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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동유럽·발칸

2016.10.15. [동유럽/발칸 旅行 2] 비엔나→부다페스트

by 사천거사 2016. 10. 15.

동유럽/발칸 여행기 2

 

일시: 2016년 10월 15일 토요일

장소: 오스트리아 / 슬로바키아 / 헝가리

◈ 코스: 비엔나 → 브라티슬라바 부다페스트

 회원: 백만사 회원 8명

 


03:10   오늘 아침 일정은 6시 모닝콜, 7시 아침식사, 8시 출발로 예정되어 있는데 3시 조금 넘어 잠이 깼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시각으로 치면 지금이 오전 10시이기 때문이다. 책도 보고 뒹굴뒹굴하다 7시가 가까워지자 샤워를 한 후 식당으로 향했다. 소박한 아침 음식, 대개의 유럽인들은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 우리도 차츰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만. 오늘 여정의 첫 번째 방문지는 슈테판 대성당, 비엔나의 랜드마크이자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뤄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오스트리아


정식 명칭은 오스트리아공화국(Republic of Austria)으로, 국명인 오스트리아는 10세기 중엽 동방의 이민족 침입에 대비하여 설치된 오스트마르크(Ostmark:동쪽의 변경)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지역은 중세시대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지였다. 면적은 8만 3871㎢, 인구는 866만 5550명(2015년 현재), 수도는 빈(Wien)이다. 주민의 91.1%가 오스트리아인이며,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인 등이 3%이다. 공용어는 독일어이며, 종교는 73.6%가 가톨릭교, 4.7%가 개신교를 믿는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경제부흥이 늦어졌으나 1949년부터 시작된 마샬플랜을 바탕으로 1951년 이후 연평균 6%의 경제성장을 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하였다. 문화와 교육면에서는 독일과 같은 모습을 보이며,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등 사회보장제도가 발달되어 있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3,792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7230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연방공화제의 의원내각제로, 임기 6년의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5∼6년의 상원(62석)과 임기 4년의 하원(183석)으로 구성된다. 주요 정당은 국민당, 사민당, 자유당, 녹색당 등이다.


▲ 호텔 밖 아침 풍경 [06:51]


▲ 소박한 아리온호텔 아침 식사 [07:09]


▲ 슈테판 대성당 가는 길: 비엔나에는 전차가 다니고 있다 [08:44]


▲ 아들과 며느리가 좋아하는 하드락 카페 [08:46]


▲ 슈테판 대성당으로 가는 길 [08:48]


▲ 비엔나 슈테판 대성당 [08:50]


▲ 슈테판 대성당 앞에서 [08:55]


08:58   슈테판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유럽 여행은 성당 순례'라는 말이 있듯이 유럽의 대도시에는 빠짐없이 성당이 있다. 슈테판 성당은 사람을 압도하는 외관 못지 않게 내부도 웅장하고 화려했다. 내부 이곳저곳을 둘러본 후 성당 한쪽에 초를 봉헌하는 곳이 있어 우리 가족 수대로 초를 꽂고 가족 모두를 위한 안녕의 기도를 올렸다. 슈테판 대성당을 떠나 케른트너 거리에 들어섰다. 차량이 다니지 않는 비엔나의 최고 번화가다.


슈테판 대성당


빈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슈테판 대성당은 오스트리아 최고의 고딕식 성당이다.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처음 지어졌으며, 14세기 중반에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18세기에 들어와 성당의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독특한 혼합 양식의 건물이 되었다. 화려한 모자이크가 인상적인 지붕은 기와 23만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137m 높이의 남탑과 67m 높이의 북탑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장소로도 유명하고, 내부엔 16세기의 조각가 안톤 필그람이 만든 설교단이 있으며, 지하에는 대주교의 묘지와 역대 합스부르크 왕가의 내장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보관되어 있다. 페스트로 사망한 2천여 명의 유골을 모아 놓은 카타콤베는 가이드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다.


