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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트레킹/중국 만리장성·화산

2015.03.08. [만리장성/화산 3] 중국 북경 자금성→이화원

by 사천거사 2015. 3. 8.

 

북경-서안 여행

 

일시: 2015년 3월 8일 일요일

장소: 북경 관광  중국 북경 

◈ 코스: 북경 호텔 66 → 천안문광장 → 자금성 → 이화원 → 야간 열차

 회원: 아들과 함께

 

 

 

 

 

 

07:00   어제 만리장성 트레킹을 다녀온 관계로 오늘은 조금 느즈막이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일정이 자금성과 이화원을 둘러보고 야간열차를 이용해 서안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도 늦게까지 침대에서 뒹굴거린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은 호텔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배낭에 짐을 모두 꾸려 체크 아웃을 했다. 일본 대형 음식 체인점인 '요시노야'에서 아침을 먹고 자금성을 보러 달려갔는데 천안문 광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장난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밀려 있는 이유는 바로 짐검사 때문이었다. 중국에서는 고궁이나 박물관 입장, 열차 탑승, 심지어 지하철을 탈 때에도 짐검사를 한다. 형식적인 경우도 많지만 천안문 광장으로 들어가는 경우에는 비행기를 탑승할 때처럼 가스라이터나 생수도 소지가 금지되어 있었다. 자금성 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은 북경시민이라기 보다는 중국 전역에서 모여든 지방사람들이다. 중국 경제가 좋아지다 보니 관광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 이틀 밤을 묵은 스차하이 '호텔 66' [08:28]

 

▲ 일본 대형 음식 연쇄점인 요시노야(吉野屋, Yoshinoya)에서 아침 식사 [08:41]

 

▲ 자금성을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09:14]

 

▲ 천안문 광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소지품검사 중 [09:26]

 

천안문과 천안문광장

 

베이징시() 둥청구(, 동성구)에 있는 명청황성()의 남쪽 정문으로 1961년 혁명유지 및 혁명기념건축물로 전국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천상의 평화의 문'이라는 의미의 천안문()은 베이징의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네 개의 주 관문 중 하나이며, 광대한 천안문 광장은 이 문에서 이름을 얻었다. 이 광장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880m, 동쪽에서 서쪽으로 500m의 넓이로 뻗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시 광장이다.

 

천안문의 건축은 1417년 명나라의 자금성 건축의 일부로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략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699년의 개조 작업 때였다. 20세기까지 천안문 앞의 구역에는 정부 관청들이 들어서 있었으며, 이 지역은 1902년 의화단 운동()으로 피해를 입어 비워지게 되었다. 1950년대 초에 중화문()을 헐고 그 주변에 형성되었던 좁은 거리들을 없애면서 공지는 더욱 넓어졌다. 마오쩌둥 시대에 광장 주변에 여러 채의 중요한 건물들이 세워졌다. 인민대회당(), 국립 박물관, 마오쩌둥 기념관 등으로, 기념관에는 1976년 사망한 '위대한 키잡이' 마오쩌둥의 방부 처리된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 천안문 광장에서 [09:43]

 

▲ 천안문을 배경으로 아들 [09:44]

 

▲ 천안문에 있는 사진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모택동 [09:45]

 

▲ 세계에서 가장 넓은 광장인 '천안문 광장' [09:46]

 

▲ 자금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 [09:47]  

 

09:47   천안문을 지나 자금성 안으로 들어갔다. 천안문과 오문 사이에 있는 단문을 지나 40위안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자금성의 정문 격인 오문을 통과하는데 여기서도 짐검사를 한다. 오문을 지나면 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금수교를 건너 또 하나의 문인 태화문을 지나자 자금성에서 가장 큰 궁궐인 태화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적인 행사와 의식이 치러지던 자금성의 외조에는 3대전인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자리잡고 있다.

