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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네팔·인도

2016.12.11. [네팔/인도 여행 6] 카주라호→아그라

by 사천거사 2016. 12. 11.

네팔-인도 여행기 6

 

일시: 2016년 12 11일 일요일 화창하게 맑은 날씨

장소: 인도

 코스: 카주라호 클락 카주라호 호텔 → 카주라호 기념물군(서부/동부) → 잔시역 → 아그라 가는 특급열차

 회원: 백만사회원 10명 포함 12명





05:00   오늘은 오전에 카주라호의 사원군을 둘러보고 오후에는 잔시로 이동해 열차를 타고 아그라로 가는 날이다. 다른 날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이라 그런지 여행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6시 30분 기상, 7시 30분 아침 식사, 8시 30분 출발이라는 조금 느긋한 아침 일정이 잡혀 있었다.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했다. 오랜만에 누려보는 여유있는 호사였다. 8시 30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카주라호 기념물을 보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 호텔 룸에서 내다본 정원 풍경 [06:59]


▲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 [07:31]


▲ 아침 식사 메뉴 [07:32]


▲ 호텔 정원 산책 [07:52]


▲ 호텔 정원 산책 [07:52]


▲ 호텔 정원 산책 [07:53]


▲ 호텔 정원 산책 [07:55]


▲ 호텔 정원 산책 [07:56]


▲ 호텔 정원 산책 [07:59]


▲ 호텔 정원 산책 [08:00]


▲ 지난 밤을 묵은 클락스 카주라호 호텔 [08:01]


08:57   카주라호 기념물군 주차장에 도착했다. 카주라호 기념물은 서부사원군, 동부사원군, 남부사원군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힌두교 사원들은 서부사원군에, 자이나교 사원들은 동부사원군에 속해 있다. 먼저 방문할 곳은 서부사원군, 그 유명한 남녀의 에로틱 조각들이 사원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곳이다. 서부사원군 지역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 서 있는 사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부사원군 지역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비슈와나트 사원이었다.


▲ 카주라호 기념물 서부사원군 지도


카주라호 기념물군


카주라호 기념물군은 섬세한 건축 양식과 생명력 넘치는 성적인 조각품들로 구성된 독특한 예술 유적이다. 사원에는 다채로운 신화 이야기가 조각되어 있다. 이는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종교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해괴망측한 표현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카주라호는 10세기 초에 이 지역을 통치한 라지푸트(Rajput) 일족의 힌두 왕조인 찬델라의 원래 수도였다. 카주라호 사원들은 950년~1050년까지 10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찬델라 왕조는 카주라호 일대에 사원을 85개 축조하였지만, 지금은 약 6㎢의 지역에 22개만 남아 있다. 1335년 이곳을 방문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Ibn Battuta)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곳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난다.”

카주라호 사원의 기념비들은 지리적인 특성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뉘는데, 이들은 모두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유적에 속한다. 모든 사원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다양한 부조들이 장하(jangha, 벽)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높은 기단 위로 솟은 본당은 기단과 수직을 이루어 사원의 높이를 한층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내부는 대부분 같은 구조이며, 입구에서 작은 홀을 통해 가장 안쪽에 자리한 본당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본당의 지붕은 처마 끝을 여러 층으로 높이 쌓아 올린 시카라(Sikharas, 산봉우리) 형태이다. 신성한 성역은 가장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탑들은 나제라(Nagera) 양식으로 만든 사원의 특징으로, ‘우주의 산’이라는 카일라샤 산을 상징한다. 사원 입구는 전형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현관을 들어서면 커다란 다주식 홀(mandapa)이 나오고, 어두컴컴한 성소를 거쳐 마지막으로 별관에 이른다. 바라하, 락슈마나, 마탕제슈와라, 칸다리야 마하데바, 치트라굽타, 초프라 탄크, 파르바티, 비슈와나타, 난디 같은 가장 중요한 기념물 그룹은 서쪽 구역에 밀집되어 있고, 근처에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그 밖에 동쪽과 남쪽 그룹에서 주목할 사원으로 간타이, 파르슈바나트, 아디나트, 샨티나트, 둘라데브, 차투르부자가 있다.