▲ 슈테판 대성당 실내 [08:58]


▲ 슈테판 대성당 실내에서 [08:58]


▲ 슈테판 대성당에서 초를 봉헌 [09:01]


▲ 슈테판 대성당 실내 [09:03]


▲ 슈테판 대성당을 떠나기 전에 [09:06]


▲ 차가 다니지 않는 케른트너 거리 [09:09]


▲ 비엔나 최고 번화가인 케른트너 거리 [09:12]


09:14   발음하는데 조금 신경을 써야 할 스와로브스키 판매점에 들렀다. 크리스털 제품을 판매하는 곳인데 제품 종류가 10만 개 이상이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다시 케른트너 거리를 걷다 비엔나 커피를 맛보기 위해 노천 카페에 들렀다. 가이드 분이 추천해준 멜란지 커피를 주문했다. 잠시 후 나온 멜란지 커피는 우리나라에서 먹는 카페라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휘핑 크림을 얹어준다는 아인슈패너 커피를 시킬 걸 그랬나? 상관없다. 카페라테든 뭐든 비엔나에서 먹었으니 비엔나 커피임에는 틀림없다.


스와로브스키


1895년 오스트리아의 스와로브스키(D. Swarovski, 1862∼1956)가 티롤주의 와튼즈에 세운 크리스털 제조 및 판매회사이다. 작은 장식품부터 패션제품에 이르기까지 10만 개 이상의 제품을 생산하여 세계 크리스털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창의성과 다양성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대를 앞서는 뛰어난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연마기계를 개발하였고,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땐 크리스털 조각들을 감쪽같이 붙일 수 있는 투명한 접착제를 발명하여 크리스털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7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제12회 동계올림픽때 크리스털 마우스를 기념품으로 제작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새로운 도약을 하였다. 이 기념품은 식기와 고급 장식품에만 사용되던 크리스털을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에도 다양한 동물 기념품을 제작하였고, 실버크리스털 라인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주제품 라인은 크게 실버크리스털, 크리스털 메모리, 셀렉션, 그리고 보석·시계 등을 포함한 패션으로 구분된다. 이 라인에서 생산된 130여 개의 제품이 세계 각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국지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 지사 스와로브스키코리아가 위치 하고 있다.


▲ 스와로브스키 판매점 앞에서 [09:14]


▲ 스와로브스키 판매점 안에서 [09:20]


▲ 스와로브스키 판매점 내부 조형물 [09:22]


▲ 다시 걷고 있는 케른트너 거리 [09:37]


비엔나 커피


아메리카노 위에 하얀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를 말한다.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유래하여 3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차가운 생크림의 부드러움과 뜨거운 커피의 쌉싸래함,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진해지는 단맛이 한데 어우러져 한 잔의 커피에서 세 가지 이상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여러 맛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크림을 스푼으로 젓지 않고 마신다. 비엔나에는 정작 비엔나 커피가 없다는 말이 있다. 비엔나 커피의 본래 이름이 아인슈패너 커피(Einspanner Coffee)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마차에서 내리기 힘들었던 옛 마부들이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한 손으로는 설탕과 생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를 마신 것이 오늘날 비엔나 커피의 시초가 되었다고 전한다.


▲ 비엔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른  CAFE DE L'EUROPE [09:39]


▲ 비엔나 커피 멜란지를 기다리는 중 [09:42]


▲ 비엔나 커피 멜란지 [09:45]


▲ 하트 모양이 예쁘네 [09:45]


▲ 비엔나 커피 멜란지를 마시며 여행 기분을 만끽하고 [09:48]


10:10   비엔나 커피도 마셨겠다 무엇을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길 옆에 작은 성당이 있어 들어갔다. 아내가 의자에 앉아 잠시 기도를 드린다. 무엇을 빌었을까? 면세점에 들렀다. 비엔나는 초콜릿으로 유명하다. 아들에게 줄 마그네틱, 딸에게 줄 초콜릿을 구입한 후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양식 건물을 둘러보았다. 이제 비엔나 관광의 마지막 순서를 치루기 위해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과 쌍벽을 이룬다는 쇤브룬 궁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케른트너 거리에서 [10:10]


