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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국내 섬旅行

2012.06.30. [국내 섬旅行 29] 전북 군산 선유도

by 사천거사 2012. 6. 30.

 

고군산군도 선유도 여행기

  

 

일시: 2012년 6월 30일 토요일 - 7월 1일 일요일

장소: 선유도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코스: 청주 → 군산 → 선유도 → 군산 → 채만식문학관 → 신성리 갈대밭 청주

회원: 청심회원 7명

 

  

 

 

선유팔경

 

선유낙조 - 서해바다 한가운데 점점이 떠있는 조그만 섬과 섬 사이의 수평선으로 해가 질 때, 선유도의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불바다를 이루어 황홀한 광경을 연출하는데,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아름다움은 오래오래 기억되는 아름다움이다.

삼도귀범 - 섬 주민들에게 항상 만선의 꿈과 기대를 안겨주는 것은 물론 세 섬이 줄지어 있어 모습마저 아름답다. 세 섬은 무인도로 무녀도에 속해 있으나 선유도 앞마을을 돌아서는 어귀에 서 있고 갈매기와 물오리 등 바닷새의 천국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만선을 이룬 돛배가 깃발을 휘날리며 돌아온 다 하여 삼도귀범이라 했다.

월영단풍 - 신시도에는 해발 199m의 월영봉이 있어 또 하나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가을철에 신시도 앞바다를 지날때면 월영봉의 단풍이 한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답다. 특히 월영봉은 신라시대의 대학자 최치원 선생이 절경에 반하여 바다를 건너와 이곳에 머물며 글을 읽으며 잠시 살았다는 곳이다.

평사낙안 - 선유도 마을 뒷산에서 망주봉을 바라보면 은빛의 모래사장이 보이고, 가운데에 잔디밭이 있고 수령을 알 수 없는 팽나무 한 그루가 자리잡고 있는데 4개의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있고, 모래 위에 내려앉은 기러기 형상과 같다 하여 평사낙안이라 불려졌고 선유 8경중의 하나가 되었다.

명사십리 - 선유도해수욕장의 방조제 둑에는 해당화가 만발하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투명하고 유리알처럼 고운 모래가 십리에 걸쳐 깔려있는 모습을 달이 밝은 밤에 바라보면 세상의 시름을 잊을 만한 아름다움이 서린다.

망주폭포 - 망주봉은 바위로만 이루어진 2개의 산봉우리가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북쪽을 향해 서 있다. 젊은 남녀부부가 임금님을 기다리다 그만 굳어져 바위산이 되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해발 152m의 이 봉우리가 여름철에 큰비가 내리면 큰 망주봉에서 7∼8개의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장관을 이룬다.

장자어화 - 장자어화는 고군산도민의 자랑이었고, 이곳이 황금어장임을 말해주는 상징이다. 과거에는 선유도 본 마을 뒤에 있는 장자도를 중심으로 이 곳에서 많이 나던 조기를 잡기 위해 수백척의 고깃배들이 밤에 불을 켜고 작업을 하면 주변의 바다는 온통 불빛에 일렁거려 장관을 이루었으며 지금도 주변에 어장이 형성되면 볼 수 있지만 자주 보지는 못한다.

무산십이봉 - 고군산의 방벽역할을 하는 방축도와 말도 등 12개 섬의 산봉우리가 마치 투구를 쓴 병사들이 도열하여 있는 모습이라 하여 무산십이봉이라 했으며, 선유봉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면 하나의 병풍 또는 적을 막기 위해 배치된 무사들로 보인다.

 

2012년 6월 30일 토요일

 

10:00   오늘은 청심회에서 군산에 있는 선유도로 1박 2일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 밖을 보니 백 몇 년만의 가뭄에 탄 국토를 흠뻑 적셔주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와도 여행은 간다. 군산에서 선유도로 가는 배도 뜬단다. 내일은 날이 맑다고 하니, 모처럼의 단비인데, 오늘 하루 쯤은 비를 맞아도 괜찮으리라. 아니 흠뻑 젖어도 좋으리라.

 

집결지인 충북고 체육관 앞으로 가니 이미 회원들이 모두 도착했 있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개인사정으로 참가를 못한 박운용 회원 외에 7명이 이방주 회원 차와 내 차에 나누어 타고 체육관 앞을 출발했다. 동공주나들목에서 당진상주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비가 오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도로에 차가 별로 없다. 공주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했다.