954년에 야소바르만(Yasovarman) 왕이 세운 락슈마나 사원은 비슈누(Vishnu) 신을 모시는 곳이다. 이곳에는 찬델라 왕조의 권력과 위엄을 재현한 듯한 정밀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비슈바나타와 파르슈바나타, 바이드야나타 사원은 야소바르만의 계승자인 당가(Dhanga) 왕 시대에 건립되었다. 자가담비 사원과 치트라굽타 사원은 카주라호의 서쪽 사원 그룹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은 카주라호의 서부 사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웅장하며, 예술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 완벽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간다 왕(Ganda, 1017〜1029) 시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탄트리즘(Tantric school)에 영향을 많이 받은 찬델라 왕조는 사원을 포함한 여러 기념물을 통해 다양한 탄트라 교리를 전파하였다. 카주라호의 조각가들은 삶의 모든 면을 사원에 묘사하였다. 당시 사회는 성을 포함해 삶의 모든 부분을 솔직하게 개방적으로 다루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탄트라는 세상의 모든 것이 남성의 원리와 여성의 원리로 나뉜다는 이원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남성 원리는 방편과 대비를, 여성 원리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힌두와 탄트라 철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인 없이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으며 이는 우주의 모든 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협력과 공존 없이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 고대 시대에 정해진 건축 원칙에 따라, 성적인 묘사는 오직 제단의 특정 부분에만 표현되어 있다. 사원의 나머지 부분은 삶과 정신세계, 속세의 다른 면을 표현한 묘사로 온통 뒤덮여 있다.


▲ 주차장 옆에 있는 쉬비사가 호수 [08:53]


▲ 카주라호 기념물 서부사원군으로 가는 길 [08:57]


▲ 서부사원군에 있는 사원들이 보이기 시작 [09:02]


▲ 넓은 잔디밭 뒤로 보이는 사원들 [09:03]


▲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카주라호 기념물군 [09:03]


▲ 빠르바티 사원: 서부사원군에서 가장 작은 사원, 비슈누신을 모시며 강가 여신이 검은 악어를 타고 있는 조각상이 있음 [09:05]


▲ 비슈와나트 사원을 뒤에 두고 [09:11]


▲ 비슈와나트 사원을 배경으로 [09:12]


▲ 시바신을 모시는 비슈와나트 사원 [09:14]


09:15   서부사원군에서 맨 처음 둘러본 곳은 바슈와나트 사원이었다. 비슈와나트는 시바신의 다른 이름이다. 벽면에는 아름답고 섬세한 미투나가 조각되어 있는데 '미투나'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말한다. 사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벽면을 가득 메운 조각상들이 매우 정교하다. 미투나도 종종 눈에 들어온다. 성스러운 사원의 벽면에 신화의 내용과 성애의 장면이 함께 조각되어 있다는 것을 무슨 말로 설명해야 할까? 물론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 행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난디 사당: 시바신이 타고 다녔다는 소의 조각상 난디가 있다 [09:15]


▲ 비슈와나트 사원 입구: 내부로 들어가려면 신을 벗어야 한다 [09:15]


▲ 카주라호 비슈와나트 사원 [09:16]


▲ 카주라호 비슈와나트 사원 [09:19]


▲ 비슈와나트 사원 에로틱 조각상 [09:20]


▲ 비슈와나트 사원을 둘러보고 있는 회원들 [09:21]


▲ 카주라호 비슈와나트 사원 [09:22]


▲ 비슈와나트 사원 앞에서 [09:23]


▲ 카주라호 비슈와나트 사원에서 [09:23]


09:26   비슈와나트 사원에서는 빠르바티 사원이 잘 보인다. 빠르바티 사원은 늘 문이 잠겨 있다고 한다. 신을 벗고 비슈와나트 사원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카주라호 있는 사원 내부에 들어가려면 어느 곳이든 반드시 신을 벗어야 한다. 내부에 들어가 보니, 시바신을 모시는 사원답게 가장 안쪽에 남근을 상징하는 '링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사원 내부는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데 사원 내부에도 각종 조각상이 벽면에 가득 했다.


