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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북山行記

2015.11.03. [충북山行記 151] 충북 진천 태령산/갈미봉/만뢰산/남산봉

by 사천거사 2015. 11. 3.

태령산-갈미봉-만뢰산-남산봉 산행기

◈ 일시: 2015년 11월 3일 화요일 / 맑음 

◈ 장소: 만뢰산 612.2m / 충북 진천군

◈ 코스: 김유신 탄생지 주차장 → 태실 → 태령산 → 만뢰산 → 남산봉 → 이거이 묘소 → 주차장

◈ 시간: 6시간 9분


 

 


09:40   오늘은 진천에 있는 만뢰산 산행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만뢰산은 이전에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오늘은 김유신 탄생지에서 태실이 있는 태령산에 오른 후 능선을 따라 만뢰산, 남산봉을 거쳐 다시 김유신 탄생지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았다. 청주 아파트 출발, 오창을 거쳐 문백면 사석에서 21번 국도에 접속한 후 조금 달리다 보탑사 삼거리에서 보탑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로 오른쪽에 있는 김유산 탄생지 주차장은 허허벌판이었다. 차 한 대 없이 텅 비어 있는 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웠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포장도로를 따라 국궁장 쪽으로 올라갔다. 화랑정이란 이름을 가진 국궁장은 건물도 그렇고 잘 가꾸어진 잔디밭하며 규모가 대단했다. 건물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자 길이 갈라진다. 김유신이 사용했다는 우물 '연보정'으로 가는 길은 오른쪽이고 태실은 올라가는 산길은 왼쪽이다. 산길에 접어들어 조금 걸어가자 운치 있는 통나무 계단길이 나오고 이어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경사 급한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졌다. 능선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 김유신 탄생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16]

 

▲ 김유신 태실 가는 길 이정표 [10:18]

 

▲ 국궁장 화랑정 건물 [10:29]

 

▲ 언덕에 올라 바라본 국궁장 화랑정 [10:31]

 

▲ 연보정과 태실 갈림길 이정표 [10:32]

 

▲ 본격적인 산길에 들어섰다 [10:36]

 

▲ 운치가 있는 통나무 계단길 [10:39]

 

▲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 시작 [10:43]

 

▲ 계속 이어지는 경사 급한 오르막길 [10:49]


10:53   주능선에 올랐다. 태실은 200m 오른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어 다녀오기로 했다. 해발 450m의 태령산 정상에 있는 김유신 태실은 태령산성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데 주변에서 3명의 인부가 낙엽을 치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태실을 떠나 만뢰산 쪽으로 가는 길, 18분 정도 걸어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안 된다. 그 길은 만뢰산자연생태공원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경사가 조금 있는 오른쪽이 만뢰산으로 가는 길이다.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鎭川 金庾信 誕生址와 胎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신라의 명장인 김유신 관련 유적지로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곳과 그의 태실이다. 태실은 아이가 출산한 뒤 나오는 탯줄을 보관하는 곳을 말한다. 김유신이 태어난 곳은 만노군 태수로 부임한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집무를 보던 곳이다. 김유신 장군의 태실은 태령산성의 정상부에 있으며 자연석을 둥글게 기단으로 쌓고 주위에 돌담을 쌓아 신령스런 구역임을 나타내고 있다. 원형으로 3단의 석축을 쌓은 뒤, 그 위에 흙을 덮은 봉분형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탄생지 뒤편에 있는 태령산성은 태실을 둘러싼 돌담의 성격으로, 고대 신라의 산성 축조술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유신 장군 탄생지와 태실 등 232,814㎡는 사적(사적 제 414호, 1999. 6. 11 지정)으로 지정되어 있다.