 

서해안고속도로 군산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군산항연안여객터미널로 차를 몰았다. 비는 아침보다 많이 잦아들었지만 계속 추적거리고 있다. 여객터미널에 도착해 예매권을 승선권으로 교환했다. 예매는 했지만 오늘 상황으로는 그냥 와도 표가 남아돌아 갈 것 같다. 3시 10분에 출발하는 배라 시간도 많이 남고 해서 우선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터미널 근처에는 마땅한 음식점이 없어 차를 몰고 시내로 나왔다. 적당한 곳을 물색하다 알탕과 내장탕을 하는 곳으로 들어가 음식을 시켰는데 밑반찬이 보통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여간 전라도 지방은 음식맛이 좋기도 하지만 인심도 좋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터미널로 돌아와 승선할 때를 기다렸다. 3시 10분 쾌속 여객선이 선유도로 가는 막배라서 타는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모두 날씨 때문이다.   

 

▲ 당진상주고속도로 공주휴게소 [11:09] 

 

▲ 군산시에서 점심 [13:17] 

 

▲ 알탕과 내장탕의 밑반찬이 많다 [13:17] 

 

▲ 군산항 연안여객터미널 [14:00] 

 

▲ 터미널 안에서 승선을 기다리는 중 [14:11] 

 

▲ 운항시간표와 운임시간표 [14:14] 

 

▲ 아케이드 지나 대기중인 배로 [14:56] 

 

▲ 선유도로 가는 쾌속 여객선 코스모스 [14:56] 

 

▲차창 밖으로 비가 오고 있는 국제여객터미널이 보인다 [15:15]

 

15:15   쾌속 여객선 코스모스호가 출발했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배가 크게 요동을 치지는 않는다. 군산항을 벗어난 배가 새만금 방조제를 왼쪽에 두고 고군산군도를 향하여 나는 듯 달린다. 갑판이 없는 쾌속선 선실에는 30명도 채 안 되는 승객들이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못 달려 선유도 선착장으로 서서히 배가 들어갔다.

 

선착장에 올라 예약을 한 민박집 차를 찾았다. 몸집이 건장한 중년의 한 남자가 '으뜸횟집'이란 광고판으로 잔뜩 치장한 카니발을 대기시켜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지나 좁은 산길을 따라 달린다. 교행이 불가능한 굽은 길을 잘도 달린다. 우리 숙소는 선유3구 남악리에 있었다. 시골 민박집 냄새가 풀풀 풍기는 방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니 주인 아저씨가 25인승 버스에 타라고 한다. 버스로 간단한 관광을 시켜주시겠단다.

 

버스에 올랐다. 겉모습도 그러했지만 버스 안은 정말 가관이었다. 네팔이나 캄보디아 같은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버스였다. 그런데 이 버스가 더럽고 낡았다는 생각보다는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러나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 아저씨의 운전 솜씨였다.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조금도 부딪치지 않고 능숙하게 통과하는 기술은 가히 신의 경지였다.

 

▲ 쾌속 여객선 코스모스 내부 [16:01] 

 

▲ 선유도 선착장에 도착 [16:12] 

 

▲ 민박을 겸한 으뜸횟집 주인이 차를 대기시켜 놓았다 [16:13] 

 

▲ 우리 민박집이 있는 선유3구 남악리 마을 [16:28] 

 

▲ 캄보디아에서나 볼 수 있는 버스 [16:29] 

 

▲ 차창 밖으로 바라본 망주봉 [16:49]

 

16:54   선유도어촌체험마을 옆, 빨간색 선유도항 방파제 등대와 망주봉이 잘 보이는 곳에 버스가 섰다.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빨간색 등대는 손바닥 모습의 특이한 형태인데 소망을 기원하는 모양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등대 건너 편으로 보이는 두 개의 봉우리 중에서 오른쪽 것이 망주봉인데 정상부가 운무에 쌓여 있었다.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명사십리를 지난 버스가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간다.