▲ 비슈와나트 사원에서 바라본 빠르바티 사원 [09:26]


▲ 비슈와나트 사원에서 찬단 씨의 설명을 듣고 있는 회원들 [09:28]


▲ 카주라호 비슈와나트 사원 [09:28]


▲ 비슈와나트 사원 내부 천장 무늬 조각 [09:29]


▲ 남근을 상징하는 '링가'가 모셔져 있는 비슈와나트 사원 [09:31]


▲ 비슈와나트 사원 내부 [09:33]


▲ 비슈와나트 사원 내부 조각상들 [09:34]


09:40   서부사원군에서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치트라굽타 사원이었다. 치트라굽타 사원은 태양신 수리아를 모시는 사원으로 비슈와나트 사원과 비슷한 조각상이 벽면에 새겨져 있었다. 아내에게 사원을 관리하는 직원인 듯한 남자가 다가가더니 사원에 관해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사원을 한 바퀴 돌고나자 돈을 요구한다. 인도는 이런 나라다. 돈을 받기 위해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나라다. 호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나면 휴지 두세 장을 건네주며 팁 요구, 명소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팁 요구, 사원 내부에서 기도를 올리게 한 후 팁 요구, 벗어놓은 신발을 관리했다고 팁 요구, 이 모두가 가난이 만들어낸 슬픈 현상들이다.


▲ 치트라굽타 사원으로 가는 길 [09:40]


▲ 태양신 수리아를 모시는 치트라굽타 사원 [09:41]


▲ 치트라굽타 사원에서 아내에게 설명을 해주는 남자가 따라붙고 [09:42]


▲ 치트라굽타 사원 벽면에도 조각상들이 가득하다 [09:42]


▲ 치트라굽타 사원에서 아내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남자 [09:43]


▲ 카주라호 치트라굽타 사원 [09:43]


▲ 카주라호 치트라굽타 사원 [09:43]


09:48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 마하데바 사원, 데비 자가담비 사원이 나란히 서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데비 자가담비 사원은 11세기에 지어졌으며 내부에 시바와 시바 부인의 조각상이 있다고 한다.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 외부에는 646개, 내부에는 226개의 조각상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인물들과 사랑을 나누는 남녀들의 조각상이 대부분이다. 칸다리아 마하데바 사원은 높이가 31m인데 지붕의 모습은 예술적 극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 왼쪽부터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 마하데바 사원, 마하 자가담비 사원 [09:48]


▲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 마하데바 사원을 뒤로 하고 [09:49]


▲ 마하 자가담비 사원 입구에서 [09:50]


▲ 마하 자가담비 사원 조각상들 [09:51]


▲ 마하 자가담비 사원 조각상들 [09:52]


▲ 카주라호 마하 자가담비 사원 [09:52]


▲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 조각상들 [09:53]


▲ 카주라호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 [09:56]


▲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찬단 씨 [09:59]


▲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에서 바라본, 마하데바 사원과 마하 자가담비 사원 [10:01]


▲ 사원 옆에 있는 잔디밭 앞에서 [10:04]


▲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 마하데바 사원, 마하 자가담비 사원을 떠나면서 [10:05]


10:25   락쉬미나 사원 서쪽 기단 벽을 지나가는데 벽면에 조각해놓은 에로틱 조각상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늘날에 흔히 이용하는 체위는 물론 동물과 관계를 맺는 조각상도 보인다. 그것 참! 인도에는 철학자 바차야나가 쓴 것으로 알려진 '카마수트라'라는 책이 있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되었고 400년 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책이다. 인도에서 성애는 예로부터 실리(artha)·도덕(dharma)과 함께 속세의 3대 목표였는데 이 책은 당시까지의 성애에 관한 학설을 모은 것이다. 성애의 기술을 가르치는 책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고대 인도 사회의 생활을 아는 데도 중요한 문헌이다. 카주라호에 있는 에로틱 조각상들은 '카마수트라'를 모델로 했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


▲ 락쉬미나 사원 서쪽 기단 [10:25]


▲ 락쉬미나 사원 서쪽 기단 벽면에 있는 에로틱 조각상들 [10:27]


▲ 락쉬미나 사원 서쪽 기단 벽면에 있는 에로틱 조각상들 [10:27]


▲ 락쉬미나 사원 서쪽 기단 벽면에 있는 에로틱 조각상들 [10:28]


▲ 락쉬미나 사원 서쪽 기단 벽면에 있는 에로틱 조각상들 [10:28]


