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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국내 섬旅行

2012.08.15. [국내 섬旅行 30] 수원華城→구봉도

by 사천거사 2012. 8. 15.

수원화성-구봉도 여행기

◈ 일시: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 장소: 수원화성구봉도

◈ 코스: 청주 → 수원 화성 → 구봉도

◈ 회원: 우리 가족 4명


 


06:20   오늘은 선우, 선희와 함께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있는 굴업도로 1박2일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9시에 떠나는 배를 예약했다는데 4시 30분에 일어나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보니 6시가 넘어서야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출발을 하자마자 선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인천 앞바다에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 배가 출항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장소를 변경하는 수밖에. 장소가 전격적으로 굴업도에서 대부도로 바뀌었다. 그래, 아무 곳이면 어떤가? 서로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거지. 오창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 대소갈림목에서 평택제천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오늘이 광복절로 휴일이지만 도로에 차량은 별로 없었다.

 

서평택갈림목에서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었다. 선우와 만나기로 한 제부도로 가려면 비봉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야 한다. 막 고속도로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선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12시나 되어야 제부도에 도착한다고.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래, 수원화성을 보러 가자. 여기서 가까우니 천천히 둘러보고 가도 시간이 충분할 거야.


성곽의 꽃, 수원화성

 

사적 3호인 수원화성은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2년 9개월 만인 1796년 9월에 완공한 성이다. 돌레가 약 5.7km, 성곽의 높이가 4~6m로,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설계하였고, 석재와 벽돌의 병용, 화살과 창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가졌다. 또한, 용재를 규격화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축조해 '건축사상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200여 년 동안 성곽이 시설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크게 파손되었다. 그러나 축조 상황을 기록해놓은 '화성성역의궤'에 의거,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여 1997년 12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08:18   수원화성 팔달문을 돌아 왼쪽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주차장에 차가 별로 없다. 안내소 앞에 있는 함에서 지도를 한 장 뽑아 들고 계단을 따라 서장대로 올라갔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지만 아직 비소식은 없다. 계단 왼쪽에 피어 있는 보랏빛 맥문동꽃이 예쁘다. 서장대가 있는 팔달산 정상에 오르니 전망이 좋다.


▲ 화성행궁 옆에 있는 주차장 [08:19]

 

▲ 서장대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08:21]

 

▲ 수원화성은 이정표가 아주 잘 되어 있다 [08:25]

 

▲ 서장대 오르는 길: 맥문동꽃 옆에서 [08:28]

 

▲ 서장대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08:32]

 

▲ 세계 유명 도시로의 방향과 거리가 적혀 있는 이정표 [08:36]

 

▲ 서장대에서 수원시내를 뒤에 두고 [08:37]


08:37   서장대가 있는 팔달산 정상에서는 멀리 수원시내가 보이고, 가까이는 화성행궁이 내려다보였다. 서장대와 서노대를 살펴보고 성벽 왼쪽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답게 성벽과 부속건물들은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었고 안내문과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내려가는 길을 따라 서이치, 서포루, 서북각루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서장대: 西將臺(華城將臺)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터 닦기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하였다. 정조는 1795년 윤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 수원화성 서장대(화성장대) [08:37]

 

▲ 서장대에서 내려다본 화성행궁 [08:38]

 

▲ 서장대에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 앞에서 [08:39]


서노대(西弩臺)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이 지은 것으로서, 화성의 노대는 서노대와 동북노대의 2기가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8각형 평면의 기와 벽돌을 쌓았다.


▲ 수원화성 서노대 [08:40]

 

▲ 성벽을 따라 왼쪽으로 간다 [08:42]


서이치(西二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도록 한 시설물로서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로 화성에는 19개의 치가 있다. 치는 꿩을 말하는 것으로서, 능히 자기 몸을 숨기고 주변을 잘 살펴보기 때문에 그 뜻을 따서 치성이라고 하였다. 서이치는 서포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다.


▲ 수원화성 서이치 [08:46]


서포루(西砲樓)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 20년) 5월 30일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화성의 전투지휘소인 서장대의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기에 5개의 포루 중 가장 중무장한 포루이다.


▲ 수원화성 서포루 앞에서 [08:50]

 

▲ 서장대에서 내려오는 길 [08:53]


서북각루(西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의 하나로 숙지산 자락이 마주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다. 1층은 온돌을 설치하여 숙직하는 군사가 사용하도록 하였다.


