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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남山行記

2011.11.13. [충남山行記 32] 충남 부여 만수산

by 사천거사 2011. 11. 13.

만수산 산행기

◈ 일시: 2011년 11월 13일 일요일

◈ 장소: 만수산 575m / 충남 부여군 외산면

◈ 코스: 주차장 → 무진암 → 주능선 → 장군봉 → 삼거리 → 만수산 문수봉 → 전망대 → 비로봉 → 

           태조암 → 무량사 주차장 

◈ 시간: 5시간

◈ 회원: 아내와 함께


 

 

 

 


06:30   오늘은 아내와 함께 충남 부여와 보령의 경계에 있는 만수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만수산은 심연동을 경계로 북쪽으로는 성주산, 40번 국도를 경계로는 남쪽의 아미산과 이웃해 있는 산이다. 해발 600m가 안 되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천년고찰 무량사를 품고 있고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 산행을 하기에 좋은 장소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예전보다 일찍 청주 아파트를 출발했다. 아침에 조금 서둘러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일찍 산행을 떠나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갈 때에 차가 밀리지 않고, 또 올 때도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귀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차가 밀리지 않는다. 사람이 많이 찾는 산행지인 경우 혼잡함을 피할 수 있다. 기타 등등. 일단 조치원을 거쳐 동공주나들목까지 간 다음 당진-상주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서공주갈림목에서 서천-공주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예상했던 대로 도로에는 차가 별로 없어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날씨는 흐려 있고 잔뜩 이내가 끼어 있어 전망은 크게 기대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서부여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구룡면과 내산면을 거친 다음 40번 국도를 타고 외산면으로 달렸다. 외산면소재지에서 산행기점인 무량마을 노인회관까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08:10    무량마을 노인회관 옆 공터에 차를 세웠다. 도로 건너 다리를 지나 무진암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떨어진 잎들이 도로 양쪽에 쌓여 있어 가을이 많이 깊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무진암 경내에서 서성이는데 한 보살님이 '등산을 하려면 절 뒤로 돌아 올라가야 해요.' 라고 일러준다. 고맙습니다. 매월당 김시습부도가 있는 부도탑지를 오른쪽으로 감아돌아 산길로 들어섰다.

 

'전망대'라고 적혀 있는 낡은 팻말을 지나면서 번듯한 길이 계속 나타났다. 경사가 꽤 있는 오르막 길이 계속 이어졌다. 2주 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었을 단풍나무들이 색바른 잎을 가지에 매달고 가는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별의 별 색깔로 한 때를 풍미하던 잎들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거의 같은 색깔로 변해가고 있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제각기 다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 종착지는 한곳으로 모아진다.


매월당 김시습부도

 

종목: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5호 

명칭: 무량사김시습부도 (無量寺金時習浮屠) 

지정(등록)일: 1973.12.24. 

소재지: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25-1 

소유자(소유단체): 무량사 

관리자(관리단체): 무량사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사리를 모신 부도이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분으로, 21세 때에 수양대군(후의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불교에 입문하여 만년을 무량사에서 보내다 입적하였다. 

 

부도는 아래에 3단을 이루는 기단(基壇)을 마련하여 그 위로 탑신(塔身)과 머리장식을 올렸는데 모든 부재의 단면이 8각을 이루고 있다. 기단은 위 아래 받침돌에 연꽃을 장식하고, 가운데 받침돌에는 구름에 쌓인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을 새겼다. 탑신의 몸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연꽃덮개가 조각된 지붕돌은 꽃장식이 달린 여덟 귀퉁이가 높게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과 보주(寶珠: 꽃봉오리모양의 장식) 등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부도로, 당시의 작품으로는 조각이 매우 우수하고 화려하다. 일제시대 때 폭풍우로 나무가 쓰러지면서 함께 넘어졌는데 그 때 밑에서 사리 1점이 나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 무량마을 노인회관 옆 공터에 주차 [08:12]

 

▲ 마을회관 건너편 무진암으로 가는 길 [08:12]

 

▲ 무진암 표지석 [08:13]

 

▲ 무진암으로 가는 길 [08:14]

 

▲ 무진암 대웅전 [08:17]

 

▲ 매월당 김시습 부도: 맨 왼쪽에 있는 것 [08:18]

 

▲ 무진암 뒤로 산행로가 나 있다 [08:22]

 

▲ 땀이 나니 겉옷을 한 꺼풀 벗고 [08:33]

 

▲ 얼마 전만 해도 참 예쁜 길이었을 텐데 [08:39]

 

▲ 쉬면서 하늘 한 번 쳐다보고 [08:56]


09:00   이정표가 있는 주능선 삼거리에 올랐다. 삼거리에는 벤취가 있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삼거리에서는 조루봉과 장군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는데, 나는 방향은 생각하지도 않고 명칭으로 보아 장군봉이 정상일 것 같아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이정표를 두 개 지나자 서서히 바위들이 나타나기시작하더니 경사가 급해졌다. 커다란 암벽 왼쪽으로 철계단이 보인다.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계단인 모양이다.