10:29   락쉬마나 사원 경내에 올라섰다. 락쉬마나 사원은 비슈와나트 사원,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과 함께 서부사원군의 3대 사원에 속해 있다. 힌두교 사원은 시바신 사원과 비슈누신 사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바신 사원 실내에는 시바의 상징인 발기된 남근 '링가'가 있고 비슈누신 사원 실내에는 비슈뉴신의 화신인 반인반사자상, 멧돼지상, 거북이상, 물고기상 등이 있다. 락쉬마나 사원은 비슈누 신에게 봉헌된 사원이다. 락쉬마나 사원 옆에는 다탕게스와라 사원이 있는데 힌두교인들이 지금도 직접 예배를 드리는 사원이다. 


▲ 비슈투 신을 모시는 락쉬마나 사원 [10:29]


▲ 락쉬마나 사원을 둘러보고 있는 사람들 [10:30]


▲ 카주라호 락쉬마나 사원 [10:31]


▲ 카주라호 락쉬마나 사원 앞에서 [10:32]


▲ 카주라호 락쉬마나 사원 [10:33]


▲ 락쉬마나 사원에 관해 설명을 하고 있는 찬단 씨 [10:33]


▲ 카주라호 락쉬마나 사원 [10:33]


▲ 다탕게스와라 사원: 힌두교 사원으로 지금도 예배 가능 [10:35]


▲ 다탕게스와라 사원과 락쉬마라 사원 [10:47]


▲ 카주라호 기념물 서부사원군을 떠나면서 [10:48]


11:02   카주라호 기념물 동부사원군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서부사원군이 힌두교 사원이라면 동부사원군은 자이나교 사원들이다. 브라만교에서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자이나교는 철저한 고행과 금욕주의를 주창하는데 지금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동부사원군에서 처음 찾아간 곳은 빠르시바나트 사원인데 동부사원군에는, 서부사원군과는 달리, 에로틱 조각상은 없고 대신 요정 압살라의 조각상들이 많이 새겨져 있다. 

 

자이나교


불교의 개조 고타마 싯다르타와 거의 동시대의 마하비라(기원전 6~5세기)를 조사(祖師)로 받들며, 특히 아힘사(살아있는 것을 상처내지 않는 것. '불살생')의 서계를 준수하는 등 그 철저한 고행 · 금욕주의로서 알려진 인도의 종교이다. 불교와 달리 인도 이외의 지역에는 거의 전해지지 않았는데, 국내에 깊이 뿌리를 내려서 2500년의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인도 문화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오늘날에도 신도 수는 얼마되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경에 바르다마나(Vardhamāna)가 당시의 정통 베다 제의식과 의례에 반대해 창설한 인도의 종교이자 철학이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비정통 브라만교에서 발생한 출가주의(出家主義, Shramanism) 종교로 최고의 완성자를 ‘지나’라 부르고, 지나의 가르침이라 하여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라는 호칭이 생겼다.


자이나교의 경전은 아가마(Agama, 가르침) 혹은 싯단타(Siddhanta)라고 불리며, 자이나교도들은 이를 제자에게 베푼 마하비라(Mahavira)의 직접적인 교시라고 믿고 있다. 자이나의 아힘사(Ahimsā, 불살생)와 고행에 대한 강조는 힌두교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운동도 이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철저한 불살생 교리 때문에 자이나교도에게는 생명을 살해하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직업, 즉 군인, 도살업, 피혁공, 심지어는 농업까지도 금지되어 이들은 상업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은 정직성과 도덕성에 대한 신용으로 뛰어난 상인이 되었는데, 역설적으로 고행과 자발적 가난을 중시한 자이나교도들은 생명에 대한 존중 교리로 지금은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이 되었다.


자이나교는 세 가지 보물을 통해서야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자이나교에 대한 신앙, 그 교리에 대한 지식, 완전한 덕행이 그것이다. 올바른 신앙이란 진실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며, 올바른 지식은 진실한 본성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오류도 없는 지식이다. 그리고 완전한 덕행은 외부의 대상에 대해 욕망도 반감도 없는 중립적 자세이다. 이 세가지 원칙을 자발적으로 따른다면 새로운 카르마(Karma)가 생기는 것을 막고 영혼이 물질로부터 해방되어 열반에 드는 길이 열린다고 한다. 그래서 자이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창시자와 그의 인적 사항, 문화적 배경이 불교와 너무나 비슷하고 활동시기도 같았던 자이나교는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고 도전했던 창시자 바르다마나의 의도와는 달리, 힌두교와 알력 없이 인도에 남아 소수종교로 존재하고 있다. 일찍이 인도 철학과 충돌하며 인도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불교는 오히려 세계 종교가 되었다.