 

선유도항 방파제 등대

 

이 등대의 의미는 "꿈이 이루어지는 등대"로서 이곳을 찾는 여러분들의 모든 꿈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는 모양을 형상화하였습니다. 고군산군도의 화려한 경관 속에 망주봉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는 해질녘의 부둣가! 천년의 빛, 희망의 등대에서 행복한 내일을 마음껏 꿈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 오른쪽 망주봉 정상을 운무가 덮고 있다 [16:54] 

 

▲ 빨간 등대가 보이는 곳에서 [16:54] 

 

▲ 선유도항 방파제 등대를 향하여 [16:55] 

 

▲ 바다 건너로 보이는 망주봉 [16:57] 

 

▲ 선유도항 방파제 등대 [16:57] 

 

▲ 차창 밖으로 바라본 망주봉 [17:04]

 

17:12   장자대교 앞에 버스가 섰다. 선유대교나 장자대교는 카트와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도보, 자전거, 오토바이만 통행이 가능하다. 아저씨가 한 시간의 여유를 주면서 구경을 하라고 한다. 선유도와 장자도를 이어주는 장자대교를 건너면서 바라보는 대장도의 대장봉이 멋 있다. 장자대교를 건너 바라보는 선유봉도 자태가 단아하다. 비는 거의 그쳤는데 오늘 같은 날씨가 섬에 있는 바위 봉우리의 모습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장자도 유래

 

장자도는 원래 가재미와 장재미를 합하여 부른 이름이라고 한다. 장자도를 풍수지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뛰는 말 앞의 커다란 먹이 그릇처럼 장자봉이 우뚝 솟아 있는 형상으로 눈 앞의 선유도가 그 맥을 감싸안고 있어 큰 인재가 많이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장자대교는 1986년 12월에 완공되었는데 길이 268m, 폭 3m, 높이 30m로, 이 다리를 건너면 보이는 섬의 서쪽 바닷가에는 우뚝 솟은 사자 모양의 바위가 있어 일명 사자바위라고 한다. 이 바위는 서해를 바라보고 있는 형태로 먼 바다로부터 오는 액운을 막아준다는 전설이 있다. 이 장자도는 지금은 선유도에 비해 작은 규모의 섬이 되었지만 약 60여년 전만 해도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섬이었다. 그것은 장자도항이 천연적인 대피항으로 갑작스런 태풍이 불어도 이곳으로 피하면 재해를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유팔경 중 하나인 장자어화는 장자도가 번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장자도 앞바다에서 밤에 불을 켜고 고기를 잡던 모습을 말한다.

 

 ▲ 장자대교에서 바라본 망주봉 [17:13] 

 

▲ 장자대교를 건너 장자도로 가고 있는 회원들 [17:14] 

 

▲ 멀리 대장봉이 보인다 [17:19] 

 

▲ 대장봉의 또 다른 모습 [17:21] 

 

▲ 장자대교를 건너서 바라본 선유봉 [17:23] 

 

▲ 선유도와 장자도를 이어주는 장자대교 [17:23] 

 

▲ 썰물 때라 물이 빠져 나갔다 [17:25] 

 

▲ 해변에 배가 있는 바다 풍경 [17:28] 

 

17:28   전설이 깃들어 있는 할매바위 가는 길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진행을 하니 대장도로 건너갈 수 있는 대장교가 있고, 그 뒤로 펜션 건물이 있고, 그 뒤로 내일 올라갈 예정인 대장봉이 우뚝 솟아 있다. 발걸음을 돌려 장자도 산책로로 올라갔다. 오른쪽으로 장자도리 마을과 대장봉이 잘 보이고 정면으로 장자대교도 보인다. 장자대교를 건너니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할매바위 가는 길 이정표 [17:28] 

 

▲ 대장교를 건너기 전에 바라본 대장봉 [17:32] 

 

▲ 장자도 산책로 [17:46] 

 

▲ 장자도에 있는 장자도리 마을과 그 뒤로 대장봉 [17:50] 

 

▲ 박해순 회원 [17:53] 

 

 ▲ 나도 한 장 찍고 [17:53] 

 

▲ 장자대교가 보이는 선유도 풍경 [17:55]

 

18:25   숙소에 도착했다.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 민박집 식당에서 회잔치가 벌어졌다. 한 사람이 2만 5천 원을 내면 자연산 회를 무한으로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광어, 우럭, 놀래미, 갑오징어, 붕장어, 해삼 등이 계속 들어왔다. 신선한 회맛에 소줏잔이 연신 돌아간다. 고맙게도, 저녁식사 경비는 얼마 전에 아들을 결혼시키고 또 이틀 후면 회갑을 맞는 이방주 회원이 내주셨다. 만수무강하시기를 회원 모두의 이름으로 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선유도의 밤은 깊어 갔다.