▲ 주능선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09:00]

 

▲ 주능선 삼거리에서 휴식 중 [09:01]

 

▲ 주능선 삼거리에서 쉬는 중 [09:02]

 

▲ 장군봉을 향하여 [09:09]

 

▲ 쓰러진 나무 아래를 통과 [09:11]

 

▲ 나무들이 거의 옷을 벗었다 [09:16]

 

▲ 운지버섯이 예뻐서 [09:37]

 

▲ 서서히 바위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09:41]

 

▲ 잠시 쉬어 갑니다 [09:44]

 

▲ 장군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철계단 [09:50]


09:52   만수산 장군봉에 올랐다. 표지석이 있다. 여기가 정상이 맞나? 어째 이상하네. 오른쪽에서 남자 산행객 한 명이 올라온다. 여기가 만수산 정상인가요? 여기는 장군봉인데요. 어디서 올라왔나요? 무진암에서 올라왔는데요. 그러면 반대쪽으로 왔네요. 조루봉 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이게 뭔 소리여. 그 남자의 황당한 말에 나는 말을 잃고 말았다. 1.5km를 걸어 다시 주능선 삼거리까지 가야 한단 말인가?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나야 상관이 없지만 다른 길로 온 것에 대한 아내의 실망이 클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선선히 이렇게 말을 한다. 다시 돌아가서 제대로 가야지, 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갈 수는 없잖아요? 옳으신 말씀.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1.5km를 걸었다. 길을 잘못 들어, 거리상으로는 3km를 더 걸은 셈이고 시간적으로는 1시간 30분이 더 걸렸다.


▲ 만수산 장군봉에서 [09:52]

 

▲ 해발 530m의 만수산 장군봉에서 [09:53]

 

▲ 만수산 장군봉에서 [09:53]

 

▲ 장군봉에서 바라본 아미산 [09:54]

 

▲ 장군봉에서 내려다본 무진암과 무량마을 [10:02]

 

▲ 앞으로 걸어야 할 능선 [10:03]

 

▲ 장군봉에서 되돌아오는 길에 [10:35]

 

▲ 웃는 게 속이 편합니다 [10:36]

 

▲ 주능선 삼거리로 내려오다가 [10:41]


10:45   아까 무진암에서 올라왔던 주능선 삼거리에 다시 도착했다. 장군봉에서 우리에게 길을 일러준 아저씨가 벤취에 앉아 있다가 이정표의 조루봉 쪽을 가리키며 씩 웃는다. '3km를 손해 보았네요.' 라고 말을 하니까 '산행이 다 그런 거 아닙니까?' 라고 받아친다. 그렇다. 살다보면 이익을 볼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다. 그런 것도 모두 삶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조루봉 쪽으로 가는 길은 장군봉 쪽 길보다 더 평탄해서 걷기에 좋았다. 산행로에는 노란색 경고판을 가끔씩 세워 놓았는데, 폐탄광의 갱도로 인한 지반침하를 알리는 글이 적혀 있었다. 삼거리에서 35분 정도 걸어 삼각점이 있는 만수산의 주봉인 조루봉(지도에는 문수봉이라고 표기)에 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주봉에는 어디에도 정상을 알려주는 표시가 없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정상에서 전망대 정자까지는 5분 남짓한 거리였다.


▲ 주능선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조루봉 쪽으로 가야 한다 [10:45]

 

▲ 역시 단풍은 빨간색이라야 [11:00]

 

▲ 조금 힘이 드는 모양이네 [11:08]

 

▲ 이름 없는 봉우리에 서 있는 경고판 [11:12]

 

▲ 만수산 정상인 조루봉(문수봉) 정상을 몇 미터 앞에다 두고 [11:18]

 

▲ 만수산 주봉인 조루봉(문수봉)에 있는 삼각점 [11:19]

 

▲ 해발 575m의 조루봉에서 [11:20]

 

▲ 만수산 주봉인 조루봉에서 [11:20]


11:26   팔각정자가 있는 곳에 왔는데 현판에 '성주산전망대'라고 적혀 있다. 어째 '만수산 전망대'가 아니지? 여러 모로 만수산이 홀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망대 의자에 앉아 떡과 커피를 간식으로 먹고 비로봉 쪽으로 향했다. 24분 걸려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조금 되돌아 내려오면 내려가는 길이 있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졌다. 낙엽이 깔려 있고 잔돌이 많아 길이 무척 미끄럽다.


