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종주기
◈ 일시: 2012년 6월 20일 수요일
◈ 장소: 북한산성 / 경기 고양-서울 은평
◈ 코스: 북한산성분소 → 시구문 → 북문 → 위문 → 백운대 → 용암문 → 대동문 →
보국문 → 대성문 → 대남문 → 청수동암문 → 부왕동암문 → 가사당암문 →
북한산성분소
◈ 거리: 14km
◈ 시간: 7시간 44분
북한산성
사적 162호로 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다. 백제 개루왕 5년(132)에 세워진 곳으로,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현종이 고려 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우왕 13년(1387)에 성을 다시 고쳐지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 외곽을 고쳐짓자는 의견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지었다.
성의 규모는 대서문, 동서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불을 피우던 곳으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성내에는 중흥사를 비롯한 12개의 사찰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개의 창고가 있었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여장은 허물어 졌고, 대서문과 장대지·우물터·건물터로 생각되는 방어시설 일부가 남아 있다.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
05:55 오늘은 개교기념일이라 학교를 쉬는 날이다. 모처럼 주중에 휴일이 생겨 북한산성 종주 산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주말의 북한산은 사람이 너무 많아 걸어 다니기에 불편하고 그에 더하여 시간도 많이 걸린다. 따라서 오늘 같은 날이 북한산 산행을 하기에는 딱 좋은 날이다. 북한산성 종주는 북한산성을 이루고 있는 12개의 문을 거치는 산행인데 오르내림의 경사가 심해 꽤 힘이 드는 산행 코스로 알려져 있다.
오늘은 직접 차를 몰고 가지 않고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려고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오늘 전국의 택시가 파업을 하는 날이라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아파트 앞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타고가다 상당공원에서 내린 후 지하상가 앞에서 환승을 하는데 분리승차 승강장을 몰라 헤매는 일이 벌어졌다.
▲ 버스승강장에서 바라본 우리 아파트 [05:55]
▲ 청주 시외버스터미널 [06:49]
07:00 7시에 출발하는 동서울행 직행버스에 올랐다.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 넓게 앉아 갈 수 있어 좋았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1시간 30분을 달린 후 버스가 동서울터미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택시가 파업을 해서 그런지 터미널 주변은 한산하다. 대신 길 건너에 있는 지하철 2호선 강변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을지로3가로 가는 지하철 2호선에 올랐다. 청주에서 사용하는 마이비 교통카드를 서울의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아주 편리하게 되었다. 더 좋은 것은 택시 파업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맞은 편 반대쪽으로 가는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을지로3가에서 내려 3호선 대화행 지하철로 환승을 했다. 대화행 3호선도 역시 한산했다.
구파발 역에서 지하철에서 내렸다. 1번 출구로 나가니 바로 버스 승강장이 있는데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북한산을 가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704번이나 34번 시내버스를 타면 되는데 곧 34번 버스가 도착해 올라탔다. 신기한 것은, 지하철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면 환승요금만 받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은 버스와 버스, 버스와 지하철, 지하철과 버스가 서로 환승이 되는 시스템으로 운임체계가 운영되고 있었다.
산성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려야하는데 한 정거장 먼저 내렸다. 물론 촌놈 짓을 했기 때문이다. 북한산국립공원 표지판을 보면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길 양쪽이 온통 음식점과 등산용품 판매점이다. 유명 브랜드의 등산용품점은 모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산행하는 사람들로 한창 붐빌 시간인데 평일이라 그런지 매우 한산하다.
▲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 역 1번 출구 앞 시내버스 승강장 [09:35]
▲ 북한산국립공원 표지석 [09:52]
09:55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지났다. 길이 갈라지고 있는데 왼쪽은 북한산 둘레길 코스고 오른쪽에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과 차도를 이용해서 올라가는 길이 다시 갈라지고 있었다. 일단 계곡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올라갔는데 아무리 봐도 성벽이 있을 지형이 아니다. 이럴 때는 늦기 전에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산행 전체를 망치게 된다.