▲ 수원화성 서북각루 [08:53]


08:55   오른쪽에 종합안내판과 같은 이정표가 서 있다. 보물 제403호인 화서문과 보물 제1710호인 서북공심돈을 살펴보았다. 성곽 부속건물이지만 보물로 지정될 만큼 건축양식이 특이하고 아름다웠다. 장안문을 지나자 아내가 신발이 슬리퍼라 걷기가 힘들다며 먼저 차에 가 있겠다고 한다. 그러세요. 나머지 성곽길은 혼자 돌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 길 오른쪽에 서 있는 이정표 [08:55]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피고 공격하기 위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화성에는 3개의 공심돈이 있는데 현재 남공심돈을 제외한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이 남아 있다. 1796년 3월 10일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3층 건물로 하부 치성은 석재로, 상부벽체는 전돌로 쌓았다. 속이 빈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로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1797년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효과적인 재료 활용을 보여주는 서북공심돈은 조선시대 성곽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 보물 제403호 화서문과 보물 제1710호 서북공심돈 [08:56]

 

▲ 수원화성 서북공심돈 앞에서 [08:59]

 

▲ 성벽을 따라 계속 길이 이어진다 [09:00]


북서포루(北西砲樓)

 

북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4년(정조 18년) 9월 24일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지붕을 이은 모양이 특이하여 성 안쪽은 맞배지붕이고 바깥쪽은 우진각 지붕이다.


▲ 수원화성 북서포루 앞에서 [09:05]


북서적대(北西敵臺)

 

적대는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문 좌우 옆에 있는 치성 위에 세운 시설로서 4대문 중 장안문과 팔달문 양쪽에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서쪽에 위치한 북서적대의 높이는 성벽과 같은데 밖으로 3개의 현안을 뚫고 벽돌로 쌓은 담장마다 총구멍을 만들었다.


▲ 수원화성 북서적대 [09:08]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대문으로 정문이라 할 수 있다. 1794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완공하였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상징하는 의미이다. 장안문 누각의 지붕은 우진각 지붕으로 웅장한 위엄을 주고 있으며, 서울의 국보 1호 숭례문보다도 큰 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이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 수원화성 북쪽 대문 장안문 [09:11]

 

▲ 아내는 장안문 쪽으로 내려가고 [09:16]

 

▲ 수원화성 화홍문 [09:20]


09:21   보물 제1709호인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건물을 지났다. 길은 잠시 차도 쪽으로 내려갔다 다시 왼쪽으로 올라갔다. 동장대 오른쪽으로 감아돌자 그룹으로 이루어진 관광객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모두 일본인들이었다. 오늘이 광복절인데 일본인 관광객을 만나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북노대를 지나 게속 성벽을 따라 걸었다. 동남각루에서 성벽길에 내려와 팔달문 앞에 도로를 통해 수원 화성행궁 정문 앞으로 갔다.


수원 방화수류정(동북각루)

 

수원화성 방화수류정은 1794년 10월 19일 완공되었다. 주변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과,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도 함께 수행하는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조물이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 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를 가지고 있어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용연, 화홍문과 더불어 화성의 백미로 평가된다. 방화수류정은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역사적, 건축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 보물 제1709호인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09:21]


북암문(北暗門)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내어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하여 설치된 문으로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 북암문은 방화수류정과 각건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성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좌우 성벽을 쌓았다. 1796년(정조 20년) 3월 27일에 완공되었다.


▲ 수원화성 북암문 [09:21]

 

▲ 감아 도는 성벽이 보기에 좋다 [09:22]


동북포루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동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6년(정조 20) 5월 15일 완공되었다. 이곳의 지세가 주변보다 높아서 동암문과 동장대,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엄호할 수 있는 위치이다. 은거한 선비들이 쓰는 모자인 각건과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각건대하고 하였다.


▲ 수원화성 동북포루 [09:23]


동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내어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하여 설치된 문으로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 동암문은 동장대의 서쪽 116보 거리에 있으며, 문의 구조는 문 위에 벽돌을 깔고 오성지와 커다란 둥근 지붕을 설치하였다. 1796년(정조 20) 3월 25일 완공하였다.