▲ 팔각정자 '성주산전망대' [11:28]

 

▲ 전망대에서 간식을 먹고 나서 [11:39]

 

▲ 산 전체에 낙엽이 깔려 있다 [11:42]

 

▲ 심원골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이정표 [11:44]

 

▲ 비로봉 정상에서 [12:04]

 

▲ 해발 563m의 비로봉 정상에서 [12:05]

 

▲ 억새가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12:11]


12:15   이정표를 만났다. 태조암까지 가는 거리가 1.5km라고 적혀 있다. 꽤 많이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거리가 멀다. 지그재그식 하산로가 계속 이어지더니 이윽고 돌이 깔려 있는 계곡에 내려섰고 길은 많이 평탄해졌다. 태조암은 수행정진중이라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도로 오른쪽으로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데 모두 잘 익은 감을 가지에 매달고 있었다. 왜 수확을 안 하지? 그냥 저렇게 버리는 감인가? 갑자기 앞이 확 트이면서 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무량사 절집 지붕이 보인다.


▲ 하산 중에 만난 이정표 [12:15]

 

▲ 여기는 파란 잎들이 그냥 있네 [12:16]

 

▲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 옆에서 [12:18]

 

▲ 마침내 계곡에 내려섰다 [12:30]

 

▲ 가을 냄새가 약간 나기는 하는데 [12:34]

 

▲ 출입금지 안내문 뒤로 보이는 태조암 [12:38]

 

▲ 감나무 뒤로 보이는 만수산 주능선 [12:42]

 

▲ 자작나무와 단풍나무의 합작품 [12:45]

 

▲ 평원에서 뒤돌아본 만수산 주능선 [12:53]


13:00   무량사 사천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갔다. 천년고찰답게 절집들의 배치가 잘 되어 있는 경내에서는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극락전과 오층석탑이 먼저 눈에 띄었다. 물을 한 모금씩 마시고 무량사를 떠나 일주문을 지난 다음 매표소를 통과하는데 매표소 직원이 소리를 지른다. 아저씨, 어디로 올라갔어요? 무진암 쪽이요. 무량사 들러서 왔으면 입장료를 내고 가세요.

 

살다가 별 지독한 사람 다 보겠네. 뭘 산에 갔다 내려오는 사람에게까지 입장료를 다 받고 난리야. 나는 불교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것에는 아주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 지리산 천은사 같은 곳은 성삼재 올라가는 차에 탄 승객들에게서 관람료가 아닌 통행세를 받고 있다. 세상에 칼만 안 들었을 뿐이지 날강도와 다름 없다. 퇴장료 4천 원을 주면서 속으로 침을 내뱉었다. 카악! 퇘!

 

차를 세워둔 노인회관 앞에 도착, 배낭을 싣고 차를 돌려 서부여나들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찍 산행에 나선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길을 잘못 들어 한 시간 반을 더 보냈는데도 시간적 여유가 많다. 고속도로는, 아침보다는 차량 통행이 많았지만, 달리는 데에 큰 문제가 없었다. 3시 조금 넘어 청주에 도착하는 것으로 낙엽을 실컷 밟은 만수산 만추 산행의 막을 내렸다. 


무량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옛 문헌에는 홍산(鴻山) 무량사라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무량사가 위치한 지역이 행정구역으로 부여군 외산면(外山面)에 해당되어 외산 무량사라 불리고 있다. 절에 대한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에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세조 때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은둔생활을 하다가 죽은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 초기에 개창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병화에 의해 사찰 전체가 불타버린 뒤 조선 인조 때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극락전(보물 제356호)·5층석탑(보물 제185호)·석등(보물 제233호)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당간지주와 김시습의 부도가 남아 있다.


▲ 천년고찰 무량사 전경 [13:00]

 

▲ 무량사 극락전과 오층석탑 [13:01]

 

▲ 보물 제356호인 무량사 극락전 [13:07]

 

▲ 무량사 앞에 있는 계곡 [13:09]

 

▲ 만수산 무량사 일주문 [13:10]

 

▲ 다시 돌아온 무량마을 노인회관 옆 공터 [13:13]