▲ 케른트너 거리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10:13]


▲ 케른트너 거리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10:14]


▲ 케른트너 거리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10:16]


▲ 마그네틱과 초콜릿을 구입한 면세점 [10:29]


▲ 비엔나에서 제일 오래된 고딕 양식 건물이 뒤로 보인다 [10:46]


▲ 전차가 다니는 비엔나 거리 [10:56]


▲ 쇤브룬 궁전 가는 길 옆에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일대기 포스터들 [11:20]


11:27   비엔나의 명소 중 하나인 쇤브룬 궁전에 도착했다. 실내 입장 예약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궁전 뒤에 있는 정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장미정원을 지나자 펼쳐진 대정원, 파란 잔디밭 위에 심겨진 형형색색의 꽃들이 무척 아름답다. 넵튠 분수 뒤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글로리에테는 아쉽게도 수리 중이라 볼 수가 없었다. 글로리에테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만든 건축물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독일어: Maria Theresia 1717년 5월 13일~1780년 11월 29일)는 합스부르크 군주국 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뵈멘, 만토바, 밀라노, 갈라치아와 로도메리아,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와 파르마 등의 통치자였다. 결혼을 하면서 로렌 공장 부인이 되었으며, 후에 토스카나 대공비, 신성로마황후의 지위를 얻었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1713년 국사조칙에 의해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속녀로 공표되었으며, 카를 6세는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그의 사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이 되었으며, 영토들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카를 6세 사후 프로이센과 바이에른, 프랑스, 작센에서는 그녀의 계승의 반발하였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이 발발하게 되지만, 프로이센에 슐레지엔을 내주는 대신 각 국으로부터 그녀의 승인을 인정받는다. 그녀는 후에 슐레지엔을 찾으려고, 7년 전쟁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녀는 로트링겐의 프란츠 슈테판과 혼인하였는데, 16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녀의 자녀들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제프 2세와 레오폴트 2세를 비롯하여서,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리의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 파르마의 공비 마리아 아말리아 등이 있다. 그녀가 생전에 사용했던 칭호는 Königin(여왕)과 Kaiserin(황후)의 머릿글자를 딴 ‘K.K’이다.


쇤브룬 궁전


이 훌륭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름 주거지였다. '합스부르크 옐로'로 알려진 독특한 색채의 건물은 내부에 호화로운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로코코 양식이 주를 이루며 황금으로 된 장식, 크리스털 샹들리에, 커다란 거울 등을 볼 수 있다. 쇤브룬에는 1,441개라는 엄청난 개수의 방이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그녀의 남편인 황제 프란츠 1세는 쇤브룬에서 여름을 보냈으며, 그들이 통치하던 시절 여섯 살 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궁전에 초대받아 여제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쇤브룬에서 1830년 출생했으며 여든여섯의 나이로 이곳에서 죽게 된다. 이 궁전은 프란츠 요제프의 아내이며 애칭으로 '시시'라 불리기도 했던 엘리자베트 황후와의 인연으로 유명해졌다. 그녀는 쇤브룬을 매우 사랑하여 결혼한 이후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지냈다.

합스부르크 가의 이 궁전은 17세기에는 사냥 별장이었으며, 터키가 빈을 점령했을 때 파괴되었던 자리에 세워졌다. '쇤브룬'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샘물을 의미하는데, 이곳에 왕실의 식수를 제공해 주던 천연 샘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쇤브룬 궁전은 '글로리에테'라는 이름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웅장한 신고전주의풍 아치들, 모조 로마 유적, 화려한 분수, 인상적인 종려나무 온실을 완벽하게 갖춘 눈부시게 화려한 대정원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궁전에는 또한 프란츠 황제가 1750년대에 조성한 작은 동물원의 후손인 동물원도 있다. 1918년 카를 1세 황제가 왕위에서 물러나 오스트리아는 공화국이 되었다. 그는 퇴임 연설을 쇤브룬에서 거행했고, 궁전은 공화국의 소유가 되었다. 쇤브룬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피해를 입어 1950년대에 복구되었다. 오늘날 이 궁전은 마땅히 빈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 중 하나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쇤브룬 궁전에 도착 [11:21]