▲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09:55]
▲ 북한산성 계곡 [10:00]
▲ 북한산성 수문터 [10:05]
▲ 서암사 [10:07]
▲ 북한산성 계곡 [10:11]
10:22 다시 북한산 둘레길이 시작되는 곳으로 돌아왔다. 둘레교 옆에 있는 안내지도를 보니 시구문으로 가는 길이 둘레길을 따라 가다 오른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이런, 아까 왜 이걸 못 보았지? 둘레교를 건너 둘레길을 걷는다. 유유자적이다. 잠시 후 이정표를 보니 원효봉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지 12분 정도 지나 제1문인 시구문(서암문)에 도착했다.
이 시구문은 서울 성곽의 광희문과는 다른 것이다. 이 시구문에서 원효봉능선이 시작된다. 무너진 성벽 오른쪽을 따라 원효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 있었다. 성벽 복원사업을 하지 않아 성돌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더군다나 군사용 시멘트 참호가 성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어 미관상 영 좋지가 않았다. 산성주능선 쪽은 성벽 복원을 했는데 이곳은 아직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었다.
광희문(光熙門)
광희문은 조선시대 서울의 사소문 중 하나로 동남쪽에 있었던 문이다. 광명(光明)의 문이라는 뜻에서 광희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태조 5년(1396) 8월부터 9월까지 행한 2차 도성 수축 공사 때 다른 문들과 함께 누각을 올려 완성했다. 일제강점기에 문루가 망가졌다가 1975년 문을 남쪽으로 옮겨 문루와 함께 복원했다. 광희문을 수구문(水口門)이나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불렀다. 청계천(오간수문)·이간수문이 가까워 수구문이라고 했고, 도성의 장례 행렬이 통과하던 문이어서 시구문이라고도 했다.
다른 서울성곽의 문과 달리 광희문의 원래 문루는 약간 특이했다. 보통의 문은 홍예와 붙어 있는 반면, 광희문의 문루는 나무 기둥으로 연결되는 형식이었다. 광희문에는 도성의 시체 행렬이 종종 통과하곤 했다. 그 이유는 도성의 장례 행렬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이 사소문(四小門)중에서도 소의문과 광희문밖에 없었기 때문(창의문은 산에 있는데다 출입이 불편했고, 혜화문은 닫혀있는 숙정문을 대신해 북문으로 쓰였다)이다. 조선시대 '수구문 돌가루'라고 하여 이 광희문의 돌을 갈아 만든 돌가루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었다. 그렇지만 이는 '아무리 지독한 병마라도 수많은 원귀에 단련된 수구문에는 꼼짝도 못 할 것'이라는 상상력이 만든 미신이다.
▲ 북한산 둘레길 10구간에 있는 둘레교 [10:22]
▲ 북한산 둘레길 내시묘역길구간 이정표 [10:25]
▲ 담벼락에 원효봉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다 [10:27]
▲ 둘레길에서 원효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0:29]
▲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되었다 [10:32]
▲ 원효봉능선이 시작되는 시구문(서암문) [10:41]
▲ 원효암으로 오르다 잠깐 멈추어 서서 [10:44]
▲ 무너진 성돌이 보인다 [10:50]
▲ 산성 중간에 웬 시멘트 군사용 참호? [10:57]
11:03 작은 암자인 원효암이 오른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원효대사가 도를 닦았다는 곳인데 증거는 없다. 암봉으로 되어 있는 원효대에 올랐다. 전망이 좋아 의상봉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능선이 잘 보인다. 속리산의 문장대를 닯은 원효대를 내려와 원효봉으로 가는 길은 성벽의 복원이 이루어져 있었다. 짙은 주황색의 털중나리 한 송이가 나를 반겨준다. 요즘은 털중나리가 제 철을 만났다.
▲ 원효대사가 도를 닦았다는 원효암 [11:03]
▲ 이곳은 복원이 안 되었네 [11:14]
▲ 원효대로 오르는 길 [11:17]
▲ 원효대에서 바라본 의상능선 [11:19]
▲ 속리산의 문장대와 같은 원효대 [11:20]
▲ 복원된 성벽을 따라 [11:22]
▲ 요즘은 털중나리 철이다 [11:23]
11:24 해발 505m의 원효봉에 올랐다. 원효봉 정상은 전망이 좋아 의상능선과 삼각산의 백운대와 만경대가 잘 보였다. 의상능선은 대서문에서 대동문까지의 능선을 말하는데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 중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이 여기에 속해 있다. 삼각산은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를 일컫는다.