 

자금성(紫禁城, 쯔진청)

 

명조와 청조의 황제 궁전인 자금성의 건축은 1407년에 시작되었으며, 20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고생한 끝에 14년이 걸려 완공되었다. 황제의 권력과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설계된 자금성은, 천제()의 거처와 동등한 지상의 등가물이라 여겨졌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황제의 허가 없이는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단지 각 변에는 주 성문이 나 있고, 건물 단지는 깊이 6m의 해자와 높이 10m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 총 넓이가 약 72헥타르에 이르는 자금성 안에는 약 800채의 건물과 8,880개의 방이 있는데, 방의 개수가 좀 더 그럴싸한 숫자인 9999개라고 나와 있는 자료들도 있다. 이 건물들 중에 다섯 채의 커다란 전당과 열일곱 채의 궁전이 있었다. 자금성은 두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남쪽 구역, 즉 '전조'()는 황제가 매일의 정무를 보는 곳이었고, 황제와 그 가족이 거주하는 곳은 북쪽 구역, 즉 '내정'()이었다. 건물의 소재로는 목재가 지배적으로 쓰였다. 자금성 안에는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모여 있으며, 지붕은 전통적인 왕의 색깔인 노란색으로 칠해졌다.

1644년 명나라 뒤를 이어 들어선 청나라의 열 명의 황제들은 자금성을 정부 소재지로 삼았다. 1912년, 신해혁명에 뒤이어 중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퇴위했고, 자금성은 결국 박물관이 되었으며 많은 보배와 진기한 물품들을 전시하게 되었다(유물들의 일부는 국공내전() 동안 대만으로 옮겨졌다). 중국 공산당의 정책이 완화되면서 자금성은 중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모두가 찾는 주요 명소가 되었다.

 

▲ 모택동 사진이 걸려 있는 천안문 [09:47]

 

▲ 천안문과 오문 사이에 있는 단문 [09:49]

 

▲ 자금성 입장권을 판매하는 곳: 입장료는 40위안 [09:53]

 

▲ 입장권을 구입한 후 짐검사를 하는 오문을 통과해야 한다 [09:55]

 

▲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 [09:57]

 

▲ 금수교 뒤로 보이는 태화문 [10:02]

 

▲ 태화문 앞에서 [10:03]

 

▲ 중국에서 가장 큰 궁궐로 알려진 태화전 [10:08]  

 

10:11   자금성이 워낙 크고 넒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는데도 크게 붐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태화전의 태화는 우주의 모든 사물이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는 의미로 황제의 즉위식, 새해의 제사, 조서반포, 황태자 탄생 축하, 대규모의 출정식 등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장소로 화려한 모습 때문에 금란전이라고도 부른다. 외조의 나머지 두 개 대전인 중화전과 보화전을 둘러보고 내정으로 이동했다. 내정은 일상적인 업무와 침실로 이용되었던 곳인데 건천궁, 곤녕궁, 교태전 등의 건물이 있다.

 

▲ 태화전에서 바라본 태화문 [10:11]

 

▲ 자금성 황제의 집무실이었던 태화전 [10:11]

 

▲ 불을 끄는데 사용할 물을 담아두는 방화수용기 '유금동항' [10:13]

 

▲ 중화전과 보화전 [10:15]

 

▲ 자금성의 3대 궁전 중 가장 규모가 작은 중화전 [10:15]

 

▲ 보화전 안에 있는 건륭제의 친필 '황건유극' [10:18]

 

▲ 보화전 뒤에 있는 용의 부조 '운룡대석조' [10:21]

 

▲ 황제의 침소로 이용되었던 건천궁 [10:23]

 

▲ 황제의 여자들이 행사를 열었던 교태전 [10:26]

 

10:30   자금성의 정원인 '어화원'을 둘러보았는데 자금성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조금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무문을 지나고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것을 자금성 관람은 모두 끝이 났다. 참고로, 자금성 주위는 해자와 성벽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해자의 너비는 52m이며 깊이는 6m에 이른다. 해자에는 동서남북으로 해자를 가로지르는 4개의 다리가 있다. 궁궐 주위의 장벽의 길이는 4km에 이르며 높이는 10m나 되고 4개의 큰 출입구가 뚫려 있다. 입장료 2위안을 내고 경산공원으로 들어가 맨 꼭대기에 있는 만춘정 쪽으로 올라갔다.