▲ 궁전 마당에 있는 연못과 분수 [11:23]


▲ 1,441개의 방을 갖추고 있는 쇤브룬 궁전 [11:24]


▲ 쇤브룬 궁전 정원 [11:26]


▲ 쇤브룬 궁전 대정원: 멀리 언덕 위에 있는 글로리에테가 보인다 [11:28]


▲ 쇤브룬 궁전 정원 넵튠 분수 앞에서 [11:33]


▲ 드넓은 쇤브룬 궁전 정원에서 [11:35]


▲ 쇤브룬 궁전 정원 잔디밭에 앉아 [11:37]


11:43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따서 지었다는 쇤브룬 궁전의 정원을 둘러보고 예약시간에 맞춰 실내로 들어갔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궁전 실내는 관광객들로 무척 붐비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궁전의 중요한 방을 둘러본 후 밖으로 나와보니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궁전 근처에 있는 '쇤부룬'이라는 음식점에서 와인을 곁들여 호이리게 정식을 점심으로 먹었다. 닭다리, 소시지, 돼지고기, 감자, 샐러드 등이 나왔는데 맛도 좋고 양도 많았다.


비엔나 관광 일정을 마치고 출발, 동유럽 두 번째 방문국인 슬로바키아로 향했다. 체코와 연방국가를 이루었던 슬로바키아는 1993년 독립을 선포하고 단일국가가 되었다. 비엔나에서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길 양쪽은 대부분이 넓은 평원이었다. 풍력발전기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오스트리아와 슬로바키아는 솅겐조약에 가입한 국가이기 때문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서로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 비엔나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데에는 1시간 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 쇤브룬 궁전 대정원에서 [11:43]


▲ 쇤브룬 궁전 대정원에서 [11:44]


▲ 쇤브룬 궁전 계단에서 [11:47]


▲ 실내 입장을 향해 가는 중 [11:53]


▲ 관광객들을 위한 마차 [11:57]


▲ 쇤브룬 궁전 관람을 마치고 [12:42]


▲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12:44]


▲ 점심을 먹은 음식점 쇤브룬 [12:49]


▲ 와인 한 잔씩 [12:58]


▲ 푸짐한 호이리게 정식 [13:01]


14:47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곧바로 시내관광에 들어갔는데 맨 처음 찾은 곳은 '블루 교회'라고도 하는 엘리자베스 교회, 건물벽을 푸른 색으로 칠해놓아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교회 같다. 마침 결혼식이 있는지 신부와 신랑이 교회 밖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다음으로 들러볼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와 중앙광장은 서로 인접해 있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도 관광이 충분하단다. 구시가지는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었다.   



슬로바키아


정식 명칭은 슬로바키아공화국(The Slovak Republic)이며, 폴란드·우크라이나·독일·루마니아·오스트리아 및 체코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면적은 4만 9035㎢, 인구는 544만 5027명(2015년 현재), 수도는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이다. 종족구성은 슬로바키아인 85.8%, 헝가리인 9.7%, 체코인 1%이고, 나머지는 루테니아인,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모라비아인, 폴란드인 등이다. 언어는 헝가리어·체코어 등이 사용되고 있으나, 공용어는 슬로바키아어이며, 종교는 가톨릭교가 68.9%, 개신교 10.8%, 그리스정교4.1%이다.