▲ 능선에 오르면 만나는 이정표 [10:53]

   

▲ 태령산 정상에 있는 김유신 태실 [10:59]

 

▲ 태실 옆에 있는 이정표: 흥무대왕은 김유신을 말한다 [11:00]

 

▲ 왼쪽으로 보이는 이정표: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 [11:06]

 

▲ 능선길을 따라 진행 [11:13]

 

▲ 작은 돌덩이들이 흩어져 있는 450봉 [11:16]

 

▲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11:19]

 

▲ 이 능선에는 소나무가 많다 [11:27]

 

▲ 물이 든 단풍나무도 가끔 보이고 [11:33]

 

▲ 소나무가 아름다운 길 [11:42]


11:44   만뢰산자연생태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4거리 안부를 지났다. 2009년 5월에 조성된 자연생태공원은 11만 8,507㎡ 규모로 조경시설, 관광·휴양시설, 교양시설, 공공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 다양한 생태 체험과 관광이 가능한 지역명소이다. 특히 여름철에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면 좋다. 고압선 철탑 옆 임도를 건너 다시 산길에 들어섰는데 540봉으로 올라가는 길의 경사가 꽤 심하다. 백곡 구수리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540봉을 지났다. 만뢰산 정상까지는 아직도 1.4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 만뢰산자연생태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1:44]

 

▲ 길은 그런대로 잘 나 있다 [11:53]

 

▲ 빛깔이 나온 단풍나무 [12:04]

 

▲ 임도 옆 고압선 철탑과 이정표 [12:09]

 

▲ 만뢰산 임도 [12:10]

 

▲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바위들 [12:18]

 

▲ 삼거리 갈림길이 있는 540봉이 코 앞이다 [12:26]

 

▲ 백곡 구수리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540봉: 만뢰산까지는 1.4km가 남았다 [12:27]

 

▲ 봉우리 왼쪽 사면을 따라 나 있는 길 [12:34]

 

▲ 직각으로 자라는 나무 [12:41]


12:43   만뢰산 600m 전 이정표를 지났다. 3분 정도 걸어 왼쪽으로 보련골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을 지났고 다시 4분 후 팔각정자 옆을 통과했다. 만뢰산 정상에 도착해 보니 아무도 없다. 사진을 찍고 넓은 헬기장 한쪽에 앉아 가져간 빵으로 점심을 먹었다. 산 속에서 혼자 그렇게 점심을 먹으면 외롭거나 을씨년스럽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출발, 보탑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산행이기 때문에 물론 보탑사로 내려가는 일은 없다.


▲ 만뢰산 600m 전 이정표 [12:43]

 

▲ 보련골로 내려가는 길이 왼쪽으로 갈라지고 있다 [12:46]

 

▲ 정상 직전에 만나는 팔각정자 [12:50]

 

▲ 해발 611.7m의 만뢰산 정상에서 [12:53]

 

▲ 만뢰산 정상부는 헬기장을 겸하고 있다 [13:01]

 

▲ 여기도 나뭇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13:07]

 

▲ 돌목이고개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13:11]

 

▲ 보탑사 갈림길 이정표 [13:27]


13:28   나무에 만뢰지맥 489.7m라고 적힌 표지판이 달려 있다. 산 매니아들 중에는 1대간 9정맥 외에 지맥들도 찾고 있는데 글쎄, 나로서는 1대간 9정맥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10분 정도 걸었는데 왼쪽으로 보랏빛 색깔의 꽃이 보인다. 어, 진달래가 피었네. 그것도 한두 송이가 아니라 나무 전체에 꽃이 피었네. 이 철 모르는 놈은 내년 봄에 어쩌려고 이러나. 고만고만한 능선길이 계속 이어졌다. 삼각점도 지나고 만뢰지맥 표지판도 지났다. 빛깔 고운 단풍이 이 산에도 있네.


▲ 만뢰지맥 489.7m 표지판이 달려 있다 [13:28]

 

▲ 나무 전체에 진달래꽃이 활짝 피었다 [13:37]

 

▲ 빛깔 고운 단풍 [13:41]

 

▲ 보탑사 갈림길 이정표: 투구바위까지는 6km [13:42]

 

▲ 낙엽이 깔려 있는 능선길 [13:49]

 

▲ 삼각점을 만났다 [14:04]

 

▲ 만뢰지맥 482.8m 표지판 [14:05]

 

▲ 익어가고 있는 청미래덩굴 열매 [14:11]

 

▲ 빛깔 고운 단풍 [14:37]

 

▲ 빛깔 고운 단풍 [14:43]


14:58   해발 504.7m의 남산봉 정상에 올랐다. 삼각점이 있고 표지판이 달려 있고 독립운동 기념산길에 대한 안내문도 나무에 붙어 있다. 여기서 오른쪽 길은 만뢰지맥이고 하산로는 철탑으로 이어지는 왼쪽 길이다. 17분 정도 걸어 고압선 철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철탑 오른쪽으로 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임도 수준이다. 아니 임도다. 길 왼쪽으로 쳐져 있는 울타리에 '맹견방사 엽총소지'라고 쓴 경고 패찰이 매달려 있는 게 보인다. 뭐하는 곳이기에 저렇게 무시무시한 말을 써 놓았을까.

