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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남山行記

2016.09.12. [충남山行記 80] 충남 논산 노성산

by 사천거사 2016. 9. 12.

노성산 산행기

◈ 일시: 2016년 9월 12일 월요일 / 맑으나 구름 많음

◈ 장소: 노성산 348.9m / 충남 논산시

◈ 코스: 상월초등학교 → 노성산 → 노성산성 → 금강대도 → 애향탑 → 논산명재고택 → 궐리사 →

           옥리봉 → 상월초등학교

◈ 거리: 8.42km 

◈ 시간: 2시간 45분


 

 

 


08:40   오늘은 논산에 있는 노성산 산행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노성산은 높이가 350m가 안 되는 작은 산이지만 노성산성, 금강대도, 명재고택, 궐리사 등을 살펴볼 수 있어 그러대로 산행 이외의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청주 출발, 세종시를 거쳐 공주 쪽으로 달리다 23번 국도에 진입, 논산 방향으로 진행하다 상월면소재지로 들어가 상월초등학교 입구 하나로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요즘은 길이 사통팔달로 훤히 뚫려 있어 목적지까지 오는데 채 1시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수업이 진행 중인 상월초등학교 교정을 지나 운동장 끝에 있는 계단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이 좌우로 갈라지기에 오른쪽으로 진행하면서 길을 찾아보았는데 엉뚱한 곳만 헤매다 간신히 제 길을 찾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생각컨대, 아까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는 게 옳았다. 제 길에 들어서서 조금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계룡산 능선과 향적봉이 날씨 때문에 어렴풋이 보인다. 통나무 계단을 올라가자 길이 널찍해지며 경사가 많이 완만해졌다.


▲ 상월초등학교 입구 하나로마트 주차장에 주차 [09:58]

 

▲ 상월초등학교로 올라가는 길 [10:01]

 

▲ 깨끗하고 아담한 상월초등학교 [10:03]

 

▲ 상월초등학교 교정 끝에 있는 계단길 [10:03]

 

▲ 마침내 들머리를 찾았다 [10:13]

 

▲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통나무 계단길 [10:15]

 

▲ 멀리 계룡산 능선이 어렴풋이 보인다 [10:16]

 

▲ 경사가 완만한 널찍한 길 [10:18]


10:19   신충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을 지났다. 벤치가 3개씩이나 있는 것을 보니 주민들이 많이 찾아오는 산인 것 같다.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널찍한 길이 계속 이어졌다. 약간 가파른 길이다 하면 친절하게도 어김없이 통나무 계단이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노성 애향탑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나중에 궐리사에서 이곳으로 올라와 다시 상월초등학교로 내려갈 예정이다. 헬기장을 지나 데크 계단을 올라갔다. 노성산 정상이 코 앞이다.


▲ 신충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 [10:19]

 

▲ 걷기 좋은 널찍한 길 [10:22]

 

▲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구간 [10:30]

 

▲ 추석을 맞아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묘지들 [10:32]

 

▲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통나무 계단길 [10:36]

 

▲ 노성 애향탑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  [10:37]

 

▲ 꽤 넓은 헬기장 [10:42]

 

▲ 헬기장 끝에 있는 데크 계단 [10:43]


10:46   해발 348m의 노성산 정상에 올랐다. 노성산 정상부에는 표지석 외에 이정표, 태극기가 휘날리는 국기게양대, 팔각정자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정상에서 금강대교로 내려가는 길을 잘못 들어 본의 아니게 노성산성 성벽을 구경한 후 다시 제 길을 찾아 금강대교 쪽으로 내려갔다. 금강대교는 유교, 불교, 도교를 아우른 민족종교로 알려져 있으며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본부가 있다고 한다. 세상에는 참 많은 종교가 있다. 우리 인간이 그만큼 나약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 해발 348m 노성산 정상 표지석 [10:46]

 

▲ 노성산 정상에 서 있는 이정표 [10:46]

 

▲ 노성산 정상부에 있는 팔각정자 [10:46]

 

▲ 훼손되지 않은 노성산성 성벽 [10:48]


금강대도

 