▲ 카주라호 기념물 동부사원군 지도


▲ 카주라호 기념물 동부사원군 입구에 도착 [11:02]


▲ 카주라호 빠르시바나트 사원 [11:05]


▲ 카주라호 빠르시바나트 사원 [11:05]


▲ 빠르시바나트 사원 조각상들 [11:08]


▲ 24명의 티르탄카라(해탈한 성자) 중 한 명인 빠르스바나트 [11:10]


▲ 카주라호 빠르시바나트 사원 [11:11]


▲ 카주라호 빠르시바나트 사원 앞에서 [11:12]


11:15   빠르시바나트 사원 옆에 있는 아디나트 사원에 들렀다. 이곳은 1대 티르탄카라인 아디나트에게 봉헌된 사원인데 실내에는 아디나트 조각상이 모셔져 있었다. 동부사원군 중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산티나트 사원인데 사원 안에는 수많은 사두들의 행적을 담은 문서와 그림, 그리고 사진들이 있었다. 또한 불상을 닮은 티르탄카라, 그리고 지나의 조각상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궁금한 것은, 철저한 고행, 금욕주의를 표방하는 자이나교 승려들은 왜 옷을 홀랑 벗고 있는지 모르겠다. 성을 초월했다는 뜻인가? 


▲ 빠르시바나트 사원 옆에 있는 아디나트 사원: 1대 티르탄카라인 아디나트에게 봉헌된 사원 [11:15]


▲ 1대 티르탄카라인 아디나트 조각상 [11:16]


▲ 아디나트 사원 게이트에서 [11:17]


▲ 빠르시바나트 사원 조각상들 [11:19]


▲ 빠르시바나트 사원 옆에 있는 우물 [11:20]


▲ 카주라호 동부사원군 산티나트 사원 [11:23]


▲ 24번 째 티르탄카라 자이나교의 교주 마하비라 조각상 [11:25]


▲ 24명의 티르탄카라 중 16번 째인 높이 4.5m 산티나트 입상 [11:26]


▲ 동부사원군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회원들 [11:50]


12:06   지난 밤을 묵었던 호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 호텔은 룸 시설도 나무랄 데가 없지만 음식맛도 괜찮은 편이었다. 이제 카주라호를 떠나 아그라로 갈 열차를 타러 잔시로 가야 한다. 찬단 씨가 겨울철에는 안개 때문에 열차가 자주 연착을 하기 때문에 제 시간에 열차를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한다. 아니, 비행기나 배도 아니고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가 안개 때문에 연착을 한다니, 말이 되나?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섰다. 잠시 쉬어 간단다. 웬일로 여유를 다 부리네. 2시 48분, 휴식 후 다시 버스가 출발했다. 


▲ 클락스 호텔 식당에서 점심 식사 [12:06]


▲ 차창 밖 도로 주변 풍경 [13:29]


▲ 차창 밖 도로 주변 풍경 [13:31]


▲ 차창 밖 도로 주변 풍경 [13:36]


▲ 차창 밖 도로 주변 풍경 [13:36]


▲ 차창 밖 도로 주변 풍경 [14:05]


▲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정차 [14:23]


▲ 화장실이 있는 건물 [14:26]


14:51   버스가 도로 왼쪽에 있는 주차장 같은 곳으로 가더니 멈춰 선 후 영 움직일 줄을 모른다. 뭐지? 도로 옆에 있는 사무실로 조수가 가고 한참이 지난 후 운전기사가 가고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한 시간 정도 지나서야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알고 보니, 인도에서는 주 경계를 벗어날 때 신고를 하고 통행료를 내야 하는데 기사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참, 답답한 나라다.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해외여행객 버스를 한 시간이나 붙잡고 있다니.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가 났을 거다.