 

울타리와 함께 나아가던 임도가 오른쪽으로 180도 확 꺾이는 지점이 도착했다. 여기서 하산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진행을 했어야 하는데 무심코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하고 말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울타리를 따라 계속 가야 투구바위 쪽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가다 보니 하산지점 투구바위와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임도의 진행 방향을 보니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봉우리의 허리를 감아돌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고, 계속 가다가는 큰 일 나겠네. 일단 발걸음을 돌렸다.   


▲ 해발 504.7m의 남산봉 정상 [14:58]

 

▲ 남산봉 정상에 있는 표지판 [14:58]

 

▲ 길 왼쪽 고압선 철탑 [15:15]

 

▲ 철탑부터는 임도가 시작된다 [15:17]

 

▲ 왼쪽 울타리 경고 패찰: 맹견방사 엽총소지 [15:18]

 

▲ 180도 꺾어진 임도 따라 진행 [15:22]

 

▲  여기서 조금 더 진행하다 발걸음을 돌렸다 [15:28]


15:35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좁은 길에 들어섰다. 어디로 이어지는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길을 따라 내려가보기로 했다. 그냥 저냥 이어지던 그 길은 결국 무덤 앞으로 나를 안내하더니 무덤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어쩌나? 없는 길 개척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으니 오늘도 실력 발휘를 한번 해볼까? 나무 사이를 살살 헤치며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다시 무덤이 나타났고 그 무덤에서 널찍한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 임도가 나왔다.

 

그렇다. 아까 내려오다 다시 돌아간 임도는 지금 이 임도와 이어지는 길이었다. 따라서 그냥 임도따라 계속 내려왔으면 지금 이 길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 참...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가자 왼쪽으로 태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거이 묘소가 있어 둘러보았다. 이거이 묘소 아래에 있는 상계리 상목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평화롭고 조용하다. 보탑사로 들어가는 도로에 도착해서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는데 '화랑무예태권도성지'라고 적힌 조형물이 보인다. 전시 행정의 표본과 같은 흉물이다. 차를 돌려 청주에 도착한 시각이 5시, 오늘은 산행 막바지에 길을 잘못 든 것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혼자만의 알찬 산행을 한 날이었다고 자평을 한다.


▲ 임도에서 갈라지고 있는 길에 들어섰다 15:35]

 

▲ 길은 없고 개척이 최선의 방법이다 [15:41]

 

▲ 단풍나무가 마음에 위안을 주고 [15:47]

 

▲ 시멘트 포장 임도에 다시 내려섰다 [15:52] 


이거이 묘소(李居易 墓所)

 

충청북도 지방기념물 제95호. 봉분은 장방형으로 가로 400㎝, 세로 550㎝, 높이 200㎝의 대형분묘이다. 묘소 입구의 신도비는 비신(碑身)의 높이 120㎝로 비문은 이병관(李炳觀)이 지었으며, 마을 입구에는 청주이씨사패비(淸州李氏賜牌碑)가 있다. 이거이(1348∼1412)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낙천(樂天), 호는 청허당(淸虛堂), 시호는 문도(文度)로 고려말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393(태조 2년) 우산기상시(右散騎尙侍)에 임명된 이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영의정 등을 지냈다. 그의 두 아들 저(佇)와 백강(伯剛)은 각각 태조의 장녀 경신공주(慶愼公主), 태종의 장녀 정순공주(貞順公主)와 결혼하였다.


▲ 태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거이의 묘소 [15:58]

 

▲ 지금은 바야흐로 감이 익어가는 계절 [16:05]

 

▲ 상계리 상목마을회관 [16:08]

 

▲ 보탑사로 들어가는 도로에 도착했다 [16:22]

 

▲ 화랑무예 태권도 성지 표지석: 전시 행정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다 [16:26]

 

▲ 차를 세워둔 주차장에 다시 도착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