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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경기山行記

2012.04.01. [경기山行記 27] 서울 강북 북한산

by 사천거사 2012. 4. 1.

 

북한산 산행기

 

 ◈ 일시: 2012년 4월 1일 일요일

 ◈ 장소: 북한산 일원 서울 강북

 ◈ 코스: 정릉 칼바위능선 → 대성문 → 문수봉  → 비봉능선 → 비봉 → 진관사 입구

 ◈ 시간: 4시간 31분

 ◈ 회원: 청주 메아리산악회 안내 산행

 

 

 

07:00   오늘은 청주메아리산악회가 안내하는 북한산 산행에 참가하는 날이다. 오늘 산행은 정릉에서 시작하여 칼바위능선과 비봉능선을 거쳐 진관사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비봉능선은 예전에 한 번 걸어본 적이 있다. 북한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기암괴석이 많고 또 코스가 다양해서 서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악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빈 자리 없이 회원들로 가득 찬 버스가 청주종합경기장 앞을 출발했다. 4월인데도 아침 날씨는 꽤 쌀쌀하다. 비몽사몽 간에 버스가 이천휴게소로 들어갔다. 아침 요기를 하기 위해 유부우동을 하나 시켰다. 시간이 일러 그런지 휴게소는 한산한 편이었다. 구리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난 버스가 정릉유원지 쪽으로 달린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서울 시내의 교통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 중부고속도로 이천휴게소 [07:59]

 

09:15   정릉시내버스정류장에 도착, 버스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북한산 둘레길 이정표를 지나고 정릉탐방지원센터 건물과 북한산관리사무소 건물을 지났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조금 이른 시간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다. 왼쪽으로 계속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우리가 가야할 길은 계속 오른쪽이다. 내원사까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계속 이어졌다. '淸淨'과 '光明'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 정릉에 있는 시내버스정류장 [09:15] 

 

▲ 북한산 둘레길 이정표 [09:17] 

 

▲ 국립공원 북한산 표지판 [09:18] 

 

▲ 정릉탐방지원센터 건물 [09:19] 

 

▲ 이정표 [09:19] 

 

▲ 북한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건물 [09:23] 

 

▲ 내원사까지는 길이 좋다 [09:30] 

 

▲ 청정 [09:32] 

 

▲ 내원사 절집이 보인다 [09:35] 

 

▲ 광명 [09:36]

 

09:37   내원사를 지나면서 길은 포장도로에서 돌길로 바뀌었다. 경사는 그저 그렇다. 내원사에서 10분 정도 걸어 칼바위능선에 올랐다. 이정표를 보니 오른쪽은 칼바위공원지킴터로 내려가는 길이고 맞은편은 냉골공원지킴터로 내려가는 길이다. 칼바위를 향해서 왼쪽 길로 Go! 오른쪽으로 백운대와 인수봉이 보인다. 그 오른쪽으로 오봉능선과 도봉산의 자운봉이 보인다. 장쾌하다. 시간이 일러 그런지 칼바위능선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 북한산 내원사 [09:37] 

 

▲ 능선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길[09:44] 

 

▲ 냉골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09:47] 

 

▲ 칼바위능선 [09:53] 

 

▲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오봉이 보인다 [10:00] 

 

▲ 4거리 갈림길 이정표 [10:06] 

 

▲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인다 [10:09] 

 

▲ 칼바위능선 [10:11]

 

10:13   문수봉에서 뻗어내린 북한산성이 보인다. 마치 능선에다가 흰 줄을 늘어놓은 것 같다. 가끔씩 바위지대가 나타나는 칼바위 능선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유순했다. 칼바위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칼바위 부근이 조금 신경을 써야 할 곳이다. 칼바위에서는 전망이 좋아 백운대와 인수봉이 잘 보였고 그 오른쪽으로 오봉과 도봉산 능선이 잘 보였다. 산성탐방로에 올라서서 문수봉이 있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른쪽은 백운대로 가는 길이다.

 

▲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성길 [10:13] 

 

▲ 칼바위능선 [10:14] 

 

▲ 능선을 따라 나 있는 북한산성 성벽이 보인다 [10:21] 

 

▲ 칼바위에 올라 있는 산행객들 [10:22] 

 

▲ 칼바위에서 바라본 백운대와 인수봉, 도봉산 [10:22] 

 

▲ 칼바위에서 바라본 산성능선 [10:25] 

 

▲ 칼바위에서 기념으로 한 장 [10:26] 

 

▲ 칼바위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10:35] 

 

▲ 북한산성 성벽을 따라 안쪽으로 길이 나 있다 [10:39]

 

10:39   정릉계곡으로 내려가는 길과 북한산성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어지는 보국문을 지났다. 북한산성 성벽을 따라 문수봉까지 길이 계속 이어졌다. 북한산성은 북한산의 북한산성계곡을 중심으로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를 연결한 산성이다. 산성 주능선과 의상봉 능선, 원효봉 능선이 바로 북한산성이다. 그 외곽으로는 강북구 우이동 방향의 진달래 능선, 종로구 정릉동 방향의 칼바위 능선, 구기동 방향의 사자 능선과 형제봉 능선, 은평구 불광동 방향의 비봉 능선, 진관동 방향의 응봉 능선, 효자동 방향의 원효봉 능선이 있다. 북한산성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에 소재해 있다.