 

경산공원(景山公園)

 

높이는 약 43m이고, 해발고도는 88.7m이다. 베이징[] 중심에 있는 공원으로 자금성 안을 전망할 수 있다. 금() 때 이궁()을 만들면서 지금의 베이하이[]를 판 흙을 쌓아 언덕을 만들었으며, 원() 때는 궁정의 정원이었다. () 때인 1403~1424년에 자금성의 퉁쯔허[]를 판 흙을 쌓아 5봉()을 만들고, 건륭제()가 그 봉우리 위에 만춘정()을 비롯하여 산정()을 세웠다. 옛 이름은 완서우산[]이며 명, 청() 때는 자원()이라고 불렀다.

1644년 이자성의 난 때 농민봉기군이 베이징을 공격할 때 숭정제()는 동산록()에 있는 괴목에 목을 매 자살하였다. 1655년에 징산[]이라고 개칭하였다. 1949년 이후 공원으로 개방하였다. 5개의 봉우리가 동서로 있는데 봉마다 정자가 세워져 있고, 가운데의 만춘정()은 그 당시 베이징에서 최고로 높은 봉이었다. 화원과 수황전(殿) 등 전각이 있고 서쪽 가까이에 백탑()이 솟아 있는 베이하이구릉이 있다.

 

▲ 자금성 정원 '어화원' [10:30]

 

▲ 어화원에 있는 기묘한 나무 [10:33]

 

▲ 규모가 대단한 자금성 성벽 [10:34]

 

▲ 자금성에서 바라본 경산공원 [10:36]

 

▲ 자금성 해자와 성벽 [10:37]

 

▲ 도로 건너에서 바라본 자금성 신무문: '고궁박물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10:40]

 

▲ 경산공원에 있는 '관묘정' [10:47]

 

▲ 경산공원 중앙에 있는 '만춘정' [10:49]

 

10:50   경산공원 꼭대기에 있는 만춘정 아래서 자금성을 내려다본다. 멀리서 보아도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일본과 중국을 비교해본다면 일본은 작고 오밀조밀한데 비해 중국은 크고 광활하다. 경산공원을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다음 목적지인 이화원을 향해 달렸다. 지하철을 타는 요령을 아니까 이동하는데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탈 때마다 짐검사를 하는 게 조금 그렇지만. 이화원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린 다음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KFC로 들어갔다. 점심 때라 그런지 사람 엄청 많다.  

 

▲ 경산공원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풍경 [10:50]

 

▲ 경산공원에서 내려다본 자금성 [10:52]

 

▲ 경산공원에서 내려다본 자금성 [10:54]

 

▲ 이화원을 가기 위해 지하철 승차권 자동 발급중 [11:48]

 

▲ 이화원 근처 KFC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 [12:33]

 

▲ 손님들로 붐비고 있는 KFC [12:37]

 

13:13   이화원에 도착했다. 이화원은 현재는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공원이지만 예전에는 여름철에 별궁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입장료를 비롯해서 불향각, 소주가, 덕화원, 문창원 등 이화원의 모든 곳을 둘러볼 수 있는 입장료 50위안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왼쪽으로 소주가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만수산의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소주가(蘇州街)는 건륭제 때 조성된 거리다. 황실의 여인들을 위해 마련된 이 상가는 물길 옆에 조성되어 있는데 60여 개의 온갖 가게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오늘날도 과거를 그대로 재현해 찻집에서부터 시작해 식당, 약방, 은행, 모가가게, 장신구가게, 간식가게 등을 망라해 다양한 가게들이 집중되어 있어 필요한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소주가를 구경을 마치고 만수산으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본 후 곤명호숫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화원(Summer Palace, 園)