 

▲ 선유3구 남악리 숙소 앞 해안 풍경 [19:15] 

 

▲ 선유3구 남악리 숙소 앞 해안 풍경 [19:16] 

 

▲ 민박집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회를 푸짐하게 [19:43]

 

 

2012년 7월 1일 일요일

 

 

07:00   눈을 부비며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아침은 소라죽이었는데 어제 먹은 술에 찌든 속을 달래는데 그만이었다. 특히, 적당히 삭은 총각김치의 맛은 압권이었다. 아침 식사 경비는 역시 올해에 회갑을 지낸 박재규 회원이 부담했다. 만수무강하소서. 그렇게 아침을 먹고 액젓 한 병씩을 집에 가져갈 선물로 챙기고 숙소를 나섰다. 주인 아저씨가 전용 버스로, 다른 손님들을 내려주기 위해 어제 들렀던 등대가 있던 곳들 들른 다음, 우리를 장자대교까지 태워다 주었다. 감사. 다리가 불편한 김용승 회장님과 남주완 회원을 제외한 다섯 명의 회원이 대장봉과 선유봉 산행에 나섰다.

 

▲ 선유 방파제 등대가 보이는 곳 [07:46] 

 

▲ 선유도 망주봉 [07:46] 

 

▲ 어제 왔던 곳에 오늘 또 왔다 [07:47] 

 

▲ 차창 밖으로 바라본 망주봉 [07:50]

 

 

07:58   대장봉-선유봉 산행기 참조

 

10:57   선착장 옆에 있는 선유실비횟집에 김용승, 남주완 회원 두 분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소라와 멍게를 썰어놓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승선 시간이 50분 정도 남아 있어 대장봉과 선유봉 산행을 한 회원들도 합세하여 회와 소라를 안주로 시킨 다음 맥주와 소주를 마셨다. 여행은 먹는 재미가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시간을 죽인 다음 승선 시간이 가까워져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 선착장 옆에 있는 선유실비횟집 [10:57] 

 

▲ 선유실비횟집에서 광어회, 소라, 멍게를 안주로 술 한 잔 [11:21] 

 

▲ 고군산군도 안내판 [11:36] 

 

▲ 군산 라이딩 코스 안내판 [11:36] 

 

▲ 선착장에서 바라본 선유도와 무녀도를 이어주는 선유대교 [11:36] 

 

▲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군산행 제11화양호 [11:37] 

 

11:40   군산으로 가는 제11화양호에 올랐다. 쾌속선이 아니라 시간은 20분 정도 더 걸리지만 바깥 경치를 둘러볼 수 있는 갑판이 있어 좋다. 시간이 애매하다 보니 군산으로 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11시 50분에 배가 출항하자 2층 갑판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없다. 멀어져 가는 선유도의 망주봉, 대장봉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베트남의 하롱베이와 풍광을 비교할 때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참 아름다운 나라다.

 

▲ 제11화양호 선실 풍경 [11:43] 

 

▲ 점점 멀어져 가는 선유도 선착장 [11:54]

 

▲ 선유도 망주봉 [11:55] 

 

▲ 선유도 망주봉 [11:55] 

 

▲ 명사십리 뒤로 대장봉이 보인다 [11:56] 

 

▲ 대장봉과 망주봉 [11:56] 

 

▲ 망주봉과 대장봉 [12:00] 

 

▲ 신시도와 무녀도를 이어줄 교각이 높이 솟아 있다 [12:01]

 

12:01   오른쪽으로 새만금 방조제를 이어주는 고군산군도의 신시도가 보인다. 대각산도 보인다. 내년이면 신시도에서 차를 타고 무녀도를 거쳐 선유도에 갈 수 있다. 차로 5분이면 가는 거리를 지금은 배로 1시간 이상 걸려 가고 있다. 갑판에 있는 벤취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군산항이 가깝다. 주 3회 군산과 중국의 석도(시다오)를 오가는 정기여객선이 국제여객터미널 앞에 정박해 있다.

