국사 부도군: 석종형 부도로 조선 후기 유물 [11:02]

 

▲ 눈이 쌓여 있는 내리막길 [11:04]

 

▲ 산허리를 따라 나 있는 길 [11:07]

 

▲ 산사면을 따라 나 있는 길 [11:15]

 

▲ 가시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무덤 [11:16]

 

▲ 송대로 내려가는 계단 [11:19]

 

▲ 길 오른쪽 송대 안내문 [11:22]

 

▲ 송대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 [11:22]


11:27   산허리를 따라 나 있는 길을 계속 걸어간다. 20분 정도 걸어 산불이 난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는 곳에 이르렀다. 검게 그을은 나무껍질들이 흉물스럽기 그지 없다. 산불, 정말 조심해야 한다. 치목마을 경로당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우리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기사분에게 전화를 했더니 서창마을 주차장에서 잠을 자다가 조금 전에 출발해서 지금 이리로 오고 있단다. 뭐여? 내가 너무 빨리 내려왔나? 시계를 보니 11시 50분이다. 그것 참!

 

치목마을 입구에 있는 공터에서 버스를 만났다. 버스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김밥을 점심으로 먹은 후 후미 회원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회원들이 대충 내려오자 버스 옆에서 뒤풀이, 버섯찌개에 밥을 말아 먹고 난 후 2시 25분에 버스가 출발했다. 무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 북쪽을 향해 달리다 인삼랜드휴게소에 한번 들른 후 청주에 도착한 시각이 5시, 이렇게 해서 2016년 마지막 날 참가한 무주의 적상산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 산허리를 따라 나 있는 길: 치목마을 1.4km 전 이정표 [11:27]

 

▲ 여기는 눈이 많이 쌓여 있네 [11:30]

 

▲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내리막길 [11:36]

 

▲ 치목마을 500m 전 이정표 [11:40]

 

▲ 산불이 난 흔적이 역력하다 [11:45]

 

▲ 산길을 마감하고 마을길에 내려섰다 [11:47]

 

▲ 주차장 바로 위에 있는 치목마을 경로당 [11:51]

 

▲ 치목마을에서는 손으로 직접 삼베를 많이 생산한다 [12:41]

 

▲ 버스 옆에서 뒤풀이 [13:56]

 

▲ 통영대전고속도로 인삼랜드휴게소 [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