 

베이징의 이화원은 천안문 북서쪽 19킬로미터, 쿤밍 호수를 둘러싼 290헥타르의 공원 안에 조성된 전각과 탑, 정자, 누각 등의 복합 공간이다. 1750년 청나라 건륭제(1711~1799년)는 청의원을 지어 황실의 여름 별궁으로 쓰게 하였다. 1860년과 1900년 외세의 침공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복구되었다. 서태후(1835~1908년)는 1889년부터 죽을 때까지 이곳에 거주했으며, 청나라 해군의 군자금을 빼서 이화원의 복구와 확장에 썼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화원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곤명호(쿤밍호:)는 인공호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겨울에 얼음이 얼면 이곳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보트를 타고 쿤밍호 유람을 즐길 수 있다.

1924년 이화원은 공원으로 바뀌었다. 특히 눈에 띄는 건물로는 3층짜리 더허위안(덕화원:) 극장이 딸린 이락전(殿), 서태후의 침전이었던 낙수당(), 그리고 십칠공교() 등이 있다. 중국에서 가장 긴 복도 건축물인 장랑()은 길이가 728미터에 이르며 중국 고전 문학에 나오는 장면들을 묘사한 1만 4천여 점의 회화로 정교하게 장식된 산책로이다. 석방()은 나무로 만든 호숫가의 누각으로, 대리석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채색하였다. 양쪽에는 모조 바퀴가 달려 있어, 마치 미시시피 강의 외륜선과 흡사하다. 정문인 둥궁먼(동궁문:), 이화원의 상징인 완서우산(만수산:寿), 그리고 산 중턱에 있는 팔각형 탑 푸샹거(불향각:) 등도 볼거리에 속한다.

각각의 건물들이 모두 아름다운 장식을 자랑하고 역사적으로도 흥미롭지만, 가장 매력적인 것은 호수 너머로 바라보는 전통적인 중국 풍경이다. 바다와 인공 호수의 자연 풍광이 정자, 전각, 궁전, 사원, 교각 등의 인공 요소들과 결합하여 매력적이기 그지없는 조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화원은 또 국제적으로도 영향력이 큰 중국 문화 양식의 깊은 미의식을 반영하는 중국 정원 조경의 철학과 숙련을 한몸에 보여주고 있다.


▲ 이화원 북궁문 [13:13]

 

▲ 호숫가에 만들어진 소주가 [13:19]

 

▲ 아직 얼음이 그대로 있다 [13:22]

 

▲ 호숫가를 따라 상점이 늘어서 있다 [13:26]

 

▲ 기념품을 판매하는 소주가 상점 [13:27]

 

▲ 얼음을 깨고 있는 사람들 [13:39]

 

▲ 이화원 만수산에 있는 건물들 [13:42]

 

▲ 이화원 만수산에 있는 건물들 [13:48]

 

14:03   이화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곤명호숫가로 내려왔다. 곤명호는 서태후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호수인데, 여기서 파낸 흙을 쌓아 만수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서태후, 아무리 봐도 대단한 여자다. 호수 왼쪽을 따라 나 있는 길을 걷는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나무로 만든 누각 석방, 마치 대리석으로 만든 것처럼 채색을 해놓았다. 지붕이 있는 긴 복도 장랑을 따라 걷는다. 천장에 14,000여 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같은 그림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대단하다. 만수산 남쪽 기슭에 있는 불향각으로 올라갔다. 이화원 곤명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서태후(西太后) 별칭: 효흠현황후(), 자희황태후()

 

함풍제의 사후 동치제가 6세에 즉위하자, 공친왕()과 공모하여 쿠데타로 반대파를 일소하고 모후()로서 동태후(: 함풍제의 황후로 라고도 한다)와 함께 섭정이 되었다. 1875년 동치제가 죽자, 누이동생의 3세의 아들을 옹립, 광서제()로 즉위시켜 자신은 섭정이 되었다. 광서제가 16세가 되자 친정이 시작되었으나, 국정의 실권은 서태후가 쥐고 있었다. 1898년 광서제가 이를 싫어하여 입헌파 캉유웨이[]에 접근, 신정을 실시[]하여 업헌군주제를 위한 전환을 꾀하자, 서태후는 보수파 관료를 부추겨 쿠데타를 감행, 신정을 100일로 종식시키고 광서제를 유폐하는 무술정변()을 일으켰다.