원효봉에서 200m 내려오면 북문이다. 여기서 백운대와 산성탐방지원센터 가는 길이 갈라진다. 물론 염초봉을 거쳐 백운대로 갈 수 있지만 암벽지대라 암벽산행 장비를 갖춘 2명 이상이 동행을 할 때만 출입이 허용된다. 백운대 쪽으로 내려가는 길, 나중에야 어찌 되었든 내려가니 좋다. 애란 쉼터를 지나고 상원사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지나고 양쪽에 장승이 서 있는 곳을 통과했다.
삼각산
삼각산(三角山)은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으로서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대(萬鏡臺, 787.0m)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쥐라기 말의 대보화강암(흑운모 화강암 또는 화강섬록암)으로 되어 있으며, 형상을 달리한 화강암 돔(granite dome)으로 되어 있어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돔을 형성하는 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이상에 달하고 있다. 백운대의 정상에는 약 500㎡의 평탄한 곳이 있어 많은 등반객 또는 관광객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만경대의 옛이름은 국망봉이라 호칭되었으며 정상부의 산세는 불규칙하다. 삼각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니, 바로 이 삼각산을 말한다. 그리고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싯귀에 있듯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 헬기장을 겸하고 았는 원효봉 정상부 [11:24]
▲ 원효봉에서 바라본 의상능선 [11:27]
▲ 원효봉에서 바라본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11:28]
▲ 삼각산 쪽으로 까마귀가 날고 있다 [11:32]
▲ 산성탐방지원센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북문 [11:34]
▲ 애란 쉼터 표지판 [11:40]
▲ 계곡으로 내려서서 돌아보니 장승이 서 있다 [11:45]
11:48 백운대로 가는 길과 산성탐방지원센터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내려섰다. 이제 계곡길을 따라 위문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 계속되는 돌길이다. 대동사를 지나 계속 올라간다. 간간이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시간도 그렇고 해서 오른쪽 암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물도 마셨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물이 모자라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다시 출발, 경사 급한 돌길을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대동문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 북한산성계곡과 백운대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1:48]
▲ 왼쪽으로 대동사가 보인다 [11:56]
▲ 위문으로 올라가는 길은 온통 바위 천지다 [11:59]
▲ 쇠줄이 설치된 곳도 있고 [12:16]
▲ 돌길이 끝이 없다 [12:38]
▲ 대동문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2:45]
12:49 세 번째 문인 위문에 도착했다. 위문을 통과하면 백운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백운대 정상까지는 암벽을 올라야 하는데 계단과 쇠줄이 설치되어 있어 오르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된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죽음이다. 암벽을 횡단하여 백운대 정상으로 올라갔다. 다른 산행로는 조용한데 그래도 백운대 정상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 위문 앞에 서 있는 이정표 [12:49]
▲ 해발 725m의 위문 [12:49]
▲ 북한산 큰 바위 얼굴 [12:58]
▲ 백운대 정상으로 올라가는 암벽길 [13:00]
▲ 백운대를 오르다 바라본 만경대 [13:04]
▲ 백운대 암벽을 횡단하는 길 [13:04]
▲ 백운대 정상부의 넓은 바위 [13:06]
▲ 백운대 정상에 있는 통일서원비 [13:09]
13:10 해발 837m의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 사방이 터져 있는 백운대는 천혜의 전망대다. 건너 편 인수봉에서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인수봉 왼쪽으로 숨은벽능선이 그 뒤로 도봉산이 보인다. 인수봉 오른쪽으로는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인다. 사방을 실컷 둘러보고 넓은 바위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다음 조심조심 백운대를 내려왔다.
백운대
높이 836m. 북쪽의 인수봉(仁壽峰), 남쪽의 만경대(萬景臺)와 함께 북한산 고봉 중의 하나이며, 화강암(花崗岩)의 험한 암벽을 노출하고 있다, 산마루는 1000명 가량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암반(岩盤)으로 되어 있으며 기암절벽(奇岩絶壁)의 조망이 일품이다.