한참을 졸다 깨어 창밖을 내다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계속 맑은 날이었는데 웬 안개야?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것은 안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시멘트 공장에서 나오는 분진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공장 주변의 나무와 바닥이 온통 분진으로 덮여 있는데 그 범위가 보통 넓은 게 아니었다. 아무리 인도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한 것 같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항의를 안 하나?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나라가 인도다. 버스가 잔시 시내에 들어서자 찬단 씨가 우려했던 대로 열차가 연착되었다고 소리친다.


▲ 주 경계를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 [14:51]


▲ 창밖 상점이 있는 거리 풍경 [15:56]


▲ 창밖 상점이 있는 거리 풍경 [15:56]


▲ 창밖 상점이 있는 거리 풍경 [15:56]


▲ 창밖 상점이 있는 거리 풍경 [15:58]


▲ 시멘트 공장 분진을 뒤짚어 쓴 나무 [17:00]


▲ 공장 주변은 바닥은 온통 분진으로 덮여 있고 안개가 끼어 있는 듯 희뿌옇다 [17:00]


▲ 잔시 시내로 들어왔다 [17:16]


▲ 잔시 시내에 장이 선 모양이다 [17:18]


▲ 아그라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할 잔시역 [17:25]


17:56   열차가 연착된 관계로 먼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잔시역에서 조금 떨어진 식당으로 들어가니 한 무리의 한국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들처럼 열차를 타지 못해 저녁을 먹으러 온 모양이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밍기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8시에 잔시역으로 간 후 대합실에서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대합실이나 플레트폼 바닥에서 담요를 깔고덮은 채 잠을 자는 사람들, 열차 선로 위를 돌아다니는 소와 개들, 구걸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 잔시역의 풍경은 인도의 진목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 저녁을 먹은 잔시역 근처 호텔 식당 [17:56]


▲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 [18:07]


▲ 저녁 식사 후 잔시역으로 가기 위해 버스 승차 [19:42]


▲ 아그라 가는 열차에 탑승할 잔시역에 도착 [19:59]


▲ 잔시역 대합실로 [20:00]


▲ 여성 전용 대합실이 마련되어 있다 [20:00]


▲ 1번 플레트폼에 있는 의자에서 대기 [20:23]


▲ 열차 선로 위를 돌아다니는 소: 어두워서 잘 안 보이네 [20:45]


▲ 플레트폼 주변을 유유히 돌아다니는 개들 [20:50]


21:45   10시 40분에 열차가 출발할 예정이라 대기를 마치고 플레트폼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열차가 들어오는 4번 플레트폼으로 가려면 육교를 건너가야 하는데 짐꾼 3명이 우리의 가방을 수레에 싣고 옮겨주었다. 플레트폼은 여행객들로 만원이었다. 어허, 그런데 이 북새통에 잠을 자는 사람들은 도대체 뭔가? 잠이 오나? 그렇구나, 여기는 신비의 나라 인도가 아닌가. 열차 한 대가 들어왔다. 사람들이 벌떼같이 열차 출입문 쪽으로 몰려간다. 왜?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기차에 타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란다. 전쟁이 따로 없다.


우리가 아그라까지 타고 갈 열차가 플레트폼에 들어왔다. 6시 40분에 출발해야 할 열차는 4시간의 연착 끝에 10시 40분 잔시역을 출발했다. 중국에서 비행기나 열차 연착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인도도 이에 뒤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안개 때문에 열차가 연착한다는 게 말이 되나?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4시간 연착은 연착 축에 끼지도 못한다. 10시간, 15시간, 심지어 23시간까지 연착이 되고 캔슬되는 경우도 종종 있단다. 인도인들이 담요를 가지고 다니며 대합실에서, 플레트폼에서 잠을 자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 플레트폼으로 이동하기 위해 대합실 출발 [21:45]


▲ 육교를 건너 4번 플레트폼으로 [21:50]


▲ 4번 플레트폼 주변 풍경 [21:56]


▲ 4번 플레트폼 주변 풍경 [21:57]


▲ 우리들의 가방이 수레에 실려 있다 [21:57]


▲ 4번 플레트폼 주변 풍경 [21:59]


▲ 4번 플레트폼 주변 풍경 [22:08]


▲ 열차를 타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22:16]


▲ 간식이 제공되었다 [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