금강대도(金剛大道)는 한국의 종교이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리에 본부가 있다. 창시자인 이승여가 탄생한 1874년을 개도 원년으로 삼고 있다. 호가 토암(土庵)인 이승여는 강원도 통천군에서 태어났다. 18세부터 구도와 수련에 정진하여 1906년에 도를 깨쳤다. 1910년에 계룡산으로 내려와 포교하여 수만 명의 신도를 모았다. 본부가 연기로 이전한 것은 1923년이다. 연기의 금천리에는 삼종대성전(三宗大聖殿)이라는 건물을 세우고 금강대도 연화대도 총본부라 불렀다. 총본부에는 삼종개화문이라는 정문과 개도 100년 탑이 서 있다. 여기서 삼종은 유교와 불교, 도교의 유불선을 뜻한다. 포교 초기에는 대종교와 유사하게 국조 단군 숭배로 출발하였으나 점차 유불선과의 접목이 이루어졌고, 이후 도주 부부를 신앙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 종교로 파악되어 심한 탄압을 받았다. 일제는 금강대도가 일본 불교에 편입되기를 원했으나 제2대 도주였던 이성직의 거부로 여의치 않았다. 이 때문에 1941년 법당에 난입한 경찰에 의해 수십 명이 연행되어 옥사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건물도 파괴되었다. 이 사건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였던 공주 갑부 김갑순의 밀고로 일어났다는 설이 있다. 1964년부터 제1대 도주인 이승여 부부와 제2대 도주인 청학(靑鶴) 이성직 부부의 뒤를 이은 제3대 도주 이일규가 이끌고 있다. 이일규는 이승여의 손자이자 이성직의 장남이며 호는 월란(月鸞)이다. 창도주 토암과 아들 청학, 손자 월란의 3대는 건부(乾父)로, 그 부인들인 자암(慈菴), 보단(寶丹), 향련(香蓮)는 곤모(坤母)로 신앙한다.

 

이일규에 따르면 금강대도의 중심 사상은 '의성'(義誠) 이고, 구원은 건부와 곤모를 정성껏 믿고 가르침을 실천하면 얻을 수 있다. 경전은 이승여의 《대원경(大圓經)》, 이성직의 《대정경(大正經)》, 이일규의 《대방경(大方經)》이 있으나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2001년부터 매년《 종리학연구》라는 학술지를 발행하고 《성경(誠敬)》이라는 소식지도 발행하고 있다. 금강삼종대는 금강대도가 설립한 학교이다.


▲ 금강대교 창시자 이승여의 무덤 [10:54]

 

▲ 금강대도 노성본원 표지석 [10:56]

 

▲ 금강대도 노성본원 안내문 [10:57]

 

▲ 금강대도 삼종대성전 [10:58]

 

▲ 삼신암과 칠성암 [10:59]


11:01   노성산성 안내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좌우로 복원을 한 노성산성 성벽이 보인다. 대한민국 사적 제393호로 지정되어 있는 노성산성은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요한 성지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임도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자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게 되고 다시 12분 정도 내려가자 애향탑이 서 있는 애향공원이다. 4천여 면민이 애향심과 화합의 표상으로 9m의 애향탑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했다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성산성

 

노성산성(魯城山城)은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성이다. 1995년 8월 2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93호로 지정되었다. 노성산 정상에 있는 산성으로 석축으로 된 테뫼형 산성이다. 공주, 논산, 연산으로 갈라지는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동북 방향으로는 양화산성과 대하고 있다. 산성의 둘레는 약 900m이고, 높이는 서쪽이 4.2m, 남쪽이 6.8m이며, 폭은 6m이다. 서쪽문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사용된 석재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지만 대략 20cm × 60cm 정도로서 네모지게 다듬었고 자연의 지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구축한 축성술은 근방의 산성 중에도 보기 드문 형태이다.

 

성내에는 우물 4개소가 있고, 정상 부분에는 경사면을 깎아 만든 토루가 있으며, 산 꼭대기에는 장대지로 추정되는 곳과 장대지 동쪽으로 조금 내려온 곳에 봉화대로 추정되는 부분이 25cm 정도의 석축으로 되어 있다. 성안에서는 백제시대, 신라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토기편과 와편들이 발견되고 있어서 조선시대까지 중요하게 사용되었던 성지임을 알 수 있다. 


▲ 논산 노성산성 안내문 [11:01]

 

▲ 사적 제393호 노성산성 [11:01]

 

▲ 복원된 노성산성 [11:02]

 

▲ 임도 오른쪽 벤치와 쓰레기봉지가 마련되어 있다 [11:08]

 

▲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는 곳 [11:13]

 

▲ 시멘트 포장 임도 [11:18]

 

▲ 애향심과 화합의 표상인 노성 애향탑 [11:25]

 

▲ 애향공원에 서 있는 이정표: 노성, 상월 방향으로 진행 [11:27]


11:31   길 왼쪽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118호인 노성향교가 보인다. 대문은 닫혀 있었다. 노성향교를 지나자 명재 고택이 보였다.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이 살던 곳인데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 지정되어 있다. 명재 고택 옆에는 궐리사가 있다. 궐리사는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인데 논산 궐리사는 화성에 있는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에 두 곳만 남아 있다고 한다. 궐리사 오른쪽 담장을 따라 산길이 나 있어 들어섰다. 길은 매우 널찍하다.