등산을 돕기 위한 철사다리가 놓여 있으며, 남쪽 비탈면에는 백운사지(白雲寺址)를 비롯하여 작은 절과 암자들이 산재하고, 아래쪽에는 백운수(白雲水, 일명 萬水)라고 부르는 약수가 솟는다. 또한 등반 코스는 계곡능선을 따라 사방으로 트여 있다. 가장 많이 이용되는 코스는 우이동∼선운각∼도선사∼용암문∼노적봉∼위문∼백운대 코스이다.
▲ 해발 837m의 백운대 정상에서 내가 찍은 사진 [13:10]
▲ 원효봉과 염초봉 [13:10]
▲ 만경대와 노적봉 [13:11]
▲ 노적봉 뒤로 산성주능선이 뻗어 있다 [13:11]
▲ 인수봉 왼쪽으로 숨은벽능선, 뒤로 도봉산이 보인다 [13:13]
▲ 인수봉 뒤로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인다 [13:14]
▲ 태극기가 휘날리는 백운대 정상부 [13:14]
13:38 대동문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갈림길에 다시 도착했다. 데크 길을 따라 왼쪽으로 진행을 하니 곧 백운대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회백색의 화강암 바위가 울퉁불퉁한 남성의 근육미를 자랑하듯 얽혀 있는 백운대의 모습은 가히 압권이었다. 만경대를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은 대부분이 암벽이라 쇠줄이 설치된 지역이 많았다. 산성주능선이 시작되는 용암문에 도착했다. 이곳부터는 성벽 복원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
▲ 바위벽이 아름다운 백운대 [13:41]
▲ 원효봉과 염초봉 [13:49]
▲ 해발 716m의 노적봉 [13:50]
▲ 만경대를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에 설치되어 있는 쇠줄 [13:51]
▲ 해발 716m의 노적봉 아래 이정표 [13:57]
▲ 용암문공원지킴터 가는 길이 갈라지는 용암문 [14:13]
▲ 복원된 북한산성 성벽 [14:15]
▲ 만경대 오른쪽으로 인수봉이 보인다 [14:18]
▲ 산길 옆에 외롭게 피어 있는 털중나리 [14:28]
14:37 산성주능선이 잘 보이는 동장대에 도착했다. 동장대를 내려가니 진달래능선과 아카데미 탐방지원센터 가는 길이 갈라지는 대동문이다. 대동문에서 보국문으로 가는 길, 왼쪽으로 칼바위능선이 갈라지고 있고 칼바위도 보인다. 정릉탐방지원센터와 산성탐방지원센터 가는 길이 갈라지는 보국문, 산성탐방지원센터와 형제봉 가는 길이 갈라지는 대동문, 구기분소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대남문을 차례로 통과했다.
▲ 해발 610m에 있는 동장대 [14:38]
▲ 동장대에서 바라본 산성주능선 [14:39]
▲ 진달래능선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대동문 [14:47]
▲ 칼바위능선 갈림길 이정표 [14:54]
▲ 칼바위능선의 칼바위 [14:54]
▲ 정릉탐방지원센터와 산성탐방지원센터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보국문 [14:59]
▲ 형제봉과 비봉 가는 길이 갈라지는 대성문 [15:19]
▲ 구기분소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대남문 [15:29]
15:37 청수동암문에서 부왕동암문까지 우회로가 나 있다. 물론 문수봉을 올라 부왕동암문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문수봉에서는 비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예전에 문수봉을 올라간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회로를 택해서 걸었다.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우회로는 경사는 좀 덜한지 모르지만 거리는 훨씬 더 멀었다. 청수동암문에서 부왕동암문에 이르려면 나한봉과 나월봉을 넘어야 한다. 그 봉우리에서 보는 주변의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
▲ 문수봉 구간 우회 안내문 [5:37]
▲ 해발 694m의 청수동암문 [15:43]
▲ 비봉능선이 갈라지는 문수봉과 연화봉 [15:45]
▲ 삼각점을 만났다 [15:47]
▲ 의상능선: 나한봉, 나월봉,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 [15:48]
▲ 의상봉,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15:56]
▲ 백운대, 노적봉, 인수봉, 만경대, 용암봉이 보인다 [16:03]
▲ 허물어진 성벽 옆에 털중나리가 피고 [16:22]
16:23 산성탐방지원센터와 부왕사지 가는 길이 갈라지는 부왕동암문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증취봉과 용혈봉, 그리고 용출봉이라는 세 개의 암봉을 넘어야 가사당암문으로 내려갈 수 있다. 이 봉우리들은 암릉미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좌우로 보이는 경치가 압권이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것 같은데 바위 사이사이로 길이 나 있어 봉우리를 통과한다.