▲ 수원화성 동암문 [09:26]


동장대(연무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동장대는 1795년(정조 19) 7월 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 25일 완성하였으며, 무예를 수련하기에 연무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곳은 지형이 높지는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좋은 군사요충지이다.


▲ 수원화성 동장대 [09:28]

 

▲ 성벽을 따라 나 있는 길 [09:31]


동북공심돈

 

공심돈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 나타났다. 화성에는 서북공심돈, 남공심돈, 동북공심돈 등 세 개를 만들었다. 동북공심돈은 1796년(정조 20) 7월 19일 완성되었으며 그 형태가 커다란 둥근 원의 모습으로 화성 성곽 내에서 가장 특징이 있는 건물의 하나이다. 동북공심돈 내부는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거쳐 꼭대기에 오르게 되어 있기에 소라처럼 생겼다고 하여 일명 '소라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수원화성 동북공심돈 [09:33]

 

▲ 수원화성 동북노대 [09:33]


봉돈

 

1796년 6월 17일 완성된 수원화성 봉돈은 일반적인 봉수대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시설로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화성 몸체 위 성벽에 맞물려 있고, 재료는 벽돌을 활용하였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마치 예술작품처럼 정교한 수원화성 대표 시설이다. 평상시 남쪽 첫 번째 화두(횃불구명)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올려 용인 석성산과 흥천대로 신호를 보내고 다른 4개의 횃불 구멍은 위급한 일이 없으면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


▲ 수원화성 봉돈 [09:44]


10:02   아내와 다시 만나 화성행궁을 둘러보았다. 입장료 1,500원씩을 내고 들어가 이영애와 사진도 찍고 투호도 했다. 화성행궁은 역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장금', 이산', '무사 백동수', '뿌리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옥탑방 왕세자', '왕의 남자' 등의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화성행궁을 모두 둘러본 후 선우와 만나기로 한 제부도를 향해 차를 몰았다.

 

제부도로 가는 길, 국지성 호우가 내려오는지 바람이 세게 불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하늘에서 구멍이 난 듯 빗줄기가 쏟아진다. 엄청나다. 갯벌 위에 만들어진 도로를 따라 제부도로 들어갔다. 선우와 만났는데 비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먼저 대부도에 예약한 펜션으로 가기로 했다. 제부도에서 대부도로 가는 길, 거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진다. 비상등을 켜고 그냥 앞서가는 선우 차만 따라갈 뿐이다. 


조선행궁 건축의 백미, 화성행궁

 

사적 제478호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되었다. 수원부 관아와 행국으로 사용되다가 1794년부터 96년(정조 18년~20년)에 걸쳐 진행된 화성축성 기간에 화성행궁을 확대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륭원(현재의 융릉)을 13차례나 찾았던 정조는 참배 기간 내 화성행궁에 유숙하였다.

 

건림 당시에는 600여 칸으로 정궁 형태를 이루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행궁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와서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 1980년대 말, 뜻있는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마침내 화성행궁 1단계 복원이 완료되어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하게 되었다.


▲ 수원 화성행궁 입구 [10:02]

 

▲ 화성행궁 안 대장금 촬영장소에서 이영애와 함께 [10:03]

 

▲ 화성행궁 안 대장금 촬영장소에서 이영애와 함께 [10:03]


느티나무 소원빌기

 

화성행궁의 느티나무는 600년 이상된 노거수로 화성 성역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온 신령스러운 나무이다. 영목, 신목, 규목이라고 불리어 왔으며 예부터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목신의 노여움을 사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였다. 또한 이 느티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 수령이 600년 넘은 느티나무 [10:04]

 

▲ 투호를 한 번 해보는데 [10:05]

 

▲ 잘 안 들어가네 [10:06]

 

▲ 화성행궁 경내에서 [10:08]

 

▲ 수원 화생행궁 정문 신풍루 [10:10]

 

▲ 제부도 차 안에서 찍은 사진: 밖에는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다 [11:26]

 

 

 


12:30   구봉도 아라펜션에 도착했다. 목적지가 대부도인 줄 알았더니 실제로는 대부도와 붙어 있는 구봉도였다. 두 사람이 사용하는 방은 복층구조로 되어 있는데 아랫층은 거실, 윗층은 침실이었다. 그리고 우리 방은 도로쪽 선우-선희 방은 바다쪽이었다. 일단 짐을 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펜션 주인이 구봉도에는 좋은 음식점이 없다며 대부도에 있는 아는 집까지 직접 차로 데려다 준다. 친절한 분이다.