 

의화단()의 반()제국주의 투쟁이 고조되자, 이를 이용하여 열강에 대해 선전을 포고하였으나, 8개국 연합군의 침입을 받아 시안[西: 西]으로 피신하였다. 모든 진보적 개혁에 반대하던 서태후도 베이징[] 귀환 후에는 입헌 준비, 실업(), 교육의 진흥 등 신정을 실시하였으나 대외적으로는 배외정책에서 굴욕적 외교로 전락하여, 중국의 반식민지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청왕조의 권위 실추와 함께 혁명운동·입헌운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광서제가 죽은 하루 뒤에 죽었다.

 

▲ 봄빛이 감돌고 있는 이화원 호수 풍경 [14:04]

 

▲ 호수 왼쪽 방향으로 간다 [14:06]

 

▲ 나무로 만든 누각 석방(舫): 대리석처럼 보이게 채색을 했다 [14:09]

 

▲ 14,000여 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장랑(지붕이 있는 복도) [14:11]

 

▲ 불향각으로 올라가는 길 [14:18]

 

▲ 불향각에서 내려다본 곤명호 [14:26]

 

▲ 만수산 남쪽 기슭에 있는 불향각 [14:27].

 

14:37   다시 곤명호숫가로 내려왔다. 휴일이라 그런지 이화원을 찾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호수 왼쪽을 따라 도는데 십칠공교로 연결되어 있는 남호도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이화원에는 관광객만 있는 게 아니다.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물을 이용해서 커다란 붓으로 바닥에 글씨를 쓰는 거리의 서예가도 있다. 맞은편으로 불향각과 지혜해가 보이는 이화원 최고의 포토 존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었다. 마음 같아서는 남호도까지 가보고 싶은데 다른 일정 때문에 남호도 방문은 다음으로 미루고 발걸음을 돌렸다.

 

▲ 이화원을 찾은 많은 사람들 [14:37]

 

▲ 호수 왼쪽을 따라 걸어간다 [14:40]

 

▲ 십칠공교(十七孔橋)로 연결되어 있는 남호도(南湖島) [14:40]

 

▲ 아름다운 이화원 곤명호 풍경 [14:46]

 

▲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악사 [14:47]

 

▲ 물로 바닥에 붓글씨를 쓰는 사람 [14:51]

 

▲ 불향각과 지혜해가 보이는 전경: 이화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14:53]

 

▲ 불향각이 보이는 호숫가에서 [14:53]

 

▲ 아들도 한 장 찍고 [14:54]

 

14:58   문창원에 들렀다. 문창원은 이화원 내 지춘정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데. 중국 고대 황가원림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규격이 가장 높은 문물진열관이다. 그 다음에 찾은 곳은 덕화원, 연극 관람을 즐겼던 서태후가 지었다는 3층 짜리 극장으로 시설이나 규모가 대단하다. 이화원 구경을 마쳤으니 야간열차를 타고 서안으로 갈 일만 남았는데, 아들이 시간도 꽤 많이 남아 있고 하니 베이징의 명품요리인 북경오리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북경오리? 그럼, 먹어야지.