 

배에서 내려 주차된 차에 올랐다. 주차료를 지불하고 박재규 회원의 요청에 의해 군산 수산물종합센터로 차를 몰았다. 어제와는 달리 날이 덥다. 수산물종합센터에서 간단한 수산물을 구입하고 센터 2층에 있는 음식점에서 해물칼국수를 점심으로 시켰다. 예전에 청주 사람들이 많이 찾던 곳이라 그런지 '청주횟집', '충청도횟집' 등의 상호가 눈에 띈다. 홍합을 듬뿍 넣은 칼국수는 맛이 괜찮은 편이었다.

 

▲ 신시도의 대각산 정상이 보인다 [12:01] 

 

▲ 세인트 로렌스 강 하구의 천 섬과 같은 섬 [12:07] 

 

▲ 빨간 등대가 있는 군산항 풍경 [13:03] 

 

▲ 군산항 국제여객터미널 [13:09] 

 

▲ 군산항 연안여객터미널 [13:09] 

 

▲ 군산항에 도착한 제11화양호 [13:10] 

 

▲ 군산 수산물종합센터 [13:38] 

 

▲ 군산 수산물종합센터 2층 회센터에서 해물칼국수로 점심 [14:21] 

 

15:30   채만식 문학관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우연히 '탁류'라는 장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문체나 내용이 아주 좋아서 그 소설을 쓴 '채만식'이란 작가가 늘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단촐하게 꾸며진 문학관을 둘러보고 금강하구둑을 건너 한산면에 있는 신성리 갈대밭으로 차를 몰았다. 이 갈대밭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신성리 갈대밭으로 가는 길은 한창 확장공사가 진행중이었다.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예전에 없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언덕에 전통명주인 '소곡주' 판매점도 들어서 있었다. 금강 하구 제방으로 올라갔다. 눈 앞에 넓은 갈대밭이 펼쳐져 있는데 장관이다. 신성리 갈대밭은 순천만 갈대밭, 경기 안산 갈대습지, 전남 해남 고천암호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갈대밭 중 하나에 속해 있다.

 

채만식

 

소설가 · 극작가. 본관은 평강(平康). 호는 백릉(白菱) · 채옹(采翁). 아버지는 규섭(奎燮)이며, 어머니는 조우섭(趙又燮)이다. 6남3녀 중 다섯째아들이다. 유년기에는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임피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22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그해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稱田大學)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에 입학하였으나 1923년 중퇴하였다. 그 뒤 조선일보사 ·동아일보사 · 개벽사 등의 기자로 전전하였다. 1936년 이후는 직장을 가지지 않고 창작생활만을 하였다. 1945년 임피로 낙향하였다가 다음 해 이리로 옮겨 1950년 그곳에서 폐결핵으로 죽었다. 1920년 은선흥(殷善興)과 혼인하여 두 아들을 두었고, 그 뒤 김씨영(金氏榮)과 동거하여 2남 1녀를 낳았다.

 

1924년 단편〈새길로〉를《조선문단》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한 뒤 290여편에 이르는 장편 ·단편소설과 희곡 · 평론 · 수필을 썼다. 특히, 1930년대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것들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장편으로는〈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 ·〈탁류(濁流)〉(1937)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1938) ·〈금(金)의 정열〉(1939) ·〈여인전기〉(1944) 등이 있으며, 단편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레디메이드 인생〉(1934) ·〈치숙(痴叔)〉(1938) ·〈패배자의 무덤〉(1939) ·〈맹순사〉(1946) ·〈미스터 방(方)〉(1946) 등을 들 수 있다. 희곡으로는〈제향날〉(1937) ·〈당랑(螳螂)의 전설〉(1940)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당시의 현실 반영과 비판에 집중되어 있다. 식민지 상황하에서의 농민의 궁핍, 지식인의 고뇌, 도시하층민의 몰락, 광복 후의 혼란상 등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그 근저에 놓여 있는 역사적 · 사회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작품기법에 있어 매우 다양한 시도를 한 바 있는데, 특히 풍자적 수법에서 큰 수확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대화소설'이라는 형식은 그가 만들어낸 특이한 것이다. 그가 택한 소재와 작중인물은 다양하였지만 일관된 관점은 그들이 시대와 어떠한 관련을 맺고 어떻게 변모하는가 하는 점, 그리고 시대의 정의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일제강점기의 작가 가운데 가장 투철한 사회의식을 가진 사실주의작가의 한 사람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는 그에 대한 연구가 드물었으나 1970년대에 들어와 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연구업적도 급격히 많아지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중편소설 '소년은 자란다' ·'과도기, 희곡 '가죽버선' 등을 비롯한 많은 유작들이 발굴, 공개되기도 하였다. 그 자신이 쓴 '자작안내(自作案内)'(青色紙 5호, 1939)는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그의 작품은 1989년에 완간된 《채만식전집》(創作과 批評社)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 채만식 문학관 전경 [15:30] 