▲ 부왕사지 가는 길이 갈라지는 부왕동암문 [16:23]
▲ 증취봉으로 올라가는 암릉길 [16:27]
▲ 증취봉을 오르다 바라본 나월봉 [16:32]
▲ 바위 사이로 나 있는 길 [16:37]
▲ 증취봉에서 바라본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 [16:38]
▲ 해발 581m의 용혈봉 [16:44]
▲ 용혈봉에서 바라본 삼각산 방향 [16:45]
▲ 용출봉과 의상봉 [16:46]
▲ 용출봉을 오르다 바라본 삼각산 방향 [16:51]
▲ 용출봉으로 올라가는 길 [16:54]
16:58 해발 571m의 용출봉에 올랐다.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출발, 앞으로 가야할 의상봉과 오전에 올랐단 원효봉이 잘 보인다. 의상봉 산세도 만만치가 않다. 급경사의 암릉길을 내려가니 가사당암문이 보인다. 이 험한 지형에 어떻게 이런 문을 쌓았을까? 의상봉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으로 국녕사의 동양 최대 합장환희여래불이 보인다. 세계 최대는 아닌 모양이네.
해발 502m의 의상봉 정상에서 마지막으로 삼각산 쪽을 살펴본 후 본격적인 하산에 들어갔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다. 쇠줄을 설치한 급경사의 암벽길이 몇 번 나타나고 그 외에도 대부분이 경사가 심한 돌길이었다. 걸은 시간이 꽤 오래되어 그런지 다리가 조금씩 아파 온다. 그래도 어쩌나. 참고 내려가야지.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 해발 571m의 용출봉에서 [16:58]
▲ 용출봉에서 바라본 의상봉과 원효봉 [17:02]
▲ 가사당암문으로 내려가는 암릉길 [17:05]
▲ 백화사와 국녕사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가사당암문 [17:12]
▲ 국녕사에 있는 동양 최대 합장환희여래불 [17:17]
▲ 해발 502m의 의상봉 [17:22]
▲ 의상봉에서 바라본 삼각산 방향: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용암봉이 보인다 [17:24]
▲ 의상봉에서 내려오는 암벽길 [17:28]
▲ 의상봉을 내려오다 만난 바위 [17:36]
18:01 차도로 내려섰다. 힘들게 산행을 할 때와 산행을 마치고 차도에 내려설 때의 기분은 많이 다르다. 산행중에는 빨리 차도에 내려서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지만 차도에 내려서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오늘은 걸은 거리에 비해 꽤 힘든 산행이었다. 오늘 가야할 마지막 성문인 대서문을 보려면 차도를 따라 걸어갔다 와야 하는데 그만 두기로 했다. 그냥 미련으로 남겨두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동서울버스터미널로 갔다. 이상하게도 지금 시간에는, 아침과는 반대로, 시내로 들어가는 지하철이 한산했다.
7시 40분에 청주행 버스가 출발했다. 역시 자리가 많이 남아 널찍하게 앉아 올 수가 있었다. 고속도로에 차도 별로 없고 해서 버스는 신나게 달린다. 9시 정각에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버스가 도착했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오니 9시 50분이다. 청주를 출발해서 산행을 마치고 다시 청주로 돌아온 14시간 동안의 북한산성 종주산행 여정은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차도에 내려서면 만나는 이정표 [18:01]
▲ 대서문으로 올라가는 차도[18:03]
▲ 북한산성 계곡길과 차량 이용 도로 갈림길 이정표 [18:05]
▲ 둘레길 갈림길 이정표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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