 

베이징의 북경오리(베이징 카오야)  전문점으로는 진취덕과 대동카오야가 있는데,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대동카오야로 갔다. 조금 시간이 이른 탓이라 그런지 마침 자리가 있어 안으로 들어가 오리 반 마리와 맥주를 시켰다. 주문 후 시간이 지나자 요리사가 구운 오리를 들고와 테이블 앞에서 직접 고기를 썰어주는데 처음 보는 상황이라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맛은? 설탕에 찍어 먹는 껍질은 바삭거리는 과자와 같고, 양념장에 찍어 오이, 생파 등과 함께 밀전병에 싸서 먹는 고기맛도 일품이었다. 북경오리가 유명하다는 것은 그냥 헛소문이 아니었다.

 

북경오리(베이징 카오야, Beijing kaoya, )

 

북경오리는 부화 후 50일쯤 지나면 운동은 시키지 않고 하루 2~4회 정도 환약처럼 만든 사료를 목구멍에 가득 차도록 먹여 강제로 살을 찌우는 데 살집이 많고 고기가 부드럽다. 굽는 방법은 깃털과 내장을 제거하고 물갈퀴를 떼어내어 겉에 엿을 발라서 나흘간 그늘에 말린 다음, 몸속에 공기를 불어넣어 보기 좋게 부풀린 오리를 대추나무나 배나무 장작 불 위에 매달아 놓고 맥아당 양념을 발라가면서 다갈색으로 익을 때까지 오랜 시간 구워내는 것이다. 이렇게 구운 오리를 식기 전에 얇게 썰어 티엔미엔지앙(밀가루와 소금으로 발효시켜 만든 중국식 된장) 양념장에 생파, 오이 썬 것을 함께 밀전병에 싸서 먹는다.

 

▲ 이화원의 문물진열관인 문창원 [14:58]

 

▲ 문창원에 있는 진열관 [14:59]

 

▲ 연극관람을 좋아하는 서태후가 세운 극장 '덕화원' [15:19]

 

▲ 베이징 거리마다 새로운 건물에 세워지고 있다 [15:58]

 

▲ 대동카오야에서 주문중 [17:09]

 

▲ 테이블 앞에서 요리사가 직접 구운 오리 고기를 썰어준다 [17:43]

 

▲ 북경오리 상차림 [17:49]

 

▲ 밀전병에 싸서 먹을 준비중 [17:51]

 

▲ 북경의 베이징 카오야 대표 음식점인 '대동카오야' [18:48]

 

19:05   8시 41분에 출발하는 서안행 야간 열차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북경서역에 도착했다. 북경서역에서 서안역까지는 먼 거리이기 때문에 열차로 12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야간 열차를 이용하면 숙박비와 교통비를 열차 요금 하나로 해결할 수 있고 게다가 밤에 잠을 자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북경서역에서 서안역으로 가는 직통 야간 열차에는 좌석, 3층 침대, 2층 딱딱한 침대, 2층 푹신한 침대 등 여러 종류의 자리가 있다. 우리가 예약한 푹신한 2층 침대는 요금이 398.5위안이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하면서 발급받은 바우처를 승차권으로 바꾼 후 대합실로 갔는데 사람들이 워낙 많아 앉을 자리가 없다. 그래서 건물 2층으로 올라가 한적한 복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개찰을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 개찰을 받고 플레트폼에 정차되어 있는 열차에 올랐다. 내가 1층, 아들이 2층에 자리를 잡았는데 모두 4명이 사용하는 우리 객실의 나머지 두 사람은 중국인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었다. 정시에 기차는 서안을 향해서 출발했고 피곤함 때문인지 흔들리는 침대에 눕자 금방 잠이 들고 말았다.  

         

▲ 서안으로 갈 열차를 타는 북경서역 [19:05]

 

▲ 북경서역에서 예매한 열차 승차권을 발급받는 중  [19:18]

 

▲ 승차권을 발급받아 대합실로 이동 [19:38]

 

▲ 서안가는 열차 개찰중 [20:16]

 

▲ 서안가는 열차를 타러 플레트폼으로 내려가는 중 [20:18]

 

▲ 북경서역에서 서안으로 가는 직통 야간 열차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