 

▲ 북한산성 보국문 [10;39] 

 

▲ 삼각산 정상부가 잘 보인다 [10:45] 

 

▲ 문수봉으로 이어지고 있는 북한산성 성벽 [10:47] 

 

▲ 북한산성 대성문 [10:57] 

 

▲ 북한산성 대남문 [11:09] 

 

▲ 아직 계곡에 잔설이 남아 있다 [11:19]

 

11:20   해발 727m의 문수봉 정상 아래 도착했다. 정상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올라간다. 금지된 곳이니 그냥 통과. 문수봉을 감아 돌자 전망이 터지는데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어느 인간이 저런 걸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자연은 아름답고 위대하다. 자연은 건드리면 안 된다. 자연에 법칙에 역행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해발 727m의 문수봉 표지 [11:20] 

 

▲ 해발 727m의 문수봉 [11:21] 

 

▲ 문수봉에서 바라본 비봉능선 쪽 풍경 [11:22]  

 

▲ 줌으로 당겨본 모습 [11:22] 

 

▲ 문수봉을 향해 걷고 있는 산행객들 [11:23] 

 

▲ 거대한 바위 조각 전시장 [11:30] 

 

▲ 문수봉에서 내려오다 회원들과 함께 [11:30]

 

▲ 문수봉에 올라가 있는 산행객들 [11:30]

 

11:34   문수봉에서 내려가는 암릉길은 경사가 급하고 모두 바위지대라 쇠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조금 신경을 쓰면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교행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석문을 지났다. 의상능선이 오른쪽으로 보인다. 승가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바위에는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 문수봉 하산길이 시작되는 곳 [11:34] 

 

▲ 문수봉 하산길 [11:35] 

 

▲ 문수봉 하산길 [11:38] 

 

▲ 문수봉 하산길 [11:40] 

 

▲ 문수봉 하산길 [11:43] 

 

▲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석문 [11:55] 

 

▲ 의상능선 [11:59] 

 

▲ 승가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12:00]

 

12:01   승가봉은 천혜의 전망터라 주변 경관을 잘 볼 수 있었다. 비봉능선의 명물인 사모바위 아래에는 넓은 공터가 있는데 많은 산행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고 있었다. 사모바위 아래 바위굴 속에는 지난 1968년 1월 21일에 침투했던 무장공비의 밀랍 인형이 있었다. 휴전선을 뚫고 어떻게 이곳까지 무사히 왔는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 승가봉 정상 [12:01] 

 

▲ 승가봉에서 바라본 문수봉 [12:02] 

 

▲ 승가봉에서 바라본 승가사와 사모바위 [12:02] 

 

▲ 사모바위 [12:10] 

 

▲ 사모바위 아래 공터 [12:11] 

 

▲ 1.21사태 무장공비 은신장소 안내문 [12:12] 

 

▲ 무장공비 밀랍 인형 [12:14] 

 

▲ 무장공비 밀랍 인형[12:15]

 

12:16   승가사 갈림길 이정표를 조금 지나자 비봉이 보인다. 비봉에는 진흥왕순수비가 있는데, 원래의 진흥왕순수비는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원위치에는 복제비가 세워져 사적으로서 장소적 의미만을 지키고 있다. 진흥왕은 신라의 영토 확장사업을 성공리에 마친 뒤 561년에는 창녕에 척경비(拓境碑)를 세우고, 뒤이어 새로 편입된 한강 이북의 땅을 순수(巡狩)하면서 북한산과 함경도의 황초령,마운령에 비를 세웠다.

 

▲ 승가사 갈림길 이정표 [12:16] 

 

▲ 정면으로 비봉이 보인다 [12:20] 

 

▲ 향로봉 [12:27] 

 

▲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비봉 [12:30] 

 

▲ 문수봉과 비봉 [12:33] 

 

▲ 백운대 쪽 암릉 [12:33] 

 

▲ 문수봉 쪽 암릉 [12:33] 

 

▲ 무슨 봉우리인지 모르겠네 [12:34] 

 

▲ 떨어지면 어쩌나? [12:35]

 

12:38   향로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정면으로 나 있는데 출입금지구역이다. 사람들은 무시하고 올라가는데 나는 그냥 오른쪽 길로 내려섰다. 내려오는 길 오른쪽으로 백운대 방면이 보이는데 늘어선 암릉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길이 진관사로 내려가는 길이기는 한가? 맞은편에서 오는 산행객에서 물었더니 조금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온다고 일러준다.

 

▲ 해발 535m의 향로봉 입구에 있는 이정표 [12:38] 

 

▲ 하산길 오른쪽으로 바라본 백운대 쪽 풍경 [12:42] 

 

▲ 오른쪽이 향로봉 [12:42] 

 

▲ 백운대 쪽 능선 풍경 [12:59]

 

▲ 기자촌공원지킴터로 내려가는 능선길 [13:03] 

 

13:08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진관공원지킴터로 내려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갈라지고 있다. 곧장 가면 기자촌공원지킴터가 나온다. 곧장 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진관사로 내려가는 길도 초행이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곡을 따라 길이 계속 이어졌는데 내려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가끔 노란 꽃을 피운 생강나무가 반겨줄 뿐이다.