기후는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로서 겨울에는 춥고 건조한 반면, 여름에는 덥고 습기가 많다. 슬로바키아는 원래 농업국가였으며, 공산당 통치시기에 산업 부문에 대한 대규모의 투자 덕분에 체코와 비슷한 정도의 산업화를 달성하였다. 주요 산업으로는 중공업, 군수산업, 철, 강철, 비철금속 등이다. 2014년 현재 국내총생산은 1023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7635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공화제의 의원내각제이며,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인 국민회의(150석)이다. 주요 정당은 지향당(Smer), 기독민주연합(SDKU), 민주운동(HZDS), 국민당(SNS), 헝가리민주운동 등이다.


브라티슬라바


빈에서 동쪽으로 56㎞ 떨어져 있으며 도나우 강을 끼고 있다. 선사시대에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켈트족과 로마인들이 요새화하여 정착했으며, 마침내 8세기에는 슬라브족들이 거주했다. 교역 중심지로 성장하여 1291년 자유왕정 도시의 자격을 얻었다. 1526~1784년에 헝가리의 수도였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브라티슬라바는 슬로바키아 주의 주도가 되었다. 도나우 강 상류 근처의 성곽은 오스트리아 왕가의 거처였으며, 1741년 오스트리아의 황후 마리아 테레사가 도피하기도 했다. 오늘날 브라티슬라바는 문화의 중심지고 주요도로와 철도의 연계지이며, 하항으로 섬유·화학·금속·전기 제품 등을 생산하는 등 산업이 다양하게 발달했다.


▲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도착 [14:47]


▲ 브라티슬라바 거리 [14:47]


▲ 엘리자베스 교회를 향하여 [14:51]


▲ 블루 교회로도 알려진 엘리자베스 교회 [14:53]


▲ 엘리자베스 교회 내부 모습 [14:54]


▲ 곧 성당에서 결혼식이 열릴 모양이다 [14:56]


▲ 브리타슬라바에도 전차가 다닌다 [15:09]


▲ 1886년 개관한 슬로바키아 국립극장 [15:09]


15:14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에 들어섰다. 1886년에 문을 연 슬로바키아 국립극장을 지나 기념품을 파는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곳에 도착, 아들에게 줄 마그네틱을 구입했다. 구시가지에는 다양한 종류의 동상들이 숨어 있는데 중앙광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맨 엣 워크 동상은 기발한 아이디어 작품이었다. '흘라브네 광장'이라고도 하는 중앙광장으로 들어갔다. 중앙광장으로는 거의 모든 골목들이 연결된다고 한다. 근처에 있는 미카엘 문을 보러 가는 길, 차량이 다니지 않는 사람만의 거리다.


▲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에서 [15:14]


▲ 구시가지 호텔 앞에 있는 분수대 [15:15]


▲ 슬로바키아 국립극장 [15:17]


▲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에서 [15:21]


▲ 구시가지에 있는 맨 엣 워크 동상: 일명 '훔쳐 보는 동상' [15:30]


▲ 흘라브네 광장 입구에 서 있는 모자를 든 동상 [15:31]


▲ 구시가지의 노천 카페 [15:36]


▲ 미카엘 문이 보이는 곳에서 [15:40]


15:42   구시가지의 성문 역할을 했던 미카엘 문 아래에 도착해보니 바닥에 거리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는 게 보였다. 세계 주요도시까지의 거리가 적혀 있는데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까지는 8,138km로 나와 있었다. 다시 중앙광장으로 돌아와 성 마틴 대성당, SNP 다리, 브라티슬라바 성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브라티슬라바 관광을 마치고 이어서 헝가리로 가는 버스 여정에 들어갔다. 브라티슬라바에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까지는 버스로 2시간 30분 거리, 두 나라 모두 솅겐조약에 가입해 있어 국경 무사 통과.