 

▲ 백릉 채만식 문학관 [15:33]

 

신성리 갈대밭

 

서천군과 군산시가 만나는 금강 하구에 펼쳐져 있는 갈대밭으로, 너비 200m, 길이 1.5km, 면적 10만여 평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며, 제방도로에 올라서면 드넓은 갈대밭이 눈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한산면 면소재지에서 강경 쪽으로 300m가량 지나 삼거리에서 금강 쪽으로 나있는 작은 길을 따라 3㎞쯤 가면 있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곰개나루터(진포)라고 불렀던 곳으로, 고려 말 최초로 화약을 가지고 왜구를 소탕시킨 진포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지역적으로 금강 하류에 위치한 까닭에 퇴적물이 쉽게 쌓이고 범람의 우려로 인해 강변 습지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 무성한 갈대밭이 조성되었다. 한국의 4대 갈대밭으로 꼽히는 동시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갈대 7선에 속한다. 각종 교육기관의 자연학습장은 물론 전국 사진작가들의 촬영장소로 인기 있으며, 최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이전에는 단순히 무성한 갈대숲이었으나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전체 갈대밭 면적의 2~3% 정도만 '갈대공원'으로 조성해 개방하고 나머지는 보존하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갈대공원은 양옆으로 갈대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2㎞ 남짓한 갈대밭 산책길에 박두진, 김소월, 박목월 등 서정시인들의 시를 써놓은 통나무 판자가 걸려 있다.

 

1990년 금강하구둑이 완성됨에 따라 근처에 넓은 담수호가 조성되면서 청둥오리를 비롯한 오리류, 고니류, 기러기류, 괭이갈매기 등 매년 40여 종, 10만 마리의 겨울철새들이 찾아드는데, 특히 12월과 1월 사이에 절정을 이룬다. 인근에는 하구둑 유원지 외에, 월명공원(군산시), 춘장대해수욕장(서천군), 한산모시관 등 연계 여행지가 많다.  

 

▲ 신성리 갈대밭 표지판 [16:17] 

 

▲ 금강변에 펼쳐져 있는 신성리 갈대밭 [16:17] 

 

▲ 신성리 갈대밭 종합안내판 [16;17] 

 

▲ 제방을 따라 나 있는 길 [16:18] 

 

 ▲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장소였던 신성리 갈대밭 [16;20]

 

16:21   키보다 큰 갈대밭 속으로 들어갔다. 갈대숲에는 여러 갈레의 길이 나 있는데 이정표를 보고 자신이 선택해서 걸으면 된다. 흙으로 된 길도 있고 데크로 만들어 놓은 길도 있다. 바다처럼 넓은 금강 하구를 본 후 데크 길을 따라 다시 제방으로 올라왔다. 자, 이제 청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동서천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 청양 간이휴게소에 한 번 들은 다음 내쳐 청주까지 달렸다. 6시 40분에 충북고 체육관 앞에 도착,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것으로 1박 2일 동안의 선유도 여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신성리 갈대밭 갈레길 이정표 [16:22] 

 

▲ 갈대 사이로 나 있는 길 [16:22] 

 

▲ 데크로 길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고 [16:25] 

 

▲ 광활한 금강 하구 [16:25] 

 

▲ 갈대숲과 금강 하구 [16;28]

 

▲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들 [16:28]

 

▲ 신성리 갈대밭에서 박춘증 회원과 [16:31] 

 

▲ 갈대밭 가운데에 만든 연꽃 연못 [16:31] 

 

▲ 신성리 갈대밭 주차장 옆 쉼터에서 [16:40]

 

▲ 청양 간이휴게소에서 [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