 

갈림길에서 25분 정도 걸어 진관사에 도착했다. 북한산 진관사는 고려 8대 현종을 보호해준 진관대사를 기리면서 현종이 세운 사찰로 알려졌다. 천년 고찰 진관사는 6.25 전쟁 동안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근래에 중창하여, 현재는 비구승의 도량이며 아름다운 경내는 여성미의 섬세함이 넘친다. 진관사 계곡의 맑은 물은 여름철 피서객들을 불러모으며,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철의 진관사 가는 길은 산책 코스로도 유명하다. 진관사를 둘러본 후 버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오는 데에는 채 15분이 걸리지 않았다.

 

진관사 태극기

 

문화재청은 지난해 5월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발견된 태극기가 일장기(日章旗) 위에 그려진 사실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태극기는 진관사 칠성각 해체복원 중 불단과 기둥의 해체과정에서 발견됐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색이 변하고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타 약간 손상되었지만 형태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89㎝, 세로 70㎝, 태극의 직경은 32㎝다.

일장기 위에 그려진 태극기가 사실은 등록문화재 등록 과정에서 확인됐다. 태극문양의 크기가 일반 태극기에서의 비율보다 커 일장기에 가깝고 일장기 위에 먹물로 음방(아래쪽 청색 부분)을 그리는 과정에서 먹물이 번진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렸다는 주장은 많이 제기됐으나 원형으로 발견된 것은 이례적이다. 일장기 위에 그린 태극기는 2005년 처음 국내에 소개됐다.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가 1950년 9·28 서울수복 당시 한 시민이 건네준 태극기를 하남시에 기증한 것이 처음으로 하남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그러나 이 태극기는 해방 이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일제시대에 일장기 위에 그린 태극기는 진관사 태극기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진관사 태극기의 제작자는 분명치 않으나 임시정부와 관련된 인사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조선독립신문·자유신종보·경고문 모두 태극기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4괘의 위치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양식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진관사 태극기가 1919년 3·1운동 당시 진관사에서 활동하던 스님이 독립운동 중 급박한 상황에 직면하자 사람들 왕래가 적은 칠성각의 내부 벽체에 감춰둔 것으로 분석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3·1운동 당시 진관사에서 활동하던 백초월 스님이 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는 3·1운동이 일어나자 불교계 민족대표였던 한용운을 대신해 불교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국내와 임시정부를 왕래하던 항일승려들을 진관사에서 만나고 전국 사찰을 왕래하면서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진관사에서 보살계 법회를 통해 군자금을 모으고 임정의 독립신문과 비밀 지하신문을 배포했다. 그는 독립운동 혐의로 두 차례 체포돼 서대문·대전·청주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44년 옥사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국내 사찰 중 태극기가 발견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사료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송명호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 상임고문은 “일제시대에 일장기는 흰색 천에 홍색 원을 바느질로 꿰매는 형식이 많았는데 진관사 태극기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일장기 위에 먹물로 음방과 4궤를 그린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송 고문은 또 “이런방식으로 태극기가 만들어진 것은 당시 재료가 부족했다기보다는 ‘일장기 위에 태극기가 있다’는 독립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 진관공원지킴터 갈림길 이정표 [13:08] 

 

▲ 돌이 깔린 계곡길 [13:12] 

 

▲ 오가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13:27] 

 

▲ 여기도 산수유가 꽃을 피웠네 [13:31] 

 

▲ 진관사 [13:34] 

 

▲ 진관사 대웅전 [13:36] 

 

▲ 삼각산 진관사 일주문: 새 일주문 공사중 [13:41] 

 

▲ 진관공원지킴터 건물 [13:44] 

 

▲ 진관사 입구에 있는 북한산 둘레길 이정표 [13:46] 

 

▲ 진관사 태극기 설명문 [13:47] 

 

13:48   버스가 서 있는 곳에 도착했다. 버스 문은 잠겨 있고 아무도 없다. 잠시 후 기사 분이 와서 버스에 배낭을 실은 다음 주변을 둘러보며 회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회원들이 몇 명 도착해서 버스 옆 공터에 자리를 펴고 두부를 안주 삼아 소주를 몇 잔 마셨다. 속이 후끈해진다. 3시 45분에 버스가 출발했다. 청주에서 거리가 가깝다보니 6시간 30분 간의 산행 시간을 주었는 데도 4시 전에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서울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라 차도 막히지 않는다. 이천휴게소에 한 번 들른 다음 청주까지 내쳐 달려 도착한 시각이 6시 5분, 아직도 해가 짱짱하다. 이렇게 해서 오늘 봄기운을 듬뿍 받은 북한산 산행이 막을 내렸다. 

 

▲ 산행날머리에 서 있는 우리 버스 [13:48] 

 

▲ 진관사 입구에서 두부에 소주 한 잔 [14:48] 

 

▲ 중부고속도로 이천휴게소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