 

▲ 구시가의 성문 역활을 했던 미카엘 문 [15:42]


▲ 미케엘 문 바닥에 있는 거리 표지판: 서울까지 8138km [15:43]


▲ 미카엘 문 거리 표지판 위에서 [15:43]


▲ 구시가지에 있는 조형물 [15:46]


▲ 나폴레옹 동상: 일명 '훔쳐 듣는 동상' [15:52]

 

▲ 성 마틴 성당벽에 그림들이 [16:05]


▲ 성삼위일체 기념비: 흑사병이 사라진것을 기념 [11:05]


▲ 'UFO 다리'라고도 하는 SNP 다리를 배경으로 [16:05]


▲ 성 마틴 대성당: 구시가를 보호하는 성벽 역할을 했음 [16:07]


▲ 우리나라의 벽화 같은 그래피티 작품들 [16:07]


▲ 종교적 조형물 [16:08]


18:54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들어왔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출발해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를 거쳐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로 왔으니 하루에 3개국을 방문한 셈이다. 유럽 국가들이 워낙 다닥다닥 붙어 있다보니 이런 게 가능한 모양이다. 저녁 시간이 되어 헝가리 전통음식을 먹으러 갔는데, 차려나온 음식 중에서 다른 것은 그렇다치고 밥이 문제였다. 이건 숫제 생쌀에 가까웠다. 그것 참!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 나로서도 으드득거리며 쌀을 씹으려니 조금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다뉴브 강'이라고도 하는 도나우 강을 따라 펼쳐진 야경을 보러 유람선에 올랐다.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을 최초로 연결한 세체니 다리, 부다 지역에 있는 성당과 부다 왕궁, 겔레르트 언덕, 페스트 지역에 있는 국회의사당 등이 멋진 밤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파리 야경, 프라하 야경과 함께 유럽 3대 야경에 꼽히는 부다페스트 야경은 홍콩 야경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장관이었다. 오늘 밤을 묵을 아바쿠스 호텔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회원들과 소주와 맥주를 곁들인 파티를 가졌다. 앞으로 남은 여정 동안 멋진 추억을 많이 남길 것을 약속하면서...   



헝가리


정식 명칭은 헝가리공화국(Republic of Hungary)으로, 1989년 10월 23일 헌법 개정으로 헝가리인민공화국(Hungarian People’s Republic)에서 바뀐 명칭이다. 면적은 9만 3028㎢, 인구는 989만 7541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부다페스트(Budapest)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마쟈르족으로 96.6%이며, 독일인이 1.6%, 기타 슬로바키아인과 남슬라브인, 루마니아인이 있고, 언어는 민족고유의 마쟈르어를 사용한다. 국민의 67.5%가 가톨릭교를 믿으며, 개신교 20%, 그리스정교 2.6%이다.


기후는 다습한 대륙성기후로서 봄·가을이 짧고 여름에 비가 많이 온다. 경제는 농업 위주였으나, 제2차세계대전 후 공업화에 주력하여 공업생산이 주도하게 되었다. 특히 광업·알루미늄공업·자동차·전자기기 등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주요 자원은 석탄·천연가스·보오크사이트 등이다. 2015년 현재 국내총생산은 1,37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4450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의원내각제 성격의 공화제로서, 대의기구는 임기 4년의 국민회의(386석)가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사회당(HSPR), 청년민주연합(FIDESZ), 민주포럼(HDF) 등이 있다.

 

▲ 부다페스트에 있는 헝가리 전통음식점 [18:54]


▲ 저녁으로 먹은 헝가리 전통요리 [19:24]


▲ 저녁을 먹은 음식점 야경 [19:41]


▲ 도나우 강 유람선 야경: 다리 이름을 모르겠네 [20:11]


▲ 도나우 강 유람선 야경: 부다 지역 [20:14]


▲ 세체니 다리와 부다 왕궁 [20:17]


▲ 부다 지역에 있는 부다 왕궁 [20:18]


▲ '사슬'이란 뜻을 가진 세체니 다리 [20:30]


▲ 헝가리 국회의사당 야경 [20:35]


▲ 헝가리 국회의사당 야경 [20:37]



▲ 호텔 룸에서 소주와 맥주를 곁들인 파티가 열렸다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