노성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제118호(1997.12.23 지정)이다.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그 뒤에는 1967년과 1975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만이 전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삼문(三門)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논산 명재 고택

 

논산 명재 고택(論山 明齋 古宅)은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1984년 12월 24일 대한민국의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1629∼1714)이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다. 후대에 수리가 있었던 듯 하며 그 세부기법은 19세기 중엽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노성산성이 있는 이 산의 산자락에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고, 왼쪽 1칸 뒤로 '一' 자형의 중문간채가 자리잡고 있다. 중문간채는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1칸 돌아 들어가게 중문을 내었다. 중문을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어서, 중문간채와 함께 튼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집 앞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있고 그 앞에 인공연못을 파고 가운데에 원형의 섬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또한 안채 뒷쪽에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하여 독특한 뒤뜰을 가꾸어, 우리나라 살림집의 아름다운 공간구조를 보이고 있다. 모든 건축부재의 마감이 치밀하면서 구조가 간결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조선의 양반주택으로 중요하다. 지정 당시 명칭은 '윤증선생고택(尹拯先生故宅)'이었으나, 조선 숙종 때의 이름난 유학자 명재 윤증(1629-1711)이 지었다고 전하는 가옥인 점을 반영하여 그의 호를 따라 ‘논산 명재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노성 궐리사

 

노성 궐리사(魯城 闕里祠)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다. 1978년 12월 30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다. 궐리사라는 이름은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궐리촌에서 유래한 것이다. 숙종 13년(1687) 우암 송시열이 궐리사를 세우려고 했으나 2년 뒤 세상을 떠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뒤 숙종 42년(1716) 권상하·김만준·이건명 등의 제자가 현 위치에서 서쪽방향으로 있는 노성산 아래에 궐리사를 세우고 다음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정조 15년(1791)에는 송조 5현을 봉안하였고 순조 5년(1805)에 관찰사 박윤수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지금 있는 영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곳 외에 강릉, 제천, 화성에도 궐리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곳과 화성에만 남아 있다.


▲ 길 왼쪽 노성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제 118호로 지정되어 있다 [11:31]

 

▲ 명재 고택 앞에 서 있는 이정표 [11:32]

 

▲ 명재 고택 안내문 [11:32]

 

▲ 주요민속문화재 제190호 명재 고택 [11:33]

 

▲ 노성 궐리사 안내문 [11:37]

 

▲ 궐리사 현통당 [11:38]

 

▲ 궐리사의 표시물인 궐리탑 뒤로 공자상이 보인다 [11:38]

 

▲ 궐리사 오른쪽 담장을 따라 나 있는 길 [11:39]


11:45   명재 고택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을 지났다. 여기서부터는 좁은 길을 따라 노성산 정상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왼쪽으로 보이는 추석을 맞아 묘지들이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화장률이 80%가 넘은 지금 기존의 무덤들이 과연 얼마나 계속 저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15분 정도 걸어 해발 266m의 옥리봉 정상에 올랐는데 정상부는 무덤이 차지하고 있고 별 다른 표지는 없다.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오르막길이 계속 나타났다.


▲ 명재 고택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 [11:45]

 

▲ 추석을 맞아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무덤들 [11:50]

 

▲ 옥리봉으로 올라가는 길 [11:56]

 

▲ 옥리봉에 서 있는 이정표 [12:01]

 

▲ 옥리봉 정상은 무덤이 차지하고 있다 [12:01]

 

▲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오르막길 [12:11]

 

▲ 여기도 오르막길 [12:15]


12:17   상월초등학교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아까 올라올 때 걸었던 길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 날머리가 가까워지자 아까 흐릿하게 보이던 계룡산 능선이 그런대로 잘 보였다. 내려가면서 아까 올라올 때 찾지 못했던 들머리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는데, 조선국 통정대부 김흥 표충비 옆으로 나 있는 길이 바로 들머리였다. 상월초교를 지나 차를 세워둔 하나로마트 주차장에 도착, 차에 올라 청주로 돌아온 시각이 2시 5분, 이렇게 해서 계룡산 주능선이 보이는 논산 노성산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 상월초등학교 갈림길 삼거리 [12:17]

 

▲ 걷기 좋은 길 [12:25]

 

▲ 상월초교 400m 전 이정표 [12:31]

 

▲ 산행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 멀리 향적산이 보인다 [12:34]

 

▲ 계룡산 능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12:37]

 

▲ 조선국 통정대부 김흠 표충비 [12:39]

 

▲ 차를 세워둔 하나로마트 주차장에 귀환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