 

회와 조개찜을 같이 먹을 수 있는 12만 원짜리 모듬 세트를 시켰다. 비는 거의 그쳐 조금씩 흩뿌리고 있다. 술맛 나는 날씨다. 네 명이 모두 술을 잘 마시니 잔 돌아가기가 바쁘다. 부어라, 마셔라. 바다가 보이는 창문 밖에 갈매기들이 모여 들어 줄을 서 있다. 뭐지? 아,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이구나. 한라산 백록담에 있는 까마귀, 오대산 적멸보궁에 있는 다람쥐, 제주도에서 우도를 갈 때 따라 붙는 갈매기처럼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갈매기들었다.


▲ 구봉도 아라펜션 [12:32]

 

▲ 대부도에 있는 횟집에서 [13:19]

 

▲ 창  밖에 갈매기들이 먹을 것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13:30]

 

▲ 회가 끝나고 지금은 조개찜을 먹는 시간 [14:04]

 

▲ 아라펜션 2층은 침실 [15:19]

 

▲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15:19]

 

▲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15:40]

 

▲ 시원한 냉커피 한 잔 [15:54]


16:10   펜션에 돌아와 적당히 휴식을 취한 다음 바닷가로 나왔다. 비가 그친 해변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곧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이 바닷물 속으로 뛰어 든다. 작은 스티로폼 조각을 하나씩 구해서 수영을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마냥 즐거워하는 아내, 아들, 며느리를 보고 있노라니 내 기분도 즐겁다. 행복이 뭐 별 건가. 즐거워하는 가족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숙소인 아라펜션 앞에서 [16:11]

 

▲ 일단 바닷가를 한 번 거닐고 [16:12]

 

▲ 스티로폼 부표는 뭐 하려고? [16:14]

 

▲ 구봉도 펜션 앞 바다에서 즐거운 수영 [16:15]

 

▲ 구봉도 펜션 앞 바다에서 즐거운 수영 [16:16]

 

▲ 구봉도 펜션 앞 바다에서 즐거운 수영 [16:17]

 

▲ 구봉도 펜션 앞 바다에서 즐거운 수영 [16:20]

 

▲ 구봉도 펜션 앞 바다에서 즐거운 수영 [16:37]

 

▲ 구봉도 펜션 앞 바다에서 즐거운 수영 [16:38]

 

▲ 신나는 바다 수영을 마치고 [16:47]


19:25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와 보니, 서쪽으로 해가 지면서 하늘과 바다에 붉은 물감이 칠해지기 시작했다. 점심 나절에 그렇게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더니 지금은 낮게 드리워진 구름 사이로 해가 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씩 지날 때마다 하늘과 구름과 바다의 색깔이 변하고 있다. 그것도 환상적인 색으로. 장관이다. 대마도 여행을 할 때 보았던 일출 광경도 정말 장관이었는데 오늘의 일몰 광경도 그렇다.

 

바다와 노을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슈퍼에서 사 온 고기와 소시지를 굽기 시작했다. 펜션에서 고기를 구을 수 있게 자리를 만들고 불판과 숯을 제공하면서 2만 원의 경비를 받고 있었다. 점심에 이어 이번에도 어김 없이 술잔이 바쁘게 돌아간다. 좋은 사람과 좋은 분위기와 좋은 환경에서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그냥 술술 넘어간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구봉도의 밤은 서서히 깊어 갔다.


▲ 붉은 빛이 비치는 서쪽 하늘과 바다 [19:25]

 

▲ 노을이 구름과 어울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19:27]

 

▲ 노을이 지는 바닷가에서 [19:28]

 

▲ 자, 이제부터 요리에 들어갑니다 [19:45]

 

▲ 노을이 지고 있는 저녁 바다 [19:45]

 

▲ 환상적인 색깔의 저녁 노을 [19:48]

 

▲ 자, 한 잔 합시다 [19:59]

 

▲ 선우-선희 부부 [19:59]

 

▲ 분위기가 화기애애합니다 [19:59]

 

▲ 아직도 저녁 노을이 남았네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